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풍운아’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파란만장 인생사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12.16 10:00:33
  • 호수 12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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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덩어리 좁은 우리는 밖에서 기회 찾아야”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별세했다. 재계 2위 그룹의 총수서 IMF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의 부도로 대한민국이 휘청이게 했다. 해외도피 생활과 구속, 수십조의 추징금.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다. 
 

▲ 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9일 오후 11시50분경 수원 아주대병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김 전 회장은 2018년 하반기까지도 한국과 베트남을 오가며 글로벌 인재양성 활동을 해오다 지난해 11월 귀국해 12월 말까지 아주대병원서 치료를 받았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그러다 올해 하반기에 건강이 악화돼 입원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회장은 알츠하이머를 앓았다. 그는 2017년 3월 서울서 열린 ‘대우창업 5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후 행보는 공개된 적이 없었다.

김 전 회장은 임종 직전 별도의 유언은 남기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세계경영연구회 장병주 회장은 빈소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주 토요일(7일)부터 급격히 건강이 나빠지셔서 특별히 남긴 마지막 말씀은 없었다”며 “평소에 우리가 마지막 숙원사업으로 진행하던 해외 청년사업가 양성 사업을 잘 유지·발전시키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알츠하이머 증세가 있긴 했지만, 주변 사람들을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고 장 회장은 전했다. 투병 중에도 주변과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곤 했으며 마지막 순간까지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9일 숙환으로 별세한 김 전 회장의 빈소에 각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경기도 수원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는 옛 대우그룹 관계자들과 정·재계 인사들의 발길이 종일 끊이지 않았다. ‘소박하고 조촐한 장례’를 원한다는 고인의 뜻에 따라 유족은 부조금과 조화를 받지 않을 예정이었으나 애도의 뜻을 존중해 조화는 받았다. 

재계에선 신세계그룹 이명희 회장, 정용진 부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큐셀 부사장 등이 차례로 다녀갔다. 삼성전자 윤부근 부회장, 롯데 황각규 부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 수석부회장 등도 빈소를 찾았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이날 기자들의 질문에 “안타깝다”고 말한 뒤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대우맨’으로 일했던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은 이날 조문 직후 기자들과 만나 “젊었을 때 일할 기회를 준 사람”이라며 “사업을 하는 데 있어 나의 평생 보스”라고 고인을 회상했다.

‘대우 신화’ 1세대 기업인 별세
각계 조문객 발길 끊이지 않아

빈소에는 이 밖에도 이재정 경기도교육감, 홍사덕 전 국회의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원희룡 제주도지사,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전 원내대표,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 등이 조문했다. 홍 전 원내대표는 대우자동차 노조위원장 출신이다. 연예계서도 배우 이병헌, 송승헌 등이 빈소를 찾아 늦은 시간까지 머물렀다. 이병헌은 생전 고인과 부자처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김태구 전 대우자동차 회장, 장병주 전 ㈜대우 사장, 장영수·홍성부 전 대우건설 회장, 강병호·김석환 전 대우자동차 사장 등 여러 대우맨들이 종일 빈소를 지켰다. 조문은 오후 9시30분께 마무리됐으며 이날 총 3000명의 조문객이 빈소를 찾았다. 

김 전 회장의 삶은 대한민국의 고도성장 과정을 집약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 쪽에서는 샐러리맨 신화, 세계경영 전도사라는 ‘빛’이 있다면 다른 한 쪽에는 분식회계, 정경유착 등의 ‘어둠’이 있다. 그의 일대기는 재벌 회장의 개인사로 그치지 않는다. 대우그룹의 부도는 한국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김 전 회장은 1936년 대구서 6남매 중 4남으로 태어났다. 6·25 전쟁으로 아버지가 납북되자 15세에 홀어머니 아래서 소년 가장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도맡았다. 휴전 후 상경해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에 진학하고 1956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해 학창 생활을 보냈다.
 

