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째깍째깍’ 다시 도는 탄핵 시계

“나가!” 거세지는 민심 파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유난히 길었던 늦더위의 열기가 완전히 가셨다. 바깥서 활동하기 좋은 계절이 오자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을 비롯한 야당이 덩달아 분주해졌다. 저마다 장외 투쟁을 예고하면서 광장 곳곳이 소란스럽다. 2016년 그 겨울이 재현될지 이목이 쏠린다.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가 20% 초반까지 떨어졌다. 취임 이후 역대 최저치다. 용산이 터질 듯한 둑을 온몸으로 막고 있지만 ‘김건희’ 세글자만 나오면 어김없이 무너진다. 이번 공략 대상은 아무래도 영부인인 모양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이 지난날은 뒤로하고 우군으로 뭉치면서 대열 재정비에 나섰다.

어게인
지민비조

지난달 치러진 10·16 재보궐선거서 두 당은 날카로운 신경전을 보였다. 호남과 부산을 놓고 치열한 경쟁이 이뤄졌는데 결국 혁신당이 한 석도 얻지 못하면서 관계가 삐걱거렸다.

혁신당 황현선 사무총장은 지난달 18일 국회 본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선거 결과에 대해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개선해야 할 점이 충분히 드러났다고 보고 부족함을 메워나가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부산 금정구청장 보궐선거서 패배하자 당 내에서 ‘혁신당 책임론’ 나오는 것에 불편하단 기색을 드러내기도 했다. 황 사무총장은 “민주당이 ‘공성’보다 ‘수성’에 더 큰 공을 들인 것 같다”며 “우리는 조국 대표와 이재명 대표가 손잡고 금정구를 돌면 부산 판세가 바뀔 것이라고 (민주당에)제안했는데 민주당은 거절했다”고 말했다.


앞서 민주당과 혁신당은 금정구청장 보선서 여론조사를 통해 민주당 김경지 후보로 단일화를 결정했다. 단일화로 후보를 양보했음에도 국민의힘과 크게 격차가 벌어진 것을 두고 혁신당 일각서도 ‘민주당 책임론’이 제기되기도 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보선 참여를 계기로 민주당 일부 인사 또는 지지자들의 혁신당 조롱과 공격이 거칠어지고 있다”며 심정을 드러냈다. 조 대표는 “민주당 안팎서 ‘보선서 왜 지민비조(지역은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 기조를 버렸냐’고 비난한다”며 “지민비조라는 선택은 민주당과 혁신당을 모두 키우기 위한, 깨어있는 시민들의 집단 지성의 결과였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같은 조 대표의 발언을 두고 민주당 강성 지지자들은 크게 분노하며 혁신당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사이가 틀어지나 싶더니 민주당이 ‘김건희 규탄 범국민대회’를 예고하면서 단박에 기류가 바뀌었다는 평이 나온다. 제1야당이 처음으로 장외 투쟁을 선포하자 “혁신당은 우군” “같은 적을 물리치기 위해 손을 잡아야 한다” 등 여론이 형성되면서 대오 정비에 나선 것이다.

‘도이치 불기소’에 뿔난 여론
“롱패딩 준비” 장외 투쟁 예고

재보선으로 쏠려 있던 시선이 다시 국회로 집중되면서 야당은 김 여사 리스크를 정조준했다. 지난달 17일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에 연루된 김 여사를 불기소 처분한 것을 신호탄으로 발언의 강도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불기소 처분 다음날인 18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서 이 대표는 “오늘은 완전히 거꾸로 한번 해보자”며 민주당 송순호 최고위원을 첫 번째 모두 발언자로 지목했다. 송 최고위원은 “어제 검찰의 김건희·최은순 모녀의 불기소 결정은 검찰 스스로의 사망 선고이기에 삼가 심심한 애도의 뜻을 전한다”며 운을 뗐다.


그는 “국민들은 이미 심리적으로 윤 대통령을 탄핵했으며 여론조사 결과서도 국민 10명 중 6명이 윤 대통령 탄핵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의 탄핵, 이것이 민심”이라며 탄핵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언급했다. 아울러 “윤 대통령의 유일한 선택지는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하야다. 기다리고 응원하겠다”고 비꼬았다.

