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에 급반전' 윤석열 한동훈 승부수

설마설마했는데…묘수? 악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묘수일까, 악수일까. 대통령 당선인이 놓은 수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불러올 후폭풍은 가히 짐작할 수 없을 정도. 분명한 사실은 대통령 당선인이 불리한 정치구도에서 ‘승부수’를 띄웠다는 점이다.

대통령 당선 이후 취임하기까지 2개월 동안 온갖 인사의 이름이 거론된다. 내각 인선을 위한 장관 후보자 지명에 관심이 쏠리기 때문.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는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최적의 후보자를 찾는 데 골몰한다. 

아무도
몰랐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실력’을 내각 인선의 우선순위로 삼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혀왔다. ‘깜짝’ ‘파격’ 인사는 없다는 뜻도 드러냈다. 1차 내각 인선 발표 때에도 이 같은 기조가 지켜지는 듯했다. 다양성 부족 등의 지적이 나오긴 했지만 ‘실력주의’라는 기준으로 일정 정도 용인되는 분위기였다.

지난 4일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도 기자회견에서 “국민의 삶을 나아지게 하고 국익을 확보하기 위해 능력 있고 실력 있는 분들로 구성할 것”이라며 “도덕성을 겸비하고 실력과 능력으로 신뢰감을 구축하는 것이 제1, 2요건”이라고 내각 인선 방향에 대해 밝힌 바 있다. 

지난 13일 윤 당선인의 2차 내각 발표는 충격의 도가니였다. 세간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한동훈 사법연수원 부원장(검사장)을 지명한 것이다.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찰 요직에 중용될 것이라는 당초 예상을 뛰어 넘는 인사였다. 


윤 당선인은 이날 오후 인수위 기자회견에서 한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한 배경에 대해 “유창한 영어 실력과 다양한 국제 업무 경험을 갖고 있다”며 “제가 주문한 것은 경제발전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무 행정의 현대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사법제도 정비”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절대 파격 인사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당선인이 직접 챙긴 인사
검찰 요직 예상 깨고 장관에

한 후보자는 특수통 검사 출신으로 윤 당선인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된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95년 사시 37회에 합격한 후 2001년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임관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검찰 연구관, 대검 정책기획과장, 서울중앙지검 초대 공정거래조세 조사부장 등을 지냈다. 

SK 분식회계 사건, 대선 비자금 사건, 현대차 비리 사건, 외환은행 매각 사건,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등에서 윤 당선인과 호흡을 맞췄다. 윤 당선인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됐을 때는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3차장 검사를, 검찰총장 시절에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을 맡았다.

당시 최연소 검사장이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가족 비리 의혹 수사 등을 지휘했다.

윤 당선인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풍랑의 중심에 섰듯, 한 후보자의 운명도 그와 흡사했다. 추 전 장관이 취임과 동시에 진행한 검찰 인사에서 한 후보자는 ‘추풍낙엽’처럼 휩쓸렸다. 2020년 1월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자리를 옮긴 데 이어 법무연수원 용인분원 연구위원, 진천본원 연구위원을 거쳐 지난해 6월부터는 사법연수원 부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2년 새 4번의 좌천 조치를 당한 셈이다. 


4번 좌천에도
자리 지켰는데

이 과정에서 한 후보자는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사건과 관련해 공모 혐의를 받았다. 검찰의 휴대폰 압수수색 과정에서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또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해 재판 중이다. 숱한 논란에도 한 후보자는 “검찰에서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다”면서 사퇴설 등을 일축했다.

3‧9 대선에서 윤 당선인이 승리하면서 한 후보자가 요직으로 중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지난 6일 한 후보자가 채널A 강요미수 사건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서 이 같은 전망에 힘이 실렸다.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는 강요미수 혐의로 고발된 한 후보자를 증거불충분 등의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고 밝혔다. 2020년 4월 시민단체 민주언론시민연합이 MBC의 ‘검언유착’ 보도를 근거로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와 한 후보자의 공모 정황이 있다며 시작된 사건 수사가 2년 만에 최종 결론에 이른 것이다. 

수사팀은 그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한 후보자를 무혐의 처분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전임 서울중앙지검장이었던 이성윤 서울고검장 이후 지휘부는 한 후보자의 휴대전화 포렌식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사건 처리를 미뤄왔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한 후보자를 겨냥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려 했으나 검찰 안팎의 반대에 밀려 철회하기도 했다.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사건에서 한 후보자의 무혐의가 최종 확정되면서 그를 둘러싼 족쇄는 풀렸다. 그러자 한 후보자의 거취를 둘러싸고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 등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윤 당선인이 어떤 식으로든 한 후보자를 요직에 배치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실제 윤 당선인은 대선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거의(정권 수사를) 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다. 그가 서울중앙지검장이 안 된다는 얘기는 독립운동가가 중요 직책을 가면 일본이 싫어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논리랑 똑같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한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발탁은 당초 전망을 아득히 뛰어넘는 수준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한 후보자가 인수위 사무실에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그의 법무부 장관 지명을 예측한 언론이 거의 없었을 정도. 윤 당선인의 측근조차 알지 못했다는 말도 들린다. 또 윤 당선인이 법무부 장관 인선만큼은 직접 챙겼다는 말도 있다.