대학교를 졸업한 뒤 친척이 운영하는 무역회사서 바이어로 근무하다가 1967년 독립해 당시 자본금 500만원으로 대우실업을 차렸다. 창업 초기에는 과거 자신이 바이어 일을 하던 동남아시아의 의류 원단 및 자재 공급 관련 사업을 주로 하는 중소기업이었지만,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춘 그는 제2금융권으로부터 돈을 빌린 뒤부터 사업을 확장해나갔다.

대우실업은 1968년 수출 성과로 대통령 표창을 받으며 급성장 가도를 달렸다. 1969년 한국 기업 최초로 해외 지사(호주 시드니)를 세웠다. 

‘세계 경영’ 
수출 주도

1975년 한국의 종합상사 시대를 연 이후 김 전 회장이 이끈 대우는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 창구가 됐다. 1973년에는 영진토건을 인수해 대우개발로 간판을 바꿔 달고 무역부문인 대우실업과 합쳐 그룹의 모기업격인 대우를 출범시켰다. 이어 1976년에는 옥포조선소를 대우중공업으로 만들었고, 1974년 인수한 대우전자와 1983년 대한전선 가전사업부를 합쳐 대우전자를 그룹의 주축으로 성장시켰다.

대우그룹은 또 에콰도르(1976년)에 이어 수단(1977년), 리비아(1978년) 등 아프리카 시장 진출을 통해 해외사업의 터를 닦았다.

김 전 회장의 거침없는 확장 경영의 결과 창업 10년 만에 쟁쟁한 기업들을 제치고 현대그룹, 삼성그룹, 럭키그룹에 이은 4대 재벌의 반열에 올랐다. 창업 후 수출만으로 회사를 초고속으로 성장시켜 ‘대우신화’라는 신조어와 함께 샐러리맨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해외영업서 남다른 수완을 발휘한 김 전 회장은 박정희정권서 가장 두드러진 기업인으로 주목받았다. 박 전 대통령이 김 전 회장의 부친이 대구사범 은사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절친한 사이가 된 것으로 재계에선 전해진다. 하지만 하나회 소속 장교들과 가까이 지냈다는 이유로 1973년 육군보안사령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경기고등학교 동기생 이종찬이 중앙정보부에 근무한 덕에 큰 화를 면했다. 

바둑 3급 공인의 기력을 보유한 김 전 회장은 1983년 한국기원 2대 총재로 취임하기도 했다. 1987년부터 1993년까지 대한축구협회 회장직도 맡았다. 1989년에 자서전인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를 썼다. 이 책은 펴내 6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하며 최단기 밀리언셀러 기네스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다. 

특히 1990년대 동유럽의 몰락을 계기로 폴란드와 헝가리,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등지서 자동차공장 등을 인수하거나 설립하며 세계 경영을 본격화했다. 이에 따라 대우그룹은 부도 전까지 396개 현지법인을 포함해 해외 네트워크가 모두 589곳에 달했다. 해외고용 인력은 15만2000명을 기록하기도 했는데 당시 고인은 연간 해외 체류기간이 280일을 넘기는 것으로 유명했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선 출마설이 돌았지만 “새한국당이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는 영입교섭이 들어와도 응하지 않을 것”이라며 대통령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1993년 대우그룹은 세계 경영을 선포했다. 1996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에 연루돼 곤혹을 치렀지만, 1998년 대우그룹을 재계 2위로 성장시켰다.

31세 창업
97년 해체


대우그룹은 해체 직전까지 41개 계열사와 600여개의 해외법인·지사망을 갖고 있었다. 임직원 수는 국내 10만명, 해외 25만명에 달했다. 자산 총액은 76조7000억원, 매출은 91조원(1998년)이었다. 그야말로 ‘대우 제국’에 가까웠다.

그러나 1997년 11월 닥친 외환위기(IMF)는 세계 경영 신화의 몰락을 불러왔다. 김대중정부 경제관료들과의 갈등과 마찰을 빚으면서 붕괴가 빨라졌다. 특히 1998년 3월 전경련 회장을 맡은 김 전 회장은 수출론을 집중 부각했지만, 관료들과 갈등은 여전했고 오히려 개혁의 대상으로 내몰리는 상황을 맞았다.

