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서영교 ‘조희대 회동’ 발언과 풍문 정치

정치인의 발언 하나 하나는 단순한 언어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곧 정치적 메시지이자, 공적 책임을 동반하는 행위다. 근거가 불분명한 주장을 던져 놓고,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으면 슬그머니 물러서는 태도, 흔히 말하는 ‘아니면 말고’식의 정치 행태가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조희대 대법원장·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회동 발언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서 의원은 지난 5월19일 “회동 관련 녹취 파일은 있지만 회동 여부는 정확하지 않다.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인이 ‘정확하지 않다’고 이실직고하면서 정작 수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서 의원 발언의 본질은 ‘회동 여부의 사실’보다는 ‘수사 촉구’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정치인은 발언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국민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그 발언에는 반드시 사실에 대한 검증과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한국 정치권에는 오래전부터 ‘풍문 정치’가 뿌리내려오고 있다.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문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정치적 공격의 도구로 사용하는 관행이다.

서 의원의 발언 역시 이런 풍토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조 대법원장이 특정 정치 세력과 부적절하게 회동했다는 식의 주장은, 사실 확인 전까지는 극히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사법부 수장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흔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검증보다 ‘먼저 던지고 보는’ 방식이 더 익숙하다. 정치적 효과를 노리고 의혹을 제기한 뒤, 아니면 “내가 들은 바로는 그렇다”라며 발을 뺀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나 피로감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게 된다.

정치인의 발언은 일반인의 말과 다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며, 동시에 법적 면책특권까지 보장받는다. 그만큼 공적 발언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특히 사법부를 향한 정치인의 언어는 삼중, 사중의 신중함이 필요하다. 법관은 정치로부터 독립해 재판을 해야 하며, 사법부 수장의 명예는 곧 사법부 전체의 신뢰와 직결돼있다.

그러나 이번 사안에서 드러난 것은 정치인이 얼마나 손쉽게 ‘아니면 말고’식 태도로 발언을 휘두르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사법부의 권위를 흔들고, 사회 전반의 신뢰 구조를 붕괴시키며 아래와 같은 심각한 폐해도 불가피하다.

첫째, 공적 기관의 신뢰 훼손이다. 대법원장이 정치권과 은밀히 만났다는 뉘앙스가 퍼지는 순간,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대법원은 이미 불신의 대상이 된다. 진실이 밝혀져도 ‘연기 없는 불은 없다’는 식의 의심이 남는다.

둘째, 국민의 피로감 증폭이다. 정치권이 근거 없는 주장과 반박으로 공방을 이어가면, 국민은 정치 전반에 대해 냉소적 태도를 강화하게 된다.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이라는 체념이 사회를 지배하면, 민주주의는 건강한 긴장과 참여를 잃고 만다.

셋째, 언론 환경의 왜곡이다. 정치인의 발언은 언론에 빠르게 확산된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기사화되고, 그 기사가 다시 여론을 형성한다. 이후 사실이 아니라는 정정 보도가 나오더라도 이미 퍼져버린 의혹은 회수되지 않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혹은 제기될 수 있으며 이는 권력을 감시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러나 의혹 제기에는 철저한 근거와 확인 절차가 필수다. 책임 있는 정치인은 ‘아니면 말고’가 아니라 ‘이러이러한 근거에 따라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해야 한다.

최근 서 의원의 발언은 정치가 품격을 잃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한 실언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발언이 나온 순간부터 이미 사법부는 상처를 입었고, 국민은 혼란에 빠졌다. 정치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아니면 말고’식 정치 언어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풍문이나 음모론에 기대어 상대를 공격했다. “내가 들은 바로는…”,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이라는 식의 발언은 정치권의 일상어처럼 사용돼왔다.

문제는 이런 행태가 정치인의 단기적 이익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국가 전체의 장기적 신뢰에는 치명적이라는 점이다.