민주당은 당 소속 의원 전원 명의로 성명을 내고 “김건희씨는 불소추특권을 누리는 실질적인 대통령이 됐고 검찰은 김씨가 물라면 물고, 놓으라면 놓는 개가 됐다”며 검찰과 정부를 직격했다.

‘김건희 규탄 범국민대회’를 예고하며 롱패딩을 준비하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다가오는 겨울 동안 장외 투쟁을 이어나가겠다는 것으로 ‘탄핵’ ‘정권 퇴진’ 등에 대한 입장을 에둘러 피하던 민주당이 김 여사 불기소를 기점으로 한층 압박 수위를 높였다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은 지난 2일 “김건희 정권에 대한 성난 민심을 확인시켜 드리겠다”며 규탄 대회를 열었다. 김 여사의 불기소 처분에 따른 국민의 분노를 대변하기 위해 집단 행동에 나선 것이다.

혁신당은 이보다 앞선 지난달 26일 서울 서초동 검찰청 앞에서 윤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장외 집회를 열었다. ‘검찰독재 정권 조기종식’을 내걸고 총선에 뛰어들었던 만큼 민주당보다 한발 앞서 탄핵의 깃발을 올린 것이다. 혁신당이 선도적으로 정권 퇴진 분위기를 주도하면 거야인 민주당이 무게감 있게 움직이는 등 역할을 나눠 따로, 또 같이 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여권 덮친
트라우마

11월에 접어들자 민주당·혁신당·진보당·사회민주당 등 야4당이 일제히 움직임에 나섰다. 광장으로 향하는 길목은 다르지만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김 여사의 국정 개입과 각종 의혹’을 규탄하겠다는 하나의 목표로 이어진다.

앞서 조 대표는 ‘3년은 너무 길다’ 특별위원회 회의서 “김 여사의 대통령 놀이를 끝장내겠다”며 “검찰청 앞에 모여 불의하고 무능하고 무도한 윤 대통령을 끌어내리자”고 말했다. 황운하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 임기 반환점에 접어드는 9일 전후로 혁신당 차원서 자체 마련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공개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원내 정당 가운데 처음으로 탄핵을 당론으로 채택한 진보당도 동참에 나섰다. 진보당은 ‘윤석열정권 퇴진 운동 본부’를 중심으로 전국 곳곳서 벌이고 있는 정권 퇴진 운동을 이어갈 방침이다.

진보당 김재연 상임대표는 “선출되지 않은 김건희 이름 석 자 앞에 법치가 무너지고 있는데 어떠한 공적 시스템으로도 이를 바로잡지 못하고 있다”며 “이제 남은 것은 범국민적 힘을 모아 윤석열·김건희 정권을 퇴진시키는 길뿐”이라고 밝혔다. 사회민주당 역시 지난 9월 가칭 ‘윤석열 탄핵준비 의원연대’에 동참해 힘을 실었다.

연말이 가까워질수록 야4당의 각개전투가 아닌 ‘공동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번 장외 투쟁이 박근혜 전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 시위’와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갈지가 최대 관전 포인트로 떠올랐다.

박 전 대통령을 규탄하기 위해 시민이 광장에 모인 건 2016년 9월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비선 실세였던 최순실(개명 뒤 최서원)씨의 ‘국정 농단’ 의혹이 드러나면서다. 당시 매일같이 새로운 의혹이 터져 나왔고 언론에서는 앞다퉈 단독 보도를 쏟아냈다. 국정감사 역시 ‘기승전 국정 농단’으로 국회 곳곳서 난타전이 벌어졌다.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하면서 2016년 10월29일 “박근혜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가 광화문 광장으로 쏟아졌다. 횟수를 거듭할수록 시위의 규모는 점점 커졌고 집회 20회 만에 박 대통령의 탄핵 인용이 결정됐다. 이날까지 누적 인원은 주최 측 기준은 1658만1160명이다.

