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한동훈?' 윤석열 후계자 낙점설 막전막후

칼 쥐어주고 여의도 보낸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차기 대권후보로 낙점했다. 물론 벌써부터 다음 대통령을 점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아직 정식 취임도 전인 대통령을 두고 5년 뒤의 대통령을 예단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그러나 요즘 정계에는 ‘한동훈 대망설’이 계속해서 돌고 있다. 소문의 출처가 어디인지 추적해보니 다름 아닌 윤 당선인 본인의 ‘입’이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관한 언론의 관심이 뜨겁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요즘 주요 화두여서이기도 하고, 그의 거침없는 발언이 화제가 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언론에 자주 등장하자 요즘 정계에선 ‘보수진영의 차기 대권후보로 한 후보자가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나돈다.

칼잡이
아바타

실제로 그간 헌정 역사에서 대통령 당선인이 일찌감치 자신의 후계자를 키우는 일은 종종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한 후보자를 자신의 다음 주자로 키우려는 것일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자마자 재선위원회를 설치해 본인의 재선운동을 지시한 바 있다.

다시 돌아올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을 한 번 더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긴 행보였다. 물론 4년 중임제의 미국 대통령이 그 다음 대선의 승리까지 염두에 두고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당선되자마자 재선을 준비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보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차기 정부를 수립하기도 전에 그 다음 임기를 노리는 행위는 역대 미국 대통령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반면 한국의 대통령들은 이 같은 행보를 종종 보여왔다. 5년 단임제를 택하고 있는 한국의 대통령제에서는 재임이 불가능하지만, 역대 한국의 대통령들은 자신의 ‘후계자’를 낙점하고 키워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나가려 했다.

대통령들은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자신의 후계자에게 많은 힘을 실어주는 형태로 인사를 진행했다. 그중 몇몇 케이스는 실제로 대통령까지 당선되기도 했다.

그 케이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해양수산부 장관에 임명하며 그가 차기 대통령으로 일어설 발판을 만들어줬다.

정치적으로 비주류의 길을 걷고 있던 노 전 대통령에게 주류의 길을 소개해준 것이다. 이후 두 전직 대통령은 ‘전생의 형제’라고 불릴 만큼 사이가 각별해진다. 둘의 인연은 1997년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3당 합당에 거부하며 ‘꼬마 민주당’으로 남은 새정치국민회의에 노 전 대통령이 합류했다.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꼬마 민주당이 민자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에 맞서 싸울 조짐을 보이자 소신을 지키며 제3지대에 있던 노 전 대통령은 민주당에 합류해 김 전 대통령을 도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치인으로 데뷔한 이력 때문에, 그리고 3당 합당을 거부한 이력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DJ계에서도, YS계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항상 노 전 대통령은 항상 민주당의 비주류로 남아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런 그의 손을 붙잡아주며 당을 떠나지 않게끔 배려했다.

장관 후 22대 총선 통해 국회 입성
차기 대권에 도전 시나리오 급부상

이후 민주 진영의 대권후보로 발돋움한 노 전 대통령의 대선 운동에서 김 전 대통령은 큰 힘이 되어줬다. 현직 대통령이 특정 대선후보를 지원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됐기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은 직접적인 도움 대신 ‘보이지 않는 선’에서 노무현 캠프를 최대한 지원했다.

노 전 대통령 또한 대선 운동 기간 ‘국민의 정부’와 차별화할 것을 참모진으로부터 수차례 제안받았지만, 끝까지 김 전 대통령과 ‘선을 긋는’ 발언은 일절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당시 세 아들의 비리가 터지며 입지가 줄어든 김 전 대통령을 차기 대권후보가 끝까지 지켜준 것이다.

이후 대북송금 사태와 노 전 대통령의 ‘차별화 선언’으로 둘의 사이는 잠시 소원해졌으나, 적어도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부터 노 전 대통령의 당선 전까지 둘 사이에 갈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 후에도 대통령들의 ‘후계자 키우기’는 계속됐다. 가장 가까운 예가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지금은 부인 정경심씨가 구속 수감되며 정치인으로서의 커리어가 사실상 끝난 조 전 장관이지만 문 대통령은 당선이 되고 청와대에 입성하자마자 ‘티 나게’ 조 전 장관을 민주당 진영의 다음 대권후보로 키워주려 했다.

