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건국대 이사장 징계의 전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 방향으로 질주하던 열차가 갑자기 탈선했다. 탈선의 원인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말이 나왔지만 어느 하나 확실한 게 없었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나고서야 당시 열차가 철로를 벗어난 이유가 어렴풋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열차를 달리게 만들고 또 끝내 멈춰 세운 현장에 작용한 거대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옵티머스 사태는 라임 사태와 함께 단군 이래 최대 금융사기 사건으로 불린다. 2019년 라임 사태가 불거지고 채 1년도 되지 않은 2020년 6월 피해액이 5000억원대에 이르는 옵티머스 사태가 터졌다. 옵티머스 자산운용은 공공기관 매출 채권에 투자하는 안전한 상품이라고 속여 투자자를 모았다.

문제는 공공기관에 투자한다는 내용이 거짓이었다는 점이다. 옵티머스 자산운용은 부실기업의 채권을 사들여 펀드를 돌려막기 하면서 자금을 빼돌렸다. 이 사건으로 김재현 옵티머스 자산운용 대표는 2022년 7월 대법원서 징역 40년형이 확정됐다. 라임‧옵티머스펀드를 판매한 증권사들은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다. 

흥미로운 대목은 라임‧옵티머스 사태와 관련된 인물과 기관이 법의 철퇴를 맞는 동안 유유하게 그 집중포화를 피해 간 대학과 이사장이 있다는 점이다. 건국대와 유자은 이사장이 그 주인공이다. 100억원이 넘는 돈을 옵티머스펀드에 투자하는 과정서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점이 확인됐지만 유 이사장에게 가해진 징계는 ‘엄중 경고’에 그쳤다.

2020년 8월말 건국대 내부가 술렁였다. 건국대가 학교법인 수익사업체 더클래식500의 임대보증금 일부인 120억원을 옵티머스펀드에 투자했다는 소문이 불거진 것이다. 당시는 옵티머스펀드 환매 중단 사태가 확산되면서 피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던 시기였다.

구성원 사이에서는 건국대가 투자금 120억원을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는 흉흉한 소문이 이어졌다. 


언론 등을 통한 문제 제기가 계속되자 교육부는 2020년 9월 현장 조사에 나섰다. 교육부는 건국대가 NH투자증권을 통해 ‘옵티머스 크리에이터 전문투자형 사모신탁’에 120억원을 투자한 사실을 확인했다. 교육부는 건국대가 옵티머스펀드에 투자한 120억원을 ‘수익용 기본재산’으로 보고 조치를 취했다. 

사립학교법 제28조(재산의 관리 및 보호)는 ‘학교법인이 그 기본재산에 대해 매도·증여·교환 또는 용도변경하거나 담보로 제공하려는 경우 관할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다시 말해 건국대가 옵티머스펀드에 투자하려면 교육부의 허가 조치가 선행됐어야 한다는 뜻이다.

2021년 12월 처분 완화
배경 두고 갑론을박 일어

하지만 교육부의 현장 조사 결과 건국대는 이 과정 없이 투자금을 넣었다. 교육부는 2020년 11월 건국대 법인이 수익용 기본재산을 부당하게 관리해 더클래식500이 투자 손실을 보고 이사회를 부실하게 운영했다고 지적했다.

유 이사장과 건국대 법인 감사에 대해서는 임원 취임 승인 취소 절차를 추진하고 이사 5명에 대해서도 경고 조치를 내렸다.

건국대 법인 전·현직 실장 2명에겐 문책·징계, 더클래식500 사장 등 4명에겐 문책·중징계를 요구했다. 건국대 법인에는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하라고 했다. 유 이사장과 더클래식500 사장에 대해서는 배임 혐의로 수사도 의뢰했다. 이보다 앞서 2020년 10월 국정감사에서는 유은혜 당시 교육부 장관이 건국대의 옵티머스펀드 투자를 ‘사립학교법 위반’ 사항이라고 언급했다.