집회의 관건은 얼마나 많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나서는지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난 자리서 “탄핵은 국회가 아니라 국민이 하는 것”이라며 “윤정부 취임 이후 정권 퇴진 운동은 꾸준히 있었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민이 거리로 나올 ‘한 방’이 없다”며 “‘최순실 태블릿 PC’ 같은 결정적 원인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권 관계자는 ‘결정적인 한 방’에 대해 “서울-양평고속도로, 채 상병, 명품가방 수수 등 모든 의혹의 세기가 ‘강 강 강’”이라면서도 “법적으로 따져봐야 할 부분이 있어 (의혹을)화약고에 채우고만 있다. 흔히 말하는 ‘탄핵 트리거’가 될 만한 것이 터지거나 민심이 극에 달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말했다.

영부인
블랙홀

국민의힘은 1심 선고를 앞둔 이 대표로부터 시선을 돌리기 위한 “방탄용 탄핵”이라며 맞불을 놨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장외 투쟁에 대해 “이 대표를 지키기 위해 대한민국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무모한 행동을 즉각 중단하시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는 지난달 22일 “대한민국 시스템 파괴의 종착지는 대통령 탄핵”이라며 “예상했던 대로 이 대표의 11월 1심 판결이 다가오면서 야당의 대통령 탄핵 선동 수위가 점점 거세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이미 매주 주말마다 서울 도심서 정권 퇴진 집회를 벌이고 있는 좌파 진영과 손잡고 본격적인 ‘제2촛불 선동’을 일으키겠다는 심산”이라며 “부디 이성을 되찾아 국민의 삶을 보살피고 대한민국 안정과 발전을 위한 길로 돌아오기를 바란다”고 요구했다.

민주당이 11월 장외 투쟁에 나선 배경에는 이 대표와 그의 부인인 김혜경씨의 1심 선고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김씨의 경기도 법인카드 유용 의혹 사건 1심과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선고가 각각 14일 15일로 예정돼있다. 오는 25일엔 이 대표 위증 교사 사건 1심 선고가 열릴 예정이다.

아울러 민주당은 오는 14일에 본회를 열고 공천 개입 의혹이 포함된 ‘김건희 특검법’을 또다시 상정할 방침도 세웠다. 11월 장외 투쟁서 더 나아가 특검법까지 꺼내든 것을 두고 여권에서는 이 대표의 리스크를 밀어내기 위한 민주당의 ‘노림수’라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민주당보다 선명하게 탄핵을 외치는 혁신당은 오히려 진보 진영 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혁신당이 여전히 민주당을 경쟁 상대로 인식하고 있어 집회가 자칫 ‘경쟁’처럼 비춰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지난 재보선 패배는 조 대표에게 오점으로 남았다. 선거 이후 민주당 강성 지지층과 진보 유튜버를 중심으로 혁신당에 강한 질타가 쏟아지면서 한차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재보선 패배를 지워내기 위해서는 지지층의 눈길을 광장으로 돌려 분위기를 반전시키겠다는 해석이 나온다.

사법리스크 ‘이’ 재보선 패 ‘조’
여당 맹공격에도 “기승전 김건희”

야4당이 광장으로 향했지만 민주당은 ‘탄핵’ ‘정권 퇴진’과는 다소 거리를 두는 듯한 움직임을 보인다. 민주당은 김 여사를 규탄하기 위해 광장으로 나섰지만 혁신당의 목표는 뚜렷하다. 앞서 혁신당 황 원내대표가 당 산하의 ‘탄핵소추안 준비위원회’서 본격적인 탄핵소추 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힌 만큼 정권 퇴진 운동 성격이 짙게 드러난다.

민주당 중진 의원도 “민주당 지도부 차원서 탄핵을 이야기한 적은 없다”며 의원 개개인의 발언이자 행동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번 장외 투쟁의 구호 역시 “윤석열 탄핵”이 아닌 김 여사의 행동을 규탄하는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현재로서는 야당이 각개전투에 나섰지만 집회 분위기가 과열되면 이들이 한 몸으로 움직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민주당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지난 총선과 재보궐선거 때 혁신당 민주당이 조금 껄끄러워지긴 해도 올 연말에는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여기에 진보당, 사회민주당 그리고 시민연대가 힘을 더해준다면 결국 하나의 목표를 향해 가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국민의힘은 민주당과 혁신당이 각자의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탄핵 선동’을 유도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김 여사 리스크가 더욱 큰 탓에 여론전서 밀리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의 부정 평가 원인으로 김 여사가 지목된 만큼 여당서도 더 이상 손쓸 도리가 없다는 분위기도 전해진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2∼24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 대통령 직무 수행 긍정 평가율은 직전 조사보다 2%p 하락한 20%로 집계됐다.