1997년 IMF로 한국경제가 큰 타격을 받았다. 그로 인한 여파로 부채비율이 400% 이상이었던 대우그룹은 쌍용을 인수하는 등 확장정책을 이어나갔다. 1998년 당시 그룹 구조조정의 최우선 핵심사안으로 꼽혔던 대우차-제너럴모터스(GM) 합작 추진이 흔들렸고, 금융당국의 기업어음 발행한도 제한 조치에 이어 회사채 발행제한 조치까지 내려져 급격한 유동성 위기에 빠졌다. 일본계 증권사의 ‘대우그룹의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보고서가 나온 것을 계기로 상황은 급격히 나빠졌다.
 

대우그룹은 1999년 말까지 41개 계열사를 4개 업종, 10개 회사로 줄인다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을 내놨지만, 1999년 8월 모든 계열사가 워크아웃 대상이 되면서 그룹은 끝내 해체됐다.

대우의 차입금은 1997년말 29조원서 1998년말 44조원으로 15조원이 늘었다. IMF 외환위기 직후 고금리 상황서 차입금 증가는 치명적이었다. 1998년에 대우가 내는 이자비용은 6조원에 달했다. 여기에 분식회계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대우그룹이 무너진 것이다. 대우로 인한 전체 손실액은 31조원에 이르렀고, 이를 메우기 위해 사실상 세금인 21조원의 공적자금이 투입됐다.

재계 2위 대기업서 IMF 원흉으로
장기 해외도피…추징금 23조 남아


김 전 회장의 오랜 해외생활이 시작된 것도 그 때부터다. 그는 1999년 10월 중국 산둥성의 옌타이 자동차부품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뒤 국내로 돌아오지 않았다. 2005년 국내로 돌아온 뒤,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 6개월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000원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2008년 1월 특별사면됐다.

2010년 이후 김 전 회장은 해외서 후진 양성에 주력했다. 글로벌 청년사업가 양성사업(Global Young Business Manager·GYBM)이 그것이다. 이 사업은 한국 대학 졸업생을 선발해 동남아 현지서 무료로 취업 교육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다. 

베트남·미얀마·인도네시아·태국 등 동남아시아 4개국서 1000여명의 청년사업가를 배출했다. 김 전 회장은 “청년들이 밖에 나가서 기회를 찾아야 한다”며 “운명적으로 땅이 좁은 우리나라에게는 꼭 필요한 일”이라고 GYBM 사업을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김 전 회장이 별세하면서 추징금 환수는 사실상 어려워졌다. 다만 법원이 지난 2005년 당시 대우그룹 임원들에 대해 추징금 23조원을 연대 부과하면서 미납금 자체가 소멸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집행된 금액은 약 892억원에 불과하며, 집행률 0.498% 수준이다. 김 전 회장의 추징금이 환수되지 못한 이유는 본인 명의 재산이 없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가족의 재산이라도 본인 명의가 아닌 이상 추징이 불가능하다.

앞서 대법원은 김 전 회장이 해외도피 중이던 2005년 5월 강병호 대우 전 사장 등 임원 7명에게 추징금 23조358억원을 선고했다. 김 전 회장은 이들과 공범으로 묶여있어 추징금을 연대해 부담하도록 돼있다.

한편 김 전 회장은 지방세 35억1000만원, 양도소득세 등 국세 368억7300만원도 체납한 바 있다. 자신의 차명주식 공매대금을 세금 납부에 먼저 써야 한다며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상대로 소송을 내기도 했다. 추징금과 달리 세금에는 연체료가 붙는다는 이유였으나 대법원은 2017년 캠코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슬픈 대우맨
“평생 보스”

