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후폭풍> 경제 삼킨 ‘1호 영업사원’

나라 말아 먹을 작정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꺼낸 ‘비상계엄’ 카드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을 부각시킨 것도 모자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진단마저 나온다. 1호 영업사원을 자처했던 대통령이 국가 경제를 극단으로 치닫게 만든 꼴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을 자처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세일즈 외교에 따른 경제성과가 확연하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켰다. 지난달 4일 대통령실은 2022년 6월부터 2024년 10월까지 윤 대통령이 정상외교를 통해 총 929억달러(약 122조원) 규모의 경제성과를 달성했다고 언급했다. 임기 2년6개월 동안 매달 약 4조3000억원의 국익을 창출했다는 계산이었다.

공치사
바쁘더니…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이 수십조원 규모의 투자 유치를 비롯해 대형 사업 수주, 역대 최대 규모의 외국인 투자 등을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스페인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에 윤 대통령이 참석해 역대 최대 방산 수출의 활로를 뚫었고,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간 정상회담 이후 300억달러(약 40조원) 투자 유치, 체코 방문을 통한 원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일조했음을 분명히 했다.

다만 윤 대통령의 치적으로 부각시킨 경제 성과는 순식간에 빛을 잃어버렸다. 윤 대통령이 꺼내 든 ‘비상계엄’ 카드가 엄청난 악재로 작용했고, 급기야 세일즈 외교를 통한 경제 성과를 집어삼킨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계엄 정국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계엄이 해제된 직후부터 국내 경제 전반에 엄청난 후폭풍이 휘몰아쳤다. 당장 원/달러 환율은 40원 넘게 오르는 등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분위기가 감지됐다. 

증시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연출됐다. 지난 4일 코스피는 1.97% 내린 2450.76, 코스닥지수는 1.91% 내린 677.59로 을 열었다. 코스피에서는 외국인이 3000억원 넘게 매도하면서 하락을 주도했고, 코스닥에서는 개인이 순매도를 나타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비트코인 가격은 한때 30% 이상 폭락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불안정한 국내 정국은 뉴욕 증시에도 영향을 미쳤다. 지난 3일(미국 동부시각)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전날보다 76.47포인트(0.17%) 내린 4만4705.53에 장을 마쳤다. S&P500지수는 전날보다 2.73포인트(0.05%) 오른 6049.88, 나스닥종합지수는 76.96포인트(0.40%) 상승한 1만9480.91에 거래를 마감했다.

계엄이 국가 신용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의 후폭풍이 적시 해소되지 않으면 정부 역량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4일 무디스 애널리틱스 보고서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 시 언급한 예산안을 둘러싼 교착상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정치적 갈등이 장기화해(법안을 통과해 효과적으로 실행할 정부 역량과) 경제활동에 영향을 끼치면 신용도에 부정적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2015년 12월 Aa3에서 Aa2로 상향한 후 10년째 같은 등급을 유지하고 있다. Aa2는 무디스 등급 중 세 번째로 높다. 프랑스, UAE 등과 같은 등급이다. 국가신용등급 전망도 ‘안정적(Stable)’이다.


계엄 후폭풍이 경제 전반에 여파를 미치자, 정부는 급하게 50조원 규모의 증시안정펀드·채권안정펀드를 가동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지난 4일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금융감독원장, 금융공공기관 등 유관기관장 및 금융협회장들과 ‘금융상황점검회의’를 열었다.

세일즈 외교 과시하더니…
잘못된 선택…순식간에 나락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10조원 규모의 증시안정펀드가 언제든 즉시 가동될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며 “채권시장·자금시장에는 총 4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 안정펀드(채안펀드)와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을 최대한 가동해 안정을 유지하겠다”고 언급했다.

이어 “금융당국은 정책금융기관, 금융유관기관 금융협회들과 함께 금융시장의 불안 확산을 방지하고, 금융시장이 정상적 안정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해나갈 것”이라며 “금융회사 외환건전성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면서 증권금융을 통한 외화유동성 공급 등을 통해 환율 상승에 따른 마진콜(추가 담보금 요구) 위험 등에도 대응하겠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비상계엄을 계기로 국내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과 국내 증시 저평가 현상이 심화할 수 있다는 진단이 계속되고 있다. 계엄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한국 증시가 다른 시장보다 저평가 받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더욱 부추길 명분을 줬다고 전했다.

그동안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요인으로는 남북 대치와 재벌 중심의 불투명한 기업경영 등이 꼽혀왔으며 최근에는 경기 부진과 미중 갈등이 우려 요인이었다. 여기에 계엄 사태가 부정적 요인으로 추가된 형세다.

혼자 터트리고
모두가 고생

실제로 <블룸버그통신>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이 한층 뚜렷해질 수 있다고 봤다. 계엄 여파로 선진 증시 지수에 편입되고 재벌들의 기업 지배를 개선하려던 당국의 시도가 약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 증권가에서는 단기적으로 외국인 중심의 투매급 움직임이 나타날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지원 KB증권 연구원은 “약해진 펀더멘털(기초여건)에 더해진 정치 불확실성은 원화 자산의 매력도를 반감시키는 요인”이라며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비상계엄령 선포 이슈가 빠르게 해소돼 한국 금융시장의 변동성 확대가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나정환·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단기적으로는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주식시장에서 이탈하며 주가가 급락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으나, 해당 이슈가 빨리 해소된 만큼 주가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며 “이번 이슈는 한국 주식시장의 펀더멘털 변화 요인이 아닌 만큼 매수 대응이 유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대왕고래 프로젝트와 체코 원전 수주 등 산업통상자원부가 추진하던 국책사업들이 향후 문제없이 추진될 수 있을지에 촉각을 세우는 분위기다. 야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해 온 상당수 국책사업이 동력을 잃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불편한 현실
어두운 전망


당장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사업인 대왕고래 프로젝트의 경우 전망이 한층 어두워졌다. 계엄 사태가 벌어지기 전부터 불명확했던 내년 예산 문제가 전액 삭감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야당과 협상이 이뤄지지 못할 경우 자본 잠식 상태인 석유공사가 500억원에 달하는 추가 재원을 마련해야 하는 분위기다.

체코 원전 사업 역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그간 야권은 불투명한 수익성 문제에 주목하면서 해당 사업에 물음표를 던진 바 있다. 정부는 현재 신규 원전 건설 사업 우선협상대사자로 선정된 상황인데, 최종 계약은 내년 3월경으로 예정돼있다.

<heatyang@ilyosisa.co.kr>

 



배너

관련기사

48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