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후폭풍> 17번 공포의 기억들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12.09 15:46:48
  • 호수 1509호
  • 댓글 1개

45년 만에 꺼내 6시간 만에 껐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이 6시간 만에 해제됐다. 이로써 총 17번 선포된 대한민국 계엄령의 역사가 회자되고 있다.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일각에선 박근혜정부 당시 불발된 계엄령이 뒤늦게 터졌다는 분석도 있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뉘는데, 윤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에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경우 선포할 수 있다.

총 12번
비상계엄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되며,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된다.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 충돌이 일어났고, 이승만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 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이후 6·25 전쟁으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서도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이후에도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 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계엄군을 투입한 무력 진압을 실시해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민주화 항쟁 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에서는 대통령 의사만으로 계엄을 즉각 선포할 수 없도록 국무회의 심의 절차를 규정하고, 재적 국회의원 과반 찬성으로 해제가 가능하도록 국회의 사후 통제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가 이뤄졌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물론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검토한 증거가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주요 인사도 몰랐던 발표
국회 점거 실패로 6시간 만에 해제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이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면서 결국 전정권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1968년생인 박안수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46기 출신이다. 지난해 제75주년 국군의날 행사 기획단장을 역임한 뒤 지난해 10월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됐다. 이에 앞서 8군단장, 39보병사단장, 지상작전사령부 작전계획처장 등을 지냈다.

계엄사령관은 현역 장성급 장교 중에서 국방부 장관이 추천한 사람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비상계엄 선포와 동시에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한다. 계엄 지역의 행정기관 및 사법기관은 지체 없이 계엄사령관의 지휘·감독을 받아야 한다.

계엄사령관은 군사상 필요할 때에는 체포·구금·압수·수색·거주·이전·언론·출판·집회·결사 또는 단체행동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또 법률서 정하는 바에 따라 동원 또는 징발을 할 수 있으며, 부득이한 경우에는 국민의 재산을 파괴 또는 소각할 권한도 주어진다.

계엄사령관은 계엄 시행에 관해 국방부 장관의 지휘·감독을 받게 돼있다. 다만 전국을 계엄 지역으로 하는 경우와 대통령이 직접 지휘·감독을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대통령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5·18 이후
없었는데···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박근혜정부 때인 2017년 2월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비밀리에 만든 계엄 문건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대비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오후 9시30분쯤 ‘윤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감사원장·검사 탄핵, 예산 감액안 단독 처리 등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힐 수 있다’는 설이 돌기 시작하며 기류가 급반전했다. 일부 참모는 저녁 식사 중 윤 대통령의 긴급한 호출을 받고 급히 대통령실로 복귀했지만, 계엄 선포는 물론 긴급 담화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일단 이동했다고 한다.


특히 윤 대통령 지지율이 폭락하고 탄핵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준비된 두 계엄령이 비슷하다는 의미로 ‘평행이론’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다른 점은 계엄 관련 여론의 고려 여부다.

박근혜정부 기무사는 ‘탄핵 판결 직후 청와대 및 일부 지역 치안 위협’ 단계서 위수령을, ‘일부 서울·경기 지역 일대 폭력 시위로 치안 마비’ 때 경비계엄을, ‘전국적인 폭력 시위 확산으로 정부 기능 마비’ 상황서 비상계엄을 단계적으로 내리도록 계획했다.

박정부 때 
문건 보니…

반면 윤 대통령은 국민들의 인식이나 반발은 거의 고민하지 않은 채 곧바로 비상계엄 선포로 직진했다.

박정부 계엄 문건은 청와대, 헌법재판소, 정부서울청사, 국방부 등 서울 핵심시설 4곳에 3개 여단(약 3600명)을 투입하도록 계획했다. 이번엔 국회에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 병력 280명 정도를 투입한 것도 차이가 있다. 실행되지 않은 박근혜 계엄 문건에 비해 윤 대통령의 계엄이 훨씬 준비 없이 시행된 셈이다.

