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금 환불’ 건국대 속사정

내부잡음 막으려 여론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코로나19 여파로 진행된 온라인수업으로 학습권을 침해받았다며 학생들이 등록금 환불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 와중에 건국대가 고지서 감면 방식으로 사실상 등록금을 환불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갑작스런 건국대의 결정에 타 대학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내부가 시끄러운 건국대가 ‘시선 돌리기’용으로 발표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온다.

▲ 최근 온라인수업에 따른 학습권 침해로 등록금 환불 주장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건국대서 환불하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타 대학들의 입장이 난처해진 모양새다. ⓒ고성준 기자

대학가 역시 코로나19 여파가 계속되고 있다. 대학들은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1학기 수업 대부분을 비대면으로 진행했다. 하지만 온라인으로 진행된 수업서 집단 커닝 사태가 일어나는 등 부작용이 속출했다.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대면 시험을 치른 대학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대학 VS 학생

최근에는 등록금 환불 이슈가 불거졌다. 비대면으로 수업이 진행되면서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됐으니 대학에선 등록금을 일부 환불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다. 특히 실기·실습이 많아 비대면 수업이 불가능한 예술대학 등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등록금 환불 요구는 대학이 온라인수업으로 전환한 순간부터 제기됐다. 지난 4월21일 27개 대학 총학생회가 참여하는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이하 전대넷)은 ‘등록금 반환 및 대학생 경제대책 마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서 전대넷은 전국 203개 대학 학생 2만1784명 중 99.2%에 달하는 2만1607명이 ‘코로나19로 인한 상반기 등록금 반환이 필요하다’고 답했다는 결과를 전했다.


등록금 반환이 필요한 이유로는 ‘원격수업의 질이 떨어진다’는 답변이 82%로 가장 높았으며 학교시설 이용 불가능(78.6%), 경제적 부담(37.4%) 순이었다. 등록금 반환 형태를 묻는 질문에는 ‘납부 등록금에 대한 반환·환급’(87.4%)이 가장 많았다. 학교별 상황에 따라 학생 형편에 맞는 장학금 지급에 대해선 11%만이 동의했다. 

전대넷은 “설문조사 결과는 곧 학생들의 우려에 아무런 답변과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는 교육부와 대학을 향한 강한 질타”라며 “침해된 학생들의 권리 보장을 위해 법적 대응까지 염두에 두고 행동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상반기 등록금 반환 ▲등록금 반환 학생 요구안 수용 ▲교육부-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학생 3자 협의회 개최 등을 촉구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수업 진행
“학습권 침해” 주장 계속 나와

교육부는 등록금 환불 이슈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대학들도 등록금 환불에는 난색을 표하면서 이슈가 잠잠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건국대서 등록금 환불 이슈를 다시 끄집어냈다. 건국대는 2학기 등록금 중 일부를 감면하는 방식으로 실질적 환불에 나섰다. 

건국대 관계자는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학생들이 학교 시설을 이용하지 못하고 학습권 침해를 당한 것을 지원한다는 개념”이라며 “재원이 허락하는 범위 안에서 2학기 등록금 고지서에서 일정비율을 감면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건국대의 결정으로 등록금 환불에 미온적이던 다른 대학의 입장이 난감해졌다는 점이다. 여기에 건국대의 이번 결정이 내부 환기용이라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실제 현재 건국대 사정은 그리 녹록치 않다. 임대보증금 393억원 문제가 국민권익위원회를 거쳐 검찰로 넘어가 있고, 총장 선출 과정서 잡음도 들려온다. 


지난 15일 건국대 교수협의회(이하 교협)는 학교법인에 ‘제21대 총장후보자 선출과정 부당개입 의혹 답변 요구서’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건국대는 75명의 총장후보자선정위원회의 투표를 거쳐 전영재 화학과 교수가 21대 신임총장으로 선임됐다고 밝혔다. 
 

▲ 등록금 반환 집회 갖는 학생들

건국대 교협이 의혹을 제기하는 부분은 법인이 원하는 후보를 이사회에 올리는 3배수에 포함하고자 일부 총선위원에게 특정 후보 투표를 종용했다는 것.

건국대 교협은 “앞선 수차례 총장선거서도 법인의 부당한 선거개입 의혹이 제기됐지만 명확한 입장 한 번 밝힌 적이 없다”며 “이번 총장선거서도 법인이 총선위원들에게 특정 후보 투표를 종용했다는 의혹이 다수 구성원에게서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건국대 측은 교협이 제기한 의혹에 대해 “사실이 아니다”라며 소명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건국대 홍보실 관계자는 등록금 환불 이슈로 내부 잡음을 덮으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이야기”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사실 건국대서도 등록금 환불 문제를 외부로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언론 취재 과정서 드러나게 된 것”이라며 “임대보증금이나 총장 선거 등은 학교법인과 관련 있는 문제고, 등록금 환불 문제와는 궤가 다르다”고 덧붙였다.

건국대의 사정과는 별개로 등록금 환불 이슈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것은 확실해 보인다. 실제 건국대가 실질적인 등록금 환불 결정을 내리면서 타 대학 학생들의 움직임이 다시 활발해지고 있다. 

건대, 처음으로 실질적 환불
교협, 총장선거 “문제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일부 학교 학생들이 ‘혈서’를 올리면서 등록금 환불을 요구 중이다. 대학생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 한양대 커뮤니티에는 ‘등록금 반환 대신 혈서가 필요하다고?’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한양대 재학생으로 알려진 글쓴이는 혈서를 올리며 ‘지금이라도 학교는 각성하고 대안을 세워라. 무책임, 무소통 반성하고 책임지라’고 주장했다.

연세대 익명 커뮤니티에도 혈서가 등장했다. 연세대 재학생으로 추정되는 이 학생은 ‘연세대 10만원’이라고 쓴 혈서를 올리며 ‘소통해야 한다’고 학교를 비판했다. 앞서 연세대 학생복지처장은 등록금 반환과 학점 부여 방식 변경을 요구하는 학생들에게 “학교의 주인이 되려면 돈을 내야 하는데 등록금을 깎아달라 하면 되나. 학생들이 10만원씩 더 내자는 말은 왜 못하나”라고 발언해 논란을 산 바 있다.  

전대넷 등 대학생 단체는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며 세종정부청사 교육부서 서울 국회의사당까지 5박6일 릴레이 행진을 진행했다. 전대넷은 대학과 교육부를 상대로 등록금 환불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이해지 전대넷 집행위원장은 “현재 전국 70개 이상 대학서 2100여명의 학생이 소송인단에 참여했다”며 “오는 26일 소송인단 모집을 마감하고 다음달 1일쯤 소장을 접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육부는 학생들의 등록금 환불 요구와 관련해 원칙적으로 대학과 학생 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직접적인 현금 지원 방안에 대해서도 “학생에 대한 현금 지원은 못한다는 원칙은 처음부터 발표했다”고 선을 그었다. 

“현금은 NO”

교육부는 각 대학서 받은 자료를 토대로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대학의 재정적 어려움을 살펴보고 지원 방안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학생에게 등록금을 환불해주는 대학을 지원하는 방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등록금 반환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3차 추가경정예산에 관련 예산을 반영하거나 기존 예산의 용도 제한을 완화해주는 방식으로 대학을 지원하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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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