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데이트폭력 사건 심층취재>⑤ 국회도 외면했다

사각지대에 놓인 생존자들

[일요시사 취재2팀] 설상미 기자 =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지는 데이트폭력. ‘데이트’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악랄하고 잔혹하다. 국회에서는 데이트폭력과 관련된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으나, 모두 ‘임기 만료 폐기’됐다. 숨죽인 생존자들이 기댈 곳은 어디에도 없다.
 

▲ 인터뷰 갖고 있는 류호정 정의당 의원 ⓒ고성준 기자

여론의 환기는 생존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했다. 2017년 여자친구를 구타한 뒤 트럭으로 돌진했던 ‘신당동 데이트폭력 사건’이 그랬고, 지난달 휴대폰으로 여자친구의 머리를 찍어 내렸던 ‘부산 덕천 지하상가 데이트폭력 사건’이 그랬다. 파장은 일파만파였다. 하지만 잠시 뿐이었다. 생존자들을 위한 법은 여전히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문턱

국회가 아예 손을 놓고 있었던 건 아니다. 20대 국회까지 발의된 데이트폭력 법안은 총 6건. 데이트폭력 생존자들에 대한 보호·지원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국회가 막을 내리면서 법안은 모두 ‘임기 만료 폐기’된 상태다.

데이트폭력 법안이 처음 등장한 때는 19대 국회 임기 말인 2016년 2월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남춘 전 의원이 ‘데이트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대표발의했다. 이후 20대 국회에서는 표창원·함진규·신보라 전 의원이 데이트폭력 법안을 발의했다. 하지만 법안은 본회의에도 상정되지 못했다.

국회의 유일한 성과는 ‘여성폭력방지기본법’에서 데이트폭력을 여성폭력의 하나로 명시한 점이다. 해당 법안에서는 데이트폭력을 당한 이들에 대한 보호·지원을 국가의 책임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명시적 조항에 불과해, 데이트폭력 생존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우선 데이트폭력에 대한 법적 정의부터 정립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는 가족의 형태가 아닌 연인 사이에서 상대방에게 행한 폭력행위를 말한다.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이 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연인의 여러 형태가 존재하는 만큼 구체적인 범주를 정해야 한다. 예컨대 연인이 아닌 친밀한 관계에서 데이트를 했을 경우, 교제가 끝난 경우 등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일각에서는 사랑을 기반으로 한 관계에 공권력이 개입되는 것을 회의적으로 바라본다. 1998년 가정폭력 특별법이 제정됐을 때도 그랬다. 가정폭력을 형법이 아닌 별도법으로 처리하는 것에 논란이 일었다. 당시에도 국회, 정부, 학계의 치열한 토론을 거쳤다.

가정폭력과 데이트폭력은 매우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두 폭력 모두 친밀하고 특별한 관계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생존자들에게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 사적인 공간에서 폭력이 벌어지는 경우가 대다수다. 따라서 범죄가 쉽게 은폐될 수 있고, 폭력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데이트폭력 생존자들은 가해자의 보복을 가장 두려워한다. 용기를 내어 수사기관을 찾아가도 결국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망설이게 된다. 그 사이 희생된 생존자도 있다.

2018년 서울 관악구에서 폭행으로 9차례나 형사 입건된 가해자는 생존자를 다시 찾아가 살해했다. 당시 생존자는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했고, 수사기관은 가해자를 풀어줬다.

이는 연인 관계의 폭행 범죄가 ‘반의사불벌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데이트폭력 생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을 경우 수사기관의 수사나 처벌이 어렵다. 데이트폭력 범죄에는 기존 형법이 적용되기 때문이다.


발의 6건…통과는 ‘0건’
류호정 의원 입법 예고

데이트폭력 생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가해자로부터의 철저한 격리다. 가해자들은 생존자들의 신상 정보와 행동 반경을 꿰뚫고 있다. 살인 및 성폭력과 같은 보복범죄가 쉽게 자행될 수 있는 이유다.

