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끝 뭉갠' 문재인정부 마지막 검찰 인사 막전막후

‘역시나’ 아직 살아 있는 권력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법무부 장관이 휘두른 인사권에 검찰이 흔들리고 있다. 검찰 인사가 역대 최대 규모로 이뤄지면서 그 여진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대선을 8개월 앞두고 검찰의 칼끝이 무뎌지면서 문재인정부를 겨냥한 수사의 향방이 안개 속으로 접어들었다.

정치권은 이미 대선 모드에 들어갔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대선 출마를 공식화했고,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지난 대선에 이어 다시 도전 의사를 밝혔다. 내년 3월 대선까지 남은 시간은 8개월. 정치권은 물론 검찰 역시 정권 연장과 정권교체의 기로에 서있는 상황이다. 

대선 정국
기로 섰다

검찰의 존재감은 정권 말에 이를수록 뚜렷해지는 경향을 보였다. 수사권을 무기로 정권의 호흡기를 뗐다 붙였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 정부는 물론 문재인정부에서도 ‘마지막 검찰총장’에 높은 관심을 기울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권 말 검찰총장은 말 그대로 가시밭길을 걷는다. 대선을 앞두고 필연적으로 터져 나오는 정치적 사건을 직면해야 한다. 정권 입장에서는 확실한 ‘자기편’이 필요하다. 레임덕을 최소화할 방패를 세우고 싶은 것이다. 

김오수 검찰총장도 마찬가지다. 이성윤 서울고검장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수사 무마 의혹으로 피의자 신분이 되면서 김 총장이 차기 검찰총장 1순위로 떠올랐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도 김 총장을 제청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명을 거쳐 검찰총장 자리에 오른 김 총장은 ‘정권의 호위무사’ ‘방탄 총장’ 등으로 불렸다. 미묘한 부분은 김 총장의 임기가 문정부와 차기 정부에 반씩 걸쳐 있다는 점이다. 검찰총장의 임기는 2년으로 법에 보장돼있다. 김 총장의 임기는 2023년 5월31일까지다.

실제 자기편인 줄 알고 앉힌 검찰총장이 튀는 행동을 할 때가 있다. 김영삼정부 마지막 검찰총장이었던 김태정 총장은 DJ 비자금 수사를 대선 이후로 유보해 DJ정권 탄생에 일조했다는 말을 들었다.

노무현정부의 마지막 검찰총장인 임채진 총장은 정권이 교체된 뒤 자신을 임명한 노무현 대통령을 수사했다. 이후 노 대통령이 서거하자 사퇴했다. 박근혜정부의 김수남 검찰총장도 임명권자인 박 대통령을 구속시켰다. 

불안함의 발로였을까. 지난달 25일 단행된 검찰인사에서 중간간부급 검사들이 대거 물갈이됐다. 박 장관은 사실상 임기 중 마지막 검찰인사를 역대 최대 규모로 단행하면서 인사권을 최대로 휘둘렀다. 

역대 최대 규모 인사
중간 간부 90% 이동

법무부는 고검 검사급(차·부장검사) 검사 652명, 평검사 10명 등 총 662명에 대한 승진·전보 인사를 발표했다. 이날 인사로 검찰 중간간부 가운데 90% 이상이 자리를 옮기게 됐다. 올해 3월말 기준 고검 검사급 전체 인원은 686명이다. 

당초 중간간부급 인사는 대규모로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올해 초 박 장관 취임 직후 정기인사 규모가 소폭에 그친 데다 이달 초 김 총장이 새로 취임하면서 검찰 진용을 새롭게 구축하려는 의지도 반영됐다. 여기에 검찰 직제개편까지 맞물리면서 인사폭이 커졌다. 


앞서 박 장관은 “거의 대부분에 대한 승진·전보 인사가 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검 등 지방검찰청 8곳에 인권보호부가 신설됐고, 일부 지방검찰청의 반부패수사부-강력범죄형사부, 공공수사부-외사범죄형사부가 각각 통폐합됐다.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정권 수사를 하던 수사팀장들이 전원 교체됐다는 점이다. 김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을 수사하던 이정섭 수원지검 형사3부장은 대구지검 형사2부장으로 전보됐다. 청와대 기획 사정 의혹을 담당했던 변필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장도 창원지검 인권보호관으로 발령 났다.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을 수사한 이상현 대전지검 형사5부장은 서울서부지검 형사3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사건 수사를 지휘한 박지영 대전지검 차장은 춘천지검 차장으로 이동했다. 전 민주당 이상직 의원의 횡령‧배임 의혹을 수사한 임일수 전주지검 형사3부장은 서울북부지검 형사4부장으로 임명됐다. 

