<이슈&인물> 그래도 선장 황선홍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03.04 11:26:29
  • 호수 14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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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져 가는 태극전사호 키를 잡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황선홍 현 올림픽 축구대표팀 감독이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까지 맡게 됐다. 황 감독이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경질로 좌초 위기에 놓인 국가대표팀의 임시 사령탑으로 선임된 것이다. 현역 시절 한국 최초의 해외 리그 득점왕이던 그가 ‘투잡 감독’으로 새 이름을 쓰고 있다.

정해성 대한축구협회(KFA) 전력강화위원회(이하 강화위) 위원장은 지난달 27일,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 3차 회의 결과 브리핑을 열고 이같이 발표했다. 이에 따라 황 감독은 이달 21일과 26일로 예정된 태국과의 2026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 2연전을 이끌게 됐다. 

그 기간 올림픽 축구대표팀은 황 감독을 제외한 기존 코칭스태프가 맡게 될 예정이다. 북중미월드컵 예선전 이후 황 감독은 올림픽 축구대표팀으로 돌아간다. 다음달 카타르서 열리는 2024 파리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겸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을 치르기 위해서다.

항저우 게임 
금메달 주역

황 감독이 최우선 후보로 정해진 이유에 대해 정 위원장은 “황 감독은 협회 소속 지도자고 아시안게임 금메달 성과도 냈다”며 “본인이 일시적으로 두 개팀을 맡을 의향이 있고, 구상이 있다면 최우선으로 검토해야 하는 후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황 감독이 이끌 A 대표팀은 중국·태국·싱가포르와 C조에 속해 있다. 한국은 2승(승점 6)으로 조 선두를 달리고 있다. 내년 6월까지 2차 예선을 벌여 조 1·2위 팀이 최종예선에 진출한다.


황 감독은 이달 태국전을 위해 별도 코치진을 꾸릴 예정이다. 무엇보다 카타르아시안컵에 주장 손흥민과 이강인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등 침울해진 대표팀 분위기를 회복시키는 것도 그의 임무다. 황 감독은 항저우아시안게임서 이른바 ‘탁구 멤버’로 알려진 이강인과 정우영, 설영우 등을 이끌고 금메달을 따낸 바 있다.

황 감독이 임시 사령탑으로 임무를 마치면, 파리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을 겸한 카타르 U-23 아시안컵이 열린다. 다음달 15일 막을 올리는 이번 대회는 지난 아시안컵에 이어 카타르서 열려 중동팀의 강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국은 일본과 UAE(아랍에미리트), 중국과 B조에 속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이 과정서 U-23 대표팀은 이달 A 매치 기간에 사우디아라비아서 올림픽 예선을 대비한 친선경기를 벌인다. 한국은 남자 축구서 올림픽 최다 연속 본선 출전 기록(9회)을 보유하고 있다.

무리수라는 지적을 뿌리치고 강화위가 황 감독을 선임한 건 항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쾌거 등 국제대회 수상 경험 등을 높이 산 결정으로 풀이된다. 현재 23세 이하인 올림픽대표팀 멤버들이 추후 북중미월드컵 본선을 앞두고 A 대표팀에 진출할 가능성 또한 황 감독이 선임된 이유였다.

정해성 위원장은 “파리올림픽 본선행 도전 과정과 A 대표팀 일정이 일부 겹쳐 이 부분에 대해 고민했던 건 사실”이라면서 “6월에 있을 월드컵 2차 예선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5월 초까지는 정식 감독을 선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초 강화위는 K리그 현직 지도자 중에서 정식 사령탑을 선임할 예정이었으나, 지난달 24일 제2차 회의서 로드맵을 바꿨다. 이달 A 매치 2연전은 임시 감독으로 치르고, 충분한 검토 과정을 거쳐 오는 6월 A 매치 일정에 맞춰 새 사령탑을 선임하기로 했다.

이달 1일 개막한 K리그 사령탑을 차출할 경우 발생할 K리그 관계자들과 팬들의 반발을 고려한 결정이다.


2차 회의 당시 강화위원회는 황 감독과 더불어 박항서 전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 최용수 전 강원FC 감독을 사령탑 후보군에 올려놨다.

클린스만 경질 후 임시 감독 선임
손흥민-이강인 사건 수습 적임자?

정 위원장은 “축구대표팀 임시 사령탑에게 필요한 주요 덕목 위주로 점수를 매긴 결과 황 감독이 1순위 후보로 낙점받았다”며 “3차 회의서 세 명의 후보에 대한 정밀 검증을 진행했고, 당초 순위대로 황 감독에게 가장 먼저 A 대표팀 감독직 겸임에 대한 의사를 타진해 승낙을 받았다”고 전했다.

