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LH 사태 오버랩 내막

투기로 엎친 데…검풍 덮친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형 사건 전에는 반드시 전조가 있기 마련이다. 원인 규명을 위해 상황을 되짚다 보면 ‘시발점’이 된 사건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특정 사안이 거대한 후폭풍을 불러오기도 한다. 

정당의 목표는 정권 재창출이다. 정당의 행보는 4~5년마다 돌아오는 선거에 맞춰져 있다. 우리나라 선거는 ‘승자독식’ 구조로 돼있다. 말 그대로 이기는 쪽이 모든 영광을 갖게 된다. 지방선거, 국회의원 선거, 대통령선거 등 선출직의 수가 줄어들수록 그 집중도는 더욱 커진다.

승승장구하다
내리 2번 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탄핵 정국 이후 선거에서 승승장구했다. 2017년 3월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안이 인용된 후 보궐선거로 치러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게 시작이었다. ‘어‧대‧문(어차피 대통령은 문재인)’이라는 말이 대선 기간 내내 나올 정도로 싱거운 싸움이었다. 

1년 뒤인 2018년 6월13일 열린 7회 지방선거에서도 민주당은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을 압도했다. 총 8석의 광역시장 중 대구(자유한국당)를 제외한 7석을 싹쓸이했고, 총 9석의 도지사 중에서도 경북(자유한국당)과 제주(무소속)를 제외한 7석을 차지했다. 

21대 총선은 그야말로 민주당 잔치였다. 민주당은 180석(민주당 163석+더불어시민당 17석)을 확보하면서 ‘슈퍼여당’으로 거듭났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개헌을 제외한 입법 활동에서 대부분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이다.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103석(미래통합당 84석+미래한국당 19석)으로 개헌 저지선(100석)보다 3석 더 얻는 데 그쳤다. 지역별 의석 수를 보면 민주당의 승리는 더 압도적이다. 서울에서 41석(총 49석), 경기에서 51석(총 59석), 인천에서 11석(총 13석) 등 수도권에서 의석을 싹쓸이했다. 

파죽지세로 선거마다 이기던 민주당이 고꾸라지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해 4월7일에 치러진 재보궐선거부터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성추행 의혹을 받아 사퇴하면서 다시 선거가 열린 것. 수도와 제2도시의 광역시장이 한꺼번에 공석이 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나면서 양당 모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선거가 됐다.

선거 앞두고 터진 악재
서울·부산 압도적 패배

민주당은 ‘당 소속 공직자의 중대 잘못으로 생긴 보궐선거에는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을 개정하면서까지 서울과 부산에 후보를 냈다. 결과는 서울과 부산 모두 참패. 서울시장은 오세훈 후보, 부산시장은 박형준 후보가 당선됐다. 1~2위간 격차가 20%p 이상 나는 압도적인 승리였다.

민주당은 보궐선거 한 달 뒤인 지난해 5월12일 패배 원인을 자체적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공개했다. 민주당 서울시당이 외부 조사기관에 의뢰해 진행한 ‘서울시 유권자 대상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 보고서다. 그 결과 민주당 지지층이 재보궐선거에서 지지를 철회한 이유로 조국·검찰개혁 사태와 부동산·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문, 젠더 갈등 등이 꼽혔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가족 비리 의혹 이른바 조국 사태와 검찰개혁은 문재인정부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던 사안이다. 반면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은 보궐선거를 불과 한 달 앞두고 불거졌다. 당시 20차례가 넘는 부동산 정책이 실패하면서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부동산 민심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황에서 LH 사태가 쐐기를 박은 것.


그 후폭풍은 대선까지 이어졌다. LH 사태로 드러난 ‘내로남불’이 대선 기간 내내 민주당의 발목을 잡았다. 결국 민주당은 대선에서 ‘정치신인’을 후보로 내세운 국민의힘에 0.7%p 차이로 졌다. 불과 24만표 차의 석패였지만 패자에게 가해진 타격은 어마어마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 5년 만에, 또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40%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정권을 내주자 민주당은 내홍에 빠졌다. 문제는 민주당의 최근 행보가 향후 선거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당장 오는 6월1일 지방선거가 있고, 2년 뒤 22대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한 번 터지니
후폭풍 계속

대선에서 진 민주당으로선 지방의회와 중앙의회 권력을 내주게 되면 다시 정권을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지지층과 반비례해 비토층 역시 견고해지고 있기 때문.

