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노태악 이석’ 논란은 책임 회피? 권위의 상징?

지난 1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한 국정감사에서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이 인사말 직후 이석(국감장 퇴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노태악 이석 사태’는 단순한 의전 논쟁을 넘어 우리 정치와 제도 운영 방식이 지닌 균열을 드러낸 상징적 장면으로 기록됐다. 이번 논란은 크게 ▲헌법기관의 독립과 예우 ▲국회의 질의권과 책임성 및 정치적 균형과 형평성으로 요약된다.

헌법기관의 독립 및 예우는 관례? 특권?

가장 먼저 짚어볼 부분은 헌법기관 수장 또는 권위 있는 기관장의 국감 출석 및 응답 방식이다. 통상 대법원장이나 중앙선관위원장 등은 그 지위의 무게와 독립성 차원에서 국감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거나, 증인신문 없이 정해진 절차에 따라 답변하는 관례가 있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특히 법제사법위원회 국감에서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일반 증인신문 없이 응답한 것이 최근 사례로 꼽힌다. 이 같은 관례는 법적 근거보다는 정치적 관습, 암묵의 균형 감각 위에서 구축된 ‘존중의 룰’이었다. 헌법기관 수장에게 질의석에 나와 의원들의 날선 질문을 감수하라는 것은, 그 자체가 조직의 위상과 독립성을 위협하는 압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례가 곧 정의인 것도 아니며, 과도한 관용은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위험도 있다.

노 선관위원장의 이석을 두고 야당에선 “조희대는 붙잡아두고 왜 선관위원장은 이석하게 하느냐”며 형평성을 문제 삼았다. 대법원장과 중앙선관위원장의 예우가 상이하게 적용되는 것은 제도 안의 이중잣대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측은 “행안위에서는 선관위원장이 증인으로 채택된 바 없다”는 점을 들어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했다.

여기서 본질적 질문은 ‘관례’가 제도적 규범을 대체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관례가 존재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일방적으로 권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도구로 전락한다면 그것은 건강한 민주주의의 적이 된다.

국감은 행정·사정 권력에 대한 국회의 감시 기능을 구현하는 국회만의 핵심 장치다. 감사 대상 기관은 책임을 지고 국회에 소환돼 그 운영을 투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기관장은 국회에 나와 응답하는 것을 꺼리거나 국감장 이석을 선택함으로써 국회의 감시 기능을 약화시키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국회법에 따르면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질의응답하도록 돼있다”며 노 위원장이 이석하지 않고 응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국감 주체로서 국회의 권리를 강조한 것으로, 만약 기관장이 국회의 질문에 직접 응답하지 않는다면 형식적 수준에 그칠 위험이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이석 허용을 통해 신속한 절차 진행과 협의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행안위 민주당 간사인 윤건영 의원이 “법사위는 대법원장을 일반 증인으로 채택했으나 행안위는 선관위원장을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았다. 국감에서는 증인 채택 여부가 중요하다”고 맞섰다. 윤 의원은 “사전 협의 없는 문제 제기는 온당치 않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신정훈 행안위원장도 “필요하다면 여야 간사 간 협의를 거쳐서 추후에 절차를 갖는 데 대해 개방적으로 받아들이도록 하겠다. 오늘 노태악 위원장 증인 신문은 허용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이석을 허용했다.

신 행안위원장의 이석 허가가 떨어지면서 노 선관위원장은 유유히 국감장을 떠났다.

윤 간사의 ‘증인 채택’ 발언은 사실인 것으로 확인된다. 다만, 여야 간 간사 협의 과정 없이 여당 주도로 단독 의결돼 절차적 정당성에 의문부호가 붙는다.

불과 이틀 전엔 이와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됐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했다가 인사말 후 추미애 법사위원장으로부터 이석 허가를 받지 못해 자리에 남았던 것이다.

지난 13일, 추 법사위원장은 “국정감사에서 그동안 관례에 따라 대법원장은 인사 말씀만 드리고 이석했지만, 초대 김병로 대법원장, 조진만·민복기 대법원장 등은 국회에 출석해 질의응답에 응했다”며 “관례라는 이름으로 국회법에 명시된 조항을 회피할 수는 없다. 누구보다 법을 존중해야 할 대법원장님께서 관례라는 말도 책임회피할 방패로 삼지 않으시길 바란다. 참고인 신분으로 질의를 들어달라”고 요구했다.

