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 건국대를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교육부가 관리·감독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사이 의혹이 눈덩이처럼 커졌다는 지적이다. 더 나아가 교육부가 건국대의 ‘치부’를 암묵적으로 덮어주고 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가 지난 14일, 기자회견에서 학교법인 건국대의 사모펀드 투자에 대한 교육부의 종합감사와 검찰 고소·고발을 촉구했다. 건국대는 학교법인의 수익 사업체인 더클래식500이 임대보증금 일부를 옵티머스자산운용에 투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육부의 현장조사를 받았다.
잦은 논란
부처 책임도
노조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학교법인에 대한 비판과 함께 “교육부의 허술한 관리·감독으로 건대법인이 임대보증금과 임대료, 학교와 병원 등 산하 비영리법인의 고유 목적 사업 준비금 등을 마치 자기 돈처럼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방치한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허술한 조사로 또 다시 이사장과 법인에 면죄부를 주지 말아야 하며 철저한 감사를 통해 법 위반 사실에 대한 법의 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교육부는 건국대 관련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함께 자주 언급됐다. 특히 현재 서울동부지검에서 수사 중인 ‘건국대 임대보증금 393억원 사건’이 교육부의 부실한 관리·감독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은 끊이질 않고 있다.
2017년 3월 감사원의 기관운영 감사에서 건국대의 임대보증금 문제가 불거지기 전, 교육부는 2014년 4월 ‘대학 교육 역량 강화시책 추진 실태’ 특정감사에서 같은 문제로 ‘주의 조치’를 받은 바 있다. 건국대 임대보증금 논란에서 교육부 책임론이 불거지는 이유다.
최근에는 교육부가 2015년 대학 구조개혁평가에서 B등급으로 정원 감축 권고를 받은 건국대를 ‘자율감축’으로 구제해줬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교육부의 정원 감축 권고는 이행하지 않을 경우 페널티가 있지만, 자율감축은 말 그대로 대학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다.
대학 구조개혁평가는 저출산에 따른 학령인구 감소에 대비하고 교육의 질 하락을 막기 위한 일종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이다. 2014년 교육부는 2023년까지 대학 정원을 16만명 감축해 40만명까지 줄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평가 결과에 따라 대학을 A~E등급으로 분류하고 A등급은 자율감축, 그 외 등급은 비율에 따라 대학의 정원을 줄이도록 권고하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전임 이사장 확정 판결
교육부 “정원 줄여라”
2015년 9월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 구조개혁평가 결과에 따르면 건국대 서울 캠퍼스는 A등급, 충주 글로컬 캠퍼스는 D등급을 받았다. 당시 평가대로면 건국대 서울 캠퍼스는 정원 감축 비율을 따로 정하지 않은 자율감축 대상으로 정원을 줄일 필요가 없었다.
반면 충주 캠퍼스는 10%의 정원을 줄여야 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17년 11월30일 교육부는 건국대에 서울 캠퍼스의 등급을 당초 A등급에서 B등급으로 1단계 하향 조정한다고 통보했다. 이에 따라 정원을 감축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김경희 전 건국대 이사장의 횡령 혐의 등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확정 판결이 나왔다는 게 그 이유였다.
교육부는 지난 2014년 1월 종합감사 결과를 발표한 뒤 242억원의 업무상 배임, 회계비리, 수억원의 재단 자금 횡령 등의 혐의로 김 전 이사장과 김진규 전 건국대 총장을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김 전 이사장은 판공비와 업무추진비 등의 횡령 혐의와 재단 소유 아파트를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출장비로 가족여행을 하고 판공비로 딸의 대출금을 갚았다는 혐의를 받았다.
2017년 4월 대법원은 업무상 횡령·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이사장에 대한 상고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 판결했다. 이에 따라 김 전 이사장은 금고 이상의 형량을 받은 사람은 임원으로 재직할 수 없도록 한 사립학교법에 따라 이사장직을 잃었다.
교육부는 건국대 전임 이사장을 직접 고발한 사건의 결론이 나오자 후속조치를 한 것으로 보인다.
A등급에서
등급 하향
교육부의 조치에 따라 건국대는 2013학년도 입학정원 대비 4%를 2020년까지 감축하고 2019~2020년 정원 감축 이행 계획을 제출해야 했다. 교육부는 건국대의 이행에 따라 1주기 평가 정원 감축 미이행으로 인한 감점은 적용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건국대는 2017년 12월 재고를 요청한다며 교육부에 선처를 요청했다. 그러면서 “전임 총장의 과오로 1주기 대학 구조개혁평가에서 감점을 받았지만 대부분 평가항목에서 우수한 실적과 역량을 인정받아 A등급을 받았다”며 “등급 하락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청산했고, 이 과정에서 촉발된 구성원 간의 갈등 역시 해소됐다”고 호소했다.
이어 “전임 경영진의 잘못이 결과적으로 이와 전혀 관계없는 학생들의 자긍심과 교육여건에 큰 상처를 주게 돼 대단히 우려스럽다. 또 2016~2017년 PRIME사업과 LINC+사업 등 재정지원 사업에서 이미 예산감축 제재를 받은 바 있기에 이번 정원 감축이라는 추가 제재는 가혹한 처분”이라고 덧붙였다.
