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주머니 속에' 유서 품고 다닌 순천 중학생 이야기

친구들이 때리고 어른들이 짓밟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열세 살 아이는 유서를 품고 다녔다. 엄마는 열다섯 살 아이의 빈 의자를 보며 마음을 쓸어내린다. 가정이 붕괴되는 데 걸린 시간은 1년 남짓. 단란하고 화목했던 모습은 이제 과거가 됐다. 학교폭력이 한 가족의 삶을 할퀴어 버렸다.  

전남 순천의 ○○중학교 3학년인 민준이(가명)는 요즘 학교에 가지 않는다. 휴대폰만 보면서 밥도 먹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있다. 일 나간 엄마, 아빠에게 하루에도 20~30통씩 전화를 건다. 휴대폰이 없을 땐 끊임없이 먹거나 물건을 사달라고 조른다. 중학교에 들어간 지 1년6개월 만에 민준이는 180도 달라졌다. 

달라진 아이
악몽의 시간

경찰을 꿈꿨던 민준이는 이제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엄마는 민준이가 평범하게만 자랐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모든 일은 지난해 7월 민준이의 중학교 2학년 담임선생님이 보낸 한 통의 문자에서 시작됐다. 1년6개월 동안 유서를 쓰고 버리기를 반복했던 민준이의 지난날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새 친구를 사귄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던 민준이의 중학교 생활은 2019년 입학 초부터 망가지기 시작했다. 또래에 비해 키가 작은 편인 민준이는 이유도 모른 채 괴롭힘의 대상이 됐다. 미술실, 화장실, 학교 뒤편 등에서 폭행이 이뤄졌다.

처음에는 친밀감의 표시로 생각했던 행위는 시간이 갈수록 더해지기만 했다. 


폭행은 집단으로 이뤄졌다. 민준이는 가해자들에게 붙잡힌 채 머리·배·명치 등을 얻어맞았다. 명치를 맞으면 죽을 듯이 아프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술래잡기라며 도망치게 한 후 붙잡아 두들겨 패는 일도 자주 일어났다. 가해자들은 8초를 셌다. 민준이는 사냥 당하는 초식동물 마냥 숨을 곳을 찾아 헤맸다.

딱 한 번 도서관에 숨은 날에만 무사할 수 있었다. 

가해자들은 민준이의 성기를 만졌다. 옷을 입은 채 민준이의 엉덩이에 자신의 성기를 비비기도 했다. 화장실은 악몽의 장소였다. 민준이가 일을 보고 있으면 화장실 문을 벌컥 열었다. 발을 걸어 넘어뜨린 후 화장실 바닥에 얼굴을 처박기도 했다.

화장실 바닥을 핥게 한 적도 있었다. 이후로 민준이는 학교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했다.

민준이 엄마에 대한 입에 담지 못할 말이 오갔다. 외투나 필기구를 던진 후 주워오게 하는 건 일상이었다. 미술실에서 가장 구석진 자리는 민준이의 지정석이 됐다. 가해자들은 민준이를 그 자리로 몰아넣고 린치를 가했다. 미술실의 출입문은 하나 뿐. 그 자리로 몰리면 민준이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었다. 

폭행의 흔적이 몸을 뒤덮었다. 주먹으로 때리거나 꼬집는 등 다양한 방식의 폭행은 민준이의 몸에 멍과 상처를 남겼다. 폭행은 매일 같이 이어졌다. 어쩌다 하루 맞지 않을 때는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저항도 하고 도망쳐도 봤지만 시간이 가면서 점점 체념했다.

술래잡기를 해도 처음과 달리 그냥 잡히는 쪽을 택했다.


부모님이 걱정하고 속상할까 집에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 목욕을 하던 중 온몸에 남은 멍을 보고 묻는 아빠에게 철봉을 하다 다쳤다고 둘러댔다. 힘든 일이 없느냐는 삼촌의 물음에도 괜찮다는 말만 반복했다. 대신 민준이가 매달린 건 1학년 담임선생님이었다.

