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한동훈?' 윤석열 후계자 낙점설 막전막후

칼 쥐어주고 여의도 보낸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차기 대권후보로 낙점했다. 물론 벌써부터 다음 대통령을 점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아직 정식 취임도 전인 대통령을 두고 5년 뒤의 대통령을 예단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그러나 요즘 정계에는 ‘한동훈 대망설’이 계속해서 돌고 있다. 소문의 출처가 어디인지 추적해보니 다름 아닌 윤 당선인 본인의 ‘입’이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관한 언론의 관심이 뜨겁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요즘 주요 화두여서이기도 하고, 그의 거침없는 발언이 화제가 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언론에 자주 등장하자 요즘 정계에선 ‘보수진영의 차기 대권후보로 한 후보자가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나돈다.

칼잡이
아바타

실제로 그간 헌정 역사에서 대통령 당선인이 일찌감치 자신의 후계자를 키우는 일은 종종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한 후보자를 자신의 다음 주자로 키우려는 것일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자마자 재선위원회를 설치해 본인의 재선운동을 지시한 바 있다.

다시 돌아올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을 한 번 더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긴 행보였다. 물론 4년 중임제의 미국 대통령이 그 다음 대선의 승리까지 염두에 두고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당선되자마자 재선을 준비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보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차기 정부를 수립하기도 전에 그 다음 임기를 노리는 행위는 역대 미국 대통령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반면 한국의 대통령들은 이 같은 행보를 종종 보여왔다. 5년 단임제를 택하고 있는 한국의 대통령제에서는 재임이 불가능하지만, 역대 한국의 대통령들은 자신의 ‘후계자’를 낙점하고 키워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나가려 했다.

대통령들은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자신의 후계자에게 많은 힘을 실어주는 형태로 인사를 진행했다. 그중 몇몇 케이스는 실제로 대통령까지 당선되기도 했다.

그 케이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해양수산부 장관에 임명하며 그가 차기 대통령으로 일어설 발판을 만들어줬다.

정치적으로 비주류의 길을 걷고 있던 노 전 대통령에게 주류의 길을 소개해준 것이다. 이후 두 전직 대통령은 ‘전생의 형제’라고 불릴 만큼 사이가 각별해진다. 둘의 인연은 1997년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3당 합당에 거부하며 ‘꼬마 민주당’으로 남은 새정치국민회의에 노 전 대통령이 합류했다.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꼬마 민주당이 민자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에 맞서 싸울 조짐을 보이자 소신을 지키며 제3지대에 있던 노 전 대통령은 민주당에 합류해 김 전 대통령을 도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치인으로 데뷔한 이력 때문에, 그리고 3당 합당을 거부한 이력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DJ계에서도, YS계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항상 노 전 대통령은 항상 민주당의 비주류로 남아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런 그의 손을 붙잡아주며 당을 떠나지 않게끔 배려했다.

장관 후 22대 총선 통해 국회 입성
차기 대권에 도전 시나리오 급부상

이후 민주 진영의 대권후보로 발돋움한 노 전 대통령의 대선 운동에서 김 전 대통령은 큰 힘이 되어줬다. 현직 대통령이 특정 대선후보를 지원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됐기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은 직접적인 도움 대신 ‘보이지 않는 선’에서 노무현 캠프를 최대한 지원했다.

노 전 대통령 또한 대선 운동 기간 ‘국민의 정부’와 차별화할 것을 참모진으로부터 수차례 제안받았지만, 끝까지 김 전 대통령과 ‘선을 긋는’ 발언은 일절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당시 세 아들의 비리가 터지며 입지가 줄어든 김 전 대통령을 차기 대권후보가 끝까지 지켜준 것이다.

이후 대북송금 사태와 노 전 대통령의 ‘차별화 선언’으로 둘의 사이는 잠시 소원해졌으나, 적어도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부터 노 전 대통령의 당선 전까지 둘 사이에 갈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 후에도 대통령들의 ‘후계자 키우기’는 계속됐다. 가장 가까운 예가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지금은 부인 정경심씨가 구속 수감되며 정치인으로서의 커리어가 사실상 끝난 조 전 장관이지만 문 대통령은 당선이 되고 청와대에 입성하자마자 ‘티 나게’ 조 전 장관을 민주당 진영의 다음 대권후보로 키워주려 했다.

둘의 인연은 10년도 더 된 것으로 전해진다. 참여정부의 핵심 참모 역할이 끝난 문 대통령은 경남 양산으로 돌아가 인권 변호사로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때 조 전 장관은 수차례 문 대통령 거처를 찾아가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전해진다.