둘의 인연은 10년도 더 된 것으로 전해진다. 참여정부의 핵심 참모 역할이 끝난 문 대통령은 경남 양산으로 돌아가 인권 변호사로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때 조 전 장관은 수차례 문 대통령 거처를 찾아가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전해진다.

당시 문 대통령의 소탈하고 깊이 있는 매력에 빠지게 된 조 전 장관은 이후 문 대통령과 정치적 여정을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실질적인 정치적 행보를 보인 것은 2012년 문 대통령이 처음 대선에 출마했을 때다.

조 전 장관은 당시 TV에 출연해 찬조연설을 하고 대규모 선거 유세에서도 지원사격하는 등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신의 정치적인 색깔을 SNS 등에 표출하며 두각을 나타낸 그였지만 교수의 옷을 뒤로한 채 특정 정치인을 돕는 행보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2012년 선거 패배 후 이후 둘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로 당선되며 문 대통령이 다시 대권 가도에 시동을 걸자 조 전 장관은 다시금 발 벗고 그를 도왔다. 정치적인 판단 미스로 여러 차례 위기에 닥친 문 대통령을 그는 끝까지 떠나지 않았으며 때때로 그의 ‘칼잡이’가 돼 정적들을 대신 공격하기도 했다. 

2017년 대연정론 공방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맞서 싸운 것이 가장 유명한 일화다. 안 전 지사가 당시 자유한국당에 제안한 연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조 전 장관은 “대연정이라면 공동정부를 만들어야 하는 한국당과 함께 이뤄야 할 목표가 뭔지 모르겠다”며 “그들은 경제민주화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동의한 적 없다”고 조목조목 따졌다.

가신의 칼춤 
‘재롱 보듯?’

노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안 전 지사와 공개적으로 대립할 수 없었던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도움을 받은 셈이다. 이 같은 인연을 기억하고 있던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조 전 장관을 차기 대권후보로 키웠다.

문재인정부의 초대 민정수석으로 조 전 장관을 발탁하며 문 대통령은 그의 정치 커리어를 청와대에서 시작하게 했다. 이렇게 조 전 장관은 문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소통하며 청와대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둘은 표면상 상하관계였지만 서로에 대한 예의는 잊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방식대로 조 전 장관의 대권 가도에 힘을 실어줬다. 주요 요직에 앉히며 중책을 맡기기도 했고, 중요한 결정사항이 있을 때마다 그와 논의해 함께 국정운영을 풀어나가기도 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조국 차출론’이 불거지자 문 대통령은 “나는 조국 수석에게 정치를 권유하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다”며 “그 여부는 전적으로 본인이 판단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당시 조 전 장관도 “나는 정치적 근육이 없다. 민정수석이 끝나면 바로 학교로 돌아갈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정치를 권유했을 때의 상황과 많이 닮아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정치를 수차례 권유했지만 그때마다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으로 끝내겠다”며 한사코 거부했었다.

그러나 그랬던 그도 결국 대통령이 됐던 것처럼, 그는 조 전 장관을 민정수석으로 끝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검찰개혁을 맡길 법무부 장관으로 그를 전격 발탁한 것이다.

이처럼 대통령과 그 후계자 선정은 대한민국 헌정 역사에서 수차례 반복돼왔다. 그리고 최근에도 이 같은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선거기간 내내 인사에 ‘최소한’으로 개입하고 모든 인사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단언해왔다.

그는 당선 후 나흘 만인 3월13일 기자회견에서 “국민 통합은 실력 있는 사람을 뽑아 국민을 제대로 모시고, 각 지역이 균형 발전할 수 있도록 지역발전의 기회를 공정하게 부여하는 게 우선”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인수위 측 인사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능력’을 최우선으로 둔 인사를 고집했다. 그는 “당선인이 자신과 친분이 얼마나 두터운지, 혹은 대선 승리에 얼마나 일조했는지보다는 자리에서 자신의 능력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는지를 우선 고려사항으로 두고 있다”고 <일요시사>에 전했다.