당초 여론의 시선은 박 감독을 향했다. 팀 내 갈등을 봉합하기 위해 박 감독의 ‘파파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분분했다. 특히, 황 감독이 두 팀을 병행하는 게 무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었다. 올림픽팀은 아시아 최종예선서 3위 이내에 들어야 파리행을 확정지을 수 있다. 4위에 머물면 아프리카 팀과 대륙 간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한다.

한국 축구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황 감독은 현역 시절 붙박이 스트라이커였다. 그는 2002 한·일 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서 폴란드를 상대로 선제골을 터뜨리는 등 A 매치 103경기서 50골을 넣어 득점 2위에 올랐다. 이를 계기로 ‘센추리클럽’에 가입했다.

차범근 전 국가대표 감독(A 매치 130경기 58골)에 이어 역대 두 번째 득점을 기록한 것이다. 센추리클럽은 FIFA가 공인하는 A 매치에 100회 이상 출전한 선수들의 명단이다. 해당 국가서 중요한 핵심 선수로서 오랫동안 국가대표로 인정받아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황 감독은 홍명보와 함께 한국 축구 사상 첫 월드컵 4회 연속 출전이라는 기록을 가진 선수이자 한국 축구 선수 최초의 해외리그 득점왕이기도 하다. 공격수로서 은퇴할 나이인 34세의 나이에도 2002년 한일월드컵서 주전 공격수로서 대한민국의 4강 진출을 이끌었다.

보통은 나이가 들면서 기량 저하로 대표팀서 주전으로 뛰지 못하거나 미리 은퇴하는 경우가 많다. 동시대의 공격수인 최용수, 김도훈, 서정원이나 2002 한일월드컵 공격수였던 이천수, 설기현 등 모두 30세를 넘어가면서 대표팀 주전서 밀렸다.

가난한 시절 
딛고 스타로

안정환도 34세로 출전한 2010 남아공월드컵서 한 경기도 못 뛰고 벤치 신세를 졌으며, ‘캡틴’ 박지성은 30세에 대표팀을 은퇴했다.

황선홍 이후 공격수인 이동국, 박주영 등 대표팀을 거쳐간 다른 선수들도 기량 기복이나 감독의 판단에 따라 대표팀에 승선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황 감독이 14년간 대표팀 주전으로 뛴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30대 중반까지 주전으로 활약했던 필드 플레이어는 차범근, 홍명보, 황선홍 딱 3명뿐이다.

1990년대 축구를 보지 못한 세대들은 그가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 가운데 한 사람으로만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그마저도 왜곡되거나 폄하된다. 2002년 월드컵을 직접 보지 않은 세대 중 안정환이 주전 공격수였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실제로 황 감독이 주전 공격수고 안정환은 그와 교체되는 후반 조커 공격수였다.


그러나 황 감독이 본선 첫 경기인 폴란드전부터 허벅지에 입은 부상으로 세 번째 경기인 포르투갈전부터는 안정환이 선발 출장했다. 32강 조별리그부터 4강전(독일전)까지의 6경기 중 황 감독이 3경기(폴란드, 미국, 독일), 안정환이 3경기(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서 선발 출장했다.

이후 3위, 4위전(터키전)에서는 안정환이 선발 출장했다. 이를 계기로 둘은 유럽팀을 상대로 대등하게 맞서 싸울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중앙 공격수였다고 평가받는다.

잦은 부상과 불운에 시달리며 1994 미국월드컵 볼리비아전 한 경기로 이미지가 크게 실추된 비운의 스트라이커이기도 하다.

축구 선수로서 한창인 24세(1992년) 독일서 전방 십자인대 파열로 군대 면제를 받기도 했다. 1993년에 결국 수술을 받으면서 몸의 균형이 완전히 깨졌다고 토로했다. 부상서 회복되자마자 1994 미국월드컵에 나가서 욕이란 욕은 다 먹었다. 이어 본인 스스로 기량이 절정이었다고 말한 1998년에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 또 부상을 입었다. 지지리도 운이 없던 셈이다.

한국 축구 기둥
동시에 두 팀

말도 탈도 많았지만, 한국 대표팀은 황 감독 없인 설명하기 어려웠다. 황 감독만큼 장기간 국가대표팀서 고정 스트라이커로 활약한 선수가 없었다. 특히 한일전마다 그의 맹활약도 빠질 수 없다. 총 4경기에 출전해 5골을 넣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는데, 차범근의 6골에 이은 역대 한일전 최다 골 2위 기록이다. 그가 뛴 한일전에선 전승을 거뒀고, 출전한 모든 한일전서 결승골을 넣은 유일한 선수다.


그는 힘들었던 가정형편 속에도 쓰러지지 않고 버텨왔다. 성이 황씨라서 별명을 ‘황새’라고 아는 사람도 많다. 실제로는 가난하던 어린 시절 약점이었던 체격을 만회하기 위해 물배를 채워 뒤뚱거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동료들이 황새라는 별명을 붙였다고 한다.