게다가 6월 지방선거는 차기 정부 출범 직후에 치러진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차기 정부에 일단 힘을 실어주자’는 여론을 뚫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최근 민주당이 ‘지방선거를 완전히 포기한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을 위해 ‘오로지 직진 모드’에 돌입하면서 민심의 역풍을 맞는 모양새다. 검찰, 경찰, 심지어 대법원까지 검수완박을 반대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2년 동안 이미 의회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상황에서도 진행하지 않았던 검수완박 입법을 문 대통령의 임기가 20여일도 남지 않은 시점에 밀어붙이는 것을 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시각이 많다. 문정부 관련 수사, 이재명 상임고문 관련 수사 등을 검수완박 입법을 통해 무마하려 한다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미 민주당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는 말까지 나온다. 민주당은 검수완박을 검찰개혁의 마지막 단추라 여기고 있다. 출범 직후부터 검찰개혁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어왔던 문정부에 민주당은 입법으로 발을 맞췄다.

그 결과 경찰의 숙원이던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졌고, 진보진영의 숙원이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설치됐다. 

모두 반대해도
무조건 통과?

현재 검찰은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만 수사할 수 있다. 검수완박법(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검찰의 6대 범죄에 대한 수사권마저 완전히 박탈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민주당은 검수완박을 당론으로 채택한 데 이어 172명 전원 발의로 검찰청법,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민주당은 다음 달 3일 문정부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검수완박법을 공포하는 것을 목표로 잡고 속도전에 돌입했다. 국민의힘은 결사 반대에 나섰고 김오수 검찰총장은 직을 걸었다. 대법원 법원행정처에서 검수완박 법안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고, 법안의 위헌성까지 언급됐다. 


검찰 내부는 당연히 부글부글 끓고 있는 상태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시기인 2003년 이후 19년 만에 전국 평검사 회의가 열렸으며 서울·대전·대구 등 전국 6개 고검장들이 일괄 사의를 표명했다. 검찰의 권한을 이어받을 경찰 내부에서도 반대 의견이 나왔다.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반대 입장이 속속 나오는 중이다. 

심지어 민주당 내부에서도 속도 조절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있지만 강경파에 밀리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무소속 양향자 의원을 둘러싼 논란이 불거졌다. 여기에 민주당은 ‘위장 탈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민주당이 왜 이렇게까지 무리수를 두는지 모르겠다’는 지적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민주당은 지난 7일 국민의힘이 검수완박법을 안건조정위원회에 회부할 것을 대비해 양 의원을 법제사법위원회로 사보임했다. 국회법상 여야 동수 3명씩 총 6명으로 구성되는 안건조정위는 최장 90일까지 법안을 심사할 수 있다. 법안이 안건조정위에 회부되면 문 대통령 임기 내 처리는 물 건너 가는 셈이다.

안건조정위는 조정위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할 경우 안건을 곧바로 처리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6명 중 비교섭단체 몫으로 양 의원을 임명해 안건조정위 비율을 4대2로 만들어 처리하겠다는 ‘꼼수’를 계획하기에 이른다.

‘위장 탈당’ 카드까지 
입법 폭주에 지지층도?

양 의원이 현재는 무소속이지만 민주당에 적을 뒀던 만큼 여당의 손을 들어주리라고 판단한 것.


이 꼼수는 민주당의 예상과 달리 양 의원이 검수완박에 반대 입장을 드러내면서 무너졌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20일 민형배 의원을 탈당시켰다. 무소속이 된 민 의원을 양 의원의 자리에 앉히려는 이른바 ‘위장 탈당’ 카드였다. 어떻게 해서든 안건조정위 회부를 막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민 의원은 이날 자신의 SNS에 “수사·기소 분리를 통한 검찰 정상화에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을까 싶어 용기를 냈다.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역할에 대비하려는 뜻”이라고 적었다. 양 의원은 민 의원의 탈당에 입장문을 내고 “다수당이라고 해서 자당 국회의원을 탈당시켜 안건조정위원으로 하겠다는 발상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고 지적했다.

검수완박 입법은 지난 22일 박병석 국회의장이 중재안을 내놓으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박 의장은 미국‧캐나다 해외 순방 일정을 보류한 바 있다. 당시 검수완박 입법을 염두에 둔 조치로 풀이됐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먼저 수용 의사를 밝힌 데 이어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도 중재안 수용 의사를 밝혔다. 양당이 중재안을 모두 수용하기로 하면서 검수완박 법안은 임시회의를 거쳐 다음 달 3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일각에서는 이번 검수완박 입법 강행이 민주당 ‘폭망’의 시발점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민주당의 다급한 행보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일부 지지층에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지지층을 잡으려다 민심을 잃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집토끼 잡다
폭망의 시작?

부동산 문제는 문정부를 통째로 흔드는 뇌관으로 작용했다. 부동산 문제로 민심이 돌아선 이후 민주당은 중요한 선거에서 이미 두 번 패했다. 문정부 내내 화두였던 검찰개혁이 향후 민주당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문 대통령의 임기는 20여일, 지방선거는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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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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