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 스캔들’ CY그룹의 민낯

곰팡이 식재료에 정산금은 차일피일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유명 망고 프랜차이즈점 허유산의 가맹점 갑질이 도마 위에 올랐다. 회사는 이물질이 나온 망고를 가맹점에 공급하고 가맹점에 정산금을 지연 지급한 것을 인정했다. 다만 망고 생산업체와 유통업체의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허유산 본사가 소비자에게 전액 배상처리했다고 해명했다. 
 

▲ ⓒ허유산 홈페이지

CY그룹서 운영 중인 유명 망고 디저트 프랜차이즈 브랜드 허유산은 홍콩 여행 시 필수 방문코스로 꼽힐 만큼 인기있는 글로벌 브랜드로 한국에선 2017년 롯데월드에 1호점이 세워졌다.

가맹점 갑질 
허유산 논란

그런데 허유산 본사가 가맹점에게 곰팡이가 난 식재료를 공급하고 정산금도 차일피일 미루는 등 갑질을 자행하고 있어 가맹점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회사는 가맹점에게뿐만 아니라 퇴사직원의 급여 및 4대보험료도 체납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한 매체의 보도에 따르면 허유산은 곰팡이가 난 허니젤리와 상태가 좋지 않은 생망고를 공급하고 심지어 고무밴드, 머리카락 같은 이물질이 포함된 식재료를 공급해 고객들의 항의를 받았다. 또 망고가 핵심재료인데도 생망고 공급이 지연돼 애플망고를 갖다 주는 등 식재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허유산 현대백화점 판교점서 2017년 12월부터 2019년 8월까지 매장영업을 담당했던 A씨가 허유산의 가맹점 갑질을 고발한 바 있다.


A씨는 2017년 허유산과 용역계약을 하고 2019년 8월까지 매장을 운영했지만 영업을 한 18개월 동안 정산금이 제 날짜에 들어온 것은 처음 두 달뿐이었으며 이후부터는 정산금액을 한번에 주지 않고 한 달, 두 달씩 미뤄 지급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6개월이나 지연한 적도 있었다. 그나마 A씨가 국민청원에 올리면서 회사는 그제서야 지연된 정산 대금을 완료했다고 전했다.

A씨는 “허유산은 당연히 줘야할 정산금을 뒤늦게 지급했으면서도 당당하다”며 “정산금의 지연지급으로 인해 대출을 받아 직원 급여와 세금, 생활비 등을 감당해야 했다”고 그간의 마음고생을 토로했다.

이것은 A씨 뿐만이 아니었다. 정산금 지연 지급에 화가 난 가맹점주들이 수차례 CY그룹 최현열 명예회장과의 만남들 요구했으나 번번히 무산됐다. 또 허유산의 김수현 대표이사도 전화, 문자, 카톡 등 모든 유선 연결을 거부하고 이들과의 대화를 거부했다고 한다.

이에 허유산 측은 가맹점에 곰팡이 핀 허니젤리 및 고무줄 및 머리카락 등 이물질이 들어간 냉동 망고를 공급한 것에 대해 인정했다.

하지만 이것은 유통과정상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에 대해 허유산은 문제가 생긴 식자재에 대한 전량 폐기처리와 함께 전액 보상처리하고 해당 식재료의 제품 판매 금지 안내 및 교육을 진행했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해 필리핀 현지 기후이상으로 카라바오 망고의 작황이 좋지않아 수급이 어려워 기존에 공급되던 ‘카라바오 망고’를 가격이 더 높은 고품질 ‘애플망고’로 1개월간 공급가격 변동없이 대체했다고 해명했다.


허유산 관계자는 운영상 정산금 지급이 지연된 시점이 있었던 것도 시인했다. 다만 현재 위탁 운영 정산금은 모두 지급완료 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본사의 갑질은 단순히 정산금을 지연 지급하는 선만이 아니었다.

위생불량
반짝 유행?

A씨는 2017년부터 2년간 허유산과 용역계약을 체결했지만 2년을 채우지 못했다.

본사는 개점 초기에 “CY그룹이 롯데가(家)기 때문에 백화점들과의 특수한 관계가 있으니 최소 2년 동안은 아무런 걱정 없이 영업을 할 수 있다”고 약속했지만 현대백화점과 허유산과의 계약이 종료되자 본사는 이 사실을 A씨에게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계약종료는 없으니 매출이나 신경쓰자’는 거짓말로 상황을 회피하기에 급급했다고 전했다.

백화점 측이 보낸 계약 종료에 대한 내용증명에도 본사는 ‘내용증명이 온 것은 사실이나 이것이 계약 종료에 대한 것은 아니다. 백화점 측에서 협의를 하자는 내용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로 안심을 시켰다는 것이다.

본사는 백화점서 매장이 철수하는 날까지 그 어떤 해명이나 해결책을 내놓지 않았다고 전했다.

▲ 최현열

문제는 그 이후에도 불거졌다. A씨는 계약서상 보장된 보증금도 돌려 받지 못하고 있다. A씨와 허유산과의 용역계약서 상에 따르면 ‘이행 보증금 7000만원을 전액 반환하며 감각상각비용 3000만원에 대해서도 운영기간에 대한 N/24로 정해 반환하기로 한다’고 기재돼있다.