한 후보자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네 편 내 편 가리지 않고 오직 법과 상식에 따라서 정의가 바로 서는 법치국가를 바라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며 “공직생활하는 동안 강자의 불법에 더 엄정하려고 노력했듯이 용기와 헌신을 가지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또 윤 당선인과 이어온 친분으로 검찰의 중립성을 제대로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는 시선에 대해서도 “제가 일해온 과정을 보면 인연에 기대거나 맹종하거나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고 어디서 뭘 하든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박범계·추미애 장관 시절 수사지휘권 남용이 얼마나 국민에게 해악이 큰지 실감했다”며 “장관에 취임하더라도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지휘권 행사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당선인은 검찰 독립성 강화를 골자로 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운 바 있다.


“수사지휘권
행사 안 해”

현재 정치권 안팎에서는 ‘조선제일검’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면서 수사 부서로 이동하리라 예상됐던 한 후보자를 임명직에 지명한 윤 당선인의 의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장제원 대통령 당선인 비서실장은 자신의 SNS에 “칼을 거두고 펜을 쥐어줬다”고 한 후보자 발탁 배경에 대해 언급했다. 

이어 “아마 한 검사장은 검찰에 남아 못다 이룬 검사로서의 꿈을 이어가고 싶었을 것”이라며 “검사라면 누구나 오르고 싶은 중앙지검장, 아니 검찰총장의 꿈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윤 당선인은 한 검사장에게 펜을 맡겼다”며 “지난 20년간 검찰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범죄와의 전쟁이 아니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선진화된 형사사법 시스템을 만드는 설계자가 되기를 요구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에서는 윤 당선인이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 시도에 ‘강대강’ 맞수를 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은 최근 검수완박 입법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 윤 당선인 취임 전에 검수완박 입법을 완료해 검찰의 힘을 완전히 빼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검수완박 입법이 진행될 경우 검찰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수사도 할 수 없게 된다. 민주당에서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는 내용의 법안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


검찰은 민주당의 검수완박 입법 시도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김오수 검찰총장은 기자회견을 자청해 문재인 대통령에 면담을 요청하는 등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검사장은 물론 평검사 사이에서도 반발 움직임이 감지되면서 ‘검란’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민주당 검수완박 당론 맞수?
지명 철회 요구 검증 예고

하지만 172석의 국회 다수 의석을 가진 민주당이 입법 시도를 밀어붙이면 검찰은 물론 국민의힘에서도 이를 저지하는 것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 윤 당선인은 그런 상황을 막고자 한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에 지명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실제 한 후보자 발탁을 두고 정치권 특히 민주당의 반응은 격렬하다. 일부에서는 ‘경악’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정도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측근을 내세워 검찰 권력을 사유화하고 서슬 퍼런 검찰공화국을 만든다는 의도를 국민 앞에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라며 “통합을 바라는 국민에 대한 전면적이고 노골적인 정치보복 선언”이라고 주장했다. 

윤 당선인의 승부수는 한 후보자의 청문회 과정과 취임 직후 진행될 6‧1 지방선거에서 그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한 후보자에 대한 대대적인 검증을 예고하면서 청문회는 전쟁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내각 인선 자체가 한 후보자 지명에 전부 먹혀버린 상황이기 때문에 청문회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 높은 상황이다. 

여기서 한 후보자가 민주당의 송곳 검증을 이겨낸다면 윤 당선인의 승부수는 ‘묘수’ 쪽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반면 검증 과정에서 한 후보자의 도덕성에 치명타가 될 만한 사안이 터진다면 윤 당선인의 승부수는 ‘악수’가 될 수 있다.

한 후보자를 윤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보는 사람이 많아 국정 동력에 악영향을 미치는 수준까지 폭발력을 가질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결과 따라
국정 영향

현재 한 후보자는 청문회 준비단을 꾸리고 인사검증을 준비하고 있다. 청문회 준비단은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청사에 꾸려졌다. 준비단장은 통상적인 관례에 따라 주영환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이 맡는다. 주 실장은 한 후보자와 연수원 동기로 윤 당선인이 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된 2019년 인사청문회 준비단에서 공보 담당을 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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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