앞서 같은 달 14일,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재판장인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에 대한 향응 수수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김 의원은 “어떤 판사가 1인당 100~2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나오는 룸살롱에서 여러 차례 술을 마셨고 단 한 번도 그 판사가 돈을 낸 적이 없다는 구체적인 제보를 받았다”며 “그 판사가 바로 내란 수괴 윤 전 대통령을 재판하고 있는 지 부장판사다. (접대 받은 그가 향후)어떤 조치를 취하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명예를 생명처럼 여기는 법관에 대해서 의혹 제기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로비가 이뤄졌고 그것에 대한 증거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며 “그런 것 없이 좌표찍기하는 것은 예전에 베네수엘라에서 법관을 압박하거나 겁박할 때 쓰던 수법”이라고 반박했다.

이른바 ‘지귀연 룸살롱 의혹’은 대선이라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갑자기 툭’ 불거진 것이다. ‘구체적 제보’라는 허울 아래 1차, 2차로 사진을 공개했으나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라고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사진에 지 판사가 등장하긴 하지만 “사실이 아니며 접대받을 생각도 못했다” “삼겹살이나 소주를 사주는 사람도 없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해당 논란은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에 회부됐지만 민주당에서 더 이상 증거를 제공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유야무야됐다.

21대 국회였던 지난 2022년 10월엔 국정감사 당시, 김의겸 민주당 의원(현 새만금개발청장)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한 장관이 지난 7월 윤석열 대통령,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 30명과 청담동 고급 술집에서 술자리를 가졌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날 김 의원은 자리에 함께했다는 첼리스트의 음성 녹취도 함께 공개해 사실로 굳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 그해 11월23일, 해당 첼리스트가 경찰 조사에 출석해 “남자 친구를 속이려고 거짓말했다”고 진술하면서 허위 사실로 드러났다.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한 김 전 의원은 1심에서 원고 일부 패소했으며, 김 의원과 해당 사실을 보도한 매체 등에 8000만원의 손해배상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피고 측이 ‘청담동 술자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출한 소명자료만으로는 사실이 진실이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청담동 술자리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허위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1심 패소 판결에 김 전 의원은 지난달 18일 항소했다.

정치가 신뢰를 잃게 되면 결국 국민은 정치 자체에 무관심해지거나 혹은 강경한 포퓰리즘에 몰리는 극단적 선택에 놓이게 된다. 어느 쪽이든 민주주의에는 독이다.

이제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풍문에 기대는 정치가 아니라, 검증에 기반한 정치를 실천해야 한다. 사실 확인 없는 의혹 제기는 자제하고, 확인된 사실에 기반해 책임 있는 주장을 펼쳐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 차원에서 정치인의 발언 윤리에 대한 규범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면책특권이 ‘무책임의 면허증’으로 사용되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언론 역시 검증 없는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 정치인의 발언을 그대로 중계하기보다, 사실 여부를 따져 확인한 뒤 전달해야 한다. 정치와 언론이 함께 노력할 때만이 ‘아니면 말고’식 정치가 설 자리를 잃는다.

서 의원의 조희대 회동 발언은 단순한 개인의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정치가 여전히 ‘책임 없는 언어’의 관행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발언 하나하나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 아니면 말고가 아니라 “말한 대로 책임지겠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정치는 언어로 이뤄진다. 언어가 가벼우면 정치도 가볍다. 정치가 가벼워지면, 국민의 삶은 무겁다. 이제는 정치가 언어의 책임을 회복해야 할 때다. 그 시작은 바로, 근거 없는 말 한마디를 삼가는 것에서 출발한다. 

<kangjoom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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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청구서 받은 한국 제3의 선택

