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건국대 교수의 이상한 투잡

처형이 운영하고 아내가 직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건국대의 한 교수가 학교 부속기관을 이용해 부당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해당 교수는 최근 건국대 총장 선거에서 후보자선정위원장을 맡았던 인물인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 건국대학교 전경 ⓒ고성준 기자

건국대가 안팎으로 시끄럽다. 최근 임대보증금 393억원 문제로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교내에서는 총장 선거를 두고 내홍이 불거졌다. 총학생회, 교수협의회 등에서 총장 선거의 절차와 결과를 두고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총학생회
사퇴 요구

건국대는 지난달 14일 제21대 총장에 전영재 이과대학 화학과 교수를 선임했다. 취임은 9월1일, 임기는 4년이다. 전 교수는 “교육의 질적 성장을 추구하고 교육 인프라 구축과 콘텐츠 개발에 과감하게 투자해 건국대를 세계 100대 대학에 진입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전 교수가 신임 총장으로 선임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교내서 파열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건국대 교수협의회는 “법인이 총장후보자선정위원회 위원들에게 특정 후보 투표를 종용했다는 의혹이 다수 구성원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며 “즉각적이고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한다. 거짓 해명이 있다면 좌시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앞서 총학생회(이하 총학)는 총장후보자선정위원회(이하 총선위)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비판하는 대자보를 학내에 걸었다. 이 과정에서 총선위원장인 남모 교수의 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총학은 남 교수가 자신을 총선위원장에 셀프 추천했으며 총장 선출 규칙조차 숙지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개인 사업으로 부당 이득 의혹
총선위원장일 때도 잡음 나와

또 운영위원회 구성과 관련된 의결 과정에서도 비민주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총학은 남 교수가 총선위원장서 사퇴할 것을, 총선위원들은 불거진 문제에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총선위 운영위원회 측은 총학이 지적한 부분에 대해 큰 문제가 없다는 식의 답변을 내놓는 선에서 사안을 봉합하려 했다.

총학 관계자는 “총학의 지적 사항에 대해 일부 운영위원들은 문제될 부분이 없다고 답했다. 사퇴와 사과 등의 요구에 대해서도 답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후 총선위원장과 총선위에 대한 문제는 더 이상 논의되지 않았다. 
 

▲ 고성준 기자

그러던 중 총선위원장을 맡았던 남 교수에 대한 의혹이 나왔다. 남 교수가 학교 부속기관인 미래지식교육원(이하 미지원)과 남 교수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어학원을 이용해 개인적으로 부당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교육부에서 금지한 유학 프로그램을 변형해 개인 사업에 활용하고 있다는 민원도 건국대와 교육부 등에 제기됐다. 

지난 2012년 11월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는 국내 일부 사립대서 운영하는 ‘1+3 유학프로그램’에 대해 폐쇄를 통보했다. 1+3 유학 프로그램은 1년 동안 국내서 교양 과정과 영어 과정을 이수한 후 국제교류 협정을 맺은 외국 대학의 2학년으로 진학하는 제도다. 

처음부터
주도적으로

당시 교육부는 “1+3 유학 프로그램은 국내 학위와 무관해 고등교육법이 규정한 ‘교육과정 공동운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폐쇄 사유를 들었다. 국내 대학이 외국대학 학생을 모집·운영하는 사실상 외국 교육기관의 기능을 수행해 외국교육특별법에도 위반되며, 평생교육원을 통해 운영하더라도 평생교육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건국대도 2010년 9월 미지원과 미국 텍사스 A&M 대학교 커머스가 공동으로 ‘KU 글로벌 프론티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1년 동안 미지원서 교양수업과 어학과정을 이수한 뒤, 텍사스 A&M 커머스 2학년 과정으로 입학해 3년간 공부하는 프로그램이다. 2011년 2월부터 첫 신입생을 받기 시작했다. 

남 교수는 2011년 1학기부터 2012년 2학기까지 건국대 미지원서 ‘Backpacking and Camp’ ‘TAMUC’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US-business and professional speaking’ 등의 과목을 맡았다.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관계자가 “글로벌 프론티어 프로그램은 남 교수의 주도하에 진행됐다”고 말할 정도였다. 