건국대의 옵티머스펀드 투자 사건은 세 갈래로 진행됐다. 먼저 교육부의 의뢰로 검찰 수사가 이뤄졌다. 여기에 건국대가 교육부의 징계 조치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교육부는 유 이사장에 대한 임원 취임 승인 취소 절차를 밟았다. 검찰-교육부의 공격에 유 이사장은 ‘사면초가’ 상태가 됐다. 


하지만 검찰이 옵티머스펀드에 들어간 건국대의 투자금을 ‘보통재산’으로 판단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보통재산은 사용 전 관할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기본재산과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또 투자금을 개인 용도로 사용하지 않았고 손실을 끼친 부분 역시 고의성을 입증할 수 없어 횡령‧배임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봤다.

단호하더니
갑자기 왜?

보건의료노조 건국대 충주병원 지부가 “투자의 구체적 경위와 동기에 대한 고려 없이 상품 위험성이 낮다는 설명을 듣고 투자한 것이라는 피의자의 입장만 고려해 내린 잘못된 판단”이라고 반발하며 서울고검에 항고를 제기했지만 재차 무혐의 처분이 나왔다.

눈여겨볼 지점은 교육부와 건국대가 직접 맞붙은 행정소송 결과다. 앞서 교육부는 건국대의 현장 조사 결과 처분 재심의 요청을 기각한 바 있다. 여기에 행정소송은 교육부의 완승으로 끝났다. 건국대의 옵티머스펀드 투자에 대한 교육부의 징계 조치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온 셈이다.

건국대와 교육부의 행정소송 1심 판결이 나온 날은 2021년 7월23일. 그보다 앞서 교육부는 2021년 7월13일 유 이사장의 임원 취임 승인 취소를 계고했고 건국대에 시정을 요구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인 2021년 9월15일 유 이사장을 상대로 청문이 진행됐다.

건국대가 행정소송서 패소하면서 임원 취임 승인 취소 절차가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건국대 내부에서는 유 이사장이 낙마하고 교육부서 관선이사를 파견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어머니인 김경희 전 이사장에 이어 딸인 유 이사장도 결국 물러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특히 교육부 장관이 국감서 언급하는 등 교육부의 단호한 태도가 이 같은 분석에 힘을 실었다.

교육부가 임원 취임 승인을 취소할 것이라는 다수의 예상과 달리 징계는 대폭 감경된 ‘엄중 경고’로 결정됐다. 2021년 12월 당시 교육부는 “건국대 법인에 유자은 이사장의 임원 승인 취소 절차를 중단한다고 통보했다”고 밝혔다.

3년 동안
감감무소식

그 배경으로 건국대가 옵티머스펀드 투자금을 모두 회수한 부분이 언급됐다. 실제 건국대는 NH투자증권으로부터 투자금 120억원을 모두 돌려받은 바 있다.

2022년 7월 행정소송 항소심서 교육부가 이겼지만 징계는 이미 감경된 뒤였다. 건국대 충주병원 노조를 비롯해 구성원의 반발에도 교육부는 꿈쩍하지 않았다. 징계 감경 조치 사유를 둘러싸고 추측이 난무했고 청문 절차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됐다. 하지만 교육부가 해당 조치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면서 상황은 그대로 종료됐다.

건국대의 옵티머스펀드 투자 사건이 일어나고 3년이 지났지만 유 이사장의 징계 감경을 둘러싼 갑론을박은 계속됐다. 국감서 언급될 만큼 정치권의 관심을 받았고 교육부가 유 이사장 등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는 등 징계 조치에 강한 의지를 보였던 사안이기에 반전이 준 충격이 컸다.


최근 <일요시사> 취재 결과 당시 상황을 엿볼 수 있는 단서가 포착됐다. 교육부는 ▲시정 요구 이행 정도 ▲법원 판례 ▲청문 결과를 들어 징계 조치를 감경한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건국대가 임원 취임 승인 취소 사유 3건에 대한 시정 요구 사항을 모두 완료한 점을 들었다.

건국대가 ▲수익용 기본재산 관리 규정을 제정했고 ▲투자 손실금 보전을 완료했으며 ▲재산 관리 책임 임원 제도 도입 등 이사회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 노력했다는 점을 감경 사유로 든 것이다. 여기까지는 교육부가 유 이사장의 임원 취임 승인 취소 절차를 중단하면서 밝힌 내용과 맞닿아 있다. 