기무사 계엄 문건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국회의 계엄 해제 시도 시 조치사항’이었다. 지난 2017년 당시에도 여소야대 정국으로 계엄 해제가 가능했기 때문에 여당 의원들이 계엄 해제 의결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차단하는 한편, 불법시위 등에 참여하는 국회의원을 현행범으로 사법처리해 의결정족수에 미달하도록 유도한다는 실행 방안까지 수립된 바 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뒤 국회의원 체포·구금은 없었지만, 계엄군이 국회에 강제로 진입하는 상황은 벌어졌다. 지난 4일 오전 12시30분께 소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본관 창문을 깨고 건물 안으로 강제 진입했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계엄군이 국회에 난입했을 때 수도방위사령부 특수임무대가 이재명 대표를 체포·구금하려 했던 시도가 폐쇄회로(CCTV)로 확인됐다”며 “확인해보니 이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려는 체포대가 만들어져서 각기 움직였다”고 주장했다.

또 계엄사령과의 특별조치권을 발동해 체포와 구금, 압수, 수색, 거주, 이전, 언론, 출판, 집회, 결사에 한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검토 의견도 달렸다. 실제로 실행됐다면 집회와 시위 금지, 통행금지 등은 물론 광범한 기본권 제한 조치가 예상되는 내용이다. 

박근혜 기무사 문건 재조명
예고된 경계, 보수정권 악습

박근혜 기무사의 ‘치밀한’ 계엄 계획은 실현되지 않은 채 폐기됐다. 대규모 수사가 이뤄졌지만 내란음모 혐의가 아닌, 몇몇 관계자들이 허위 공문서 작성 등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는 데 그쳤다. 

일각에선 예고된 사태라는 의견도 있다. 앞서 야권이 언급한 계엄 준비 의혹도 재조명됐다.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은 지난 8월 “계엄령 빌드업 불장난을 포기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이에 여당은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일축했다.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이 지난 3일 비상계엄을 선언하면서 김 최고위원의 예언은 적중한 셈이 됐다.

민주당서 계엄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 건 지난 8월, 전당대회 무렵이었다. 당시 최고위원 후보였던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출신 민주당 김병주 의원이 당시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 후보로 지명한 데 대해 “탄핵과 계엄 대비용”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최고위원에 선출된 직후 첫 최고위원회의서도 “이러다가 탄핵 정국에 접어들면,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무너지지 않고 군을 동원해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은 아닌지 많은 국민이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총대’를 멘 건 김 최고위원이었다.

그는 전당대회 후 최고위원회의서 “최근 정권 흐름은 차지철 스타일의 야당 입틀막 국방부 장관의 갑작스러운 교체와 대통령의 뜬금없는 반국가 세력 발언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국지전과 북풍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작전이라는 것이 저의 근거 있는 확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박근혜 탄핵 국면서 계엄령준비서 정보를 입수, 추미애 당시 대표에게 제보했던 사람 중 하나”라며 ‘정보’에 근거한 의혹 제기라고 강조했다.

지난 9월에는 윤 대통령 또는 비서실장·안보실장을 향해 계엄령 준비 의혹과 관련해 공개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후엔 김 최고위원 등과 함께 국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정부가 계엄을 선포할 때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계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역사적인
평행이론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지난 9월 여야 대표회담 모두발언서 ‘계엄 준비설’을 언급하면서 실현 가능성을 놓고 논란이 된 적이 있지만, 당시 여당은 이를 괴담으로 치부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지난 9월1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의 회담서 “최근 계엄 이야기가 자꾸 나온다”며 계엄령 선포설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종전에 만들어졌던 계엄안을 보면 계엄 해제를 국회가 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회의원을 계엄 선포와 동시에 체포·구금하겠다는 계획을 꾸몄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주장했다. 

<smk1@ilyosisa.co.kr>

 

<12·3 계엄 후폭풍> 외신 반응 보니···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철회가 국제적인 이슈로 번져 낯 뜨거운 장면을 연출했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지난 3일(현지시각) 윤 대통령의 조치를 두고 “궁지에 몰린 윤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꺼내든 특별한 카드였지만, 한국 국회가 만장일치로 이를 거부하며 굴욕적인 실패로 끝났다”며 “대통령직을 정의할 치명적인 오점”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윤 대통령의 계엄령은 한국 민주주의의 힘을 시험했으며 그의 미래를 더욱 불확실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윤 대통령의 행동은 1960~1970년대 군부 독재자 박정희의 전술을 떠올리게 한다”며 그가 정치적 양극화를 악화시키는 자충수를 뒀다고 지적했다.