동맹 청구서 받은 한국 제3의 선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요구했다. 결국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원유 수입의 61%는 호르무즈와 연결돼있다. 하지만 미국의 대이란 전쟁에 사실상 편입되면 헌법·여론·대이란 관계까지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2020년 청해부대 독자 파병 모델이 다시 주목받는 가운데, 과연 한국은 한미동맹의 ‘청구서’와 국익 사이에서 제3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16일(현지시각)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에게 한미 연합 군사 훈련 규모의 대폭 축소를 지시했다. 그 근거는 “나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었다. 해협은 열고 전쟁 선 긋기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이같이 주장하면서 “오래전부터 미국이 한국과의 연합 군사 훈련에 참여하기로 동의해 온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한미 연합 훈련은 비용이 많이 들고, 그 비용의 상당 부분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부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북한을 일컬어 “내가 취임한 이래로 미국에 위협적이지 않고, 미국을 존중해 온 국가”라고 하며 “전적으로 부적절하고 적대적인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칭한 한미 연합 훈련은 지난달 17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된 한미 연합 훈련 ‘을지 자유의 방패’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폭 축소’를 지시한 이유는 “취소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훈련 대폭 축소의 근거로 자신과 김 위원장과의 관계를 들었지만, 국내에서는 다른 신호로 받아들였다. 국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호르무즈 파병을 위한 압박” 신호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월14일 자신의 트루스소셜 계정을 통해 중국·프랑스·일본·한국·영국 등 5개국을 지명하면서 “미국이 홀로 해상을 보호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했다. 이어 5개국에 “즉각 군함을 파견해서 호르무즈 해협 통행로 확보에 나서라”고 요구했다. 요구의 명분은 “이란이 해협을 봉쇄하면 이들 국가의 원유 공급에도 영향이 간다”는 것이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Hopefully’라는 표현을 활용했다. 명령보다는 조금 약한 표현이었지만, 전 세계는 ‘명령 아닌 명령’ 혹은 ‘요구 아닌 요구’로 해석했다. 5개국이 거론된 기준은 경제적 이익이었다. 이 때문에 동맹국이 아닌 중국도 파병 요구 대상으로 거론된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석유의 90%를 호르무즈 해협에서 조달하고 있다”는 명분을 제시했다. 물론 실제로는 경유분 40% 미만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오가고 있었다. 프랑스·영국은 미국과 나토 동맹을 맺고 있다. 한국·일본은 각각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다. 그런데 중국은 미국의 전략적 경쟁국이다. 중국에 대한 파병 요구가 없었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에 끊임없이 반복해 온 전형적인 부담 분담이 될 뻔했다. 중국이 파병 요구 대상에 포함된 순간 우리에 대한 파병 요구도 더욱 진지해진 것이다. 지난해 기준 우리 원유 수입의 약 61%와 나프타 수입의 약 54%가 호르무즈 해협과 연결돼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마냥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인 것이다. 중국도 참전? 트럼프식 부담 분담 새 기준 헌법 제5조 앞 고민 “무엇을 할 것인가?” 하지만 호르무즈 항행 보호와 미국의 대이란 전쟁 상황은 현실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는 군함 파견을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초의 압박을 가했던 지난 3월 독일·스페인·이탈리아는 “즉각적인 함정 파견 계획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독일과 협의하지 않았고, 독일군 파견에 필요한 유엔·유럽연합·나토 차원의 근거도 없다”고 반발했다. 프랑스도 미국의 대이란 작전과 거리를 두면서 미국 주도가 아닌 별도의 호르무즈 통행 확보 구상을 추진했다. 전투 상황이 안정된 후 이란과의 긴장 완화까지 병행하면서 유조선을 호송한다는 취지의 구상이었다. 영국·프랑스는 “방어적이고 독립적인 다국적 임무”라는 명분으로 다국적 방어 임무에 한정해 작전에 참여했다. 영국은 지난 5월 ▲자율 기뢰 탐색 장비 ▲타이푼 전투기 ▲구축함 HMS 드래곤 ▲대드론 장비 등을 보냈다. 하지만 “미국과 함께 이란과 싸운다”는 인상을 지우는 방식의 파병이었다. 애초 트럼프 대통령이 원했던 것은 미국 중심의 연합군이었다. 한국·일본·독일·호주 등은 영국·프랑스의 다국적 임무 공동성명을 지지했다.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우리나라에도 한미 연합 훈련 대폭 축소라는 현실적인 체감이 닥쳐왔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도 해상 초계기·군수 지원함·기뢰 제거 전력 등 구체적인 군사 옵션을 공개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는 “미국이 한국 안보를 위해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데, 한국은 미국이 필요로 할 때 왜 중동에서 역할을 하지 않느냐”는 트럼프식 계산에 대한 한국 정부의 응수였다. 