해임 위기에서 기사회생
교육부 판단 문제없었나

눈길이 가는 지점은 ‘법원 판례’ 부분이다. 교육부가 유 이사장의 징계를 엄중 경고로 감경 처분하는 과정서 사용한 판례가 김경희 전 이사장과 관련된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김 전 이사장이 교육부를 상대로 낸 ‘임원 취임 승인 취소 처분 취소’ 소송을 근거로 유 이사장의 징계를 감경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학교법인이 관할청의 시정 요구를 모두 이행한 이상 관할청은 사립학교법상 임원 취임 승인 취소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언급했다. 교육부는 2013년 11월 건국대 법인에 대한 회계 감사를 진행해 ‘수익용 기본재산을 부당하게 관리한 사항 등에 대한 시정 요구 등을 거쳐 이사장(당시 김경희)의 임원 취임 승인을 취소한다’고 통보했다. 

건국대는 교육부의 통보에 반발해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2심서 모두 김 전 이사장이 승소했다. 이 과정서 교육부는 김 전 이사장의 연임을 승인했다. 또 2심 패소 이후 상고도 포기했다. 다시 말해 교육부는 자신들이 패소한 소송의 판례를 근거로 삼아 유 이사장을 벼랑 끝에서 건져 올린 셈이다. 


청문과 관련해서는 ‘현장 조사 결과 처분사항 조치 및 시정조치 요구 등이 적법하나 시정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볼만한 특별한 사건이 없어 보여 3인 모두 임원 취임 승인 취소 부적절’ 의견을 냈다고 언급했다.

교육부 관계자는 “시정 조치 이행 여부와 청문 결과 등을 종합해 유자은 건국대 이사장에게 엄중 경고 처분을 내렸다”면서도 “판례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답했다.

이래서
말 없었나

건국대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유자은 이사장에 대한 임원 취임 승인 취소 절차는 김경희 전 이사장 사례와 상당히 닮아있다. 교육부는 엄마의 판례를 이용해 딸을 구한 셈이다. 그것도 자신들이 진 소송을 가지고 징계 감경 사유로 사용했다는 게 어이없다”면서 “그동안 교육부가 유자은 이사장의 징계 감경 과정에 대해 그토록 숨긴 이유가 이것이었느냐”고 한탄했다.

<jsjang@ilyosisa.co.kr>

 

<반론보도> <단독> 건국대 이사장 징계의 전말 관련

<일요시사>는 지난 2024년 2월25일자 종합면 및 26일 인터넷 사회면에 학교법인 건국대학교가 교육부 허가 없이 옵티머스펀드에 투자한 것과 관련해, 교육부가 2020년 11월 이사장에 대한 임원 취임 승인 취소 절차를 추진했으며, 국정감사에서 ‘사립학교법 위반’ 사항이라고 언급하고 행정소송에서도 모두 승소했으나 실제 징계는 ‘엄중 경고’에 그쳐 의혹이 제기됐다고 보도했습니다.

