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후폭풍> 17번 공포의 기억들

  • 김성민 기자 smk1@ilyosisa.co.kr
  • 등록 2024.12.09 15:46:48
  • 호수 15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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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만에 꺼내 6시간 만에 껐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이 6시간 만에 해제됐다. 이로써 총 17번 선포된 대한민국 계엄령의 역사가 회자되고 있다.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일각에선 박근혜정부 당시 불발된 계엄령이 뒤늦게 터졌다는 분석도 있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뉘는데, 윤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에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경우 선포할 수 있다.

총 12번
비상계엄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되며,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된다.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 충돌이 일어났고, 이승만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 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이후 6·25 전쟁으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서도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이후에도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 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계엄군을 투입한 무력 진압을 실시해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민주화 항쟁 뒤 1987년 개정된 현행 헌법에서는 대통령 의사만으로 계엄을 즉각 선포할 수 없도록 국무회의 심의 절차를 규정하고, 재적 국회의원 과반 찬성으로 해제가 가능하도록 국회의 사후 통제를 강화하는 등의 조치가 이뤄졌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물론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검토한 증거가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주요 인사도 몰랐던 발표
국회 점거 실패로 6시간 만에 해제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이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면서 결국 전정권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1968년생인 박안수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46기 출신이다. 지난해 제75주년 국군의날 행사 기획단장을 역임한 뒤 지난해 10월 육군참모총장에 임명됐다. 이에 앞서 8군단장, 39보병사단장, 지상작전사령부 작전계획처장 등을 지냈다.

계엄사령관은 현역 장성급 장교 중에서 국방부 장관이 추천한 사람을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비상계엄 선포와 동시에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한다. 계엄 지역의 행정기관 및 사법기관은 지체 없이 계엄사령관의 지휘·감독을 받아야 한다.

계엄사령관은 군사상 필요할 때에는 체포·구금·압수·수색·거주·이전·언론·출판·집회·결사 또는 단체행동에 대해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 또 법률서 정하는 바에 따라 동원 또는 징발을 할 수 있으며, 부득이한 경우에는 국민의 재산을 파괴 또는 소각할 권한도 주어진다.

계엄사령관은 계엄 시행에 관해 국방부 장관의 지휘·감독을 받게 돼있다. 다만 전국을 계엄 지역으로 하는 경우와 대통령이 직접 지휘·감독을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대통령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5·18 이후
없었는데···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박근혜정부 때인 2017년 2월 국군기무사령부(현 국군방첩사령부)가 비밀리에 만든 계엄 문건을 참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대비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오후 9시30분쯤 ‘윤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감사원장·검사 탄핵, 예산 감액안 단독 처리 등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힐 수 있다’는 설이 돌기 시작하며 기류가 급반전했다. 일부 참모는 저녁 식사 중 윤 대통령의 긴급한 호출을 받고 급히 대통령실로 복귀했지만, 계엄 선포는 물론 긴급 담화가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일단 이동했다고 한다.


특히 윤 대통령 지지율이 폭락하고 탄핵 요구가 높아지는 가운데 준비된 두 계엄령이 비슷하다는 의미로 ‘평행이론’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다른 점은 계엄 관련 여론의 고려 여부다.

박근혜정부 기무사는 ‘탄핵 판결 직후 청와대 및 일부 지역 치안 위협’ 단계서 위수령을, ‘일부 서울·경기 지역 일대 폭력 시위로 치안 마비’ 때 경비계엄을, ‘전국적인 폭력 시위 확산으로 정부 기능 마비’ 상황서 비상계엄을 단계적으로 내리도록 계획했다.

박정부 때 
문건 보니…

반면 윤 대통령은 국민들의 인식이나 반발은 거의 고민하지 않은 채 곧바로 비상계엄 선포로 직진했다.

박정부 계엄 문건은 청와대, 헌법재판소, 정부서울청사, 국방부 등 서울 핵심시설 4곳에 3개 여단(약 3600명)을 투입하도록 계획했다. 이번엔 국회에 육군특수전사령부(특전사) 병력 280명 정도를 투입한 것도 차이가 있다. 실행되지 않은 박근혜 계엄 문건에 비해 윤 대통령의 계엄이 훨씬 준비 없이 시행된 셈이다.

기무사 계엄 문건서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국회의 계엄 해제 시도 시 조치사항’이었다. 지난 2017년 당시에도 여소야대 정국으로 계엄 해제가 가능했기 때문에 여당 의원들이 계엄 해제 의결에 참여하지 않도록 하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을 차단하는 한편, 불법시위 등에 참여하는 국회의원을 현행범으로 사법처리해 의결정족수에 미달하도록 유도한다는 실행 방안까지 수립된 바 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뒤 국회의원 체포·구금은 없었지만, 계엄군이 국회에 강제로 진입하는 상황은 벌어졌다. 지난 4일 오전 12시30분께 소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본관 창문을 깨고 건물 안으로 강제 진입했다.

조승래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계엄군이 국회에 난입했을 때 수도방위사령부 특수임무대가 이재명 대표를 체포·구금하려 했던 시도가 폐쇄회로(CCTV)로 확인됐다”며 “확인해보니 이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려는 체포대가 만들어져서 각기 움직였다”고 주장했다.