중국 신화통신 계열의 소셜미디어 계정 ‘뉴탄친’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일이 현실서도 벌어졌다”며 김건희 여사를 이번 사건의 주요 배경으로 언급했다.

뉴탄친은 계엄령 발령이 김 여사 특검법 재표결을 앞둔 시점서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하며 “윤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은 오히려 자신의 정치적 몰락을 자초했다”고 분석했다.

일본 주요 언론들 또한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상징하는 사건”이라며 관련 내용을 비중 있게 다뤘다. 윤 대통령이 국회에 군 투입을 지시한 점과 미국과의 외교적 긴장 상황 등을 상세히 전하며 “정치적 도박이자 한국 정치의 불안정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했다.

한편, 다른 나라의 주요 계엄령 사례로는 1949~1987년 대만을 꼽을 수 있으며, 대만 국민당 정부와 중국 공산당과의 갈등으로 계엄령을 선포해 약 38년 동안 유지됐다.

이 기간 동안 정치적 반대 세력 억압 및 표현의 자유 제한이 이뤄졌다.

필리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도 1972~1981년 계엄령을 통해 독재를 강화했다. 이를 통해 정치적 반대자들을 체포하고 언론의 자유를 제한했으며, 헌법을 개정해 권력을 공고히 했다.

1981~2012년 이집트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의 암살 이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계엄령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며 정치적 반대 세력을 억압하고 기본권을 제한하기도 했다. <성>

 



