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 낙인’ 지우는 가해자들 논란

빨간줄 생활기록부 세탁한다고?

[일요시사 취재 1팀] 차철우 기자 = 최근 연예 소속사에선 소속 연예인들에게 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를 요구한다. 자체적으로 연예인들의 학교폭력 사실 여부를 ‘셀프 검증’하겠다는 것. 하지만 사실 여부를 입증하는 게 쉽지 않다. 학교폭력으로 조치사항을 받은 생기부 기록은 이미 지워졌기 때문이다. 
 

▲ ⓒpixabay

학교폭력 피해 학생은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몸과 마음에 입은 상처를 치료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생활기록 작성 및 관리지침>에 따르면 퇴학을 제외한 학교폭력 가해 조치사항은 졸업 직후 또는 졸업한 지 2년이 지나면 삭제가 가능하다.

깨끗하게∼

지난 2월2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학교폭력 가해학생의 생기부 이력 삭제 권한을 피해자에게 주세요’라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반성의 정도에 따라 졸업 시 삭제할 수 있는 것은 피해 학생과 가해학생의 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동”이라며 “피해 학생은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학교폭력에 대한 이력은 피해 학생과 부모가 동의했을 경우에 수정, 삭제가 가능하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가해학생 중심으로 이뤄진 조치사항 삭제 권한을 비판했다.

실제 학교폭력 가해학생은 자신의 잘못으로 생긴 조치사항을 지울 수 있는 권한이 있다.

<2021학년도 학교생활기록부 기재요령>에 따르면 가해학생의 낙인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행동상의 긍정적 변화가 있을 경우, 폭력 사건에 대한 조치사항을 스스로 삭제 가능하다. 

조치사항 ▲1호(서면 사과) ▲2호(피해 학생 접촉, 협박 및 보복행위 금지) ▲3호(교내봉사) ▲7호(반 교체) 등은 생기부 영역 중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에 기록하고, 해당 조치사항들은 졸업과 동시(졸업 이후 2월 말 사이 졸업생 학적 반영 이전)에 즉시 삭제된다.

▲4호(사회봉사) ▲5호(전문가에 의한 특별 교육 이수 또는 심리치료) 조치사항은 출결 상황, 특기사항에 기록하며 ▲8호(전학)는 인적·학적사항, 특기사항에 기록한다. 해당 조치사항 역시 졸업일로부터 2년 후 자동 삭제되거나 졸업 직전 학교폭력 전담기구의 심의를 거쳐 졸업과 동시에 삭제할 수 있다. 

유예, 면제, 자퇴, 휴학 등으로 학적이 정지된 경우도 학적 유지를 가정해 졸업생과 동일한 절차에 따라 삭제 가능하다. 가장 높은 수위의 조치사항인 ▲9호(퇴학)를 제외한 모든 항목을 생기부에서 지울 수 있다.

과거에 학교폭력 조치사항은 생기부에 5년간 기록했지만, 2013년 교육청이 ‘낙인의 우려가 있다’며 졸업하고 2년 뒤 삭제가 가능하도록 했다. 2019년부터는 경미한 폭력으로 받은 조치사항(1호·4호·5호)은 기록하지 않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퇴학 제외 학교폭력 가해 조치사항
졸업 직후 또는 2년 지나면 삭제 가능

학교는 폭력 사건으로 가해학생이 조치를 받으면 졸업할 때 삭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린다. 가해학생이 졸업 후 직접 학교에 전화해 생기부에 기록된 조치사항의 삭제를 요청하면 삭제해준다. 자신이 받은 조치사항과 관련해 전화하지 않더라도 조치사항은 시간이 지나면 자동 삭제된다. 

학교폭력 가해학생 조치사항 관리대장은 보존기간인 2년이 지나면 폐기한다. 폐기되는 순간 가해학생이 폭력과 관련해 받은 조치사항은 더 이상 기록에 없다. 또 현재 규정집 내 조치사항 삭제에 관해 피해 학생이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교육부 관계자는 “변경된 규정에 대해 인권위원회의 권고사항이 있어 생기부 삭제가 가능하도록 결정된 것이며 학교 의견을 충분히 고려한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실제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매우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건의 당사자는 가해학생과 피해 학생인데, 어른들끼리 이를 해결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다.
 

가해학생의 낙인을 우려해 조치사항 삭제를 논하려면 가장 먼저 학생의 눈높이에서 조치사항을 다시 신설해야 하고, 잘못에 대해 제대로 된 처벌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많다. 가해학생의 진심 어린 반성,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모습과 피해 학생과의 합의가 있어야 조치사항의 삭제를 논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가해학생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어려서부터 죄인으로 낙인이 찍히면 사회에 진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반응이다. 가해학생이 개선 의지를 보이면 새로운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9년 학교폭력 사건 처리 절차 및 과정 실태조사 관련 설문에서 생기부서의 학생의 선도 조치사항 삭제 관련 문항에 전체 학생 중 73.8%가 삭제에 반대한다는 응답을 보였다.