가정폭력 생존자의 경우 사법경찰관리가 ‘접근금지 명령’과 같은 긴급 임시조치를 내릴 수 있다. 위반 시 유치장 송치도 가능하다. 물론 데이트폭력 생존자도 가해자에 대해 접근금지 가처분신청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절차가 필요한 만큼 최소 2개월 이상의 물리적인 시간이 소요된다. 법원은 가해자가 접근금지 결정을 위반할 때마다 생존자에게 일정 금액을 지급하도록 하지만, 이는 사후약방문에 불과하다.

또 경찰에서 데이트폭력 생존자들에게 지급하는 스마트워치(신변보호용 위치 추적장치)마저 부족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수사기관에 의한 2차 피해 우려가 있다. 수사기관에서 합의를 종용하거나 생존자에게 탓을 돌리는 경우도 다수다. 지난 7월 부산에서 데이트폭력을 당한 생존자가 검찰 수사관으로부터 합의를 종용받는 등 2차 피해를 겪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생존자는 형사조정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했음에도, 가해자와 조정실에서 단둘이 대면해야 했다.
 

▲ 류호정 정의당 의원 ⓒ고성준 기자

전문가들은 데이트폭력이 갖는 특수성 때문에 데이트폭력 방지 법안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더불어 국회의 ‘책임론’도 함께 일고 있다. 21대 총선 당시 여야 모두 젠더 폭력 방지법 마련을 약속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만이 유일하게 데이트폭력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일요시사>는 부천데이트폭력 사건을 보도하기로 결정한 뒤, 정의당 류호정 의원실과 해당 사건에 대한 논의를 거쳤다. 의원실은 데이트폭력과 관련된 법안을 내년 1월에 발의하기로 결정했다.

류 의원은 수사 기관이 데이트폭력 범죄를 인지하면 수사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가스라이팅(정서적 학대)’을 당한 생존자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원하지 않더라도 수사기관은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데이트폭력 개념을 알리는 등 사전 예방 교육제도를 도입할 것을 예고했다. 이는 부천데이트폭력 생존자가 여러 차례 강조한 내용이다. 생존자는 데이트 폭력과 관련된 공익광고를 본 뒤, 본인이 전형적인 데이트폭력 생존자임을 인지했다. 데이트폭력 가해자들의 전조증상을 알았더라면 생존자가 그 지독한 굴레에서 좀 더 일찍 벗어났을 수도 있다.

류 의원은 지난 1일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데이트폭력 피해에 대해 “법과 제도의 허점 때문에 생기는 시민들의 고통”이라며 “지금까지 관련 법안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국회가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생존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법적 조치 중 하나가 가해자로부터의 분리 및 치료라고 생각한다”며 임시조치 규정의 필요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류 의원은 “다양한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고 생존자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21대 국회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책임론


