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칵’ 세상을 바꾼 폭로들

‘아닌 건 아니다’ 목숨 걸고 말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내부자의 목소리는 세상 밖으로 나오기 어렵지만, 일단 울려 퍼지면 그 파급력은 엄청나다. 실제 내부자의 폭로로 사회 변화가 시작된 사례들도 적지 않다. <일요시사>가 세상을 바꾼 내부고발, 공익제보 사례를 조명해봤다.
 

▲ 서지현 검사 ⓒJTBC

미투, 빚투, 공투. 미투는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리는 운동, 빚투는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한 채권자들의 외침, 공투는 공무원들의 내부제보를 말한다. 지난해를 뜨겁게 달궜던 미투 운동은 최근 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면서 다시 한 번 달궈지는 모양새다. 심 선수의 피해 사실이 공개된 이후 체육계서도 미투 광풍이 불고 있다.

내부 목소리
전방위에서

빚투는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던 한 연예인의 과거사가 드러나면서 불거졌다. 해당 연예인의 부모가 20여년 전 주변 사람들에게 돈을 빌린 후 외국으로 도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이후 여러 연예인의 채무 상황이 드러나면서 후폭풍이 불었다. 공투는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과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등 공무원의 내부 폭로가 잇따라 이어지면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하면서 내부 고발, 공익제보의 파급력이 커지고 있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열리면서 그동안 감추고 있던 내부 문제를 고발하는 사람이 늘었다.

온 나라를 뒤집었던 국정 농단 사태 역시 내부자의 폭로로 시작됐다. 한 사람의 주장으로 시작된 미투 운동은 각계각층 인사들의 민낯을 들춰냈다. 그 결과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고, 숨죽이고 있던 성폭력 피해자들이 입을 열기 시작했다.


박은정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 위원장은 지난해 125사회의 부조리를 신고해 세상을 바꾸는 데 기여한 분들의 중요성을 알리고 공식적으로 감사를 표시하기 위해 129일을 공익신고의 날로 선포한다고 밝혔다. UN2003129일 멕시코 메리다서 반부패협약 조인식을 열고, 이를 기념하는 뜻에서 129일을 세계 반부패의 날로 지정한 바 있다.
 

▲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공동취재단

권익위는 매년 129일을 전후해 반부패주간을 지정, 청렴을 주제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해왔는데 이날을 공익신고의 날로 선포한 것이다. 그러면서 공익제보자 후원 시민단체인 호루라기 재단과 공동으로 시민이 선정한 한국사회를 변화시킨 10대 공익제보를 발표했다. 여론수렴 소통 창구인 국민생각함을 통해 투표를 진행한 결과다.

전두환 정부 보도지침 폭로= 청암언론문화재단은 송건호언론상 심사위원회가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 겸 전 한국일보 기자를 2018년 올해의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김 전 협회장은 1986년 보도지침 폭로의 주역이다. 보도지침은 제5공화국 시절 정부가 언론통제를 위해 각 언론사에 시달한 지침을 뜻한다. 이를 통해 정부는 언론을 철저하게 관리했다.

당시 정부는 가, 불가, 절대불가 등의 구분을 통해 각종 사건이나 상황, 사태 등의 보도 여부와 보도 방향, 내용, 형식까지 구체적인 보도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은 1986년 해직 언론인들이 만든 단체 민주언론운동협의회(언협)가 잡지 <>을 통해 폭로하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자료를 제공한 인물이 바로 김 전 협회장이다. 그는 198510월부터 19868월까지 문화공보부가 각 언론사에 시달한 보도지침 584건을 폭로했다.

12월9일 ‘공익신고의 날’
10대 공익제보 사례 선정

김 전 협회장과 <>의 폭로 역시 보도지침에 의해 보도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의 발행인 김태홍 언협 의장과 신홍범 실행위원, 김 전 협회장이 국가보안법 위반 및 국가모독죄로 구속됐다. 1987년 유죄 선고를 받았던 언론인 3명은 19947월 항소심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199512월 대법원은 3명에게 무죄 확정 판결을 내렸는데 보도지침 폭로 이후 9년 만이었다.

정부·군 상대
힘겨운 나날들


보안사 민간인 불법사찰 폭로= 1990104일 탈영병 윤석양 이병의 입이 열리자 세상이 뒤집혔다. 윤 이병은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가 민간인 1300여명을 불법으로 사찰했다고 밝혔다. 그가 탈영 당시 챙겨 나온 컴퓨터 디스켓에는 개인별 고유번호를 매겨 관리한 민간인 1303명의 개인정보가 기록된 신상카드가 담겨있었다. 인적사항, 가족사항, 경력, 전과관계, 자격면허, 국외여행, 정당 및 사회활동, 개인의 특성 등 9개 항목에 달했다.

