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감 제로' 사라진 김오수 검찰총장 속사정

몰래 칼 가나…두문불출 ‘서초차사’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총장의 존재감은 정권 말이 다가올수록 빛을 발한다. 대통령의 임기 4~5년차에 터지는 권력형 비리 수사를 진두지휘하기 때문. 문재인 대통령의 남은 임기는 이제 8개월 남짓. 그럼에도 검찰총장이 보이질 않는다. 문정부 마지막 검찰총장이 사라졌다.

정권의 마지막 검찰총장 자리는 이른바 ‘독이 든 성배’다. 교체와 연장의 기로에 서 있는 정권의 행보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동안 정권의 마지막 검찰총장들은 호흡기를 달아주거나 숨통을 끊는 둘 중 하나의 선택을 해왔다. 

칼자루 쥔
마지막 총장

정권 말 낙점된 마지막 검찰총장은 그 끝이 좋았던 경우가 많지 않다. 김태정 전 총장은 대선을 두 달 앞두고 당시 야권 후보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 수사를 대선 이후로 유보한다고 선언해, DJ 집권 이후 법무부 장관으로 영전됐다. 하지만 옷 로비 사건으로 해임돼 재판까지 받았다.

노무현정부에서 임명된 임채진 전 총장은 이명박정부에서 유임된 후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진행하다 그가 서거하자 사퇴했다. 김수남 전 총장도 임명권자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시켰지만 문정부에서 재신임 받지 못했다. 이렇듯 역대 정부의 마지막 검찰총장은 누가 임명되든 잡음을 피할 수 없었다. 

역설적으로 정권 말에 이를수록 검찰총장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는 뜻도 된다. 1987년 6월 민주화항쟁 이후 직선제로 당선된 노태우 전 대통령부터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전임 대통령들은 임기 4년차 징크스를 피해가지 못했다. 


대통령 측근을 중심으로 권력형 비리가 터져 나왔고 검찰 수사 여부에 따라 레임덕의 수위가 결정됐다. 임기 막바지가 되면 모든 관심은 차기 대선후보에 쏠린다. 대부분의 전임 대통령은 임기 말 몸담았던 정당을 탈당해 토막 난 지지율을 보면서 쓸쓸히 퇴장했다. 

임기가 현 정부와 차기 정부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경우 검찰총장의 고뇌는 더욱 깊어진다. 임명권자의 등에 칼을 꽂을지, 호위무사가 될지 등 검찰의 행보를 결정하는 일도 검찰총장 손에 달렸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마지막 검찰총장인 김오수 총장은 이 같은 공식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후임으로 화려하게 컴백한 것치고는 존재감이 ‘0’에 가깝다. 언론 보도에서도 그의 이름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까지 겸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그로서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나온다.

6월 취임 후 잠행 지속
두 달 뚜렷한 행보 없어

실제로 최근 언론 보도에서 김 총장이 주인공(?)인 기사는 많지 않다. 지난달 26일 취임 후 처음으로 하계휴가를 떠난다는 보도가 나왔다. 김 총장은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 소집 문제를 뒤로 하고 나흘간 휴가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달 22일에는 고 김홍영 검사의 부친을 만났다. 김 검사는 2016년 5월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그는 업무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호소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과정에서 김대현 전 부장검사의 폭언과 폭행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김 전 부장검사는 서울남부지검에서 근무하던 2016년 3~5월 택시와 회식자리 등에서 후배 검사였던 김 검사를 네 차례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법무부는 형사처벌 없이 김 전 부장검사에게 해임 결정을 내렸지만 대한변호사협회가 그를 폭행과 모욕‧강요 혐의로 고발했다. 


지난 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김준혁 판사)은 김 전 부장검사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단체 대화방 등에서 괴로워한 점 등을 종합하면 폭행죄에 해당하는 것이 명백하고 위법성을 조각할 이유가 없어 공소 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한다”고 판결했다. 

김 총장은 김 검사의 부친과 만난 자리에서 위로의 말을 건네고 ‘국민중심 검찰추진단’을 통해 조직문화 개선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전했다. 이어 업무수행 중 순직한 검찰 구성원들을 기억하고자 대검 내에 추모 시설을 설치하는 계획도 설명했다. 

총장 멈추니
수사도 멈춰

지난달 23일에는 전국 34개 지검·지청의 초대 인권보호관들과 화상회의를 진행했다. 이날 회의에서 김 총장은 “인권보호관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줄탁동시’라는 말처럼 시대의 흐름을 읽고 중요성에 걸맞은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을 해달라”고 당부했다.

줄탁동시는 제자의 역량을 알아차리고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스승의 예리한 기질을 비유한 말이다. 

지난 6월1일 취임 이후 박 장관과 인사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검찰 직제개편에 대해 목소리를 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대선 정국에 돌입한 정치권에서도 김 총장의 행보에 의구심을 품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각에서는 아예 ‘식물총장’이 된 것이냐는 지적도 있다. 