배너

관련기사

48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12·3 비상계엄 수사’ 스텝 꼬이는 내막

‘12·3 비상계엄 수사’ 스텝 꼬이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2·3 비상계엄 시태를 수사하는 검찰과 공수처의 스텝이 꼬이고 있다. 국무위원들에 대한 내란죄 적용 여부를 두고 법리 검토에 나섰으나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고 있다. 직권남용 미수도 문제다. 현행법상 처벌이 불가하다. 비상식적 지시와 명령을 내린 혐의를 받는 전·현직 장관들의 신병을 확보하기 이전부터 사건이 꼬이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의 검찰 공소장에는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을 포함한 국무위원들의 그릇된 판단이 적나라하게 적시돼있다. 윤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했다면 내란 동조 또는 직권남용 혐의를 받는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지시를 듣기만 했다면 다르다. ‘미수’에 그치기에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증언 거부 모르쇠로 <일요시사>가 입수한 윤 대통령의 공소장에 따르면, 그는 이 전 장관에게 특정 언론사와 여론조사 업체 봉쇄 및 단전·단수를 지시했다. 이 전 장관은 경찰 조사에서 이 내용은 빼놓고 진술했다. 단전·단수 지시 의혹에 대한 국회 질의에도 증언을 거부한 채 ‘모르쇠’로 일관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국무회의를 소집한 자리서 집무실로 들어온 이 전 장관에게 ‘24시경(자정에)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MBC, JTBC, 여론조사 꽃을 봉쇄하고 소방청을 통해 단전, 단수하라’는 내용이 기재된 문건을 보여주는 등 계엄 선포 이후 조치사항을 지시했다. 이 전 장관은 이에 포고령이 발령된 직후인 3일 밤 11시34분 조지호 경찰청장에게 전화해 경찰의 조치 상황 등을 확인한 다음 3분 뒤 허석곤 소방청장에게 전화해 “자정쯤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JTBC·MBC, 여론조사 꽃에 경찰이 투입될 것인데 경찰청서 단전·단수 협조 요청이 오면 조치해줘라”라고 지시했다. 허 청장은 소방청 차장에게 같은 지시사항을 전달했다. 공소장 내용은 경찰이 확보한 이 전 장관의 진술과 대조적이다. 이 전 장관은 지난해 12월16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단장 우종수 본부장) 조사에서 조 청장과 허 청장에게 연이어 전화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따로 지시를 내린 건 없다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은 “지금 어떤 상황인지 물어보려 조 청장에게 전화했는데, (전화를 받은 조 청장이)다른 누구와 대화하는 것 같았다”며 “아무 응답이 없어 조금 기분이 나빠서 대화도 전혀 하지 못한 채 제가 일방적으로 끊었다”고 했다. 또 “이후 소방청장에게 전화해 ‘사건 사고 들어온 것이 있느냐? 때가 때인 만큼 국민 안전을 각별히 챙겨달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장관은 ‘사전에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비상계엄에 관한 준비나 필요한 조치를 지시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취지의 경찰 질문에도 “전혀 없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이상민에 특정 언론사 단전·단수 지시 범죄 시도했는데 실패 미수범 처벌 불가? 윤 대통령은 계엄 선포 전 한덕수 국무총리와 조태열 외교부 장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의 만류에도 “종북 좌파들을 이 상태로 놔두면 나라가 거덜나고 경제든 외교든 아무것도 안 된다. 국무위원의 상황 인식과 대통령의 상황 인식은 다르다.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하며 계엄을 강행했다. 이후 조 장관에게 ‘재외공관을 통해 대외 관계를 안정화시켜라’는 내용이 기재된 문서를 건넸다. 윤 대통령 곁을 거의 내내 지켰던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윤 대통령 탄핵 심판에 첫 증인으로 출석해 “최 대행에게 전달된 ‘비상입법기구’ 쪽지와 조태열 장관에게 건넨 문건 외에도 한덕수 총리와 이 전 장관 등에게도 쪽지를 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국무위원 대다수는 윤 대통령이 최 대행과 조 장관에게 쪽지를 주는 걸 보지 못했고 윤 대통령으로부터 문건을 받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와 연결된 직권남용 혐의 관련자들에 대한 수사에 애를 먹었다. 공수처는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수괴) 및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공소제기 요구’ 의견으로 검찰에 이첩한 후 이 전 장관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법리 검토에 집중했다. 공수처는 이 전 장관 수사 역시 직권남용 혐의를 고리로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 등을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했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공수처는 내란죄에 대한 직접수사 권한이 없다.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되는가 여부를 검토해도 수사에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권남용죄는 범죄를 시도해 성공한 기수범 외 범죄를 시도했지만 실패한 미수범에 대해서는 별도 처벌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갈리는 의견들 실제 단전·단수 의혹의 경우 이 전 장관에게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해 처벌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허석곤 소방청장은 지난달 13일 국회서 이 전 장관으로부터 “특정 몇 가지 언론사에 대해 경찰청 쪽에서 (단전·단수)요청이 있으면 협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지만, 어떤 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공수처는 이 전 장관 사건을 다시 경찰에 이첩했다. 경찰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 비상계엄 특별수사단 관계자는 지난 3일 브리핑을 통해 “계엄 선포 당시 언론사 단전·단수 의혹을 포함해 경찰이 이 전 장관 사건을 넘겨받아 조사하기로 공수처와 협의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국수본 관계자는 “공수처로부터 자료를 받아 분석하고, 이 전 장관에 대한 소환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국수본은 지금까지 계엄 사태와 관련해 이 전 장관을 포함해 총 53명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이 중 당정 관계자는 28명, 군 20명, 경찰 5명 등이다. 