한국의 호르무즈 파병에는 여러 쟁점이 있다. 그런데 그중 특히 두드러지는 것은 헌법적 쟁점이다. 우리 헌법 제5조 제1항은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란 전쟁의 성격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다. 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이미 미국·이란 전쟁을 침략 전쟁으로 규정하고 있다. 범여권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공개적으로 나오고 있다. 지난 3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이기헌 의원이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파병 요구는 동맹국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요구”라며 “국회는 국익과 헌법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무리한 파병 요청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엔 독자 지금은 실전 조국혁신당 김준형 의원도 “호르무즈에 단 한 척의 군함도 보내서는 안 된다”며 “한·미 상호방위조약에도 위반된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어떠한 국제적 분쟁이나 국제적 평화와 안전과 정의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방법으로 평화적 수단에 의해 해결한다”는 취지로 규정된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1조였다. 이 의원은 지난 7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다시 파병 반대 주장을 펼쳤다. 그는 “국제 평화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 전쟁을 부인한다는 헌법적 가치가 중요한 판단 근거였다”며 “전쟁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이후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에도, 국익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유엔 헌장 제2조 제4항은 유엔 회원국 간 영토 보전·정치적 독립에 대한 무력 위협·무력 행사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대한 예외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을 받은 공격과 무력 공격에 대응하는 개별적·집단적 자위권이다. 따라서 파병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위헌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결국 파병을 결정하더라도 파병 동의안의 문구와 파병 시 수행할 작전의 내용에 따라 성격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파병 이전에 파병의 성격부터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 특히 미국은 선전포고 없이 전쟁을 시작했다. 선전포고는 법적 판단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정치적·역사적 문제 제기는 충분히 가능하다. 정식 전쟁 선언과 명확한 전쟁 목표 없이 군사행동부터 선행됐다는 불안정성을 충분히 환기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 전쟁의 성격을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헌법적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아울러 우리 군의 임무가 무엇으로 규정되느냐에 따라 헌법적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가령 한국군이 ▲상선 호위 ▲기뢰 제거 ▲수색 구조 ▲해상 초계 ▲군수 지원 등에 한정된 임무만 수행한다면 이는 국제 항행 보호 및 자국민·자국 선박 보호 목적의 방어적 해외 파병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이란 함정 선제 타격 ▲이란 본토 공격 지원 ▲미군의 공격 작전에 정보·표적·화력 측면에서 직접 결합 ▲미국의 작전지휘체계에 편입 등의 상황이 파병의 성격으로 확정된다면 이는 전쟁의 일부로 평가될 수도 있다. 이미 이란은 지난 7일(현지시각) 에스마일 바가이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X에 한국어 성명을 발표했다. 이란은 이 성명을 통해 “현재 이란 국민은 미국의 침략적 행위에 맞서 자위하고 있으며, 여성·어린이를 상대로 한 미국의 전쟁범죄에 단호히 대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다른 국가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에서 군사적으로 주둔하거나 작전에 참여하는 것은 침략 행위의 당사자를 직접적으로 지지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고,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우리에 대해서는 “이란과 대한민국의 관계는 64년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양국 관계는 줄곧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다. 이란은 대한민국과의 우호 관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고 경고했다. 청해부대 딜레마 여론 문제도 간단하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는 지난 3월 <에너지경제신문>의 의뢰로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2명을 상대로 무선(100%) RDD 자동응답조사(ARS) 방식으로 진행한 미국의 해군 파병 요청 관련 긴급 현안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응답자의 60.9%는 파병에 반대했고, 37.2%는 “매우 반대”였다. 