질의응답 주체인가? 예외 대상인가?
정치적 형평성과 공방의 권력 게임

그러자 조배숙 국민의힘 의원은 “(조희대 대법원장을) 이석하게 해달라. 김병로 대법원장은 (그 당시엔) 재판 내용을 얘기하지 않고 행정 내용이었다”며 “참고인으로 진술하라고 하는데, 참고인은 출석을 거절하면 강제로 (질문을)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대법관)도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에도 인사 말씀만 하시고 마무리 말씀에서 의원님들 말씀에 대한 종합적 답변의 선례가 있다”며 “가급적 이 자리는 대법원장이 인사 말씀했고, 남은 부분은 미진하지만 제가 답변하면서 부족한 건 마무리 말씀하시는 것이, 이 광경을 지켜보는 모든 법관들과 국민들이 우리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교과에서부터 삼권분립, 사법부 존중, 국회 존중을 실현되는 모습을 원한다. 이석 허가를 요청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석 허가가 떨어지지 않았고, 결국 자리에 남아 의원들로부터 집중 질의를 받았다. 이날 조 대법원장은 의원들의 질의에 허공만 쳐다보거나 답변하지 않다가 오전 정회 후 국감장을 떠났다.

‘국회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제10조(증인·감정인·참고인)에 따르면, 위원회는 감사를 실시하는 데 있어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엔 증인, 감정인 또는 참고인을 출석하게 해 증언이나 진술 또는 감정하게 할 수 있다. 또 증인 등은 국감의 요구에 응해야 하며,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하지 않을 경우 과태료나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중앙선관위원장, 감사원장 등 헌법기관의 수장들은 ‘관례적으로’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아왔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같은 협의 중심주의는 때때로 권력을 가진 쪽에 유리한 구조를 고착시키는 경향이 있다. 질의권은 국회의 핵심 권한이며, 응답은 그에 따르는 책임이다. 기관장이 이를 회피하려 할 때 감시의 균형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번 이석 논란의 맥락을 정치적 차원에서 보면, 여야 간의 권력 경쟁과 균형 전략이 기저에 깔려 있다. 야당은 노 선관위원장 이석 허용을 ‘선거관리의 책임 회피’ 프레임으로 몰아가려 하고, 여당은 ‘절차적 정당성’과 ‘관례 존중’ 카드를 강조했다.

특히 야당은 ‘형평성 문제’를 여러 차례 강조했는데 이는 관례가 편파적으로 적용된다는 인식을 환기시키는 데 충분했다. 반면 여당은 ‘증인 채택 여부’라는 절차적 잣대를 앞세우며, 이석 여부는 증인 채택과 연결된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은 기관장에게 질의를 강제하는 것은 무리라는 논리였다.

다만 이런 논리는 절차의 벽을 수호하면서 실제 책임 회피의 통로로 작동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다. 제도적 힘의 균형, 권력 주체 간의 권한 나눔, 그리고 감시와 책임의 경계가 어디쯤 설정될 것인가가 핵심이다.

노 선관위원장 이석 논란은 단편적으로는 ‘국감장에서 책임을 피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더 깊게 들여다보면 우리 정치 시스템에 도사리는 구조적 긴장과 불균형을 드러내는 사건이었다. 관례와 형평성, 절차와 권력, 독립성과 책임의 사이에서 균형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보여준 사례다.

균형의 위기 앞에 선 민주주의

관례는 제도를 넘어설 수 없으며, 특히 권력 중심 기관에게 특혜로 작동할 가능성이 있다. 헌법기관이라고 해서 무조건 면책이나 특권이 보장돼선 안 된다. 게다가 국감 질의는 제도적 기둥으로, 응답하지 않거나 이석함으로써 감시 기능이 약화된다면 국감은 빛좋은 개살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또 정치적 압력과 절차주의는 늘 접전의 영역으로, 협의와 절차라는 허울이 책임 회피의 장치로 전락해서도 안 된다.

다만, 이번 논란이 단순히 한 인사의 국감 응답 여부를 둘러싼 논쟁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입법·사법·행정 간 권력 구조와 책임 메커니즘, 그리고 제도의 민낯을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돼야 할 것임은 분명하다. 

<kangjoom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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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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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