이상한 규정

학교폭력에 대한 조치는 지금도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조항, 규정의 신설 및 위원회 구성은 사건이 터진 뒤에야 논의된다.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는 말만 반복하는 현실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피해 학생은 학교폭력으로 인한 피해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감내하고 있다. 가해학생의 앞날만 우려하고 상처 입은 피해 학생을 위한 장치와 제도를 제대로 마련하지 않으면 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는 우려 섞인 시선이 많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학폭 해결되지 않는 이유

그동안 학교는 자체 심의위원회를 통해 사건 처리를 했지만, 교사의 과한 업무 부담으로 자체적 해결이 어렵다는 비판이 많았다.

결국 지난 2020년 3월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을 위해 교육지원청마다 ‘학교폭력대책심의 위원회(이하 학폭위)’가 결성됐다.

교사, 학부모, 전문가 등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학교폭력을 근절하자는 목적을 가지고 교육청으로 상향 이관됐지만, 여기에도 여전히 비판적 시각이 다수다. 

조치사항은 여전히 삭제 가능하고 기구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많다. 학교폭력 문제를 해결할 외부 전문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강득구 의원실이 조사한 2020년 시도별 학폭위 위원 구성 현황'에 따르면 전국 177개 교육지원청의 학폭위 위원으로 위촉된 5232명 중 부모가 2079명으로 전체 위원 비율 중 37.6%를 차지했고, 교원 19%, 경찰 12.6%다. 

의사, 교수, 연구원, 활동가 등 전문가 집단 비율은 10%보다 적다. 그중 학교폭력 전문의 교수와 연구원은 1.2%, 의사는 0.7%, 청소년 보호활동 전문가 비율은 6.3%에 그쳤다.

이런 현실에 강 의원은 “청소년 전문가가 부족하기 때문에 학교폭력이 해결되지 않는다”며 “외부 전문가 참여를 더욱 확대해 학교폭력을 근절해야 한다”고 전문가 참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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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청구서 받은 한국 제3의 선택

