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데이트폭력 사건 심층취재>⑤ 국회도 외면했다

사각지대에 놓인 생존자들

[일요시사 취재2팀] 설상미 기자 =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지는 데이트폭력. ‘데이트’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악랄하고 잔혹하다. 국회에서는 데이트폭력과 관련된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으나, 모두 ‘임기 만료 폐기’됐다. 숨죽인 생존자들이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다.
 

▲ 인터뷰 갖고 있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 ⓒ고성준 기자

여론의 환기는 생존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했다. 2017년 여자친구를 구타한 뒤 트럭으로 돌진했던 ‘신당동 데이트폭력 사건’이 그랬고, 지난달 휴대폰으로 여자친구의 머리를 찍어 내렸던 ‘부산 덕천 지하상가 데이트폭력 사건’이 그랬다. 파장은 일파만파였다. 하지만 잠시 뿐이었다. 생존자들을 위한 법은 여전히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문턱

국회가 아예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20대 국회까지 발의된 데이트폭력 법안은 총 6건. 데이트폭력 생존자들에 대한 보호·지원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국회가 막을 내리면서 법안은 모두 ‘임기 만료 폐기’된 상태다.

데이트폭력 법안이 처음 등장한 때는 19대 국회 임기 말인 2016년 2월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남춘 전 의원이 ‘데이트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대표발의했다. 이후 20대 국회에서는 표창원·함진규·신보라 전 의원이 데이트폭력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법안은 본회의에도 상정되지 못했다.

국회의 유일한 성과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서 데이트폭력을 여성폭력의 하나로 명시한 점이다. 해당 법안에서는 데이트폭력을 당한 이들에 대한 보호·지원을 국가의 책임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명시적 조항에 불과해, 데이트폭력 생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우선 데이트폭력에 대한 법적 정의부터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가족의 형태가 아닌 연인 사이에서 상대방에게 행한 폭력행위를 말한다.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연인의 여러 형태가 존재하는 만큼 구체적인 범주를 정해야 한다. 예컨대 연인이 아닌 친밀한 관계에서 데이트를 했을 경우, 교제가 끝난 경우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사랑을 기반으로 한 관계에 공권력이 개입되는 것을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1998년 가정폭력 특별법이 제정됐을 때도 그랬다. 가정폭력을 형법이 아닌 별도법으로 처리하는 것에 논란이 일었다. 당시에도 국회, 정부, 학계의 치열한 토론을 거쳤다.

가정폭력과 데이트폭력은 매우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두 폭력 모두 친밀하고 특별한 관계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생존자들에게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 사적인 공간에서 폭력이 벌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따라서 범죄가 쉽게 은폐될 수 있고, 폭력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데이트폭력 생존자들은 가해자의 보복을 가장 두려워한다. 용기를 내어 수사기관을 찾아가도 결국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망설이게 된다. 그 사이 희생된 생존자도 있다.

2018년 서울 관악구에서 폭행으로 9차례나 형사 입건된 가해자는 생존자를 다시 찾아가 살해했다. 당시 생존자는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고, 수사기관은 가해자를 풀어줬다.

이는 연인 관계의 폭행 범죄가 ‘반의사불벌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데이트폭력 생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을 경우 수사기관의 수사나 처벌이 어렵다. 데이트폭력 범죄에는 기존 형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발의 6건…통과는 ‘0건’
류호정 의원 입법 예고

데이트폭력 생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해자로부터의 철저한 격리다. 가해자들은 생존자들의 신상 정보와 행동 반경을 꿰뚫고 있다. 살인 및 성폭력과 같은 보복범죄가 쉽게 자행될 수 있는 이유다.

가정폭력 생존자의 경우 사법경찰관리가 ‘접근금지 명령’과 같은 긴급 임시조치를 내릴 수 있다. 위반 시 유치장 송치도 가능하다. 물론 데이트폭력 생존자도 가해자에 대해 접근금지 가처분신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절차가 필요한 만큼 최소 2개월 이상의 물리적인 시간이 소요된다. 법원은 가해자가 접근금지 결정을 위반할 때마다 생존자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도록 하지만, 이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또 경찰에서 데이트폭력 생존자들에게 지급하는 스마트워치(신변보호용 위치 추적장치)마저 부족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수사기관에 의한 2차 피해 우려가 있다. 수사기관에서 합의를 종용하거나 생존자에게 탓을 돌리는 경우도 다수다. 지난 7월 부산에서 데이트폭력을 당한 생존자가 검찰 수사관으로부터 합의를 종용받는 등 2차 피해를 겪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생존자는 형사조정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가해자와 조정실에서 단둘이 대면해야 했다.
 

▲ 류호정 정의당 의원 ⓒ고성준 기자

전문가들은 데이트폭력이 갖는 특수성 때문에 데이트폭력 방지 법안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더불어 국회의 ‘책임론’도 함께 일고 있다. 21대 총선 당시 여야 모두 젠더 폭력 방지법 마련을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만이 유일하게 데이트폭력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일요시사>는 부천데이트폭력 사건을 보도하기로 결정한 뒤,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과 해당 사건에 대한 논의를 거쳤다. 의원실은 데이트폭력과 관련된 법안을 내년 1월에 발의하기로 결정했다.

류 의원은 수사 기관이 데이트폭력 범죄를 인지하면 수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가스라이팅(정서적 학대)’을 당한 생존자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수사기관은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데이트폭력 개념을 알리는 등 사전 예방 교육제도를 도입할 것을 예고했다. 이는 부천데이트폭력 생존자가 여러 차례 강조한 내용이다. 생존자는 데이트 폭력과 관련된 공익광고를 본 뒤, 본인이 전형적인 데이트폭력 생존자임을 인지했다. 데이트폭력 가해자들의 전조증상을 알았더라면 생존자가 그 지독한 굴레에서 좀 더 일찍 벗어났을 수도 있다.

류 의원은 지난 1일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데이트폭력 피해에 대해 “법과 제도의 허점 때문에 생기는 시민들의 고통”이라며 “지금까지 관련 법안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국회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법적 조치 중 하나가 가해자로부터의 분리 및 치료라고 생각한다”며 임시조치 규정의 필요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류 의원은 “다양한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생존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21대 국회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책임론


지난달 26일에는 류 의원과 부천데이트폭력 생존자와의 만남이 이뤄졌다. 생존자와의 미팅은 2시간가량 이어졌다. 2년이 지났지만, 생존자는 여러 차례 눈물을 보였다. 국회를 나설 때쯤 생존자는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됐다”고 고마워했다. 류 의원은 “당신은 틀리지 않았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생존자의 책임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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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