건국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정원 감축은 등록금 수입이 줄어든다는 점에서 학교에 재정적으로 타격을 준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대학 이미지, 명예의 실추다. 단순히 학생 수가 줄어드는 것보다 더 큰 의미가 있는 셈이다. 일반적으로 명문 종합대학의 입학정원 기준을 3000명으로 잡는다. 건국대의 경우 그 숫자를 계속 유지해왔는데, 교육부의 정원감축 권고로 그 마지노선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건국대의 호소에 ‘불수용’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2015년 대학 구조개혁평가 기본 계획’ ‘부정·비리 대학과 평가 결과를 연계한 제재 방안’에 따라 각 등급별로 정해진 조치를 적용한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또 대학 구조개혁평가와 재정지원 사업은 독립적으로 운영되기에 부정·비리에 대한 제재 조치도 별도로 실시된다고 설명했다.
2014년 12월 교육부에서 내놓은 ‘2015년 대학 구조개혁평가 기본 계획’에는 최근 3년간(2012~2015년) 고등교육법에 따른 행·제정 제재, 감사에 따른 교육부 처분을 받은 부정·비리 발생 대학은 사안의 경중에 따라 구조개혁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등급의 하향 조정 여부를 결정한다고 명시돼있다.
이메일 민원
다른 대학은?
결국 건국대는 2018년 3월 교육부에 ‘1주기 대학 구조개혁평가 결과 등급 하향 조정에 따른 후속 조치 계획’을 제출했다. ‘2020학년도 모집단위별 정원 감축 계획(안)’에는 3000명 정원의 4%인 120명을 줄인다는 계획을 담았다.
공과대학 기술융합공학과를 없애고(26명 감축), 사회과학대학 글로벌비즈니스학과에서 16명을 줄이는 등 총 2880명만 모집하겠다는 내용이다.
그로부터 1년 뒤인 2019년 3월 교육부는 건국대에 조치한 4% 정원 감축 권고를 자율감축으로 변경했다. 2019년 2월 전자메일을 통해 대학 구조개혁평가 결과 조치 관련 민원이 접수된 지 한 달 만이었다. 2015년 대학 구조개혁평가 결과가 처음 나오고 이후 4년 동안 총 3차례에 걸쳐 건국대에 대한 조치가 바뀐 것이다.
한 건국대 관계자는 “정원 감축 권고 조치를 재고해달라고 총장 명의로 공문을 보냈을 때도 ‘불수용’을 외쳤던 교육부가 불과 1년 만에 이메일로 들어간 민원에 조치를 변경했다. 다른 대학에도 이런 경우가 있는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부는 1주기 대학 구조개혁평가의 대상 기간인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전임 보직자의 비리 행위가 없었기에 정원감축 조치를 취소했다고 해명했다. 다시 말해 김 전 이사장의 대법원 확정 판결 결과 유죄는 인정됐지만, 2012~2015년 사이 비리 행위로 유죄를 받은 사안은 없다는 점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교육부 고등교육정책과 관계자는 “당초 평가를 진행할 때 2012~2015년 사이에 발생한 비리에 대해서만 문제로 삼는다는 계획을 밝혔다. 김 전 이사장의 경우 2012년 이전에 발생한 사안들만 유죄로 인정됐다. 그래서 감점을 취소했고, 건국대의 등급이 다시 A등급으로 올랐다”며 “정원 감축은 등급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정원 감축 권고도 자율감축으로 바뀐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1심 판결문에 따르면 김 전 이사장은 건국대로부터 출장비 명목으로 수령한 돈을 임의로 사용해 업무상 횡령 혐의를 받았다. 1심 재판부는 김 전 이사장이 2007년 7월31일부터 2011년 8월3일까지 총 5회에 걸쳐 출장비 총 5320만원을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는 업무상 횡령을 했다고 판단했다.
갑자기 자율감축으로
보이지 않는 손 영향?
이사장 판공비를 업무상 횡령했다는 혐의 역시 2007년 4월12일부터 2011년 10월26일까지 사용된 부분만 유죄로 인정됐다. 1심 재판부는 김 전 이사장이 2012년 2월에 사용한 업무추진비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1심 재판부의 판결은 항소심과 상고심에도 그대로 적용됐다.
석연치 않은 점은 교육부가 2017년 건국대의 등급을 하향 조정하는 근거로 김 전 이사장의 대법원 확정 판결을 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확정된 판결을 두고 2017년과 2019년 교육부의 판단이 달랐던 셈이다.
이렇다 보니 일부 건국대 관계자들은 교육부의 ‘태세전환’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한 게 아닌지 의심을 품고 있다.
정원 감축 권고가 자율감축으로 바뀔 무렵 교무처장을 맡고 있던 원모 교수가 교육부의 조치 변경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지난 9월 교학부총장이라는 요직을 맡게 된 것도 그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는 의혹도 추가로 나왔다.
한 건국대 관계자는 “해당 교수가 교육부의 결정을 ‘자신의 공’이라고 말하고 다닌다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공교로운 점은 원 교수가 받고 있는 의혹이 이것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2018년 4월 교육부는 사립대학들에 ‘교수 논문에 자녀 공저자 등록’에 대한 철저한 검증 및 결과 보고 요청 공문을 내려보냈다.
당시 교수인 부모가 본인이나 동료 교수의 논문에 자녀를 공저자로 올리는 사안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커질 무렵이었다.
원 교수는 2013년 자신의 논문에 자녀를 공저자로 올렸고, 2018년 교육부의 조사가 시작되기 전 자녀의 이름을 삭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원 교수의 자녀로 추정되는 인물은 당시 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논란 교수
요직 승진
건국대 홍보실 관계자는 “원 교수는 해당 사안(정원 감축)에 대해 교무처장으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이번에 교학부총장이 된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고 설명했다. 원 교수의 논문 의혹과 관련해 교수들의 연구윤리를 담당하는 교육부 학술진흥과 관계자는 “민원이 들어온 사안”이라며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고 있다”고 답했다. 논문과 관련해 원 교수의 입장을 들으려 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