부정 평가 이유로는 ‘김건희 여사 문제’가 15%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대한민국 영부인이 현 정권의 아킬레스건으로 지목된 것이다. 해당 조사는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다. 조사는 무작위 추출된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전화 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응답률은 12.4%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최요한 평론가는 이번 장외 투쟁이 “정권을 흔들 수는 있지만 무너트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6년 박근혜정권이 무너진 이유는 진보가 아닌 보수가 움직였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위태위태
와르르∼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현재 우리나라 정치 구조상 보수가 움직여야 탄핵이 가능한데 진보는 계엄 트라우마가, 보수는 탄핵 트라우마가 있다”며 “이 트라우마 때문에 보수가 움직이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들이 움직여야 퇴진 운동에 폭발적으로 불이 붙고 탄핵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번 장외 투쟁이 국민에게 상당 부분 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각종 특검을 거치면서 이 정권의 문제점이 드러난다면 그때 다시 불이 붙을 수도 있다. 지금으로서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 보인다”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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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업체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에 직격탄을 맞았다. 해당 업체는 보도자료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보도자료를 쓴 의원실 보좌관은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일요시사>가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봤다. 국회의원은 최고 헌법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법률을 만들고 개정하는 입법 기능 외에도 인사청문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투표로 선출된 ‘국민의 종’으로서 국회의원은 기자회견, 보도자료 등을 통해 국민에게 활동 상황을 보고한다. 국회의원 민원 창구? 국회의원 이름으로 하루에도 수건씩 보도자료가 쏟아진다. 법안을 발의하거나 지역구 예산을 수주했다는 내용, 자료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부 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 등이다. 언론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를 받아 기사로 작성한다. 언론 보도는 사정기관의 감사나 수사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한 국회의원실에서 나온 보도자료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보도자료에 언급된 정부 기관, 그 기관과 일하는 업체 등이 후폭풍에 휘말렸다. 보도자료를 받아 쓴 일부 매체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됐다. 언론사 기자들의 이메일로 배포된 보도자료는 국회의원실 보좌관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14일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실 오모 보좌관은 ‘경찰청, 순찰차 납품 지연 및 특정 업체 유착 의혹에도 자료 제출 거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작성해 언론사 기자들에게 보냈다. 신정훈 의원은 전남 나주·화순을 지역구로 하는 3선 의원으로,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찰청은 행정안전위원회의 피감기관이다. 순찰차는 일반 차량에 특장 작업을 거쳐 경찰청에 납품된다. 멀리서도 순찰차임을 확인할 수 있는 리프트 경광등을 달고 겉면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데칼’ 작업을 거쳐 수배·체납·도난 차량을 확인할 수 있는 멀티캠을 내부에 다는 등의 작업을 거친다. 순찰차 한 대를 특장하는 데 약 17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1000여대의 노후 순찰차가 교체된다. 신정훈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노후 순찰차 959대를 교체하기 위해 총 491억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하지만 이 중 약 225억원 상당인 343대가 납기를 맞추지 못했고 완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또 납품업체의 문제로 순찰차 납품이 늦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발주 기관인 경찰청은 지체상금 부과, 계약 해지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정훈 의원실의 자료 요구에 경찰청이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신정훈 의원실은 ‘공공계약에 정통한 한 법조계 관계자’의 “경찰청이 계약성 권리조차 행사하지 않고 이를 묵인한 데다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도 거부한 것은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 법적 의무의 명백한 방기”라며 “이 정도 사안이면 감사원 감사는 물론 직권남용과 배임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코멘트를 인용했다. 