동맹 청구서 받은 한국 제3의 선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구했다. 결국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원유 수입의 61%는 호르무즈와 연결돼있다. 하지만 미국의 대이란 전쟁에 사실상 편입되면 헌법·여론·대이란 관계까지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2020년 청해부대 독자 파병 모델이 다시 주목받는 가운데, 과연 한국은 한미동맹의 ‘청구서’와 국익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각)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에게 한미 연합 군사 훈련 규모의 대폭 축소를 지시했다. 그 근거는 “나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었다. 해협은 열고 전쟁 선 긋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이같이 주장하면서 “오래전부터 미국이 한국과의 연합 군사 훈련에 참여하기로 동의해 온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한미 연합 훈련은 비용이 많이 들고,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북한을 일컬어 “내가 취임한 이래로 미국에 위협적이지 않고, 미국을 존중해 온 국가”라고 하며 “전적으로 부적절하고 적대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칭한 한미 연합 훈련은 지난달 17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 한미 연합 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폭 축소’를 지시한 이유는 “취소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훈련 대폭 축소의 근거로 자신과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들었지만, 국내에서는 다른 신호로 받아들였다. 국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호르무즈 파병을 위한 압박” 신호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14일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중국·프랑스·일본·한국·영국 등 5개국을 지명하면서 “미국이 홀로 해상을 보호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5개국에 “즉각 군함을 파견해서 호르무즈 해협 통행로 확보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요구의 명분은 “이란이 해협을 봉쇄하면 이들 국가의 원유 공급에도 영향이 간다”는 것이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Hopefully’라는 표현을 활용했다. 명령보다는 조금 약한 표현이었지만, 전 세계는 ‘명령 아닌 명령’ 혹은 ‘요구 아닌 요구’로 해석했다. 5개국이 거론된 기준은 경제적 이익이었다. 이 때문에 동맹국이 아닌 중국도 파병 요구 대상으로 거론된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석유의 90%를 호르무즈 해협에서 조달하고 있다”는 명분을 제시했다. 물론 실제로는 경유분 40% 미만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오가고 있었다. 프랑스·영국은 미국과 나토 동맹을 맺고 있다. 한국·일본은 각각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미국의 전략적 경쟁국이다. 중국에 대한 파병 요구가 없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에 끊임없이 반복해 온 전형적인 부담 분담이 될 뻔했다. 중국이 파병 요구 대상에 포함된 순간 우리에 대한 파병 요구도 더욱 진지해진 것이다. 지난해 기준 우리 원유 수입의 약 61%와 나프타 수입의 약 54%가 호르무즈 해협과 연결돼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인 것이다. 중국도 참전? 트럼프식 부담 분담 새 기준 헌법 제5조 앞 고민 “무엇을 할 것인가?” 하지만 호르무즈 항행 보호와 미국의 대이란 전쟁 상황은 현실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는 군함 파견을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초의 압박을 가했던 지난 3월 독일·스페인·이탈리아는 “즉각적인 함정 파견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독일과 협의하지 않았고, 독일군 파견에 필요한 유엔·유럽연합·나토 차원의 근거도 없다”고 반발했다. 프랑스도 미국의 대이란 작전과 거리를 두면서 미국 주도가 아닌 별도의 호르무즈 통행 확보 구상을 추진했다. 전투 상황이 안정된 후 이란과의 긴장 완화까지 병행하면서 유조선을 호송한다는 취지의 구상이었다. 영국·프랑스는 “방어적이고 독립적인 다국적 임무”라는 명분으로 다국적 방어 임무에 한정해 작전에 참여했다. 영국은 지난 5월 ▲자율 기뢰 탐색 장비 ▲타이푼 전투기 ▲구축함 HMS 드래곤 ▲대드론 장비 등을 보냈다. 하지만 “미국과 함께 이란과 싸운다”는 인상을 지우는 방식의 파병이었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이 원했던 것은 미국 중심의 연합군이었다. 한국·일본·독일·호주 등은 영국·프랑스의 다국적 임무 공동성명을 지지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에도 한미 연합 훈련 대폭 축소라는 현실적인 체감이 닥쳐왔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해상 초계기·군수 지원함·기뢰 제거 전력 등 구체적인 군사 옵션을 공개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이 한국 안보를 위해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데, 한국은 미국이 필요로 할 때 왜 중동에서 역할을 하지 않느냐”는 트럼프식 계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응수였다. 한국의 호르무즈 파병에는 여러 쟁점이 있다. 그런데 그중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헌법적 쟁점이다. 우리 헌법 제5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란 전쟁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이미 미국·이란 전쟁을 침략 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범여권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이기헌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파병 요구는 동맹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요구”라며 “국회는 국익과 헌법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무리한 파병 요청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엔 독자 지금은 실전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도 “호르무즈에 단 한 척의 군함도 보내서는 안 된다”며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도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어떠한 국제적 분쟁이나 국제적 평화와 안전과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해 해결한다”는 취지로 규정된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1조였다. 이 의원은 지난 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다시 파병 반대 주장을 펼쳤다. 그는 “국제 평화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 전쟁을 부인한다는 헌법적 가치가 중요한 판단 근거였다”며 “전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이후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에도,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유엔 헌장 제2조 제4항은 유엔 회원국 간 영토 보전·정치적 독립에 대한 무력 위협·무력 행사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한 예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받은 공격과 무력 공격에 대응하는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이다. 따라서 파병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위헌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결국 파병을 결정하더라도 파병 동의안의 문구와 파병 시 수행할 작전의 내용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파병 이전에 파병의 성격부터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특히 미국은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시작했다. 