학교법인 건국대학교 측은 “투자 주체는 대학이 아닌 법인 산하 수익사업체였고, 당시 교육부 조사 결과 처분서에는 이사장에 대해 <별도 조치 예정>으로 언급돼있을 뿐이었으며, 행정소송 재판부는 펀드에 투자한 임대보증금은 기본재산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사립학교법 위반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사장에 대한 임원 취임 승인취소 처분이 되지 않은 것은 사립학교법 및 기존 판례에 근거한 정당한 결정이다”라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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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투아웃’ 김병기 수난 시대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지난 6월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후보가 서영교 의원을 누르고 22대 더불어민주당 2기 원내대표로 당선됐다. 김 원내대표는 내란 종식과 헌정 질서 회복, 권력기관 개혁을 외쳤다. 이로부터 두 달 뒤인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정청래 신임 당 대표가 선출됐다. 이재명정부 첫 여당 지도부가 제모습을 갖추면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듯했다. 약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와 정청래 대표의 첫 갈등이 불거졌다. 정 대표가 지난 9월11일 여야 원내 지도부가 합의한 3대 특검법 합의안에 대해 “협상안을 수용할 수 없고, 지도부 뜻과 달라 재협상을 지시했다”고 밝히면서다. 불안불안 이인삼각 특검법 개정안의 핵심인 기간 연장을 제외한 채 합의해 특검법의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게 정 대표의 입장이다. 김 원내대표는 곧바로 반박했다. 원내 지도부와의 긴급회의를 거듭하던 그는 밖에서 기다리던 취재진을 향해 “정청래한테 공개 사과하라고 그래!”라며 소리쳤다. 이후 당 안팎에서 원성이 쏟아지자 김 원내대표는 오히려 취재진을 향해 “왜 자꾸 합의라고 그러느냐”고 물었다. 그는 “(합의가 아니라) 1차로 논의한 것이고, 무엇보다도 의원총회에서 추인을 받아야 한다”며 “수사 기간과 규모에 다른 의견에 있으면 그 의견을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제 총론만 (발표)하고 나갔는데 원내수석들이 각론에서 너무 많이 나갔다. 마치 합의가 된 것처럼 보도됐다”며 합의문이 아니라는 점을 재차 강조했다. 두 사람 간의 갈등은 사흘 만인 13일 봉합됐다. 김 원내대표는 자신의 SNS에 “심려 끼쳐서 죄송하다. 심기일전해 내란 종식과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해 분골쇄신하겠다”고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렇게 냉전은 끝났지만 지지층의 비난은 거셌다. 김 원내대표를 향해 ‘수박’ ‘변절자’ 등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내며 의심의 눈길을 보냈다. 문재인정부 당시 민주당 대표를 지냈지만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의 손을 들어준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행보와 비교하는가 하면 ‘역시 서영교 의원을 뽑아야 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도 나왔다. 지지층의 미묘한 기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에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검사 징계안을 놓고 두 번째 갈등이 터졌다. 법사위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대장동 항소 포기에 반발한 검사장 18명을 고발한다고 밝힌 데 대해 “협의가 없었다”고 선을 그으면서 개혁 의지가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지난달 19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조국혁신당·무소속 등 범여권 의원들은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에 이의를 제기한 검사장 18명을 국가공무원법 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여당 간사인 민주당 김용민 의원은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 조직 기강과 헌정 질서를 무너뜨린 검사장 18명의 집단 항명 행위에 대해서 국가공무원법 위반 혐의로 고발한다”고 밝혔다. ‘당심’이 뽑은 정, ‘의심’이 뽑은 김 연일 삐거덕…벌써 이재명 리더십 부재? 김 원내대표는 고발 소식이 알려진 뒤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금 봤다”며 “그렇게 민감한 것은 정교하고 일사불란하게 해야 한다. 협의를 좀 해야 했다”고 당혹한 기색을 보였다. 이어 “뒷감당은 거기서 해야 할 것”이라며 고발장을 제출한 법사위 쪽에 책임을 물었다. 법사위의 검사장 고발은 원내 지도부뿐 아니라 당 지도부와도 사전 논의가 없었다는 게 김 원내대표의 설명이다. 