순찰차 납품 과정 지적 해당업체 “사실과 달라” 납품업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정훈 의원실은 “동일한 지배 구조를 가진 Y사(보도자료에는 A사)와 N사(B사)가 10여년간 경찰청의 대형 계약을 반복적으로 수주해 왔다”며 “수의계약이나 경쟁입찰의 형식을 빌린 사실상의 내정 또는 담합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부당 공동행위’ 및 ‘입찰 방해’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N사는 Y사의 임직원이 만든 회사로 두 업체는 모회사-자회사 관계다. 신 의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치안 장비 도입 사업이 법적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채 일부 업체에 특혜로 왜곡되고 있다”며 “기존 계약분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규 발주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몇몇 언론이 기사를 냈다. 보도 이후 납품업체인 Y사가 보도자료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 법무부 등에 차량을 개조해 납품하는 특장업체다. Y사 관계자는 “보도자료가 배포되기 전, 기사가 나가기 전에 신정훈 의원실이나 언론으로부터 단 한 차례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 보도가 나간 이후 오 보좌관을 만나 사실과 다른 부분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달에 관련 보도가 한 차례 더 나갔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청과 직접 계약을 맺거나 현대자동차로부터 하도급을 받는 형태로 이번 납품에 참여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현대자동차로부터 616대(소나타), Y사로부터 73대(스타리아 37대, 넥쏘 36대), N사로부터 270대(아이오닉 181대, 그랜저 89대) 등 총 959대를 납품받았다. Y사 관계자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지적한 납품 지연과 검사 불합격에 대해 “제작은 이미 완료됐고 출고를 기다리던 중에 검사 하나가 마무리되면 또 다른 검사를 요청하는 식으로 5개월 동안 시간을 끌었다”며 “2015년부터 경찰청에 순찰차를 납품해 왔지만 이번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납기에 늦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N사의 계약 차량은 납품까지 5개월 넘게 걸렸고 H사의 계약 차량은 검사 하루 만에 출고 처리됐다”며 “그동안 경찰청 검사가 미진했다고 주장하려면 우리든 H사든 같은 잣대로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확인 안 했다? H사는 순찰차에 설치하는 리프트 경광등을 제작하는 업체로 현대자동차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Y사와 N사가 담합해 경찰청 계약을 10년 동안 수주해 왔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경찰청은 조달사업법에 따른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우선 구매 제도를 통해 (업체들과) 계약했다. 나라장터에 물건을 올리면 경찰청에서 선택하는 방식”이라면서 “우리와 N사는 같은 차종으로 경쟁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오 보좌관은 순찰차 사업과 관련해 드러난 문제를 고치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시정되지 않자 보도자료를 통해 지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비서실에서 <일요시사>와 만나 “공무원이 어떤 업무를 하다가 다소간 실수가 발생할 수 있고 관행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걸 인정하고 시정하면 끝까지는 안 간다”고 말했다. 이어 “순찰차 관련 문제를 (경찰청에) 수도 없이 얘기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다. 1차 차량 검사에서 불합격이 나왔는데 2차 검사를 할 때 보니 1차에서 나온 문제가 하나도 시정되지 않았다. 3차 검사는 나도 모르게 진행됐다. 시험성적서를 달라는 말에도 개인 정보를 이유로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납품한 순찰차에 설치된 경광등이 사양서에 맞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오 보좌관은 “리프트 경광등의 핵심 기능은 주야간 150m 구간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납품된 것은 그게 안 된다. 30m만 떨어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순찰차에 치명적인 장애”라고 비판했다. Y사 관계자는 “사양서가 존재하는데 30m 밖에서 안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경찰청에서 3회가량 시연회를 진행했고 현장에서도 더 밝다는 의견이 있었다. 경광등이 사양서와 일부 맞지 않는 건 애초에 사양서 자체가 H사의 제품에 맞춰진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오히려 H사의 경광등이 경찰청 순찰차 사양서에 적용돼 2015년부터 2024년, 우리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10여년간 독점적으로 사용됐다”고 반박했다.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 고장이 잦아 수리 비용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는 이 관계자는 “이번 일이 일어난 것도 H사가 자사의 경광등을 납품하기 위해 오 보좌관에게 문제 제기를 한 게 시발점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정 안 해” “문제 없다” 순찰차를 납품하는 업체들이 자사의 경광등이 아닌 다른 업체의 것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H사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번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Y사 관계자는 “2022~2023년 H사 경광등에 문제가 발생해 현대자동차가 납기를 놓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지난해 5~6월 경광등 납품업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던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Y사 