지난달 26일에는 류 의원과 부천데이트폭력 생존자와의 만남이 이뤄졌다. 생존자와의 미팅은 2시간가량 이어졌다. 2년이 지났지만, 생존자는 여러 차례 눈물을 보였다. 국회를 나설 때쯤 생존자는 “누군가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됐다”고 고마워했다. 류 의원은 “당신은 틀리지 않았고,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생존자의 책임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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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단독] ‘생기업 잡은’ 신정훈 의원실 수상한 보도자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업체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에 직격탄을 맞았다. 해당 업체는 보도자료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보도자료를 쓴 의원실 보좌관은 “잘못된 부분이 없다”고 반박했다.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일요시사>가 사건의 전말을 파헤쳐 봤다. 국회의원은 최고 헌법기관인 국회의 구성원인 동시에 개개인이 헌법기관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 법률을 만들고 개정하는 입법 기능 외에도 인사청문회, 국정감사 등을 통해 행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투표로 선출된 ‘국민의 종’으로서 국회의원은 기자회견, 보도자료 등을 통해 국민에게 활동 상황을 보고한다. 국회의원 민원 창구? 국회의원 이름으로 하루에도 수건씩 보도자료가 쏟아진다. 법안을 발의하거나 지역구 예산을 수주했다는 내용, 자료와 데이터를 바탕으로 정부 기관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 등이다. 언론은 국회의원실발 보도자료를 받아 기사로 작성한다. 언론 보도는 사정기관의 감사나 수사 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최근 한 국회의원실에서 나온 보도자료가 논란이 되고 있다. 보도자료에 언급된 정부 기관, 그 기관과 일하는 업체 등이 후폭풍에 휘말렸다. 보도자료를 받아 쓴 일부 매체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됐다. 언론사 기자들의 이메일로 배포된 보도자료는 국회의원실 보좌관이 직접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5월14일 더불어민주당 신정훈 의원실 오모 보좌관은 ‘경찰청, 순찰차 납품 지연 및 특정 업체 유착 의혹에도 자료 제출 거부!’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작성해 언론사 기자들에게 보냈다. 신정훈 의원은 전남 나주·화순을 지역구로 하는 3선 의원으로, 현재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경찰청은 행정안전위원회의 피감기관이다. 순찰차는 일반 차량에 특장 작업을 거쳐 경찰청에 납품된다. 멀리서도 순찰차임을 확인할 수 있는 리프트 경광등을 달고 겉면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데칼’ 작업을 거쳐 수배·체납·도난 차량을 확인할 수 있는 멀티캠을 내부에 다는 등의 작업을 거친다. 순찰차 한 대를 특장하는 데 약 1700만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1000여대의 노후 순찰차가 교체된다. 신정훈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노후 순찰차 959대를 교체하기 위해 총 491억원의 예산이 집행됐다. 하지만 이 중 약 225억원 상당인 343대가 납기를 맞추지 못했고 완성 검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또 납품업체의 문제로 순찰차 납품이 늦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발주 기관인 경찰청은 지체상금 부과, 계약 해지 등의 조치를 하지 않는 등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정훈 의원실의 자료 요구에 경찰청이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신정훈 의원실은 ‘공공계약에 정통한 한 법조계 관계자’의 “경찰청이 계약성 권리조차 행사하지 않고 이를 묵인한 데다 국회의 자료 제출 요구도 거부한 것은 행정 편의주의를 넘어 법적 의무의 명백한 방기”라며 “이 정도 사안이면 감사원 감사는 물론 직권남용과 배임 혐의까지 적용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라는 코멘트를 인용했다. 순찰차 납품 과정 지적 해당업체 “사실과 달라” 납품업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신정훈 의원실은 “동일한 지배 구조를 가진 Y사(보도자료에는 A사)와 N사(B사)가 10여년간 경찰청의 대형 계약을 반복적으로 수주해 왔다”며 “수의계약이나 경쟁입찰의 형식을 빌린 사실상의 내정 또는 담합 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 공정거래법상 ‘부당 공동행위’ 및 ‘입찰 방해’에 해당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N사는 Y사의 임직원이 만든 회사로 두 업체는 모회사-자회사 관계다. 신 의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집행되는 치안 장비 도입 사업이 법적 절차와 원칙을 무시한 채 일부 업체에 특혜로 왜곡되고 있다”며 “기존 계약분에 대한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규 발주가 진행돼서는 안 된다.