지금까지 8명을 검찰에 송치했고 11명을 공수처 및 군 검찰에 이첩했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별동대 성격인 사조직 ‘수사2단’ 의혹을 받는 방정환 2기갑여단장과 구삼회 국방부 혁신기획관도 지난달 22일 검찰에 송치했다. 공수처는 경찰에 한 총리와 이 전 장관의 사건을 이첩한 데 이어 검찰에도 이 전 장관 사건을 이첩했다. 한 총리 사건을 재이첩하는 이유에 대해선 “중복 수사 방지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경찰이 지난해 12월 한 총리 조사를 한 차례 진행하고 계속 수사 중인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수처가 사건을 다시 넘긴 것을 두고 법조계에선 거센 비판이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 체포·구속에 전념한다며 속도를 내지 못하던 이 전 장관 사건도 결국 별다른 성과 없이 돌려보냈기 때문이다. 지난달 14일 허석권 소방청장 등 소방청 간부들을 조사한 게 사실상 전부였다. 이 전 장관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실제로 공수처는 내란죄 수사권이 없다는 지적에도 직권남용죄의 ‘관련 범죄’로 수사할 수 있다며 윤 대통령 사건을 건네받으면서 논란만 키웠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을 구속했지만, 이후엔 성과도 내지 못한 채 후 사건을 검찰에 돌려보냈다. 진행은 했는데… 윤 대통령에 대한 1차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하자 경찰과 협의도 없이 “집행을 경찰에 일임하겠다”고 밝혔다가 하루 만에 철회하기도 했다. 공수처 관계자는 이첩 요청해서 받은 사건을 다시 돌려보내며 두 피의자에 대한 수사가 지체됐다는 비판에 대해 “이 전 장관의 단전·단수 의혹이 국회서 불거지자마자 관련자 진술을 받았고 자료도 검토했기 때문에 지체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두 수사기관에 각각 사건을 반환하는 이유에 대해선 “경찰은 사건을 이첩할 때 3가지 혐의를 적시한 반면, 검찰은 군형법상 반란 혐의를 포함해 8가지 혐의를 이첩했다”며 “검찰이 보는 혐의점이 많고 현재 군 검사들이 함께 수사하는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가 반란 혐의를 수사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공수처는 비상계엄 태스크포스(TF)를 유지하며 경찰 간부 등 남은 수사 대상에 대한 수사에 총력을 모으기로 했다. 경찰이 공수처에 이첩한 피의자 총 15명 중 경찰 간부는 조 청장,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김준영 경기남부경찰청장(치안정감), 목현태 전 국회경비대장(총경) 등이다. 조 청장과 김 전 청장은 이미 구속 기소된 상태인 만큼, 김 청장과 목 전 대장만 남았다. 공수처 관계자는 “경찰 간부는 저희가 직접 기소할 수도 있어서 최선을 다해 수사력을 모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수처는 경무관 이상 경찰 공무원에 대한 기소권을 갖는다. 공수처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본부장 박세현 서울고검장)는 국무위원들과 군·경찰 간부들을 상대로 내란죄 적용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형법상 내란죄는 ‘우두머리’ ‘중요임무종사’ ‘부화수행’ 3단계로 구분해 처벌할 수 있다. 공수처, 사건 검경 재이첩 “시간만 날려” 중요임무종사·부화수행 혐의 적용 관건 나머지 수사는 ‘부화수행하거나 단순히 폭동에만 관여한 자’에 대한 처리가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피의자들이 계엄을 위헌·위법이라고 인식했는데도 적극적으로 막지 않거나 가담했는지 확인할 방침이다. 우선 검찰은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직전 소집한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 11명을 수사선상에 올려놨다. 검찰은 한 총리, 최 대행(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 장관 등이 계엄에 반대했다고 보고 있다. 국무회의 자체도 윤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계엄을 통보했을 뿐 실질적 논의도 없었던 데다 회의록도 없을 만큼 졸속으로 진행됐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들이 계엄에 대한 후속 조치나 사전 준비를 지시한 사실이 드러나면 부화수행이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검찰은 최근 정성우 전 국군방첩사령부 1처장을 비롯한 군 중간급 간부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다. 정 전 처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 확보를 지시하자 군법무관 회의를 거쳐 강하게 반대 의견을 냈다고 항변했다. 방첩사 병력을 출동시키긴 했지만 고무탄총·가스총만 가진 사실상 비무장 상태로, ‘선관위 청사 내부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지휘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정치인 체포조’ 지원 의혹에 연루된 경찰 간부들도 피의자로 입건해 지난달 31일 압수수색했다. 이들이 방첩사의 요청을 받고 체포조 지원을 지시하거나 묵인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혹이 사실로 확인되면 고위직은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중간직은 부화수행 혐의로 기소될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국회 주변 계엄령 위반자 체포인 줄 알았지 특정 정치인 체포인 줄 몰랐다는 입장이다. 머리 아픈 남은 수사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부화수행 혐의를 어떤 사람에게 적용해야 할지가 고비가 될듯하다. 계엄 관련 위헌·위법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 이들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로 받을 수 있는 문제도 고려 대상이다. 일부 참작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내란죄가 중대범죄인 만큼 부화수행도 5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해진다. 공무원·군인은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파면되고 연금이 절반으로 깎인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