역시 H사와 경광등 발주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Y사 관계자는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H사에 경광등 발주 견적서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납기가 (지난해) 12월12일까지라 우리한테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11월15일 경찰청과 경광등 업체를 바꾸는 문제로 협의를 진행했고, 11월26일에 바뀐 업체의 경광등으로 우리 공장에서 시연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H사는 순찰차 납품업체들과의 갈등을 ‘민원’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H사 대표가 신정훈 의원실 오 보좌관을 만나 억울함을 토로했고 그 내용이 지난 5월 나온 보도자료의 배경이 됐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오 보좌관은 처음에는 민원을 받아 보도자료를 작성한 게 아니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H사 대표를 만났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8월경 지역의 향우회장과 함께 H사의 대표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오 보좌관이 경찰청의 순찰차 사업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오 보좌관은 지난 5월14일에 나온 보도자료에 대해 묻자 “지난해 8월부터 이 문제를 파고 있었다”며 “내부에서 나온 정보도 있고 경찰청에서도 (순찰차 사업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 문제로 경찰청 관계자를 30~40번 만났다”고 밝혔다. 눈여겨볼 대목은 H사 대표가 같은 시기 신 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냈다는 점이다. <일요시사>가 나주시·화순군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신 의원의 ‘연간 300만원 초과 기부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H사 대표는 지난해 8월22일 500만원을 기부했다. 신 의원은 2014년 7월30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고 20대(2020년), 21대(2024년) 총선에서 배지를 달았다. 2014~2016년, 2020~2024년 등 신 의원이 국회의원 활동을 하는 동안 H사 대표가 후원금을 낸 건 지난해 8월이 유일하다. 경광등 업체 변경 문제 때문? “사기업 갈등에 보좌관이 왜?” 오 보좌관은 H사 대표가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을 알았냐는 질문에 “몰랐다”면서 “회계를 관리하는 직원은 나주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H사 대표에 대해 “이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정치후원금 모금 한도) 3억원 중에 500만원을 후원했다고 해서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매달리겠느냐”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업체의 문제 제기가 합당하다고 생각했고, 자료를 받아보니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좌관은 “경찰차 특장 시장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 뛰어드는 업체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맨날 같이 했던 업체를 빼버리면 가만히 있겠나. 나는 Y사가 욕심을 부리면서 이 상황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해왔던 곳과 똑같이 하면 되지, 더 이익을 취하려 하느냐”고 되물었다. 업체 간 중재의 의도도 있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민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후원금을 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일을 잘하신다는 말을 들어서 후원금을 냈다. 지금 이 문제와는 무관하다”며 “사업을 접을까 생각할 정도로 머리 아픈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오 보좌관을 만나 민원을 넣었는지는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Y사는 신정훈 의원실발 보도자료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Y사 관계자는 “정부 기관에 납품하는 제품을 만드는 건 맞지만, 엄연히 사기업 간 일어난 일에 국회 보좌진이 개입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기사가 나간 이후 우리 회사는 경제, 이미지 부분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경찰청과 지체상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업체 문제로 인한 지연이 결정되면 지체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차량 출고가 늦어지면서 보관을 위한 토지 대여료가 1억2000만원 정도 나갔다. 무엇보다 자회사인 N사의 신용등급 하락, 기사로 인한 이미지 훼손 등 무형적인 피해도 만만찮다”고 하소연했다. 받아쓴 언론 “취하해 달라” 한편 Y사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나간 보도자료로 기사를 작성한 매체 3곳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Y사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국민에게 경찰 장비 도입 과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며 “신청인(Y사)의 업무 수행 능력과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을 야기해 치안 활동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어 정정보도를 구한다”고 조정을 신청했다. Y사 관계자는 “2곳의 매체에서 ‘기사를 내릴 테니 소를 취하해 달라’는 내용의 답변을 언론중재위원회에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