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대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도자료를 바탕으로 몇몇 언론이 기사를 냈다. 보도 이후 납품업체인 Y사가 보도자료 내용에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 법무부 등에 차량을 개조해 납품하는 특장업체다. Y사 관계자는 “보도자료가 배포되기 전, 기사가 나가기 전에 신정훈 의원실이나 언론으로부터 단 한 차례의 연락도 받지 못했다. 보도가 나간 이후 오 보좌관을 만나 사실과 다른 부분을 상세히 설명했지만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달에 관련 보도가 한 차례 더 나갔다”고 주장했다. Y사는 경찰청과 직접 계약을 맺거나 현대자동차로부터 하도급을 받는 형태로 이번 납품에 참여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청은 현대자동차로부터 616대(소나타), Y사로부터 73대(스타리아 37대, 넥쏘 36대), N사로부터 270대(아이오닉 181대, 그랜저 89대) 등 총 959대를 납품받았다. Y사 관계자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지적한 납품 지연과 검사 불합격에 대해 “제작은 이미 완료됐고 출고를 기다리던 중에 검사 하나가 마무리되면 또 다른 검사를 요청하는 식으로 5개월 동안 시간을 끌었다”며 “2015년부터 경찰청에 순찰차를 납품해 왔지만 이번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납기에 늦은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N사의 계약 차량은 납품까지 5개월 넘게 걸렸고 H사의 계약 차량은 검사 하루 만에 출고 처리됐다”며 “그동안 경찰청 검사가 미진했다고 주장하려면 우리든 H사든 같은 잣대로 진행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사실 확인 안 했다? H사는 순찰차에 설치하는 리프트 경광등을 제작하는 업체로 현대자동차와 하도급 계약을 맺고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Y사와 N사가 담합해 경찰청 계약을 10년 동안 수주해 왔다는 내용에 대해서는 “경찰청은 조달사업법에 따른 나라장터 종합쇼핑몰 우선 구매 제도를 통해 (업체들과) 계약했다. 나라장터에 물건을 올리면 경찰청에서 선택하는 방식”이라면서 “우리와 N사는 같은 차종으로 경쟁한 적이 단 한 차례도 없다”고 반박했다. 반면 오 보좌관은 순찰차 사업과 관련해 드러난 문제를 고치라고 여러 차례 얘기했는데 시정되지 않자 보도자료를 통해 지적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비서실에서 <일요시사>와 만나 “공무원이 어떤 업무를 하다가 다소간 실수가 발생할 수 있고 관행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걸 인정하고 시정하면 끝까지는 안 간다”고 말했다. 이어 “순찰차 관련 문제를 (경찰청에) 수도 없이 얘기했는데 고쳐지지 않았다. 1차 차량 검사에서 불합격이 나왔는데 2차 검사를 할 때 보니 1차에서 나온 문제가 하나도 시정되지 않았다. 3차 검사는 나도 모르게 진행됐다. 시험성적서를 달라는 말에도 개인 정보를 이유로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번에 납품한 순찰차에 설치된 경광등이 사양서에 맞지 않는다고도 지적했다. 오 보좌관은 “리프트 경광등의 핵심 기능은 주야간 150m 구간에서 잘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납품된 것은 그게 안 된다. 30m만 떨어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순찰차에 치명적인 장애”라고 비판했다. Y사 관계자는 “사양서가 존재하는데 30m 밖에서 안 보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경찰청에서 3회가량 시연회를 진행했고 현장에서도 더 밝다는 의견이 있었다. 경광등이 사양서와 일부 맞지 않는 건 애초에 사양서 자체가 H사의 제품에 맞춰진 것이기 때문”이라면서 “오히려 H사의 경광등이 경찰청 순찰차 사양서에 적용돼 2015년부터 2024년, 우리와 문제가 생기기 전까지 10여년간 독점적으로 사용됐다”고 반박했다. “현장 직원들 사이에서 고장이 잦아 수리 비용이 많이 나온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는 이 관계자는 “이번 일이 일어난 것도 H사가 자사의 경광등을 납품하기 위해 오 보좌관에게 문제 제기를 한 게 시발점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정 안 해” “문제 없다” 순찰차를 납품하는 업체들이 자사의 경광등이 아닌 다른 업체의 것을 사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H사가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이번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Y사 관계자는 “2022~2023년 H사 경광등에 문제가 발생해 현대자동차가 납기를 놓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계기로 지난해 5~6월 경광등 납품업체를 바꾸려는 시도가 있었던 걸로 안다”고 주장했다. Y사 역시 H사와 경광등 발주 문제로 갈등을 겪었다. Y사 관계자는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H사에 경광등 발주 견적서를 달라고 요청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납기가 (지난해) 12월12일까지라 우리한테도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지난해) 11월15일 경찰청과 경광등 업체를 바꾸는 문제로 협의를 진행했고, 11월26일에 바뀐 업체의 경광등으로 우리 공장에서 시연회를 열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H사는 순찰차 납품업체들과의 갈등을 ‘민원’을 통해 해결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H사 대표가 신정훈 의원실 오 보좌관을 만나 억울함을 토로했고 그 내용이 지난 5월 나온 보도자료의 배경이 됐다는 의혹이다. 