능력 최우선
끝까지 고집

그런 그가 끝까지 고집했던 인사가 한 후보자다. 인수위 관계자는 윤 당선인이 다른 인사에는 깊숙이 관여하지 않지만, 유독 법무부 장관 자리는 독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했다.

자신이 공개적으로 내세웠던 원칙을 깨면서까지 한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자리를 보장한 것이다. 이 때문에 여의도에서는 ‘윤 당선인이 벌써부터 다음 후계자를 한동훈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다.

둘의 관계는 그동안 있어왔던 대통령-후계자 관계와 흡사하다. 매우 닮은 이력을 지니고 있고, 인연도 오래됐다. 검찰 내에서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를 때도, 정치적인 수세에 몰려 힘든 시절을 겪을 때도 둘은 늘 함께였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선거운동을 한참 진행하던 지난 2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동훈 검사장은 중요한 자리에 갈 것”이라며 “(외압에도 조국에 대한 수사를)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라고 그를 치켜세웠다. 

한 후보자는 2016년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수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을 이끌어내며 스타 검사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는 윤 당선인과 함께 본격적인 상승가도를 달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중간 수사 결과 브리핑을 발표한 것도 그였고, 조국 수사 지휘를 자청한 사람도 그였다. 그러나 조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며 그의 검사생활에 위기가 시작됐다. 한 후보자는 당시 윤 당선인과 함께 여권과 가장 강하게 대립한 인물로 손꼽힌다.

본인의 상사를 수사하며 지도부와 많은 마찰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한 후보자는 정면으로 되받아치며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항했다. 집요한 수사 끝에 그는 결국 조 전 장관을 낙마시켰지만 그 대가를 감내해야 했다.

이후 이뤄진 인사발령에서 부산고등검찰청 차장검사로 좌천성 인사를 당한 것이다. 그후 채널A 이동재 기자와 공모해 취재원을 협박했다는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이 불거지며 불명예스러운 법정 다툼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런 그를 윤 당선인이 챙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신의 뜻에 따르느라 이런저런 곤욕을 치른 사람에게 보은하는 인사는 정치권의 관행이다. 자신의 뒤를 이어줄 것이라 생각하는 인사를 요직에 앉혔던 과거 대통령들처럼, 윤 당선인은 한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 자리에 앉혔다. 

김-노·문-조 계승의 역사 보니…
오래된 인연에 정치적 뜻 맞아야

그러나 일각에서는 ‘왜 검찰 요직이 아니라 법무부 장관이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민주당의 아킬레스건인 대장동, 백현동 문제에 대한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인 탓이다. 대장동과 백현동 수사는 현재 국민의힘의 큰 무기로 작용한다.

해당 사건을 입증해 민주당 측에 타격을 입히면 ‘최순실 국정 농단’ 때만큼의 후폭풍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를 두고 국민의힘 측 관계자는 전혀 다른 시각을 내놨다. 이 관계자는 “한 후보자를 윤 당선인이 장관에 임명한 데에는 대장동 수사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함께 담겨있다”고 말했다.

현재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검수완박’이 최종 진행된다면 검찰이 대장동을 수사할 수단은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의석 수가 민주당보다 60석가량 적은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사용하고 있는 ‘살라미 전술’을 막을 방법이 전무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이 된다면 검수완박과는 관계없이 대장동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법무부 장관이 되면 장관 주재하에 상설특검이 얼마든지 열릴 수 있고, 중대범죄수사처도 장관 산하에 들어오기 때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는 윤 당선인의 공약이 현실화되면 해당 권한과 일을 법무부 장관에게 맡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보통 정부에서는 여러 장관 중 하나의 자리겠지만 윤정부의 법무부 장관 자리는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라는 설명이다.

윤 당선인이 조 전 장관을 수사하며 보수진영의 대권후보가 됐던 것처럼, 만일 한 후보자가 대장동 수사를 무사히 끝낸다면, 일약 보수진영의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정치경험이 전무한 윤 당선인이 대통령까지 갈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은 ‘검사로서의 활약’뿐이었고, 이 역할을 그대로 한 후보자에게 물려주려는 것이다.