윤 이병은 19908월 과거 학생운동권에 함께 몸담았던 동지들의 동태를 파악하는 프락치 역할을 강요받고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그는 민간인 사찰자료가 담긴 디스켓 30장과 서류를 들고 탈영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인권위 사무국장 김동원 목사의 도움으로 기독교회관서 기자회견을 갖기에 이른다. 윤 이병의 폭로가 나오자 국민들의 비판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보안사는 관련 장성들이 퇴진하고 이름도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로 바꿨다. 보안사는 197912·12쿠데타 당시 주축 역할을 한 곳이다. 윤 이병은 절대 권력을 가진 정보기관의 민낯을 폭로한 대가로 2년 동안의 수배생활 끝에 1992년 기무사 및 헌병대에 체포돼 군무이탈죄로 2년형을 살았다. 국방부는 윤 이병이 내부고발 후 2년 동안 도피생활을 한 점을 문제 삼았다.
 

▲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심석희 선수

재벌 부동산 투기 상부지시 중단 폭로= 윤 이병의 보안사 민간사찰 폭로에 앞서 19905월 이문옥 감사원 감사관이 구속됐다. 이 감사관은 재벌 소유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 현황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재벌의 로비로 인해 중단됐고, 대기업이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비율도 은행감독원(현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1.2%보다 월등히 높은 43.3%에 달한다고 언론에 제보했다. 이 감사관 사건은 권력 내 비리와 정경유착을 최초로 폭로한 내부고발로 불린다.

이 감사관의 폭로로 재벌의 땅 투기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노태우정부는 그를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로 구속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감사관은 구속적부심 심리서 ‘198713대 대선과 199813대 총선서 서울시 예산 88억원이 선거자금으로 전용된 사실을 추가로 폭로하면서 감사원에 압력을 가하는 외부 권력기관은 대부분 청와대라고 일갈했다. 검찰이 그를 기소하자 시민단체를 주축으로 석방운동이 진행해 결국 19906월 석방 조치됐다.

군 부재자투표 부정 선거 폭로= 1992년까지 군대에는 투표의 자유가 없었다. 육군 제9보병사단 소대장 이지문 육군 보병중위는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ROTC로 임관해 군에 근무 중이었다. 당시 나이는 24. 전역 후 대기업 취직 등 안정적 미래가 예정돼있던 그는 1992314대 총선을 앞두고 군 부재자투표 과정서 일어난 선거 부정을 폭로하기에 이른다.

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를 당선시키도록 정신교육할 것부재자투표에서 무조건 기호 1번을 찍을 것을 주문했다는 주장이었다.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협의회(공선협) 전국본부 사무실서 이 사실을 폭로한 직후 이 중위는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헌병들에게 연행됐고 결국 파면됐다. 하지만 이 여파로 같은 해 12월 실시된 대선서 군 부재자투표가 일반 부재자와 같은 투표소서 진행됐다.

기업 비자금
상품 결함 고발

삼성그룹 비자금 폭로= 200710월 삼성그룹의 전직 법무팀장이었던 김용철 변호사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기자회견을 가졌다. 삼성그룹 50억여원의 비자금을 자신이 관리해왔다는 내용이었다.

삼성이 계열사 사장단과 임직원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거액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정치·사법·행정부 등 사회지도층에 전방위적 불법 로비 행각을 벌여왔다고도 털어놨다. 또 이건희 회장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세금을 내지 않고 부를 세습하기 위해 편법과 불법을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의 고백으로 사회적 파장이 일면서 특별검사팀이 구성됐다. 당시 조준웅 특검은 이 회장이 삼성계열의 비상장회사인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실제 가치보다 낮은 저가로 발행, 이 부회장 남매가 지배권을 갖도록 인수하도록 해 이득을 취득하고 에버랜드에 손해를 끼쳤다고 파악했다. 이 회장은 두 차례에 걸쳐 조사를 받았지만 불구속 기소됐다. 당시 특검서 관련자 대부분이 불구속되면서 면죄부 특검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해군 군납비리 폭로= 2009년 김영수 전 소령의 신고로 계룡대 근무지원단의 9억원대 납품비리가 드러났다. 비리를 알게 된 김 전 소령은 내부절차에 따라 육군 헌병, 해군 헌병, 국방부 감찰단 등을 통해 수차례 고발했지만 변화는 없었다. 오히려 근무평점 최하위라는 결과만 돌아왔다. 결국 해당 사건은 200910MBC <PD수첩>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국방부는 그제야 수사를 개시, 관련자를 처벌했다.
 