정부 겨냥
좌천의 길?

청와대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사건과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 사건을 맡았던 신봉수 평택지청장과 홍승욱 천안지청장은 서울고검으로 자리를 옮겼다. 서울고검은 수사에 관여할 수 없는 자리다. 서울고검은 친정부 검사인 이성윤 서울고검장이 자리해 있다.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 특검팀에서 일하다 서울중앙지검 1차장으로 갔던 신자용 부산동부지청장도 서울고검으로 가게 됐다. 윤 전 총장 시절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비리 의혹 사건을 지휘한 송경호 여주지청장도 수원고검으로 발령 났다.

윤 전 총장 가족·주변인 의혹 사건을 맡았던 수사팀장들도 바뀌었다. 윤 전 총장 부인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전시기획사 코바나컨텐츠 협찬금 명목 금품수수 의혹을 수사하던 정용환 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장은 반부패·강력수사 1부장으로 내부 이동했다. 

윤 전 총장 장모 최모씨를 ‘요양병원 부정수급’ 의혹으로 기소한 박순배 중앙지검 형사6부장은 광주지검 형사2부장으로 옮겼다. 윤 전 총장의 측근으로 꼽히는 윤대진 검사장의 형인 윤우진 전 용산세무서장 뇌물 사건 무마 의혹을 수사하는 서정민 중앙지검 형사13부장은 국무조정실로 파견됐다.

법무부에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박 장관을 보좌하던 검사들이 수사 보직으로 이동한 점도 눈길을 끈다. 박철우 법무부 대변인은 서울중앙지검 2차장에, 김태훈 법무부 검찰과장은 중앙지검 4차장에 보임됐다. 추 전 장관 시절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을 맡은 진재선 서산지청장은 중앙지검 3차장이 됐다.

후폭풍 계속
검사복 벗어

윤 전 총장 감찰, 징계 청구 당시 실무를 주도한 박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은 성남지청장으로, 임은정 대검 검찰정책연구관은 법무부 감찰담당관으로 전보됐다. 임 감찰담당관은 그동안 SNS를 통해 검찰 조직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다. 

법무부 대변인에는 박현주 서울동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장이, 대검찰청 대변인에는 서인선 서울북부지검 형사부장이 발탁됐다. 서울중앙지검 공보담당관도 이혜은 평택지청 형사1부장이 맡는다. 법무부·대검·서울중앙지검의 공보 담당을 모두 여성 검사가 맡게 된 것. 


법무부는 “검찰개혁과 조직 안정의 조화를 주안점에 두고 전면적인 ‘전진 인사’를 통해 검찰 조직의 쇄신과 활력을 도모했다”고 밝혔다. 이어 “인권·민생 업무에 묵묵히 매진해 온 형사·공판부 검사를 우대하고 공인전문검사·우수 여성검사를 발탁해 온 기존 인사 기조를 유지하는 한편 특정 부서나 인맥, 출신에 편중됨 없이 전담별·지역별 인적 구성을 다양화하고자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검찰 인사가 단행되고 1주일이 지났지만 후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나병훈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 지난달 28일 사의를 표명했다. 나 차장검사는 이번 인사에서 한직으로 분류되는 수원고검 검사로 발령 났다. 

김욱준 전 차장검사 후임으로 지난 2월에 부임한 그는 청와대 기획사정 의혹 사건, 채널A 기자의 강요미수 의혹 사건(검·언유착 의혹) 등을 수사했다. 이성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을 상대로 수사팀의 입장을 적극 대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나 차장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이제 정들었던 검찰을 떠나 새로운 길을 갈 때가 된 것 같다”며 “최근 검찰이 어려운 상황이지만 한마음으로 서로 존중하고 협력해 현재의 난관을 극복하리라 확신한다”고 전했다. 

정권 수사팀 모두 해체
‘피고인’ 검사는 승진

서울고검 검사로 보임된 이준식 부천지청장 역시 사직 의사를 밝혔다. 그도 “어려운 시기에 먼저 떠나게 돼 죄송스럽지만, 우리 조직은 늘 그래왔듯이 어려움을 잘 헤쳐 나갈 것으로 믿는다”며 이프로스에 글을 남겼다. 


양인철 서울북부지검 인권감독관도 명예퇴직원을 냈다. 그는 지난해 서울동부지검 형사1부장으로 재직하며 추 전 장관 아들 군 복무 휴가 특혜 의혹을 맡아 수사했다. 수사 중 서울북부지검 인권감독관으로 전보됐다가 이번 인사에서 대구고검 검사로 가게 됐다. 