호위무사
역할 수행

대통령의 후계자 양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많다.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다음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은 왕국에서나 있었던 일이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주장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제왕적’ 대통령이더라도 자신의 후임 대통령은 정할 수 없다. 현재 문 대통령이 윤 당선인에게 자신의 후임 자리를 내준 것처럼 말이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한동훈 정치적 역량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차기 대통령 설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근거는 그의 정치적 역량이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보다 정치적 언변과 역량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윤 당선인 스스로도 공개적인 석상에서 “정치적 역량은 한 검사가 나보다 뛰어나다”며 인정한 바 있다.

정계에서도 한 후보자의 역량을 높이 평가한다. 특히 그의 간결하고 강한 언변에 높은 점수를 준다.

그는 검수완박을 강행하는 민주당에 “이렇게 명분 없는 야반 도주극까지 벌여야 하나”라며 직격탄을 날렸고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는 “어용 노릇하기 위해서 권력의 청부업자 역할을 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그의 시원한 언변에 지지자들은 열광했으며 한 정치 평론가는 “이 같은 단어 선택은 정치인으로서 매우 좋은 능력”이라고 평가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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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단독] 국방부 검찰단, 내란 고발자 ‘닥치고 기소’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종합특검팀이 종료됐다. 12·3 내란과 관련된 수사는 사실상 마침표를 찍었다. 마무리되지 않은 사건은 경찰 국수본으로 이첩됐다. 검찰 특수본과 특검팀의 수사에 협조한 이들이 없었다면 확인이 어려운 의혹이 산적했다. 이 중에는 정보사 공작 업무와 내란 당일 계엄군의 움직임을 알린 군인들이 있다. 대개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기관 간 판단이 다른 걸 두고 형평성에 어긋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12·3 내란에는 여러 수사기관이 뛰어들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 국방부 내란 특수본, 내란 특별검사팀(특별검사 조은석), 2차 종합특검팀(특별검사 권창영) 등이다. 복수의 군인들은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일부는 혐의가 있었다. 수사기관마다 판단이 달랐다는 게 핵심이다. 국방부 검찰단의 경우가 그렇다. 누군가의 공작이나 의도, 내란 당일 같은 행위를 했음에도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조차 받지 않는 사례가 존재했다. 협조했는데 다른 판단 내란 특검팀과 검찰 특수본에 협조한 데 이어 재판에서 핵심 증언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 중 1명은 김창학 전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장(대령)이다. 김 전 단장은 지난 2월 국방부 검찰단에 의해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두 달 뒤인 4월에는 법령준수의무위반 및 성실의문위반으로 파면됐다. 김 전 단장은 수사기관에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의 지시로 국회로 갔던 계엄군의 움직임에 대해 진술했다. 종합특검팀이 내란의 리허설이라고 판단한 국군방첩사령부 자유의 방패(FS) 훈련과 이 전 사령관의 이례적인 지시가 담긴 녹취를 제출하기도 했다. 여기엔 내란 특검팀에 제출된 적 없는 자료도 포함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관련 녹취에는 방첩사의 전시 합동수사본부 훈련 과정에서 수방사 실무진들이 병력 지원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김 전 단장을 포함한 전·현직 수방사 관계자들은 “‘합수단 수사관들은 경호 대상이 아니다’ ‘합수단 경호는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병력 지원 자체에 난색을 표했다”고 진술했다. 수방사 관계자들은 “전시 상황이라면 검토가 가능하지만 평시에 병력을 지원하려면 수방사 작전계획부터 변경해야 한다. 육군본부 군사경찰실과의 협의가 필요하다”고 이 전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이 전 사령관과 방첩사의 압력에 못 이긴 수방사는 당시 훈련에 군사경찰단 50명과 35특임대대 20~25명 등 70여 명 규모 병력을 지원했다. 