하지만 김용민 의원은 검사장 고발 문제에 대해 “당의 기조와 흐름이 잡혀 있는 상태에서 저희가 고발장을 그날 제출하는 기자회견을 한 것뿐, (원내 지도부와) 소통이 없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김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원내(지도부)와 소통할 때 이 문제를 법사위는 고발할 예정이라는 걸 얘기했다”며 “원내가 많은 사안을 다루다 보니까 (고발 문제를) 진지하게 듣거나 기억하지 못하셨을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저희가 더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야 했지 않았느냐는 지적을 한다면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면서도 “소통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당시 한 여권 관계자는 “당 대표가 당 전체를 이끄는 일이라면 원내대표는 말 그대로 원내 상황을 조율하고 총괄하는 위치인데, 오히려 갈등을 키우고 있으니 (민주당) 의원들도 혼란스러운 것”이라며 “이런 상황이 조금씩 노출되면서 지지층까지 불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당과 원내, 강경파와 온건파로 나뉜 민주당의 배경에는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의 선출 방식이 거론된다. 강경 지지층이 밀어 올린 정 대표와 달리 김 원내대표는 당내 의원 선거를 통해 당선됐다. 당시 원내에 친명(친 이재명)계가 다수 포진했던 만큼 김 원내대표 의중은 ‘명심(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에 가깝다. 더 강하고 더 빠르게 개혁을 외치는 정 대표의 지지층과 사사건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런 강성 지지층에게 김 원내대표는 이미 ‘투아웃’이다. 여기에 정 대표의 공약이었던 대의원과 권리당원 간 표 반영 비율을 ‘1대 1’로 변경하는 당헌·당규 개정이 부결되면서 지지층의 반발이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밑서 치솟고 위서 누르고 그동안 민주당은 당 대표나 최고위원 등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 투표 반영 비율을 20:1 미만으로 규정해 왔다. ‘동등한 1인1표제’는 정 대표가 당 대표 경선 당시 공약으로 내건 정책 중 하나로 “나라의 선거에서 국민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하듯 당의 선거에서도 누구나 1인1표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일부 의원들 사이에서조차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정 대표와 김 원내대표 두 사람 모두 시험대에 올랐다. 정 대표 쪽에선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는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때부터 추진됐던 개혁의 실현’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일각에서 ‘시기’와 ‘방법’을 문제 삼는 등 반대 의견에 부딪혔다. 권리당원의 힘으로 대표직에 오른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상황에서 1인1표제를 추진하자 친명계 조직인 ‘더민주혁신회의’와 일부 당원 등을 중심으로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1인1표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최고위원은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이는 찬반의 문제라기보다 절차의 정당성·민주성 확보, 그리고 취약 지역(영남 등)에 대한 전략적 규제와 과소 대표성이 핵심”이라고 분석했다. 친명계인 윤종군 의원도 SNS를 통해 “당원주권 강화 방향에 동의한다”면서도 “전 지역 권리당원 표를 1인1표로 하는 것에는 이견이 있다. TK(대구·경북) 등 영남지역 당원 자긍심 저하, 당세 확장 장애 조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현 상황과 관련해서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 대표는 당 컨트롤이 안 되고, 원내대표는 의원들 컨트롤이 안 되는 상황”이라며 “지난 지도부(이재명 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가 워낙 합이 좋았고 당 대표 리더십도 강했기 때문에 더욱 비교된다. 중심축이 없으니 엎치락뒤치락하면서 반 발자국만 앞서도 자기 정치라는 뒷말이 나오는 것”이라고 봤다. 결국 정 대표의 1인1표제는 중앙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5일 치러진 투표 결과 중앙위원 총 593명 중 373명이 투표에 참여해 찬성 277표, 반대 102표로 과반이 찬성하지 않아 부결된 것이다. 남은 고비 얼마나? 원내 일각에서는 무리하게 밀어붙인 ‘정청래발 개혁’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김 원내대표의 고충 역시 이와 궤를 같이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실에서조차 몇 차례 속도 조절을 주문했지만, 지지층을 등에 업은 정 대표는 ‘개혁 골든 타임’을 필두로 숨 가쁘게 달리고 있다. 