문제는 교육부가 1+3 프로그램을 불법으로 규정한 이후에도 변종·신종 1+3 프로그램이 기승을 부렸다는 점이다. 당시 교육부는 “일부 유학원들이 미국 입학사정관을 통해 고교 내신과 면접만으로 미국 명문 주립대 입학이 가능하다고 광고하며 학생을 선발하고 있는데 이를 방관할 경우 큰 피해가 예상돼 필요한 조사와 조처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미지원 원장
그때도 했나?

남 교수에 대한 의혹을 처음 제기한 A교수는 그가 교육부서 지적한 것처럼 일종의 변종 1+3 프로그램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13년 교육부서 1+3 프로그램을 문제 삼자 학교 이름만 뺐을 뿐 똑같은 방식으로 텍사스 A&M 커머스로 편입할 학생들을 모집했다는 것. 

A 교수에 따르면 건국대 미지원에서 맡았던 (1+3 프로그램에서) 1의 역할을 미지원과 건국대 인근에 위치한 T 어학원이 양분하고 있다. 미지원서 텍사스 A&M 커머스 편입에 필요한 학점을 딸 수 있는 과목을 수강하고, 어학과정은 T 어학원을 통해 수강하는 시스템이다. A 교수는 “남 교수가 모집한 텍사스 A&M커머스 유학생들이 미지원 교양수업을 들으며 실제 T 어학원서 영어를 배우고 있다”고 폭로했다. 
 

▲ 대자보

T 어학원은 이른바 글로벌 프론티어 프로그램인 ‘텍사스 주립 대학교 토플면제 입학 특별전형’을 운영했다. 먼저 6개월 동안 텍사스 주립대 한국교육원서 ‘토플면제 ESL 대학 준비 영어과정’을 이수한 후 토플을 면제받는다. 이후 학점은행제를 포함한 국내 대학서 12학점을 취득하면 편입생이 돼 고교 내신을 면제받을 수 있다. 

문제는 T 어학원과 남 교수의 연관성이다. 건국대 감사실은 “남 교수에게 확인 결과, T 어학원과는 무관하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해보면 남 교수는 T 어학원과 상당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서 금지한 프로그램
약간만 변형해 사업에 이용?

먼저 T 어학원은 남 교수의 친인척이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건국대 감사실은 A 교수의 문제 제기에 답하는 과정서 “남 교수가 T 어학원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증거는 찾지 못했다”면서도 “남 교수의 처형이 T 어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사실이 확인돼 2017년 초 이미 인사 조치를 했다”고 말했다. 

또 T 어학원서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는 홍모씨는 남 교수의 아내라는 의혹이 나왔다. T 어학원 홈페이지서 홍씨는 ‘텍사스 A&M 커머스 교육대학서 영어 교육을 강의하고 있는 교수’이면서 ‘텍사스 A&M 커머스 내 글로벌 센터서 코디네이터를 맡아 한국 학생들의 학업상담, 취업 상담 등을 하고 있다’고 기재돼있다. 

이뿐만 아니라 T 어학원 홈페이지나 블로그, 유학 사이트서도 텍사스 A&M 커머스 입학 설명과 관련해 남 교수의 이름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2015년 T 어학원서 올려놓은 ‘미국 텍사스 주립대학교 ppt’ 자료에는 건국대 학점은행제에 대한 설명과 남 교수 이름이 자문교수로 기재돼있다.
 


앞서 남 교수는 2014년 12월 한 미술학원서 열린 텍사스 주립대 입학설명회 자리에도 참석했다. 당시 남 교수는 건국대 미지원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었다.

2018년 1월 한 유학 사이트에 올라온 글에는 남 교수의 이름이 일반전공의 문과 담당과 미술 전공의 심층면접관으로 기재돼 있다. A 교수는 “남 교수는 미지원 원장이 된 직후부터 학점은행제가 아닌 텍사스 유학생 모집에 열을 올렸다”며 “학교 기관을 불법 사업에 이용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다시 전화”
연락 안 돼

A 교수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 건국대 감사실은 “구체적인 근거가 없다면 추가 조사가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교육부는 A 교수의 민원을 들여다보고 있는 상황이다. 남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다시 전화를 하겠다”는 말을 남겼지만 끝내 연락을 주지 않았다. 이후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을 여러 차례 남겼지만 결국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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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