이 같은 진술을 확보한 종합특검팀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2024년 3월 전시나 계엄 시 부대별 임무와 병력 운용 등을 규정한 군 내부 계획 문서인 ‘전시 비문’ 개정을 추진하며 기존과 다른 방식의 합수본 운영을 준비한 것으로 의심했다. 이 전 사령관은 이 과정에서 수방사 병력 지원을 추진하며 실무진의 반대에도 병력 파견을 지시한 혐의를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두 사령관을 지난달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모든 특검에 자료 넘겨 김 전 단장을 비롯한 복수의 군 관계자들은 현재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반대로 행위가 비슷했던 조성현 대령(전 수방사 제1경비단장)은 훈장을 받았다. 종합특검팀은 지난달 말 조 대령을 조사한 후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조 대령은 합참 지휘통제2팀장 직을 수행하다 최근 인사 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조 대령이 2024년 12월3일 오후 11시51분 이 전 사령관과 통화하며 “그렇게 지금 임무를 줬고” “충성, 계속 작전하겠습니다”고 라고 언급한 녹취와 다음 날인 12월 4일 오전 1시2분 김 전 단장이 “(이진우) 사령관이 울타리를 넘어서라도 국회에 들어가라고 하는데, 그게 안 되잖아”라고 말하자 조 대령이 “우리는 그렇게 들어왔습니다” “경찰과 협조해 한적한 곳으로 들어갔습니다”라고 답한 내용을 확인한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전달하고 국회 침투를 실행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중간 실행자’ 역할을 했다고 결론 냈다. 김 전 단장이 기소된 점도 기소 근거로 꼽혔다. 이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은 조 대령은 예하 제2특임대대와 제35특임대대에 하달했다. 실제 35특임대대는 계엄 당시 국회 경내에 투입됐다. 종합특검팀의 판단은 내란 특검팀의 수사 결론과 배치된다. 내란 특검팀은 조 대령이 “상부의 위헌·위법적인 지시를 거부했다”며 그를 입건하지 않았다. 종합특검팀은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조 대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의심했다. 일부 군인들 특검에 핵심 진술·자료 제출하고 불기소 군검찰, 내란 중요임무 종사 재판 넘기고 대거 파면 종합특검팀은 조 대령이 같은 해 12월4일 새벽 1시4분 서강대교 북단에 도착한 제2특임대대 2지역대장 윤덕규 소령에게 총 세 가지를 지시했다고 봤다. ▲총기와 탄약을 차량에 두고 진압봉을 챙겨 서강대교를 넘어올 것 ▲진입 방법은 국회에 이미 들어가 있는 부대와 상의할 것 ▲임무는 국회 안에 있는 인원을 끌어내는 것 등이다. 조 대령은 “2지역대장에게 정확하게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는 말을 한 사실이 있나요”라는 종합특검팀의 질문에 “윤덕규에게 2024년 12월4일 1시20분경 다시 북으로 올라가라고 말한 것이고, 넘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고 진술했다. 조성현 대령 측은 문자 그대로 “넘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지시가 회군의 취지였다는 점은 동일하다고 주장한다. 윤 소령은 “조 대령이 ‘너희가 (서강대교를) 넘어왔을 때 시민과 충돌하게 되면 크게 다친다. (서강대교 인근에) 대기하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끝까지 반대 김 전 단장과 동시에 파면된 핵심 증인 중 1명은 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이다. 그는 지난해 6월24일 서울 용산구 중앙지역군사법원에서 열린 여 전 사령관의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전 처장은 검찰 특수본에서 진술했던 것처럼 “여인형 전 사령관이 당시 선관위 전산실을 통제하고 이후 민간 수사기관에 넘기며, 여의치 않으면 서버를 복사하거나 ‘떼어오라’는 3단계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했다. 정 전 처장을 비롯해 방첩사 법무실 간부들은 여 전 사령관의 지시에 대해 기술적·법률적 검토 결과 현실적으로 이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여 전 사령관은 “제 기억으론 정성우 증인한테 서버를 복사해라, 떼오라고 이야기한 기억은 분명히 없다”며 “정성우에게 서버를 떼서 가져오는 방법이 있을까 정도를 문의했다면 모를까, 명시적으로 카피해라, 떼서 가져오라고 했을 것 같지 않다. 카피도 안 되는데 어떻게 떼서 가져오나?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고 반박했다. 정 전 처장은 내란 사태 당일부터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과 총 6차례 통화했다.