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길' 걷던 친정부 검사들의 운명

누가 되든 싹 다 물갈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우리나라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제왕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막강하다. 승자독식의 구조의 대통령선거는 전쟁의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전쟁은 5년마다 반복된다. 역으로 말하면 어떤 권력도 5년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친정부 인사’는 어떤 운명을 맞게 될까.

화무십일홍 권불십년. 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고 아무리 높은 권세도 10년 동안 지속되지 않는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말을 할 때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4~5년에 한 번 선거를 치를 때마다 단골처럼 등장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특히 임기 말에 가까워 올수록 이 말의 무게는 남달라진다.

5년마다
집권 전쟁

문재인정부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제 20여일 후면 차기 대선의 승자가 결정된다. 정권 재창출과 정권교체라는 두 가지 선택지를 두고 국민의 결정을 받는 것이다. 대선은 지난 정부에 대한 평가이자 미래 권력에 대한 기대가 분출하는 장이다. 

정권 재창출을 원하는 여당은 현 정부의 긍정적인 부분을 부각시켜 이를 지속해야 한다는 선거전략을 내세운다. 반면 야당은 현 정부의 부정적인 부분을 앞세워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낸다. 여야 모두에게 현 정부의 5년은 선거전략의 배경이 되는 셈이다. 

문정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40%를 넘나드는데 정권교체를 원하는 비율이 과반인 독특한 상황이다. 문 대통령의 임기 말 지지율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이례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 큰 이변이 없는 이상 임기 마지막까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문 대통령 개인 인기와 반비례해 정권교체를 원하는 국민은 절반이 넘는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를 지지하는 응답자의 대부분이 ‘정권교체’를 지지 이유로 꼽았다. 윤 후보의 지지율이 널을 뛸 때조차 정권교체를 바란다는 비율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았다.

문 대통령에 대한 지지와는 별개로 문정부에 대한 평가는 좋지 않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문정부의 5년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부분이 바로 ‘검찰개혁’이다. 검찰은 문정부 임기 내내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적폐 청산의 칼이면서 개혁 대상이라는 양면적인 상황에 놓인 채 5년 내내 다양한 사건에 휘말렸다.

문정부 들어 승승장구
논란에도 오히려 영전

검찰에 대한 관심은 차기 정부에서도 계속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 윤 후보 모두 검찰과 관련된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 후보는 문정부에 이어 검찰개혁을, 윤 후보는 검찰 독립성 강화를 주장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검찰 내부에도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특히 문정부 들어 ‘꽃길’을 걸은 검사가 부각되고 있다. 이른바 ‘친정부’ 검사로 분류되는 이들이다. 일각에서는 차기 대선의 결과가 이들의 운명과 맞물려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대선 승자에 따라 꽃길이 가시밭길로 바뀔 수도 있고, 그대로 꽃길을 걸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성윤 서울고검장은 대표적인 친정부 검사로 꼽힌다. 문 대통령과 경희대 동문인 그는 문정부 들어 말 그대로 로열 로드를 걸었다. 검찰 빅4로 불리는 서울중앙지검장, 법무부 검찰국장,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대검 공공수사부장 등 요직 중 3자리를 거쳤다.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장 순이다.


심지어 지난해 6월에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으로 기소된 피의자 신분에도 불구하고 서울고검장으로 영전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당초 검찰인사에서 승진이 누락되거나 좌천성 승진 대상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지만 결국 주요 사건의 공소유지를 담당하는 자리로 가게 된 것.

이 고검장은 윤 후보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무렵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의 칼 역할을 하면서 사사건건 대립했다.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에서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두고 공개적으로 윤 후보에 반대하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지지율 높은데
정권교체 열망

연루 의혹을 받은 한동훈 검사장(사법연수원 부원장)에 대한 수사팀의 무혐의 결재를 받아들이지 않는 일도 있었다. 

윤 후보에 이어 차기 검찰총장 0순위로 꼽혔던 이 고검장은 김 전 차관의 불법 출금 사건을 시작으로 서서히 내리막을 걷기 시작했다. 피의자 신분이 되면서 4명으로 추린 검찰총장 후보군에 포함되지 못했다. 여기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관련 논란에도 이 고검장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이 고검장이 공수처 조사 과정에서 김진욱 공수처장의 관용차를 이용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황제 조사’ 논란이 불거졌다. 공수처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를 지적할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사건이다. 출범한 지 1년이 넘었지만 공수처가 여전히 자리 잡지 못하고,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또 이 고검장 공소장 유출 의혹 사건에 대한 공수처 수사가 공회전을 거듭하면서 ‘봐주기’ 아니냐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수처가 몇몇 기자의 통신 자료를 조회한 것으로 드러나 ‘사찰’ 의혹까지 불거졌다. 공수처 논란의 면면에 이 고검장의 존재가 있는 것이다.

