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불십년' 지워지는 이성윤 서울고검장 그림자

아직은 살아 있는 순장조 영감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들은 보통 정부의 성향에 따라 부침을 겪는다. 특히 검찰은 문재인정부 들어 크고 작은 일로 굴곡진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는 영전을, 누군가는 좌천을, 인사 시기마다 검사들의 희비가 엇갈렸다. 그때마다 뚜렷한 존재감을 뽐낸 이가 있다. 이성윤 서울고검장이다.

검찰은 문재인정부에서 ‘역대급’ 관심을 받았다. 검찰 인사,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의 대립 등 검찰 관련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나라가 들썩일 정도였다. 역대 정부를 통틀어 검찰이 이 정도로 화두에 오른 적은  없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꽃길에서
가시밭길

이성윤 서울고검장은 그중에서도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경희대 동문인 그는 이번 정부 들어 가장 심한 부침을 겪은 검사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검찰 내 빅4로 불리는 요직 중 세 자리를 거칠 정도로 꽃길을 걷다 검찰총장 후보에서 탈락하면서 내리막을 향했다. 

이 고검장은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1994년 사법연수원 23기로 수료했다. 노무현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수석실 특별감찰반장으로 재직하면서 문 대통령(당시 민정수석비서관)을 보좌했다. 2014년 1월 차장검사로 승진, 광주지검 목포지청장으로 재임하면서 세월호 참사 검경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았다.

박근혜정부 시절 한직으로 밀려났던 이 고검장은 이번 정부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새 정부 출범 직후 대검찰청 형사부장을 맡으며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2018년 6월 전국 검찰청의 특수수사를 지휘하는 대검 반부패부 부장이 된 그는 이어 대검 반부패강력부 부장 자리에 올랐다.


2019년 7월 법무부 검찰국장에 오른 이후 지난해 1월 서울중앙지검장이 되기까지 그의 검사 인생은 문정부 들어 말 그대로 꽃을 피웠다. 검찰 요직 빅4로 불리는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대검 공공형사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서울중앙지검장 중 세 자리를 불과 2~3년 사이에 두루 거쳤다.

이 고검장의 존재감이 본격적으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건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취임한 이후부터다. 추 전 장관은 취임과 동시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당시 검찰총장)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사사건건 부딪쳤다. 두 사람은 지난해 법조계는 물론 사회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던 ‘추·윤 대전’을 벌이기도 했다.

검찰 내 요직 두루 거쳐
검찰총장 목전에서 낙마

추 전 장관과 윤 후보의 갈등에서 이 고검장은 추 전 장관의 ‘칼’ 역할을 맡아 윤 후보와 대립했다. ‘채널A 기자 강요미수 의혹 사건’에서 전문수사자문단 소집을 두고 추 전 장관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면서 윤 후보를 강하게 압박할 때도 수사의 중심에 있던 건 이 고검장의 서울중앙지검이었다.

추·윤 대전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이 고검장은 차기 검찰총장 1순위로 꼽혔다. ‘차기 검찰총장은 이성윤이냐, 아니냐’로 갈린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 하지만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불법 출국금지 수사 무마 의혹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검찰총장 후보 추천위원회 논의 결과 이 고검장은 최종 후보 4인에 포함되지 못했다. 

LH 사태 이후 4·7 재보선에서 여권이 참패를 당한 점, 김 전 차관 사건에서 이 고검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된 점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왔다. 하지만 그 이후 이 고검장은 서울고검장으로 영전했다. 당초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법무연수원장 등 좌천성 승진이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주요 사건의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서울고검장으로 올라선 것. 


피의자 신분으로 재판을 받아야 하는 검사가 오히려 더 높은 자리로 영전하자 야권은 일제히 ‘보은성 인사’라고 비판했다. 법조계에서도 반발이 컸다.

당시 대한변호사협회는 “통상 현직 검사가 형사사건에 연루돼 기소되면 해당 검사를 수사 직무에서 배제해 영향력 행사를 제한하거나 피고인이 된 검사는 스스로 사퇴했고, 고위직 검사의 경우 더욱 그래야 마땅하다는 게 법조, 국민 전반의 정서”라고 지적했다. 

이 고검장은 떠들썩했던 영전 초기와는 달리 조용한 행보를 보이는 듯했다. 하지만 검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과 관련된 사건에 이 고검장의 이름이 꾸준히 오르내리고 있다. ‘어디에도 없는 듯 했지만 어디에나 있는’ 존재감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고검장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과 비교해 크게 드러나진 않지만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추·윤 대전
친정부 성향

최근 서울고검 감찰부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팀의 ‘사모펀드 편향 수사’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감찰은 2019년 조 전 장관 일가 비리 의혹을 조사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이 사모펀트 의혹을 조사하면서 조 전 장관 관련 부분만 수사하고, 사모펀드 배후로 지목된 자동차 부품업체 ‘익성’ 등에 대한 수사는 소홀했다는 진정에서 시작됐다.