민준이는 가해자들의 폭행이 도를 지나친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수차례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애들이 때리고 놀린다고 담임선생님에게 몇 번이나 말했어요. 그럴 때마다 담임선생님은 서로 ‘미안해’ 말하게 하고 끝냈어요. 맞은 건 난데 서로 사과하게 하고, 나도 똑같이 잘못했다고 말해서 속상했어요. 학폭위(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열어 달라는 말도 했지만 담임선생님은 들어주지 않았어요.”

“도와주세요”
교사도 외면

민준이는 자살을 생각했다. 혼자 방안에 앉아 유서를 썼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고맙습니다.’ ‘○○○, ○○○, ○○○, ○○○’(가해자들의 이름), ‘아이들의 괴롭힘이 힘들어서 죽습니다.’ 주머니에 유서를 넣고 다니다가 버리고, 다시 유서를 쓰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민준이는 그렇게 1년6개월을 철저한 고립 상태로 보냈다. 

가족들은 민준이의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학원에서 집중하지 못하고,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민준이의 집중력이 부족한 탓으로 생각했다. 배가 아프다며 2~3일에 한 번씩 조퇴하는 민준이를 보고 ‘왜 그렇게 배가 자주 아프냐’고 타박하기도 했다.

가족 모두를 불러놓고 ‘책상 밑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고 했던 민준이의 말을 흘려들었다. 

엄마는 민준이를 굳게 믿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말해줄 것이라고, 심지어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쳤어도 엄마한테는 숨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평소 순하고 다정했던 아들이 조금씩 폭력적으로 변해가고 짜증이 늘었지만 그마저도 중학교에 적응하는 과정이라고 여겼다.

달라진 환경에 어리광을 피우는 것이라고.

모든 사실이 드러났을 때 가족들이 죄책감에 몸부림친 건 이 때문이었다. 말로 표현만 하지 않았을 뿐 끊임없이 구조 신호를 보내던 민준이의 행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가족들을 덮쳤다. 특히 엄마는 민준이의 담임선생님과 자주 연락을 주고받던 터라 충격이 더욱 컸다. 

“민준이가 다른 애들이 놀린다고 몇 번 지나가듯 말하긴 했어요. 학교만 가려하면 머리가 아프다, 배가 아프다 말해서 이상하게 여기기도 했고요. 그때마다 담임선생님한테 문자를 보냈는데 학교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말만 돌아왔어요. 다른 애들의 놀림에 대해서도 담임선생님은 ‘민준이가 좀 예민한 거 같다’고 해서 오히려 아들을 탓했죠.” 


엄마는 담임선생님의 말을 믿고 민준이에게 조금만 더 참아보자고 다독였다. 민준이와 이야기한 날에는 둘이 부둥켜안고 울기도 했다. 민준이가 학교폭력 피해자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했다.

1학년 때 얼굴과 어깨 등에 나타났던 틱장애도 2학년 때는 사라졌다. 코로나19로 학교에 가는 날이 줄어 그랬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알아챘다.

부모님의 믿음은 지난해 7월 폭행을 당한 민준이를 걱정하는 2학년 담임선생님의 문자로 산산조각 났다. 문자를 발견한 가족들은 민준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제야 민준이는 떠듬떠듬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사실을 털어놨다.

아들이 학대에 가까운 괴롭힘을 1년 넘게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부모님은 ‘멘붕’ 상태에 빠져들었다. 

처음에는 민준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그 당시 민준이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아들을 위로했어야 했는데 너무 큰 충격에 당일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자책했다. 아빠는 민준이 몸에 생긴 멍, 떨어지던 성적의 이유를 그제야 알아챘다.

가족들은 참담한 기분에 그날 밤 잠들지 못했다.


그날부터 민준이의 전쟁은 가족들의 전쟁이 됐다. 민준이의 진술과 학생부 사진을 대조해 찾아낸 가해자들은 12명에 달했다. 가해자들과 그 부모뿐만 아니라 학교, 교육청, 경찰서 등 가족들이 대응해야 할 대상은 너무나 많았다.

가족들 사이에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고 다툼이 잦아졌다. 