분식회계로 발행한 수천억원대 회사채에 대한 지급보증으로 보증회사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는 김 전 회장이 배상해야 할 손해배상액 260억원도 갚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지난 7월 서울보증보험 주식회사(SGI서울보증)가 김 전 회장 등 계열사 대표·임원들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서 “피고들은 원고에게 260억여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승소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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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국힘 축출’ 가시화 한동훈 광야에 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가족의 당원 게시판 연루 의혹 가능성을 사실로 확정 짓고 있다. 같은 당 장동혁 대표도 한 전 대표 축출 의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한 전 대표는 점점 광야로 내몰리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실상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축출 의지를 드러냈다.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직접 겨냥한 것은 아니었으나 ‘걸림돌’이라고 호칭했다. “제거돼야 통합 가능” 장 대표는 이날 “당내 통합에 걸림돌이 있다면 제거돼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표는 개인적 감정에 따라 움직이거나 결정하는 자리가 아니”라며 “당원과의 관계를 해결해야 할 당사자인 어떤 걸림돌은 그걸 해결하지 않고는 연대·통합을 함부로 얘기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민의힘의 주요 화제 중 하나는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됐다”는 당원 게시판 의혹이다. “한 전 대표 가족들의 명의를 이용한 아이디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 비난 글을 다수 작성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30일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당무감사위는 이날 “비난 글을 작성한 문제 계정들은 한 전 대표 가족 5인의 명의와 같고, 전체 87.6%는 2개의 IP로 작성된 여론조작 정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언론 보도 후 연루자들의 탈당·대규모 게시글 삭제가 확인됐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 이호선 당무감사위원장도 별도의 자료를 발표했다. 그는 “해당 IP를 사용한 계정 10개 중 4개는 같은 휴대전화 뒷번호·같은 선거구(서울 강남병)을 공유한다”며 “동명이인이 이 모든 조건을 우연히 공유할 확률은 사실상 0%고, 탈당 시점도 4일 이내로 집중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문제는 당 대표 본인·가족 명의 계정을 이용해 다수 당원이 지지하는 것처럼 위장한 것”이라며, “당심을 왜곡한 후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해서 일반 여론까지 움직이려 했다면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한 범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을 드루킹 사건과 비교했던 사람은 장예찬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이다. 장 부원장은 지난달 15일 임명된 후 장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고 있다. 그는 지난 2024년 11월 이 사건을 일컬어 ‘온가족 드루킹’ 혹은 ‘한가족 드루킹’ 등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전 대표를 비난했다. 장에 한은 당내 통합 걸림돌 취급 “게시글, 드루킹 사건보다 더 심각” 한 전 대표와 가족을 강하게 비판한 장 부원장이 사용하는 표현을 위원장 발표 자료에 담은 것을 봐선, 이날 당무감사위의 발표는 “국민의힘에서 한 전 대표를 확실하게 내보내겠다”는 의지가 담긴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당무감사위에 따르면, 한 전 대표에게 소명을 요구하는 질의서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한 전 대표는 방송 출연으로써 하루 격차를 두고 상반된 의견을 냈다. 그는 지난달 30일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당시엔 저와 제 가족에 대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 게시물이 당원 게시판을 뒤덮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제 가족이 익명 보장된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비판적 사설·칼럼을 올렸단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한 전 대표는 이날 “가족이 게시물을 올렸다”고 처음 인정하면서도 “저는 글을 쓴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가족 명의로 게시물을 올리는 게 비난받을 일이라면 가족이 아닌 저를 비난하라고 말하고 싶다”면서도 “제가 제 이름으로 글을 쓴 게 있는 것처럼 발표한 것은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는 다음 날 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위원장이 ‘동명이인 한동훈’ 게시물을 제 가족 게시물인 것처럼 조작해서 발표했다”면서 이 위원장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이어 “게시물 작성 시기는 제가 정치를 