이 고검장과 함께 박은정 성남지청장도 대표적인 친정부 검사로 꼽힌다. 최근 성남FC 후원금 의혹 수사를 두고 ‘수사 무마’ 의혹이 불거지면서 부각되는 중이다. 성남FC 의혹 사건은 2015~2017년 네이버, 두산건설 등 6개 기업이 후원금과 광고비 명목으로 총 160여억원을 성남FC에 제공하고 민원을 해결했다는 내용이다.

당시 성남시장은 이 후보였다.

피의자인데
고발당해도

2017~2018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바른미래당 등에서 이 후보를 제3자 뇌물 혐의로 고발하면서 문제로 떠올랐다. 지난 1월 이 사건을 담당하던 박하영 전 검사가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글을 쓰고 사의를 밝히면서 재차 불거졌다.

박 전 검사는 경찰이 사건을 무혐의 처분한 것에 대해 보완수사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박 지청장이 수사를 뭉갰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친정부 검사로 꼽히는 박 지청장이 여당 대선후보의 연루 의혹이 있는 사건을 의도적으로 막은 게 아니냐는 것이다. 박 전 검사는 결국 지난 10일 검복을 벗었다. 논란이 계속되자 김오수 검찰총장은 수원지검에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라고 지시했고, 결국 무혐의 처분한 경기남부 분당경찰서에서 다시 사건을 넘겨 받았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시절인 2020년 2월 법무부 감찰담당관에 발탁된 박 지청장은 같은 해 말 윤 후보의 감찰·징계를 직속상관인 류혁 법무부 감찰관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밀어붙이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윤 후보의 판사 사찰 문건 작성 의혹과 관련한 감찰 중 법무부 감찰관실 파견 검사가 ‘박 지청장이 보고서 내용을 일부 삭제하라고 지시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이 의혹으로 고발됐지만 검찰 수사는 별다른 진척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지난해 6월 검찰 인사에서 검사장 승진 1순위로 꼽히는 성남지청장으로 영전했다.

박 지청장의 남편인 이종근 서울서부지검장 역시 대표적인 친정부 검사다. 2020년 12월4일 이용구 당시 법무부 차관이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이종근2’라는 이름의 참여자와 윤 후보 징계를 사전 논의하는 사진이 포착됐을 때 그 정체를 두고 설왕설래가 오갔다.

윤-이 검찰 관련 정반대 공약
새 판 짜면 누가 살아남을까?


당시 대검 형사부장이자 박 지청장의 남편인 이 지검장의 이름이 언급된 것.

윤 후보의 검찰총장 임기 내내 대립각을 세운 임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 역시 친정부 검사로 알려져 있다. 추 전 장관 시절 대검 감찰정책연구관으로 발탁된 그는 당시 ‘윤석열 대항마’로 불리기도 했다. 추 전 장관이 윤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임 감찰관을 보냈다는 추측이 제기됐을 정도. 

최근에도 임 감찰관은 윤 후보와 ‘장외싸움’을 벌이고 있다. 공수처가 ‘한명숙 전 총리 모해위증교사 수사 방해’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 혐의 등으로 고발된 윤 후보에 대해 무혐의 결론을 내리자 “재정신청을 하겠다”며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정신청은 수사기관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기소 여부 등을 대신 판단해달라고 요청하는 제도다.

공수처가 수사 중인 윤 후보 관련 4건의 사건 중 가장 먼저 결론이 나왔다. 이 사건은 2020년 윤 후보가 한 전 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 수사팀에 대한 감찰을 대검 감찰부에서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이 담당하도록 지시해 검찰총장의 직권을 남용하고 감찰 행사를 방해했다는 내용이다. 

당초 법조계에서는 해당 의혹을 두고 ‘한명숙 구하기’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임 감찰관은 공수처의 무혐의 결론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뜻을 보였다. 공수처의 결론으로 임 감찰관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친정부 검사가 한 전 총리를 구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대선 이후
검 운명은?

차기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되든 검찰은 새 판을 짤 가능성이 높다. 현 정부 아래에서 친정부 검사로 분류됐던 이들이 계속해서 꽃길을 걸을지, 아니면 또 다른 친정부 검사가 나올지는 대선 결과에 달려있다. 대선은 이제 3주도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윤의 검사’ 한동훈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의 측근으로 알려진 한동훈 검사장(사법연수원 부원장)은 현 정부에서 가장 ‘가시밭길’을 걸은 검사다.

윤 후보가 검찰총장으로 재직할 무렵 대검 반부패 강력부장이었던 그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으로 수사 선상에 오르면서 사실상 직무 배제됐다.

2020년 1월 부산고검 차장검사로 전보된 이후 같은 해 6월 법무연수원 용인분원 연구위원으로 발령났다.

또 4개월 뒤에는 법무연수원 진천본원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당시 추가 좌천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지난해 6월 검찰 인사 이후에는 “보복을 견디는 것도 검사의 일의 일부이니 담담하게 감당하겠다”고 언론에 밝힌 바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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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