서울고검 감찰부는 대검 감찰부로부터 진정을 넘겨받아 조사를 진행했다. 조국 수사팀은 서울고검의 감찰에 대해 “표적 감찰”이라고 반박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 23일 서울고검 감찰부는 ‘혐의 없음’ 처분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자 조국 수사팀은 반대로 당시 ‘이성윤 지휘부’를 조사해야 한다고 반발했다. 

조국 수사팀은 지난 15일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공판 수행과 병행해(익성에 대한) 추가 수사를 진행하기 위해 서울중앙지검 지휘부와 대검, 법무부 등에 수회에 걸쳐 인력 지원 요청 등을 했으나 합리적 설명 없이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수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서울고검 감찰부가 조국 수사팀 감찰에서 아무런 성과도 내지 못했지만 소기의 목표를 달성했다는 시각도 있다. 이번 감찰은 시작부터 조국 수사팀에 대한 ‘흠집내기용’으로 진행된 감찰이었다는 주장이다.

실제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 부장이었던 한동훈 검사장은 “당연한 결론이지만 이미 이 감찰은 불순한 목적을 달성했다”며 “살아 있는 권력 비리를 수사하면 끝까지 스토킹할 거라는 본보기를 보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사팀 감찰
흠집 내기용?

공수처 수사와 관련해서도 이 고검장의 존재감은 두드러진다. 앞서 이 고검장은 공수처 조사 과정에서 김진욱 공수처장의 관용차를 이용해 ‘황제 조사’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황제 조사 논란은 공수처의 정치적 편향성 논란이 제기될 때마다 언급될 만큼 큰 파급력을 보였다. 공수처의 ‘흑역사’인 셈이다. 


공수처는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수사 무마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 고검장의 공소장을 불법으로 유출했다며 당시 수사팀에 대한 강제수사에 들어갔다. 공수처는 수원지검 수사팀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예고한 상태다. 수사팀이 이 고검장의 공소장을 유출한 것이 아닌지 검찰 내부 메신저를 확인한다는 취지다. 

수사팀은 지난 24일 “공소장 유출과 관련해 5월14일 법무부 장관의 지시로 대검찰청에서 진상조사한 결과 수사팀은 무관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으로 알고 있고, 감찰 조사도 받은 적 없다”면서 “공소장은 기소되면 즉시 자동으로 검찰 시스템에 업로드 돼 검찰 구성원 누구나 열람할 수 있었던 것인데 유독 수사팀 검사들만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표적수사”라고 반발했다. 

이 고검장 수사 당시 수원지검 공보관이었던 강수산나 인천지검 부장검사는 이프로스에 “검사는 시장에서 물건 고르듯 마음에 드는 사건을 골라 수사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특정 수사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인사상 불이익뿐 아니라 감찰, 수사로 이어지는 괴롭힘을 당한다면 사명감과 소신을 갖고 일하는 검사들이 얼마나 남아 있을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피의자 신분인데도 깜짝 영전 
재판 전 “정의와 진실” 언급

공수처는 해당 사건과 관련해 수원지검 검사뿐만 아니라 관련자들에 대해 모두 수사 중이라는 입장으로 표적수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 보복 수사가 아니라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여기에 압수수색 예정 내용이 사전에 언론에 공개된 데 대해서도 당혹감을 드러냈다. 

공수처는 이 고검장 기소 당시 수원지검 수사팀에서 빠졌던 검사 2명까지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해 논란이 일었다. 공소장 유출 논란이 벌어진 지난 3월, 파견을 끝내고 원 소속 검찰청으로 복귀한 임세진 부산지검 공판부 부장검사와 김경목 부산지검 검사의 메신저도 대상에 포함시킨 것. 


임 부장검사는 이프로스에 자신과 김경목 검사가 수원지검 수사팀에 속해 있다는 내용의 수사기록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았다면 이는 법원을 기망해 받은 것으로 위법한 압수수색이 명백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압수수색 대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티끌 하나만큼도 잘못한 점이 없다고 생각해 개의치 않았고 압수수색을 해봤자 증거라는 것이 나올 수가 없어 단순 해프닝으로 넘어가려 했다”며 “그런데 앞으로 권력자들이 싫어하는 사건이나 공수처 관계자들에 대한 사건을 수사하는 검사들에 대해 피의사실 공표나 비밀누설이라는 고발장만으로 압수수색이 계속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공수처의 수사 잣대가 다른 피의자들과 비교해 이 고검장에게 관대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윤석열 검찰의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고 있는 손준성 검사(대구고검 인권보호관)는 공수처의 수사 과정에서 인권침해 행위가 있었다며 진정을 제기한 상태다. 

공수처
유독 관대

조국 수사팀에 대한 감찰, 공수처의 공소장 유출 의혹 강제수사 등 주요 사건에 이 고검장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이 고검장은 지난 10월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수사 무마 혐의로 공판에 출석했다. 이날 이 고검장은 “정의와 진실이 온전히 밝혀질 수 있도록 재판에 임하겠다”고 취재진의 질문에 짤막하게 답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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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