시작하기 전·최근 등 무관한 것을 대표 사례라고 조작해 발표했는데, 저는 당원 게시판에 아예 가입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장 대표는 지난 7일 국민의힘 당사에서 진행된 ‘이기는 변화’ 기자회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자행한 12·3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장 대표는 이날 “12·3 비상계엄은 상황에 맞지 않는 잘못된 수단으로써, 국민께 큰 혼란·불편을 끼쳤고, 당원께 큰 상처가 됐다”며 “국정 운영의 한 축이었던 여당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어 “그 책임을 무겁게 통감하고,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 국민의힘이 부족했으니, 잘못·책임은 국민의힘 안에서 찾겠다”면서 “국민의힘은 오직 국민 눈높이에서 새롭게 시작하겠으니, 과거의 일은 사법부의 공정한 판단·역사의 평가에 맡겨놓고, 계엄과 탄핵의 강을 건너 미래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당명 개정 추진 의사도 밝혔다. 장 대표의 이날 기자회견을 놓고,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을 강하게 지지하는 강경 보수 유튜버 고성국씨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한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입당 원서를 직접 전달하는 형식으로 국민의힘에 입당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국민의힘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끌어들여 세력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있다. 이어 “고씨를 입당시킨 것과 장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대국민 사과는 모순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고씨는 평소 한 전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는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다. 이날 김 최고위원도 고씨의 입당 원서 작성을 지켜보면서 “혹시 당원 게시판에 글 올리시면 들통난다”는 등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거를 타선 없는 국힘? 정의당 박원석 전 의원은 지난 6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 세력을 축출하고, 완전히 윤 어게인 세력의 당으로 만들어 훨씬 더 극우화된 정당으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고씨와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입당했고, 윤 전 대통령 변호인 김계리 변호사도 곧 입당 심사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국민의힘은 거를 타선이 없는 정당이 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내보낼 것”이라는 예측은 “한 전 대표에겐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는 것 아니냐”는 평가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핵심 기반은 팬클럽 ‘위드후니’다. 위드후니는 40대 이상 여성 중심으로 구성돼있고, 활동하는 노년 여성도 다수다. 하지만 선거는 결국 지역 기반으로부터 비롯된다. 한 전 대표의 가장 큰 정치적 약점으로는 지역 기반이 없다는 것이 주로 거론된다. 한 전 대표의 정치 기반에 대해선 ‘중도층·수도권 화이트칼라 계층에서 일정한 지지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많았다.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 4일 <뉴스토마토> 의뢰로 지난 1일부터 이틀 동안 만 18세 이상 중도 성향을 지닌 전국 18세 이상 남녀 51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15%는 보수 진영을 이끌면 가장 두려운 상대로 한 전 대표를 지목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가 중도층을 국민의힘으로 유도하고 있는지 의문”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그 객관적 지표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으로서 총선을 지휘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108석만 겨우 건지는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를 묶어 ‘이조심판론’을 주장하면서 “야당이 2/3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일각에선 “선거에서 이기려면 중·수·청(중도·수도권·청년)을 잡아야 하는데, 왜 안 하느냐”며 비판했다. 당시 국민의힘은 서울 전체 48석 중 11석을 차지했고, 인천·경기 60석 중 6석만을 차지했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한 전 대표가 수도권·중도층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면, 나올 수 없는 총선 결과”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중도층 영향력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일각에서 주장했던 ‘장·한·석(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성립 가능성을 부정했다. 그 이유도 한 전 대표였다. 장 대표는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대한 표현에 특별히 문제 삼지 않겠다”면서도 “당내 인사와 어떻게 정치를 풀어가느냐는 문제에 왜 연대란 이름을 붙이는 건지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당내 인사’도 한 전 대표를 뜻한다. 