당시 문 대통령의 소탈하고 깊이 있는 매력에 빠지게 된 조 전 장관은 이후 문 대통령과 정치적 여정을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실질적인 정치적 행보를 보인 것은 2012년 문 대통령이 처음 대선에 출마했을 때다.

조 전 장관은 당시 TV에 출연해 찬조연설을 하고 대규모 선거 유세에서도 지원사격하는 등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신의 정치적인 색깔을 SNS 등에 표출하며 두각을 나타낸 그였지만 교수의 옷을 뒤로한 채 특정 정치인을 돕는 행보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2012년 선거 패배 후 이후 둘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로 당선되며 문 대통령이 다시 대권 가도에 시동을 걸자 조 전 장관은 다시금 발 벗고 그를 도왔다. 정치적인 판단 미스로 여러 차례 위기에 닥친 문 대통령을 그는 끝까지 떠나지 않았으며 때때로 그의 ‘칼잡이’가 돼 정적들을 대신 공격하기도 했다. 

2017년 대연정론 공방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맞서 싸운 것이 가장 유명한 일화다. 안 전 지사가 당시 자유한국당에 제안한 연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조 전 장관은 “대연정이라면 공동정부를 만들어야 하는 한국당과 함께 이뤄야 할 목표가 뭔지 모르겠다”며 “그들은 경제민주화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동의한 적 없다”고 조목조목 따졌다.

가신의 칼춤 
‘재롱 보듯?’

노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안 전 지사와 공개적으로 대립할 수 없었던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도움을 받은 셈이다. 이 같은 인연을 기억하고 있던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조 전 장관을 차기 대권후보로 키웠다.

문재인정부의 초대 민정수석으로 조 전 장관을 발탁하며 문 대통령은 그의 정치 커리어를 청와대에서 시작하게 했다. 이렇게 조 전 장관은 문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소통하며 청와대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둘은 표면상 상하관계였지만 서로에 대한 예의는 잊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방식대로 조 전 장관의 대권 가도에 힘을 실어줬다. 주요 요직에 앉히며 중책을 맡기기도 했고, 중요한 결정사항이 있을 때마다 그와 논의해 함께 국정운영을 풀어나가기도 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조국 차출론’이 불거지자 문 대통령은 “나는 조국 수석에게 정치를 권유하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다”며 “그 여부는 전적으로 본인이 판단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당시 조 전 장관도 “나는 정치적 근육이 없다. 민정수석이 끝나면 바로 학교로 돌아갈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정치를 권유했을 때의 상황과 많이 닮아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정치를 수차례 권유했지만 그때마다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으로 끝내겠다”며 한사코 거부했었다.

그러나 그랬던 그도 결국 대통령이 됐던 것처럼, 그는 조 전 장관을 민정수석으로 끝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검찰개혁을 맡길 법무부 장관으로 그를 전격 발탁한 것이다.

이처럼 대통령과 그 후계자 선정은 대한민국 헌정 역사에서 수차례 반복돼왔다. 그리고 최근에도 이 같은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선거기간 내내 인사에 ‘최소한’으로 개입하고 모든 인사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단언해왔다.

그는 당선 후 나흘 만인 3월13일 기자회견에서 “국민 통합은 실력 있는 사람을 뽑아 국민을 제대로 모시고, 각 지역이 균형 발전할 수 있도록 지역발전의 기회를 공정하게 부여하는 게 우선”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인수위 측 인사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능력’을 최우선으로 둔 인사를 고집했다. 그는 “당선인이 자신과 친분이 얼마나 두터운지, 혹은 대선 승리에 얼마나 일조했는지보다는 자리에서 자신의 능력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는지를 우선 고려사항으로 두고 있다”고 <일요시사>에 전했다.

능력 최우선
끝까지 고집

그런 그가 끝까지 고집했던 인사가 한 후보자다. 인수위 관계자는 윤 당선인이 다른 인사에는 깊숙이 관여하지 않지만, 유독 법무부 장관 자리는 독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했다.

자신이 공개적으로 내세웠던 원칙을 깨면서까지 한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자리를 보장한 것이다. 이 때문에 여의도에서는 ‘윤 당선인이 벌써부터 다음 후계자를 한동훈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다.