실제로 오 보좌관은 처음에는 민원을 받아 보도자료를 작성한 게 아니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H사 대표를 만났다고 인정했다. 지난해 8월경 지역의 향우회장과 함께 H사의 대표가 찾아왔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오 보좌관이 경찰청의 순찰차 사업을 들여다보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한다. 오 보좌관은 지난 5월14일에 나온 보도자료에 대해 묻자 “지난해 8월부터 이 문제를 파고 있었다”며 “내부에서 나온 정보도 있고 경찰청에서도 (순찰차 사업에 대해) 문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이 문제로 경찰청 관계자를 30~40번 만났다”고 밝혔다. 눈여겨볼 대목은 H사 대표가 같은 시기 신 의원에게 정치후원금을 냈다는 점이다. <일요시사>가 나주시·화순군 선거관리위원회를 통해 입수한 신 의원의 ‘연간 300만원 초과 기부자 명단’을 확인한 결과 H사 대표는 지난해 8월22일 500만원을 기부했다. 신 의원은 2014년 7월30일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고 20대(2020년), 21대(2024년) 총선에서 배지를 달았다. 2014~2016년, 2020~2024년 등 신 의원이 국회의원 활동을 하는 동안 H사 대표가 후원금을 낸 건 지난해 8월이 유일하다. 경광등 업체 변경 문제 때문? “사기업 갈등에 보좌관이 왜?” 오 보좌관은 H사 대표가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을 알았냐는 질문에 “몰랐다”면서 “회계를 관리하는 직원은 나주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H사 대표에 대해 “이전까지 전혀 몰랐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전체 정치후원금 모금 한도) 3억원 중에 500만원을 후원했다고 해서 지난해 8월부터 지금까지 이 문제에 매달리겠느냐”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업체의 문제 제기가 합당하다고 생각했고, 자료를 받아보니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좌관은 “경찰차 특장 시장 자체가 그렇게 크지 않아 뛰어드는 업체도 많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맨날 같이 했던 업체를 빼버리면 가만히 있겠나. 나는 Y사가 욕심을 부리면서 이 상황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기존에 해왔던 곳과 똑같이 하면 되지, 더 이익을 취하려 하느냐”고 되물었다. 업체 간 중재의 의도도 있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신 의원에게 후원금을 낸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민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신 의원을 지지하는 차원에서 후원금을 냈다는 것이다. H사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일을 잘하신다는 말을 들어서 후원금을 냈다. 지금 이 문제와는 무관하다”며 “사업을 접을까 생각할 정도로 머리 아픈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오 보좌관을 만나 민원을 넣었는지는 “오래돼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Y사는 신정훈 의원실발 보도자료로 큰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Y사 관계자는 “정부 기관에 납품하는 제품을 만드는 건 맞지만, 엄연히 사기업 간 일어난 일에 국회 보좌진이 개입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다”며 “기사가 나간 이후 우리 회사는 경제, 이미지 부분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경찰청과 지체상금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업체 문제로 인한 지연이 결정되면 지체상금을 물어야 하는 상황이다. 차량 출고가 늦어지면서 보관을 위한 토지 대여료가 1억2000만원 정도 나갔다. 무엇보다 자회사인 N사의 신용등급 하락, 기사로 인한 이미지 훼손 등 무형적인 피해도 만만찮다”고 하소연했다. 받아쓴 언론 “취하해 달라” 한편 Y사는 신정훈 의원실에서 나간 보도자료로 기사를 작성한 매체 3곳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다. Y사는 “언론의 잘못된 보도로 인해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됐으며 국민에게 경찰 장비 도입 과정에 대한 불신을 초래했다”며 “신청인(Y사)의 업무 수행 능력과 투명성에 대한 의구심을 야기해 치안 활동에 대한 신뢰도 저하로 이어질 수 있는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어 정정보도를 구한다”고 조정을 신청했다. Y사 관계자는 “2곳의 매체에서 ‘기사를 내릴 테니 소를 취하해 달라’는 내용의 답변을 언론중재위원회에 보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