이번 인사를 두고 법조계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담당하던 수사팀이 모두 와해되면서 사실상 정권 관련 수사는 동력을 상실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뿐만 아니라 ‘피고인’ 신분의 검사들이 수사 부서에 배치되고 승진까지 하면서 법치가 파괴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규원 검사는 공정거래위원회 파견직을 유지하면서 대전지검 부부장검사로 승진했다. 지난 고위간부급 검찰인사에서 서울고검장으로 영전한 이성윤 고검장 사례가 오버랩된다는 비판이다. 

일각에서는 ‘정권 관련 수사를 하면 좌천되고 친정부 성향은 승진한다’는 문정부 검찰 인사 공식이 이번에도 되풀이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추 전 장관은 취임 직후 ‘검찰 대학살’이라고 회자되는 검찰 인사를 단행했다. 

당시 검찰인사로 이른바 ‘윤석열 라인’이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검사복을 벗었고, 친정부 검사들이 요직을 꿰찼다. 추 전 장관 때부터 시작된 이 같은 인사 기조는 박 장관에 이르러서도 변하지 않은 셈이다. 여기에 김 총장 역시 검찰 인사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제는
공식됐다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한변)은 “상식과 인사 원칙에 현저히 반하는 이번 검찰 인사는 법무부가 불의와 불법의 총본산임을 보여줬다”며 “인사권 행사를 빙자해 검찰 수사를 방해하고 앞장서 법치를 파괴한 박 장관은 그 인사 농단에 의한 엄한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속기사> 월성 원전 관련 인물 기소 
“부당하게 관여했다”

대전지검 형사5부는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의혹 사건과 관련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이들이 2018년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위한 한수원의 경제성 평가에 부당하게 관여했다고 봤다.

그러면서도 백 전 장관이 정 사장의 배임과 업무방해를 교사한 혐의에 대해서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를 열어 기소 여부에 대해 판단받기로 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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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금이 자랑이라고···노소영 카드에 국민들 화났다