하지만 A씨는 “백화점서 철수한 2019년 8월 이후로 단 일원의 보증금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허유산 측에 지속적인 반환 이행을 요구했으나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김수현 대표이사는 어떤 방법을 통해서도 연락이 닿지 않고 있으며 다른 직원들과의 통화해봐도 ‘돌려주겠으나 언제인지는 모르겠다’는 무책임한 답변만 앞세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본사는 보증금 7000만원 중 5000만원은 돌려줘야 하지만 2000만원은 허유산 본사가 아닌 창업컨설팅 업체로 지급돼 협의되지 않는 부분이라는 입장이다.

이에 A씨는 법원에 지급명령을 신청해 허유산 측에 지급명령정본을 보냈으나 허유산은 이에 반박, 이의신청을 해 민사재판으로 이관된 상태다.

해당 내용에 대해 허유산 측은 “보증금 5000만원은 회사와 당사자간 지급 협의가 됐지만 보증금 2000만원은 A씨가 회사와 유착관계가 없는 창업컨설팅 업체에 지급했기에 용역 계약서상 명시된 계약금 및 잔금의 이행을 정상적으로 이행 완료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그러자 A씨는 “허유산의 이사와 컨설팅업체 사이에 보증금 2000만원이 오고 간 정황이 드러나자 회사는 입금한 350만원은 인정한 뒤 모든 책임을 이사에게 돌리는 등 말을 계속 바꾸고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허유산코리아는 영업팀을 따로 두지 않고 컨설팅업체에 허유산 영업팀 소속의 명함 제작해 주고 위탁운영 계약자를 모집했다. 이에 A씨는 허유산 이사의 요청으로 컨설팅업체에 계약금 2000만원을 입금했다.

만약 허유산과 컨설팅업체가 관련이 없다면 잔금이행이 완료되지 않아 매장 운영을 맡기지 않았어야 한다. 하지만 허유산 본사는 계약 당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회사는 보증금 반환이 문제가 되자 A씨가 2000만원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태도를 바꿨으며 A씨와 소송공방을 진행하고 있다.

롯데 업고? 
적정성 의혹

허유산이 속해 있는 최현열 CY그룹의 명예회장은 고(故) 신격호 회장의 동생인 신정숙의 남편, 즉 고 신격호 회장의 매제로 롯데물산·롯데캐논 사장을 역임한 뒤 남경사를 차려 롯데그룹서 독립 후 CY그룹의 총수가 됐다.

이 같은 배경으로 최현열 명예회장은 현재까지도 롯데그룹과 긴밀한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허유산은 롯데월드 1호점 오픈이후 롯데백화점 명동점 등 다수의 롯데백화점에 매장이 개점될 수 있었다.

많은 가맹점주들이 허유산 브랜드를 택한 것은 CY그룹이 스스로 롯데가임을 공공연히 드러내고 롯데가라는 점을 강조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CY그룹은 롯데서 독립했다고 하나 여전히 이를 바탕으로 유통업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롯데를 등에 업고 CY그룹은 지난해 5월 영암군청과 영암 농축산물의 공동이익 창출을 위한 상생협력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영암군은 이 업무협약을 통해 매력한우 브랜드를 롯데슈퍼와 CY글로벌 유통망에 입점했다.

하지만 A씨는 “CY그룹의 재무재표를 보면 영업이익이 2016년 -7억7665만원, 2017년 -9억8934원으로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국내 최대, 최고의 유통기업, 국내외 핵심 유통망을 구축하고 있는 업체의 실적이라고 보기에 어려운 수치”라며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자체가 공정한 방식으로 업체를 선발하지 않고 단순히 롯데가라는 이유만으로 지자체의 권한을 이용해 재정성과 도덕성까지 부실한 기업에 이윤을 발생시켜 주는 것은 정경유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에 A씨는 재정성과 도덕성 모두 부실한 CY그룹이 어떻게 영암군과 이러한 업무협약을 맺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확인하고자 지난해 11월부터 3차례나 영암군청에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영암군청에 민원을 제기했는데도 CY글로벌의 대표이사가 전화해 “허유산의 일은 잘 해결하도록 힘써 볼테니 영암군청서 전화 오면 이야기 잘해달라”고 부탁했다. 뿐만 아니라 A씨가 영암군청의 답변이 없어 다시 전화하자 이번에도 CY글로벌 대표이사가 전화를 해 “왜 또 군청에 전화를 했느냐”며 A씨를 질책했다는 것이다.

A씨는 “CY그룹과 영암군청이 무슨 관계기에 시시각각 보고가 되고 있는지 의심이 들 수 밖에 없었다”며 “CY글로벌 대표이사는 영암군과의 사업은 전동평 영암군수가 직접 CY그룹에 찾아와 ‘롯데에 상품을 넣을 수 있게 도와 달라’는 요청에 의해 이뤄졌으며 본인들에게는 큰 이득이 되지 않는 사업이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영암군 관계자는 “영암군은 CY그룹과 업무협약을 맺었을 뿐 계약은 업체간에 이뤄진 것으로 영암군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밝혔다.

협의 됐다고?
여전히 난항

허유산 측은 “언론사들은 사실관계 확인없이 문제제기 당사자의 입장만으로 추측성 보도를 했으며 제보자들은 비밀유지 계약을 지키지 않고 일방적인 주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로 인해 허유산코리아 본사 및 가맹점은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같은 허유산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현재 가맹점주 및 직원과 각종 소송공방 등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