학교 급식만으론 원하던 체중을 만들 수 없자 배가 터지도록 많은 양의 물을 마셨다. 물배라도 채워 몸싸움에 밀리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버틴 것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직후 은퇴를 선언한 황 감독에 대해 거스 히딩크 감독은 “나는 황선홍에게 애착이 가는 게 사실”이라며 “그는 팀의 베스트로서 항상 혼자 아픔을 뒤집어 썼다”고 말했다.

히딩크는 “황선홍의 가족사는 좋지 못하다. 어렸을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와 할아버지마저도 A 매치 중에 돌아가셨다”며 “그는 그리움에 차 있었다. 그래서 공을 찼다고 한다. 응원 나올 부모님이 있었으면 그에게 좀 더 힘이 됐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한국 대표팀이 프랑스와 경기서 0:5로 대패하던 날, 황 감독은 히딩크를 찾아와 밤을 새워 울었다는 후문도 있다.

은퇴 후, 해설위원을 거쳐 2008년 부산 아이파크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친정팀 포항 스틸러스를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감독했다. 포항서 K리그 1회 우승과 FA컵 2회 우승을 기록하며 감독 커리어 초반에는 좋은 경력을 보유했다. 

올림픽 축구대표팀과 국가대표까지
붙박이 스트라이커에서 지도자로

2016년 FC 서울 감독 부임 이후 첫 시즌 K리그 우승을 제외하면 2017 시즌에는 리그 5위에 그쳐 5년 만에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하기도 했다. 2018 시즌에는 급기야 10위, 11위를 오가며 강등권 문턱서 전전했다. 그해 4월30일자로 결국 사퇴하면서 감독 명성에 금이 가고 말았다.

12월14일 뜬금없이 중국 갑급 리그의 옌볜 푸더의 감독으로 선임됐으나 구단 해체, 이후 휴식을 취했다. 2020년 하나은행에 인수된 대전 하나 시티즌의 초대 감독으로 임명됐으나 부진한 경기력이 지속돼 2020년 9월8일부로 사퇴했다. 

이후 1년의 휴식과 방송 활동을 거쳐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에 취임했다. 여러 우려 속에 항저우아시안게임 우승에 성공하며 지도자로서의 재기에 성공했다.

A 대표팀과 U-23 대표팀 감독을 겸임하는 경우를 아시아에선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모리야스 하지메 현 일본 축구 대표팀 감독은 2018년부터 2021년까지 두 팀 지휘봉을 함께 잡았다. 이번에 황 감독과 함께 임시 감독 후보로 거론됐던 박항서 감독도 6년간 베트남 A대표팀과 U-23 대표팀을 동시에 지휘했다.

한국에선 허정무 감독이 1999~2000년, 핌 베어벡 감독이 2006~2007년 두 팀을 동시에 맡은 바 있다. 임시 사령탑 체제를 꾸린 대한축구협회는 이제 본격적으로 정식 감독 선임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정해성 위원장은 “현재 한국 축구 대표팀이 어떤 전술을 지향해야 하고, 어떤 기술 철학을 보여줘야 하는지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 뒤 이에 맞는 감독을 찾을 것”이라며 “대표팀 경기력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고 국민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감독을 5월 초까지 선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황 감독은 아내 정지원과의 사이서 1녀2남을 낳았다. 둘째이자 장남인 황재훈은 아버지를 따라 축구 선수가 돼 선수생활을 했지만,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입으면서 황 감독이 축구를 그만두게 했다. 본인이 당해봤던 부상이라 재활 과정 등을 잘 알아서 그만두게 했다고 한다.

맏이이자 장녀인 황현진은 ‘이겨’라는 이름으로 걸그룹 예아(Ye-A)로 데뷔했다. 처음에는 황 감독과 아내가 거세게 반대했다고 한다. 황 감독이 대중들에게 안 좋게 인식된 것을 의식하면서다. 황 감독은 “자신이 선택한 길을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며 “‘만약 포항 프런트가 포항 홈경기에 자신의 딸이 소속된 걸그룹을 초청한다 해도 본인이 불허할 것’ 딸의 활동에 일체 비호 및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황새의 추억
득점왕 출신

예아는 아이즈원 출신 권은비가 <프로듀스 48>에 참가하기 전에 소속돼있던 걸그룹이기도 하다.

하지만 황현진은 “이 일을 해 보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후회할 것 같다”고 했고 결국 허락했다고 한다. 황씨는 미국 뉴욕대에 합격해 1학기를 재학한 후 활동을 이어갈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으나, 활동을 완전히 접고 현재는 연예계서 은퇴한 상태다. 대학 졸업 후에는 호텔 관련 직장을 다닌다는 근황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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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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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