비자금이 자랑이라고···노소영 카드에 국민들 화났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전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이 노태우정권의 비자금 논란으로 번졌다. 김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을 조사해 과세해달라’고 강민수 국세청장에게 요구하기도 했다. 수십년간 숨겨온 노씨 일가의 ‘안방 비자금’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다. 노소영 전 나비 관장은 ‘노태우 비자금이 SK그룹을 성장시켰고, 늘어난 자산의 상당 부분을 나눠야 한다’는 취지로 주장해 왔다. 두 사람의 이혼소송 항소심을 맡은 재판부도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가운데 300억원이 SK에 유입된 것으로 인정했다. 문제는 300억원의 출처와 성격이다. 자기 돈도 아니면서··· 노 전 관장 측은 항소심서 아버지인 노 전 대통령의 아내 김옥숙 여사가 1998~1999년 사이 작성한 비자금 메모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해당 메모에는 ‘선경(SK 전신) 300억원’이라는 내용이 적혀 있다. 노 전 관장 측은 최태원 회장의 아버지인 최종현 전 선경 회장에게 비자금 300억원을 주고받은 것이라며, 지난 1991년 선경건설 명의의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에 대한 사진 등도 제출했다. 일각에선 노 전 대통령의 ‘폭력적 불법 비자금’이 노 전 관장에 의해 소환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재계 인사는 “불법 비자금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조차 없이 자랑스럽게 노태우 비자금을 언급하는 노 전 관장은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고 인식되기에 충분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은 퇴임할 때도 ‘재산이 5억’이라며 ‘그 정도면 족하다’고 먼저 얘기했던 사람이다. 실제론 임기 동안 선경에게 불법 비자금을 거둬들이는 이중적인 행태를 보였으니 비판받아야 할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과 ‘SK 2인자’ 손길승 명예회장도 같은 취지로 주장한 바 있다. 먼저 노태우정부 시절 경제수석 등을 지낸 김 전 비대위원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 측에서 퇴임 이후에도 이게 과연 제대로 줄 것이냐 이런 부분에 대한 의문이 있어 이를 확약하는 증표로서 일단 뭘 좀 주라고 해서 어음 자체를 준 것”이라고 부연했다. 실제 어음 발행일은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틀 전인 지난 1992년 12월로 알려졌다. 선경건설이 당시 발행한 50억짜리 약속어음 실물 4장은 1995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자금 수사와 재판에선 드러나지 않았다가 이번 이혼소송 과정서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다. 일각선 “죽은 아버지 부관참시 꼴” 지적 국민들은 “그 아버지에 그 딸” 비웃음도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과 정혁진 변호사도 지난달 9일 방송된 <어벤저스 전략회의>서 김 여사가 보관해 온 선경건설 명의의 약속어음은 노 전 대통령의 노후 자금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항소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후광’이나 ‘비자금’이 SK의 성장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고 판결했다. 노 전 관장 측 역시 같은 맥락의 주장이었다. 재판부는 노 전 관장 측의 기여도가 크다고 보고, 최 회장이 1조3808억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최 회장 측은 항소심 판결에 즉각 반발했고, 최근 상고심 시작에 앞서 500여쪽에 달하는 상고이유서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상고이유서에 따르면 다양한 쟁점 가운데 핵심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및 후광 등은 SK그룹의 성장 과정에 오히려 손해가 됐다는 주장이다. 즉, SK가 국내 재계 2위까지 발돋움할 수 있던 배경에 노 전 관장 측의 큰 도움이 없어 재산분할 금액이 축소돼야 한다는 얘기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자금이 당시 태평양증권(현 SK증권) 인수 등에 쓰였다고 판단했으나, ‘SK 2인자’ 손길승 명예회장은 반박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다 손 명예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심부름을 하던 이원조 경제비서관이 노 전 대통령 퇴임 이후 지낼 거처와 생활비 등을 요구해 생활비 명목으로 매달 전달했다”며 “정권 말이 되니 퇴임 후에도 지속 제공하겠다는 증표를 달라고 요구해 어음으로 준 것”이라고 밝혔다. 노 전 관장 측의 “300억원이 태평양증권 인수 자금 등으로 쓰여 SK 성장에 기여했다”는 주장에 전면 반박한 것이다. 그러면서 재판 과정서 SK 측은 300억원을 노 전 대통령 측으로부터 받은 적이 없고, 퇴임 후 그에 상당하는 돈을 노 전 대통령에게 주기로 약속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 전 관장 측이 제기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은 은닉재산마저 들춰냈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조성했다가 추징된 2628억원과 별도로 부인 김 여사가 관리해 온 드러나지 않은 돈이 있다는 ‘안방 비자금’ 의혹이다. 이혼소송서 제출한 904억원의 내역이 적힌 ‘김옥숙 메모’ 외에 노 전 대통령 일가서 또 다른 자금흐름이 포착된 것이다. 먼저, 노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씨가 원장(이사장)을 맡고 있는 동아시아문화센터에 지난 2016년부터 2021년까지 김 여사 명의로 출연금 147억원이 입금됐다. 김 여사는 지난 2016년과 2017년 각각 현금 10억원, 2018년 예적금 12억원, 2020년 예적금 95억원, 2021년 예적금 20억원을 출연했다. 특히 아들 재헌씨가 원장으로 취임한 지난 2020년 출연금 규모(95억원)가 두드러진다. 재헌씨는 2019년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는 등 부친을 대신해 사죄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병세로 재헌씨가 대외 활동에 나선 시점과 자금 출연 시점이 맞물린다. 동아시아문화센터는 지난 2012년 설립된 한중문화센터서 시작된 재단으로 동아시아국가 상호 간 전략문화 협력과 청년 교류를 주요 사업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실제론 북방정책 평가사업 등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정책 기념사업이 대부분인 사실상의 노씨 일가 재단에 불과하다. 