가족들 멘붕
참담한 심정

지난해 8월13일 순천교육청에서 열린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이하 학폭위)는 가해자 12명이 2019년과 지난해 민준이를 상대로 교내외에서 신체폭력과 언어폭력 등을 가한 행위를 학교폭력으로 인정했다. 가해자들 가운데 2명은 전학 조치됐고, 나머지는 ▲학급 교체 ▲특별교육 이수 ▲사회봉사 ▲학교에서 봉사 등의 처분을 받았다. 

또 순천경찰서를 통해 고소한 건에 대해 2명은 검찰 송치, 나머지 10명은 14세 미만 촉법소년이라 광주 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됐다. 민준이와 가족들이 가해자 12명 가운데 9명을 추가 고소한 건은 경찰에서 전원 불송치 처분했다.

하지만 검찰이 재수사 지휘를 내리면서 순천경찰서는 현재 이들에 대해 다시 수사 중이다.

학폭위 결과와 고소 결과가 나올 때까지 민준이와 가족들이 받은 상처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가해자들과 그 부모들의 진정한 사과, 치료비 용도의 합의금 등을 요구했던 가족들은 학교, 교육청, 경찰의 대응 과정에서 2차 가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민준이의 분노도 때린 가해자들보다 후속 대응을 하는 어른들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민준이랑 같이 교장선생님을 찾아갔는데, 언론에는 알리지 말아 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교육청에서 나오는 지원금이 다 끊긴다면서. 그 자리에서는 제대로 대꾸도 못했어요. 민준이가 ‘나 학교폭력 피해자 맞아? 왜 교장선생님은 지금 지원금 얘기를 해?’ 라고 말해 정말 미안해서 혼났어요.”

가해자들을 고소하는 과정에서도 경찰과 끊임없이 부딪쳤다. 민준이의 엉덩이에 성기를 비빈 가해자들을 성추행으로 고소하려는 것에 대해, 순천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관계자는 ‘성추행은 (행위)하는 사람이 희열을 느껴야 하는데 (가해자들은)그런 게 없지 않냐’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처음 경찰에 갔을 때부터 이 건은 안 된다, 저 건도 안 된다 하셔서 가자마자 제가 울었어요. 민준이도 조사받는 내내 울었고요. 가해자들에 대한 조사도 한참 뒤에야 진행하시더라고요. 그것도 저희가 한 차례 항의를 하고 난 뒤였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면 한 가해자 아버지가 순천경찰서에서 근무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가해자들 가운데 1명은 민준이를 폭행 혐의로 고소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바뀌어 버린 것. 해당 가해자의 부모는 민준이가 자신의 아들에게 ▲돌을 던지고 ▲어깨로 부딪쳤다며 두 차례에 걸쳐 고소했다.

여러 차례 민준이의 집까지 찾아와 사과 의사를 밝혔던 부모였다. 

민준이를 가해자로 지목해 열린 첫 번째 학폭위에서 위원들은 ‘유보’ 조치를 내렸다.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보겠다는 입장이었다. 경찰은 당시 14세 미만 촉법소년이었던 민준이를 광주 가정법원 소년부로 송치했지만, 법원은 심리불개시 결정을 내렸다.

사건의 심리를 개시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할 때 내리는 결정이다.

두 번째 학폭위는 피해자와 가해자(민준이) 사이의 입장이 완전히 상반되고 객관적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조치 없음’ 결정이 내려졌다. 아빠는 학폭위 개최에 크게 분노했다. 학폭위 위원들이 민준이가 피해자인 사건에 대한 고려 없이 기계적으로 위원회를 열었다는 주장이다. 

“제가 순천교육청에 찾아가서 빌었습니다. 아들이 커터칼로 자해를 하기 시작한 시점이었어요. 학폭위에 (가해자로) 참석하면 정말 확 그어버릴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제발 아들의 피해 사실을 고려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학폭위는 열렸고, 그날 위원장님이 ‘이전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딱 자르시더라고요.”

학폭위에 참석한 민준이는 그 이후 수차례 자해했다. 아빠는 위원들의 질문에 엉엉 울면서 답변하는 민준이의 모습이 학대받은 고양이 같았다고 표현했다. 실제 만나본 민준이는 상처로 너덜너덜한 모습이었다. 취재진의 질문에 고개를 푹 수그린 채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면서도 민준이는 현재 가장 미운 사람을 묻는 질문에는 단호하게 말했다. 