따라서 장 대표의 지난 2일 발언한 “당내 통합 걸림돌을 제거해야 대표가 통합을 이루는 공간이 생길 것”에서 ‘걸림돌’이 한 대표라면, ‘통합’ 범위엔 개혁신당과의 연대가 포함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과 개혁신당은 지난달부터 통일교 특검법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장 대표도 “자강을 논하는 단계에서 연대를 논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도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진 않는다. 개혁신당은 이준석 대표가 국민의힘 소속이었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때문에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후 탈당해 창당됐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당시 과정에서 쌓인 앙금을 잊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이후 자멸했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다. 일각에선 장 대표가 한 전 대표를 축출한 후 강경 보수 세력을 당내 세력화해 ‘자강’을 이룬 후 개혁신당과의 연대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한다. 국민의힘은 지난해 6월 대선에서 ▲서울 41.55% ▲경기 37.95% ▲인천 38.44% 등을 득표했다. 약 12% 이상의 부족분을 중도층으로부터 얻어와야 한단 사실을 모를 가능성은 낮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9.67% ▲경기 8.84% ▲인천 8.74% 등 득표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은 개혁보수·중도 제3지대에 두텁게 포진해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개혁신당이 확보한 8~9%의 지지가 필요하다. 중도층의 지지를 얻는 게 확실한지 아직 선거에서 검증되지 않은 한 전 대표와 달리 이 대표는 대통령선거에서 거둔 실적이 뚜렷하다. 장 대표는 “국민의힘 최대 아킬레스건인 중도·수도권 공략을 개혁신당과 이 대표의 힘을 빌려 해결하겠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 수도권 영향력 의문…이준석으로 대체? 지방선거 앞두고 신당 창당 가능할지 의문 국민의힘이 한 전 대표를 중징계하거나 한 전 대표가 탈당하면, 한 전 대표의 운신 폭은 매우 좁아질 수도 있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라서 총선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둬야 정치적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오는 6월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선거’다. 함께 진행되는 재보궐선거는 현시점에선 ▲인천 계양을 ▲충남 아산을 ▲경기 평택을 ▲전북 군산·김제·부안갑 등 4곳이 확정됐다. 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의 지역구도 가능성이 있지만, 후보로 확정된 의원만 사퇴해 재보선을 치른다. 그 외 의원의 공직선거법 위반 재판이 진행 중이라서 재보선을 치를 가능성이 있는 지역구로는 3곳이 거론된다. 이 정도 규모의 선거에서의 선전을 바라보고 창당하는 것은 모험에 가까우며, 동력이 얼마나 될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의원들이 모두 한 전 대표의 정치 행보에 무조건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지역 구도가 특히 큰 힘을 발휘하는 한국 선거에서 각각 호남·영남을 지역 기반으로 둔 민주당·국민의힘과 달리 한 전 대표는 독자적인 지역 기반을 갖추고 있지도 않다. 그와 비슷한 이 대표도 젊은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데다 민주당·국민의힘에서도 모두 후보를 공천한 경기 화성을에서 3자 구도를 만들어 승리했다. 특히 지방선거·재보선은 대선·총선에 비해 투표율이 낮은 만큼 보수성이 강하며 그만큼 바람을 일으키기도 어렵다.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설 가능성이 크지만, 신당 창당은 동사·벼랑 끝에 서는 것과 비슷할 수 있다. 한 전 대표의 절정은 12·3 비상계엄 사태였다. 당시 한 전 대표는 계파 소속 의원들과 함께 국회에 진입해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다. 이어 윤 전 대통령이 숙청을 시도하던 반대파 중 1명이 됐다. 하지만 한 전 대표의 절정은 여기서 끝이었다. “한 전 대표가 가족 관리에 실패했다”는 취지의 당원 게시판 의혹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 한 전 대표를 서서히 옥죄고 있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발생 이후 한 전 대표는 비상할 수 있었다. 그는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와 ‘총리·여당 당정 협력 담화’ 형식의 일명 ‘한덕수·한동훈 체제’ 성립을 시도했다. 한덕수·한동훈 체제는 각계각층의 강한 비난 때문에 실제로 성립되진 못했다. 이후 한 전 대표는 친한계 일원이란 평가를 받는 진종오 의원을 포함한 최고위원 4명이 전원 사퇴해 지도부가 붕괴하는 상황을 겪었다. 한때 핵심 측근이었던 장 대표는 국민의힘 대표로서 한 전 대표 퇴출을 주도하고 있다. 따라서 현 상황으로 이어진 한 전 대표 최대의 패착은 2024년 12월11일 장 의원이 입을 굳게 다물고 당 대표실을 나갈 때, 문을 잡고 미소 지었던 순간이다. 폭발까지 도화선은? 폭발이 일어날 때 트리거는 하나다. 하지만 폭탄까지 가는 도화선은 여러개일 수도 있다. 트리거가 터져 폭발이 일어나면, 폭발까지 가는 도화선도 모두 다 터진다. 장 대표는 총선이 아닌 지방선거·재보선을 앞두고 그 트리거를 만지고 있다. 트리거가 당겨지면 한 전 대표는 광야에 선다. 한 전 대표는 과연 광야에 서게 될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