그런 김 원내대표가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을 못 박으면서 ‘쓰리아웃’은 겨우 면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란전담재판부는 국민의 명령이기 때문에 당연히 설치한다”며 “여기에 대해 더는 설왕설래하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 제한’ 조치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시간이 지나면 내란 사범이 사면돼 거리를 활보하지 못하도록 내란 사범에 대한 사면권을 제한하는 법안도 적극 관철하겠다”며 “내란 사범을 사면하려면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만일 윤석열 전 대통령 등 내란 주요 피의자에 대한 내란죄가 확정될 경우 사면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로부터 약 일주일 뒤인 지난 4일 범여권의 주도로 ‘내란전담재판부(내란특별재판부)’ 설치법이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사위는 해당 법안을 이달 중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며 속도를 냈다. 해당 재판부는 12·3 내란 사태와 관련해 윤 전 대통령 등이 연루된 내란 사건 전담을 골자로 한다. 내란전담재판부 판사 및 영장전담법관 추천위원회는 헌법재판소장을 비롯한 법무부 장관과 판사회의에서 추천한 총 9명으로 구성된다. 내란전담재판부로 성난 지지층 달래도… 위헌 폭탄 껴안고 걸어가는 ‘불’꽃길 구성을 마친 추천위원회는 2주 안에 영장전담법관과 전담재판부를 맡을 판사 후보자를 각각 정원의 2배수로 추천해야 하며 최종 임명은 대법원장의 몫이다. 또 형사소송법상 피고인의 구속기간은 최대 6개월이지만 특별법에서는 내란·외환 관련 범죄에 대해 구속기간을 1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국민의힘은 위헌 소지가 있다며 반발했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한마디로 판사가 마음에 안 든다고 골라 쓰겠다는 ‘지귀연 판사 바꾸자는 법’”이라며 “사법부의 무작위 배당 원칙을 위반하는 것일 뿐 아니라 이미 재판하는 사건도 뺏어서 다른 판사한테 맡기겠다는 삼권분립의 침해”라고 지적했다. 이날 법사위에 출석한 천대엽 법원행정처장 역시 “1987년 헌법 아래 누렸던 삼권분립, 사법부 독립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질 수 있다”며 “내란특별재판부법에 여러 가지 위헌 요소가 있다”고 반대했다. 천 처장은 “헌법재판소가 결국 이 법안에 대해 위헌 심판을 맡게 될 텐데 헌재소장이 추천권에 관여한다면 심판이 선수 역할을 하게 돼 룰에 근본적으로 모순이 생긴다”며 “헌법재판소장과 직·간접적 관계에 있는 헌법재판관들이 재판(위헌심판)을 맡을 수 없게 된다면 ‘내란특별헌법재판부’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 법이 예정하고 있는 바”라고 설명했다. 내란전담재판부 추진으로 개혁 동력을 얻었지만 후폭풍까지 감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위헌 가능성을 지닌 사법개혁을 진행하는 건 위험요소가 다분할뿐더러 원내대표로서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중도층 민심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출신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 민주당은 집단 의존 증상이 있다. 지난 총선에서 이재명 당시 대표에게 충성하는 정치인만 대거 유입되다 보니 여당이 된 지금 제대로 갈피를 못 잡는 것”이라며 “2차 종합 특검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내란전담재판부를 어떻게 꾸릴 것인지, 조희대 대법원장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에서 국민의 피로도를 높이지 않으면서도 종합적인 전략을 짤 사람이 없다”고 지적했다. 175석 버거웠나 그러면서 “내란전담재판부가 설치되면 국민의힘이 위헌을 걸 것이고, 법원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고 보는 만큼 위험성도 크다. 하지만 헌재에서 위헌 판결을 내리지 못하게 하려면 민심을 우리 편으로 끌고 와야 하는, 법률 싸움이 아닌 고도의 민심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고 덧붙였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원팀’ 원내대표단?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단에 때아닌 ‘내 편 봐주기’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문진석 당 원내운영 수석 부대표가 인사청탁 의혹에 휩싸였지만 ‘엄중 경고’에 그치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앞서 지난 2일 문 수석이 본회의장에서 김남국 대통령실 디지털소통비서관에게 문자로 특정 인물을 거론하며 “내가 추천하면 강훈식 실장이 반대할 거니까 아우가 추천해줘”라고 보냈고, 이에 김 비서관이 “제가 (강)훈식이 형이랑 (김)현지 누나한테 추천할게요”라고 답한 것이 언론에 포착됐다. 인사 청탁 논란이 불거지자 문 수석은 “부적절한 처신에 송구하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국민의힘은 ‘김현지 실세’ 프레임을 다시 띄우며 이재명정부를 압박했다. 김 원내대표의 엄중 경고로 논란을 수습하려는 분위기가 이어지자 강성 지지층은 “과감히 내쳐야 한다”며 더 강한 징계를 요구하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