“1학년 때 선생님이 가장 미워요. 그때 잘 해결됐으면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을 텐데. 지금은 성적이 완전 파탄 나서 꼴등 수준이에요. 그때 잘만 해결했으면 지금 그냥 행복하게 살고 있었을 텐데. 선생님이 가장 밉습니다.”  

민준이와 가족들은 1학년 담임선생님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소했다. 경찰은 담임선생님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혐의 없음’을 처분했다. 교장선생님에 따르면 해당 선생님은 ‘학교장 주의’ 징계를 받았으며, 6개월 휴직 후 인사 전보됐다. 

민준이의 상담을 맡았던 전남동부범죄피해자지원센터 상담위원은 “학교폭력 해결 과정에 있어서 학교에서 보여주는 모습이나 가해자들이 보상을 하고 사과하는 회복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지 빠져나가려 하는 모습, 오히려 민준이를 가해자로 만드는 모습 등이 모두 2차 가해죠. 여기서 오는 좌절감이 민준이와 가족을 망가뜨렸다고 볼 수 있죠.”

학교폭력 피해자의 방어막이 돼야 할 교육기관과 수사기관의 ‘방관자’적 대처는 피해자의 인생을 더욱 나락으로 끌어 내렸다. 민준이는 심리 상담 초기 환청이 들리고 환시가 보이는 조현증 증세가 나타나기도 했다. 현재는 사회공포증, 대인기피증, 후유장해 등을 앓고 있다.

끊임없이 뭔가를 사야 하는 충동도 여전하다. 

엄마의 상태도 좋지 않다. 민준이보다도 자살 위험 수치가 더욱 높았다. 상담위원에 따르면 엄마가 민준이에게 쏟아 붓던 애정이 좌절감으로 변했다. 민준이에게 나타난 정신병적 증세가 영원히 지속될까 두려움이 가득했다.

아들의 변화를 눈치 채지 못한 죄책감도 엄마를 옥죄고 있다. 10㎏ 넘게 살이 빠졌고 12가지가 넘는 정신과 약을 먹는 중이다. 

상담위원은 “그래도 일이 일어나기 전 가족 간의 유대가 상당했기 때문에 당시에 ‘저금’해둔 애정으로 지금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애정은 언제 바닥날지 모른다. 부부 사이에 이혼에 대한 언급이 여러 차례 나왔고, 한 살 터울의 민준이 누나는 학교와 독서실을 오가며 집에 있지 않으려 한다. 집안 곳곳에 걸려 있는 가족사진이 무색하게 민준이네 집 분위기는 한없이 무거웠다. 

이혼·불화
파탄난 가정

민준이도 가족들도 가해자들로부터 진정한 사과를 받고 싶다는 말을 연이어 했다. 일부 가해자들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민준이와 가족들에게 그 어떤 사과의 말도 없었다고 한다. 학교나 경찰, 담임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만 매일 민준이에게 사과할 뿐이었다. “엄마가 먼저 알아주지 못해 미안해.”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학교·경찰·담임 입장은?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학교 교장선생님 = 학교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는 다 취했다.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합의금 액수 차이가 커서 합의가 잘 안된 걸로 알고 있다. 민준이 측에서 주장하는 언론에 대한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학교를 굉장히 열심히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잘못 알려지면 학교가 힘들어질 수 있다고 말한 것뿐이다.

“할 수 있는 건 다했다”

▲순천경찰서 = 1차 고소 건에 대해 가해자들의 비행사실을 인정해서 넘겼고, 2차 고소 건은 재수사 중이다. 피해자 측에서 주장하는 수사관의 부적절한 발언은 당사자 확인 결과 없었다고 한다. 또 가해자 가운데 1명의 아버지가 순천경찰서에서 근무한다는 내용은 담당자들은 전혀 모르고 있을뿐더러 확인도 안 된다.

▲1학년 담임선생님 = 민준이가 학교폭력 사실을 (나에게) 호소했고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주장은 잘못됐다. 그 잘못된 주장으로 학교와 교육청에서 조사를 받아야 했고, 경찰조사까지 받았다. 경찰에서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더 할 말은 없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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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