또 다른 ‘안방 비자금’ 포착 김옥숙 여사 ‘돈세탁’ 의혹 법인결산 공시서 지난 2021년 기준 총 사업비용 3억5000만원 중 공익목적 사업비로 분류한 2억6000여만원의 쓰임새도 눈길을 끈다. 이는 노 전 대통령 치적으로 평가받는 한중수교 30주년 기념사업과 정치적 기반이었던 대구지역 학생 장학금 등 ‘노태우 기념’ 용도로 쓰였다. 센터 자산도 대부분 김 여사의 출연금으로 이뤄졌다. 지난 2021년 기준 총 자산가액 153억원 가운데 그의 출연금(147억원)이 96%에 달한다. 재단이 지출하는 연간 사업비용은 김 여사 기부금의 이자 수준인 1~2억원 수준에 불과하다는 결론이다. 지난해 기준 연간 총사업비용은 1억9000만원이고 이 중 공익목적 사업은 5000여만원이다. 2022년도에는 총 2억4700만원 중의 사업수행 비용 중 공익목적은 1억3000만원이다. 사무실 주소는 노 전 대통령이 살았던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건물이다. 이 건물은 노 전 대통령 별세 이후 부인인 김 여사가 상속받았다. 법조계에서는 김 여사가 5차례에 걸쳐 출연한 거액의 자금 출처를 두고 의혹이 나온다. 김 여사가 출처 불문의 거액과 노 전 대통령의 집권 시절 조성한 비자금을 아들이 운영하는 재단에 출연하는 방식으로 ‘돈세탁’을 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김 여사는 280여억원을 미납 중이던 2010년, 모교인 경북여고에 5000만원을 기부해 사회적 지탄을 받은 바 있다. 김 여사가 만약 비자금으로 아들이 운영하는 재단에 기부했다면 정당성과 절차 모두 문제될 여지가 있다. 특히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규칙에 따른 출연자 명세서에 이사장인 노재헌 원장과 기부자인 김 여사의 관계에는 모자지간임에도 ‘해당없음’으로 기재됐다. 뻔뻔히 꺼내다 이는 과세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닌지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 여사가 영부인이던 시절 청와대서 대기업 총수 부인이나 여성 기업인들과 수시로 면담하면서 현금을 받았다는 의혹은 전두환·노태우정부 비자금 수사가 한창이던 1995년에도 제기됐다. 당시 민주당 비자금 진상조사위원장이었던 고 강창성 의원은 국회서 “김옥숙 여사 친·인척이 관리하는 것은 전혀 노출되지 않는데 이 문제까지 이번에 조사돼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노씨 일가는 4600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지난 1997년 4월 대법원서 징역 17년에 추징금 2628억9600만원을 선고받았다. 지난 2013년 이를 완납했으며, 이 과정서 추징금 낼 돈이 없다며 노 전 대통령의 동생인 노재우씨와 아들 재헌씨의 처가인 신동방 측과도 소송전을 벌였다. 법조계 한 인사는 “노 전 대통령 일가가 2013년 추징금을 완납하는 과정서 돈이 없다면서 노 전 대통령의 동생 재우씨와 아들 재헌씨의 장인이었던 신명수 전 신동방그룹 회장과 재산 환수 소송까지 벌였던 것을 되짚어보면 재단 출연금의 출처가 더 석연치 않다”며 “연간 사업비가 2억~3억원 수준인 재단에 100억원이 넘는 돈을 출연한 것 자체가 출처가 불명확한 자금을 편법 증여해 세탁하는 용도로 활용한 게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이 드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김 여사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규칙에 따른 출연자 명세서에 ‘이사장(원장)과의 관계’에 대해 ‘해당없음’이라고 적시한 것을 두고도 과세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한 것이 아닌지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차남 노재헌에 흘러간 수백억원? 정치권 “철저히 조사해 환수해야” 노씨 일가의 은닉재산 논란에 대한 국세청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국회서도 잇따른다. 국세청은 상속세 등을 부과할 수 있는지 등을 두고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진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영환 의원은 지난달 27일 기재위 전체회의서 노 전 대통령의 불법 정치자금에 대해 과세해달라는 내용의 탈세 제보서를 강민수 국세청장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은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과정서 김 여사가 작성한 비자금 메모가 증거로 인용됐다는 점을 토대로 비자금에 대해 과세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김 의원은 “김 여사의 메모에 기록된 904억원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은 노 전 대통령이 오랜 기간 은닉하다가 가족들에게 사전 증여했거나, 사망 후 상속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또 이혼소송서 쟁점이 된 300억원은 그 일부로, 상속세 부과 제척 기간이 남아 있어 과세에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번 기회에 이혼소송서 드러난 300억원뿐 아니라 메모 속 기록된 채권, 금고 등에 숨겨둔 904억원의 은닉재산을 철저히 조사해 반드시 환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조계서의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한 법조계 인사는 “김 여사가 만약 부정 축적한 ‘안방 비자금’을 숨겨왔다가 아들이 운영하는 재단에 출연한 것이라면 과세 여부 문제를 넘어 법적 정당성과 안정성 측면서 모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법조계에선 재판부가 재산분할과 위자료 등을 포함해 ‘1조3803억원과 20억원을 노 전 관장에게 주라’고 판결한 것을 두고 법무법인 평안 이상원 변호사의 역할이 컸다고 봤다. 이 변호사는 노태우정권서 황태자로 불렸고 노태우 대통령 부인인 김 여사의 이종사촌 동생인 박철언 전 장관의 사위다. 히든카드가 국회 이슈로 박 전 장관은 노태우정권 당시 정무 장관, 체육청소년부 장관을 지냈다. 이상원 변호사는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 연루된 이완구 전 국무총리를 변호해 무죄 판결을 받아냈다. 이후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에 연루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사법 행정권 남용 사태로 재판을 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1심 변호인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노 전 관장이 불법 비자금임을 알면서도 당당히 300억 카드를 꺼낼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믿는 구석이 있었다’는 지적이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