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50분 정 전 처장은 여 전 사령관으로부터 노 전 사령관의 전화번호를 넘겨받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노 전 사령관은 정 전 처장에게 “(병력이) 출발을 했느냐”라고 물었고 정 전 처장은 “이제 영외 거주자를 소집한 상황”이라고 답했다. 내란 특검팀에 협조했던 정 전 처장은 김 전 단장처럼 내란 중요임무 종사와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내란 특수본은 정 전 처장이 방첩사 인원 115명을 4개 팀으로 긴급 편성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과천·관악 청사, 선관위 수원 연수원, 여론조사 꽃 등 4곳에 출동하게 하는 등 군인들에게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판단했다. 김 전 단장을 비롯해 복수의 군 간부들이 기소되자 내란 특검팀은 국방부 검찰단에 ‘‘사전 협의’가 있었어야 했던 것 아니냐’는 취지로 불만을 전했다고 한다. 군 일각에서는 정 전 처장은 아니더라도 김 전 단장과 소수의 영관급 장교들은 국방부 조사본부 차원에서 무혐의 종결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했다. 내란 특검팀에 몸담았던 한 관계자는 “김창학 대령 외에도 여러 사람이 협조했고 그들 덕분에 수사를 할 수 있었던 게 컸다”며 “군검찰의 기소에 감 놔라 배 놔라 해서는 안 되고 해당 기관의 판단이지만 복수의 군 관계자들을 기소했을 때 ‘왜 저 사람은 기소 안 하느냐’는 등의 뒷말이 상당했다. 특검팀도 관련 내용을 알았기에 문제 제기를 했던 것”이라고 했다. 음모·모해 명확한데 혐의는 내란 중요임무 종사가 아니지만 사실상 노 전 사령관과 여 전 사령관에게 피해를 본 사람도 있다. 박민우 전 정보사 A 여단장(예비역 준장)이다. 그는 2025년 초 국회 청문회에서 ‘노상원 수첩’에 관한 핵심 증언을 했던 인물로 주목받았다. 박 준장의 증언 후 실제 관심이 크지 않았던 노 전 사령관의 수첩의 신빙성과 중요도가 커졌다. 노 전 사령관은 정보사를 내란에 동원하려 사실상 박 준장을 축출했다. 여 전 사령관의 검찰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박 준장의 비위, 비밀은닉, 업체 로비 등 4~5건의 중요한 제보를 받았다. 노 전 사령관이 비위 제보를 하지 않았으면 연락을 하지 않았을 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는 군형법상 군사기밀누설 및 암호 부정사용,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 등 사건에 대해 수사권을 갖는다. 당시 블랙 요원 명단 유출 사건도 방첩사가 초동수사해 사건을 군검찰로 넘겼다. 여 전 사령관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건 박 준장과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간 갈등 전후다. 박 준장이 노 전 사령관의 연락을 받은 시기와도 일치한다. 박 준장은 지난 3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갑자기 전화가 와서 ‘아직도 고집이 세냐’고 하길래 ‘그렇다’고 말한 게 전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날 내란에 동원하려 일종의 간보기 차원으로 질문했던 것 같다. 노상원에 의해 직무에서 배제됐다고 본다. 여단장이 공석이 되자 이 자리 진급을 미끼로 김봉규, 정성욱을 노상원이 조종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상원 수첩 '핵심 증언자' 박민우, 사실상 노·여 모해로 좌천 신원식 “노상원·여인형에 의해 피해 본 것 맞다” 특검에 진술 문 전 사령관은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이 2024년 8월 국회 국방위원회에 출석해 ‘정보사 갈등’ 교통정리를 위한 후속 조치를 약속하고 경질될 예정이었다. 신 전 실장은 박 준장과 문 전 사령관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했지만 문 전 사령관이 거부했다. 문 전 사령관은 유임됐고 노 전 정보사령관과 대통령실 경호처장이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개입하면서 신 전 실장은 회의가 끝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옷을 벗었다.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은 이에 관해 검찰 특수본 조사에서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2024년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진술했다. 박 준장의 주장은 사실에 가까워 보인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신 전 실장은 종합특검팀 조사에서 “박민우 장군은 여인형과 노상원에게 피해를 봤다. 문상호가 유임되지 않았으면 박 장군도 재판에 넘겨지거나 좌천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며 “큰일도 아니었고 그래서 둘에게 법적 문제를 모두 취하하고 정리하라고 얘기를 했던 거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