둘의 관계는 그동안 있어왔던 대통령-후계자 관계와 흡사하다. 매우 닮은 이력을 지니고 있고, 인연도 오래됐다. 검찰 내에서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를 때도, 정치적인 수세에 몰려 힘든 시절을 겪을 때도 둘은 늘 함께였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선거운동을 한참 진행하던 지난 2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동훈 검사장은 중요한 자리에 갈 것”이라며 “(외압에도 조국에 대한 수사를)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라고 그를 치켜세웠다. 

한 후보자는 2016년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수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을 이끌어내며 스타 검사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는 윤 당선인과 함께 본격적인 상승가도를 달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중간 수사 결과 브리핑을 발표한 것도 그였고, 조국 수사 지휘를 자청한 사람도 그였다. 그러나 조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며 그의 검사생활에 위기가 시작됐다. 한 후보자는 당시 윤 당선인과 함께 여권과 가장 강하게 대립한 인물로 손꼽힌다.

본인의 상사를 수사하며 지도부와 많은 마찰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한 후보자는 정면으로 되받아치며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항했다. 집요한 수사 끝에 그는 결국 조 전 장관을 낙마시켰지만 그 대가를 감내해야 했다.

이후 이뤄진 인사발령에서 부산고등검찰청 차장검사로 좌천성 인사를 당한 것이다. 그후 채널A 이동재 기자와 공모해 취재원을 협박했다는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이 불거지며 불명예스러운 법정 다툼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런 그를 윤 당선인이 챙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신의 뜻에 따르느라 이런저런 곤욕을 치른 사람에게 보은하는 인사는 정치권의 관행이다. 자신의 뒤를 이어줄 것이라 생각하는 인사를 요직에 앉혔던 과거 대통령들처럼, 윤 당선인은 한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 자리에 앉혔다. 

김-노·문-조 계승의 역사 보니…
오래된 인연에 정치적 뜻 맞아야

그러나 일각에서는 ‘왜 검찰 요직이 아니라 법무부 장관이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민주당의 아킬레스건인 대장동, 백현동 문제에 대한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인 탓이다. 대장동과 백현동 수사는 현재 국민의힘의 큰 무기로 작용한다.

해당 사건을 입증해 민주당 측에 타격을 입히면 ‘최순실 국정 농단’ 때만큼의 후폭풍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를 두고 국민의힘 측 관계자는 전혀 다른 시각을 내놨다. 이 관계자는 “한 후보자를 윤 당선인이 장관에 임명한 데에는 대장동 수사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함께 담겨있다”고 말했다.

현재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검수완박’이 최종 진행된다면 검찰이 대장동을 수사할 수단은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의석 수가 민주당보다 60석가량 적은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사용하고 있는 ‘살라미 전술’을 막을 방법이 전무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이 된다면 검수완박과는 관계없이 대장동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법무부 장관이 되면 장관 주재하에 상설특검이 얼마든지 열릴 수 있고, 중대범죄수사처도 장관 산하에 들어오기 때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는 윤 당선인의 공약이 현실화되면 해당 권한과 일을 법무부 장관에게 맡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보통 정부에서는 여러 장관 중 하나의 자리겠지만 윤정부의 법무부 장관 자리는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라는 설명이다.

윤 당선인이 조 전 장관을 수사하며 보수진영의 대권후보가 됐던 것처럼, 만일 한 후보자가 대장동 수사를 무사히 끝낸다면, 일약 보수진영의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정치경험이 전무한 윤 당선인이 대통령까지 갈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은 ‘검사로서의 활약’뿐이었고, 이 역할을 그대로 한 후보자에게 물려주려는 것이다.

호위무사
역할 수행

대통령의 후계자 양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많다.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다음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은 왕국에서나 있었던 일이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주장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제왕적’ 대통령이더라도 자신의 후임 대통령은 정할 수 없다. 현재 문 대통령이 윤 당선인에게 자신의 후임 자리를 내준 것처럼 말이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한동훈 정치적 역량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차기 대통령 설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근거는 그의 정치적 역량이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보다 정치적 언변과 역량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윤 당선인 스스로도 공개적인 석상에서 “정치적 역량은 한 검사가 나보다 뛰어나다”며 인정한 바 있다.

정계에서도 한 후보자의 역량을 높이 평가한다. 특히 그의 간결하고 강한 언변에 높은 점수를 준다.

그는 검수완박을 강행하는 민주당에 “이렇게 명분 없는 야반 도주극까지 벌여야 하나”라며 직격탄을 날렸고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는 “어용 노릇하기 위해서 권력의 청부업자 역할을 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그의 시원한 언변에 지지자들은 열광했으며 한 정치 평론가는 “이 같은 단어 선택은 정치인으로서 매우 좋은 능력”이라고 평가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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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