▲ ‘삼성 비자금’ 폭로 기자회견 갖는 김용철 변호사

권익위는 김 전 소령에게 부패방지 부문 훈장을 수여했다. 하지만 그는 2017년까지도 검찰 수사를 받는 등 후폭풍에 시달렸다. 일부 예비역 해군 장교들이 김 전 소령이 허위사실을 유포했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것.

서울남부지검 형사4부는 명예훼손 및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됐던 김 전 소령에 대해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불기소 처분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김 전 소령은 언론과의 인터뷰서 벌써 3번째 검찰 수사라 많이 힘들다. 지치기도 한다”며 저는 사실관계에 대해서 제대로 짚었다는 소신이 있었는데 이제 많이 약해진다고 말했다.

부재자투표 바뀌고 대통령 구속
폭로 이후 대부분 후폭풍 휘말려

현대차 품질 결함 은폐 폭로= 20159월 미국서 쏘나타 47만대를 리콜한 현대차는 지난 2017년에도 그랜저 등 국내 5개 차종 171348대를 리콜한다고 밝혔다. 세부원인은 다르지만 두 건 모두 세타2 엔진 결함이 이유였다. 현대차의 이 같은 리콜 사태는 김광호 전 부장의 제보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2016년 국토교통부에 32건의 결함 의심 사례를 제보했다. 또 쏘나타 47만대를 2015년 미국서만 리콜하고 한국에는 결함을 숨겼다는 의혹도 함께 제기했다.

현대차는 김 전 부장이 201510월부터 201610월까지 회사기밀이 담긴 내부 문건을 유출했다면서 업무상 배임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권익위는 김 전 부장의 기밀 유출이 공익제보에 해당한다며 현대차에 복직을 요구했다.

김 전 부장은 20174월 복직했지만 한 달 만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회사를 떠났다. 그가 사직하자 현대차 역시 고소를 취하했지만 업무상 배임죄는 반의사 불벌죄(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수사는 계속됐다. 검찰은 김 전 부장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국정 농단 사태 폭로= 2017년 헌정 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이 탄핵됐다. 1300만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와 촛불을 들고 적폐 청산과 진실 규명을 외쳤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른바 국정 농단 사태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다. 이 사태가 불거지는 과정서도 내부고발이 큰 역할을 했다.

박헌영 전 K스포츠재단 과장의 최초 고발을 시작으로 고영태 전 더블루K 이사,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 등이 내놓은 자료와 진술이 국정농단 사태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일조했다. 그 결과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씨 등이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다스 실소유주 폭로= 그동안 법망을 잘 피해왔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3월 각종 비리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 실소유주 의혹, BBK, 도곡동 땅 등 각종 의혹의 중심에 서 있으면서도 수사망에 제대로 걸리지 않았다.
 

▲ 국정 농단의 핵심 인물로 알려진 최순실씨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한 사람의 제보가 이 전 대통령을 결국 구속시켰다. 이 전 대통령의 운전기사 겸 개인비서, 다스 직원으로 18년간 이 전 대통령의 지근거리서 일했던 김종백씨다. 김씨는 오랫동안 의혹에 휩싸였던 다스 실소유주 논란과 관련, 결정적인 제보를 했다. 그러면서 이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 수사 역시 궤도에 올랐다.

성폭행 피해 사실 폭로= 지난해 1월 현역 검사가 방송에 나와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공개했다. 앞서 미국서 일어난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 운동이 국내에 상륙한 순간이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각계각층서 미투 운동이 일어났다. 이전까지 감춰야만 했던 성폭력 피해 사실에 대해 피해자들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문화예술계는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됐고 정치권은 물론 방송 연예계가 미투 운동의 폭풍에 휩싸였다. 최근엔 체육계서 미투 운동이 불거지면서 그동안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체육계 성폭력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개인주장 넘어
사회현상으로

대부분의 공익제보자들은 폭로 후 후폭풍에 휘말렸다. 공익신고 후 신분이 드러나면서 불이익을 겪은 이들도 상당하다. 20113월 공익신고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제정됐지만 여전히 그들에게는 배신자와 같은 낙인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닌다. 조직의 곪은 부분이나 본인이 직접 겪은 불합리한 사례에 대해 쉽사리 입을 열지 못하는 이유다.

박은정 권익위 위원장은 공익제보자들은 권력형 비리부터 우리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생활밀착 부패까지 우리 사회의 어두운 길목에 불을 켜주신 분들이라며 앞으로 공익신고의 가치가 널리 인정받는 사회문화가 조성돼 공익제보가 더욱 활성화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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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