선전포고는 법적 판단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적·역사적 문제 제기는 충분히 가능하다. 정식 전쟁 선언과 명확한 전쟁 목표 없이 군사행동부터 선행됐다는 불안정성을 충분히 환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 전쟁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헌법적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아울러 우리 군의 임무가 무엇으로 규정되느냐에 따라 헌법적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가령 한국군이 ▲상선 호위 ▲기뢰 제거 ▲수색 구조 ▲해상 초계 ▲군수 지원 등에 한정된 임무만 수행한다면 이는 국제 항행 보호 및 자국민·자국 선박 보호 목적의 방어적 해외 파병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란 함정 선제 타격 ▲이란 본토 공격 지원 ▲미군의 공격 작전에 정보·표적·화력 측면에서 직접 결합 ▲미국의 작전지휘체계에 편입 등의 상황이 파병의 성격으로 확정된다면 이는 전쟁의 일부로 평가될 수도 있다. 이미 이란은 지난 7일(현지시각) 에스마일 바가이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X에 한국어 성명을 발표했다. 이란은 이 성명을 통해 “현재 이란 국민은 미국의 침략적 행위에 맞서 자위하고 있으며, 여성·어린이를 상대로 한 미국의 전쟁범죄에 단호히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다른 국가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으로 주둔하거나 작전에 참여하는 것은 침략 행위의 당사자를 직접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에 대해서는 “이란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64년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양국 관계는 줄곧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 이란은 대한민국과의 우호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경고했다. 청해부대 딜레마 여론 문제도 간단하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지난 3월 <에너지경제신문>의 의뢰로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상대로 무선(100%) RDD 자동응답조사(ARS) 방식으로 진행한 미국의 해군 파병 요청 관련 긴급 현안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60.9%는 파병에 반대했고, 37.2%는 “매우 반대”였다. 찬성 의견은 34.4%였고 “매우 찬성”을 선택한 사람의 비율은 17.9%였다. 당시에는 파병 반대 목소리가 더 컸다는 간접 근거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압박을 가한 현시점에서는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개혁신당 개혁연구원이 지난 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17명을 대상으로 무선 RDD 방식의 ARS 자동응답 방식을 적용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론은 첨예하게 엇갈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34.9%는 군 병력 파병을 지지했지만, “방어용 무기만 지원하자”는 의견도 31.8%였다. “군사 지원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도 27.6%였다. 이렇듯 여론도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위헌·여론 비판을 피할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개혁연구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3월 미국의 요청 이후 현재까지 호르무즈 해협 파병 여부를 최종 결정하지 않았다. 이 같은 정부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전체 응답자 중 50.9%는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을 선택했다. “잘하고 있다”는 응답을 선택한 비율은 42.2%였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을 선택한 비율은 6.9%였다. 지난 3월부터 파병 결정 시 실제 파병할 수 있는 유력한 부대로는 청해부대가 거론된 바 있다. 정부는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당시인 2020년 국회 동의 없이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확대해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한 적이 있다. 미국과 이란은 당시에도 충돌했다. 당시 정부는 ‘국군부대의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 파견 연장 동의안’의 단서 조항을 근거로 국회의 별도 동의를 받지 않았다. 동의안에는 “유사시 우리 국민 보호 활동 시에는 지시되는 해역을 포함한다”는 문구가 포함돼있었다. 이를 토대로 문재인정부는 청해부대의 활동 영역을 한시적으로 확대했다. 병력? 무기? 불참? 세 갈래 갈린 민심 다만 당시 청해부대 파병은 미국의 연합군 참여 요청과 무관하게 독자 파병 형식을 취했다. 이 옵션이 다시 부활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상황은 2020년과 다르다. 미국이 다시 ‘미국이 요청한 다국적 호르무즈 군사작전 참여’를 요구하며 강하게 압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그해 5월에 이르기까지 청해부대가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에 투입된 적이 없었다. 아울러 당시와 달리 현재 임무·지휘 체계·교전규칙이 질적으로 달라진다면 기존 파병 동의안을 확대 해석해 처리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국회 동의를 받는 게 헌법 제60조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나폴레옹 놀이’를 시도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는 1806년 베를린 칙령을 통해 영국을 대상으로 한 대륙봉쇄령을 발동했다. 이는 유럽 전체와 영국 간 무역·교류를 모두 차단해 영국 경제를 질식시키려는 전략이었다. 그러던 중 러시아가 경제적 피해 때문에 대륙봉쇄령에서 이탈했고, 나폴레옹은 1812년 러시아 원정을 시도했다가 실패해 몰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도 나폴레옹 1세의 대륙봉쇄령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은 물론 전략적 적대국인 중국에까지 해협 확보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상황이다.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와 강한 경제 압박도 병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적국의 경제적 생명선 조이기 전략 ▲봉쇄의 성공이 제3국의 협조에 달려 있다는 점 ▲패권국의 강력한 협조 요구 ▲경제·안보 조치가 동맹국 통제 문제로 확대된다는 점 등의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 이란은 미국의 봉쇄 조치 이후 원유 수출이 크게 감소해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적 부담 분산과 이란 고립이라는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한다. 대륙봉쇄령은 비현실성에서 비롯된 유럽 각국의 비협조·밀무역을 시작으로 러시아의 이탈을 거쳐 러시아 원정의 대실패로 연결됐고, 결국 나폴레옹 1세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 균열과 국내 이익의 경계선을 교묘하게 오가면서 21세기판 대륙봉쇄령을 시도하려고 한다. 이란의 경고 우리의 응수 패권국이 자신의 전략적 목적을 위해 참여국이 감수할 수 있는 국익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강제로 만든 연합은 내부로부터 붕괴되기 시작한다. 이 같은 흐름이 보이는 현 상황에서 지지율 하락세에 시달리고 있는 이재명정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23년 전 이라크 파병 문제에 시달리다가 지지율 하락과 진보 진영의 비토에 직면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뇌가 이 대통령의 눈가에 아른거리고 있진 않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