또 계엄사령과의 특별조치권을 발동해 체포와 구금, 압수, 수색, 거주, 이전, 언론, 출판, 집회, 결사에 한해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검토 의견도 달렸다. 실제로 실행됐다면 집회와 시위 금지, 통행금지 등은 물론 광범한 기본권 제한 조치가 예상되는 내용이다. 

박근혜 기무사 문건 재조명
예고된 경계, 보수정권 악습

박근혜 기무사의 ‘치밀한’ 계엄 계획은 실현되지 않은 채 폐기됐다. 대규모 수사가 이뤄졌지만 내란음모 혐의가 아닌, 몇몇 관계자들이 허위 공문서 작성 등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는 데 그쳤다. 

일각에선 예고된 사태라는 의견도 있다. 앞서 야권이 언급한 계엄 준비 의혹도 재조명됐다. 민주당 김민석 최고위원은 지난 8월 “계엄령 빌드업 불장난을 포기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이에 여당은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일축했다.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이 지난 3일 비상계엄을 선언하면서 김 최고위원의 예언은 적중한 셈이 됐다.

민주당서 계엄 주장이 나오기 시작한 건 지난 8월, 전당대회 무렵이었다. 당시 최고위원 후보였던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출신 민주당 김병주 의원이 당시 김용현 대통령경호처장을 국방부 장관 후보로 지명한 데 대해 “탄핵과 계엄 대비용”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그는 최고위원에 선출된 직후 첫 최고위원회의서도 “이러다가 탄핵 정국에 접어들면, 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무너지지 않고 군을 동원해 계엄령을 선포하는 것은 아닌지 많은 국민이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총대’를 멘 건 김 최고위원이었다.

그는 전당대회 후 최고위원회의서 “최근 정권 흐름은 차지철 스타일의 야당 입틀막 국방부 장관의 갑작스러운 교체와 대통령의 뜬금없는 반국가 세력 발언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국지전과 북풍 조성을 염두에 둔 계엄령 준비작전이라는 것이 저의 근거 있는 확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박근혜 탄핵 국면서 계엄령준비서 정보를 입수, 추미애 당시 대표에게 제보했던 사람 중 하나”라며 ‘정보’에 근거한 의혹 제기라고 강조했다.

지난 9월에는 윤 대통령 또는 비서실장·안보실장을 향해 계엄령 준비 의혹과 관련해 공개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후엔 김 최고위원 등과 함께 국방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정부가 계엄을 선포할 때 국회 동의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계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역사적인
평행이론

민주당 이재명 대표도 지난 9월 여야 대표회담 모두발언서 ‘계엄 준비설’을 언급하면서 실현 가능성을 놓고 논란이 된 적이 있지만, 당시 여당은 이를 괴담으로 치부한 바 있다.

이 대표는 지난 9월1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의 회담서 “최근 계엄 이야기가 자꾸 나온다”며 계엄령 선포설을 언급한 바 있다. 그는 “종전에 만들어졌던 계엄안을 보면 계엄 해제를 국회가 요구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회의원을 계엄 선포와 동시에 체포·구금하겠다는 계획을 꾸몄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주장했다. 

<smk1@ilyosisa.co.kr>

 

<12·3 계엄 후폭풍> 외신 반응 보니···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철회가 국제적인 이슈로 번져 낯 뜨거운 장면을 연출했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지난 3일(현지시각) 윤 대통령의 조치를 두고 “궁지에 몰린 윤 대통령이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꺼내든 특별한 카드였지만, 한국 국회가 만장일치로 이를 거부하며 굴욕적인 실패로 끝났다”며 “대통령직을 정의할 치명적인 오점”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윤 대통령의 계엄령은 한국 민주주의의 힘을 시험했으며 그의 미래를 더욱 불확실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했다. 이어 “윤 대통령의 행동은 1960~1970년대 군부 독재자 박정희의 전술을 떠올리게 한다”며 그가 정치적 양극화를 악화시키는 자충수를 뒀다고 지적했다.

중국 신화통신 계열의 소셜미디어 계정 ‘뉴탄친’은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리는 일이 현실서도 벌어졌다”며 김건희 여사를 이번 사건의 주요 배경으로 언급했다.

뉴탄친은 계엄령 발령이 김 여사 특검법 재표결을 앞둔 시점서 이뤄졌다는 점에 주목하며 “윤 대통령의 극단적 선택은 오히려 자신의 정치적 몰락을 자초했다”고 분석했다.

일본 주요 언론들 또한 “한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상징하는 사건”이라며 관련 내용을 비중 있게 다뤘다. 윤 대통령이 국회에 군 투입을 지시한 점과 미국과의 외교적 긴장 상황 등을 상세히 전하며 “정치적 도박이자 한국 정치의 불안정성을 보여준 사례”로 평가했다.

한편, 다른 나라의 주요 계엄령 사례로는 1949~1987년 대만을 꼽을 수 있으며, 대만 국민당 정부와 중국 공산당과의 갈등으로 계엄령을 선포해 약 38년 동안 유지됐다.

이 기간 동안 정치적 반대 세력 억압 및 표현의 자유 제한이 이뤄졌다.

필리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도 1972~1981년 계엄령을 통해 독재를 강화했다. 이를 통해 정치적 반대자들을 체포하고 언론의 자유를 제한했으며, 헌법을 개정해 권력을 공고히 했다.

1981~2012년 이집트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의 암살 이후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계엄령을 장기적으로 유지하며 정치적 반대 세력을 억압하고 기본권을 제한하기도 했다.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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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