찬성 의견은 34.4%였고 “매우 찬성”을 선택한 사람의 비율은 17.9%였다. 당시에는 파병 반대 목소리가 더 컸다는 간접 근거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압박을 가한 현시점에서는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개혁신당 개혁연구원이 지난 6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17명을 대상으로 무선 RDD 방식의 ARS 자동응답 방식을 적용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여론은 첨예하게 엇갈리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 중 34.9%는 군 병력 파병을 지지했지만, “방어용 무기만 지원하자”는 의견도 31.8%였다. “군사 지원에 참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도 27.6%였다. 이렇듯 여론도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위헌·여론 비판을 피할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개혁연구원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3월 미국의 요청 이후 현재까지 호르무즈 해협 파병 여부를 최종 결정하지 않았다. 이 같은 정부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전체 응답자 중 50.9%는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을 선택했다. “잘하고 있다”는 응답을 선택한 비율은 42.2%였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을 선택한 비율은 6.9%였다. 지난 3월부터 파병 결정 시 실제 파병할 수 있는 유력한 부대로는 청해부대가 거론된 바 있다. 정부는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당시인 2020년 국회 동의 없이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확대해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한 적이 있다. 미국과 이란은 당시에도 충돌했다. 당시 정부는 ‘국군부대의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 파견 연장 동의안’의 단서 조항을 근거로 국회의 별도 동의를 받지 않았다. 동의안에는 “유사시 우리 국민 보호 활동 시에는 지시되는 해역을 포함한다”는 문구가 포함돼있었다. 이를 토대로 문재인정부는 청해부대의 활동 영역을 한시적으로 확대했다. 병력? 무기? 불참? 세 갈래 갈린 민심 다만 당시 청해부대 파병은 미국의 연합군 참여 요청과 무관하게 독자 파병 형식을 취했다. 이 옵션이 다시 부활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 상황은 2020년과 다르다. 미국이 다시 ‘미국이 요청한 다국적 호르무즈 군사작전 참여’를 요구하며 강하게 압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에는 그해 5월에 이르기까지 청해부대가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에 투입된 적이 없었다. 아울러 당시와 달리 현재 임무·지휘 체계·교전규칙이 질적으로 달라진다면 기존 파병 동의안을 확대 해석해 처리하는 것보다는 새로운 국회 동의를 받는 게 헌법 제60조의 취지에 부합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나폴레옹 놀이’를 시도하고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는 1806년 베를린 칙령을 통해 영국을 대상으로 한 대륙봉쇄령을 발동했다. 이는 유럽 전체와 영국 간 무역·교류를 모두 차단해 영국 경제를 질식시키려는 전략이었다. 그러던 중 러시아가 경제적 피해 때문에 대륙봉쇄령에서 이탈했고, 나폴레옹은 1812년 러시아 원정을 시도했다가 실패해 몰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도 나폴레옹 1세의 대륙봉쇄령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은 물론 전략적 적대국인 중국에까지 해협 확보를 공개적으로 요구한 상황이다. 이란에 대한 해상 봉쇄와 강한 경제 압박도 병행하고 있다. 여기에는 ▲적국의 경제적 생명선 조이기 전략 ▲봉쇄의 성공이 제3국의 협조에 달려 있다는 점 ▲패권국의 강력한 협조 요구 ▲경제·안보 조치가 동맹국 통제 문제로 확대된다는 점 등의 공통점이 있다. 실제로 이란은 미국의 봉쇄 조치 이후 원유 수출이 크게 감소해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군사적 부담 분산과 이란 고립이라는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려고 한다. 대륙봉쇄령은 비현실성에서 비롯된 유럽 각국의 비협조·밀무역을 시작으로 러시아의 이탈을 거쳐 러시아 원정의 대실패로 연결됐고, 결국 나폴레옹 1세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 균열과 국내 이익의 경계선을 교묘하게 오가면서 21세기판 대륙봉쇄령을 시도하려고 한다. 이란의 경고 우리의 응수 패권국이 자신의 전략적 목적을 위해 참여국이 감수할 수 있는 국익의 한계를 넘어서는 순간, 강제로 만든 연합은 내부로부터 붕괴되기 시작한다. 이 같은 흐름이 보이는 현 상황에서 지지율 하락세에 시달리고 있는 이재명정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23년 전 이라크 파병 문제에 시달리다가 지지율 하락과 진보 진영의 비토에 직면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뇌가 이 대통령의 눈가에 아른거리고 있진 않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