김 총장은 취임 전부터 ‘총장 패싱’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법무부는 김 총장이 취임하기도 전에 검찰 인사위원회를 열고 인사 기준을 논의했다. 검찰 내부에서는 총장 취임 전 인사위원회 개최에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윤 전 총장 때 첫 검찰 인사에서 ‘윤석열 사단’이 크게 약진한 것과는 비교되는 모습이다.

검찰은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검사는 검찰권 행사에 있어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상하복종 관계에 있다는 원칙이다. 문재인정부 들어 검사동일체 원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늘어나면서 구습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조직 내에선 여전히 검찰총장의 지배력이 막강하다. 

김 총장의 행보에 따라 수사 진행이 빨라질 수도 더뎌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최근 검찰의 주요 현안 수사는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고 있다. 먼저 김 총장은 휴가에서 복귀한 이후에도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사건의 수사심의위 개최 시기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6월30일 이 사건에 연루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등 혐의로 기소하면서도 배임 교사 등 일부 혐의는 수사심의위의 판단을 받기로 했다. 통상 수사심의위는 소집이 결정된 뒤 1~2주 뒤에 열렸지만 백 전 장관의 수사심의위는 한 달이 넘도록 개최 시기조차 정하지 못하고 있다. 

대검찰청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의 사정을 고려해 수사심의위 개최 시기를 검토 중이라는 입장이지만 김 총장이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눈치 보기?
중립 유지?

윤 전 총장 가족·측근 의혹 사건도 수사가 멈춰있는 상태다. 김 총장은 윤 전 총장 관련 사건을 일체 보고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0월 수사팀이 윤 전 총장 관련 사건 수사 진행 상황을 대검이나 검찰총장에 보고하지 말 것을 지시한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가 아직 유효하기 때문. 

김 총장은 이들 사건과 이해관계가 없어 지휘라인에서 배제될 이유가 없지만 법무부나 대검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박 장관도 “검찰총장이 전국 모든 수사를 일일이 지휘해야만 수사가 돌아가고 그렇지 않으면 수사가 멈춘다는 기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며 김 총장의 수사 지휘 배제 방침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총장의 행보를 두고 ‘정치권 눈치 보기’ ‘정치적 중립 유지’ 등 두 가지 시각이 공존한다. 대표적인 친정부 인사로 분류되는 김 총장이 수사 진행에 따라 정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한다는 분석이다.

반면 정권 말 어떤 식으로든 정치권에 영향을 미쳐왔던 검찰의 과거 모습을 답습하지 않으려 한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김 총장의 검찰총장 인선 배경이 그의 행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김 총장은 문정부에서 강한 존재감을 보인 인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문정부 요직마다 하마평에 오를 정도로 신임을 받았다. 


청와대 관계자가 김 총장을 지명하면서 “2019년 윤석열 전 검찰총장 임명 당시에도 후보 가운데 한 명이었고 감사위원, 공정위원장, 금융감독원장, 권익위원장 등 후보에 거론됐다”며 “공직자 후보에 최다 노미네이션 됐는데 그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역량을 갖추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을 정도. 

수사심의위 개최 안 하고
윤석열 사건 보고 안 받고

당초 김 총장은 차기 검찰총장 1순위가 아니었다. 문정부의 대표적인 친정부 검사로 꼽혔던 이성윤 서울고검장(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수사 무마 의혹 사건에 휘말리지 않았다면 그가 차기 검찰총장이 됐을 것이라는 의견이 여전히 우세하다. 

하지만 이 고검장이 김 전 차관 사건으로 피의자 신분이 되면서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가 추천한 최종 후보에 들지 못하자 김 총장이 급부상했다. 김 총장은 다른 3명의 후보와 비교해 많은 표를 받지 못했음에도 박 장관의 제청을 받고 문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임명됐다. 

청와대는 17기(문무일)→23기(윤석열)→20기(김오수) 등 기수 역전을 감행하면서까지 김 총장을 검찰총장에 지명했다. 정권 말 마지막 검찰총장은 확실한 ‘내 편’으로 심어왔던 과거 사례처럼 김 총장이 정부의 행보와 발을 맞출 것이라 여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 보니 취임 전 인사청문회를 진행할 때부터 ‘정권의 호위무사’ ‘방탄 총장’ 등의 수식어가 김 총장을 따라다녔다. 월성1호기 경제성 조작 의혹 사건,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 등 청와대를 겨냥한 사건 수사가 지지부진할 것이라는 예상도 빈번하게 나왔다.

일각에서는 윤 전 총장 재임 당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대립, 즉 추·윤 갈등 과정에서 줄어든 검찰총장의 권한이 김 총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말도 있다. 법무부 등에서 윤 전 총장을 겪으면서 이른바 학습효과가 생겼고, 이로 인해 검찰총장이 정치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는 분석이다. 

태생적 한계
앞으로도?

김 총장의 운신 폭이 당장 넓어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야 모두 대선 모드에 돌입했고, 후보 선출 과정에 몰두하고 있는 만큼 김 총장이 섣부른 행보를 하기에는 부담스러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 총장의 임기는 2023년 5월31일까지. 임기만 보장된다면 차기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그는 검찰총장 자리를 지킬 수 있다. 김 총장은 숨어 있는 걸까, 숨죽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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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