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후폭풍> ‘끝까지 갈’ 국회의 반격

계엄군 앞에 여야 없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는 155분 만에 끝났지만 여진은 이보다 훨씬 길게 이어지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서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들이닥치는 모습이 쉽게 상상되지 않았던 탓일까? 국회는 기어코 방아쇠를 당긴 윤 대통령을 향해 매섭게 회초리를 들었다.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이후 약 44년 만의 계엄령이었다. 한달음에 국회로 달려간 여야 국회의원 190명은 속전속결 만장일치로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가결시켰다. 긴박했던 새벽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자 윤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섣불렀던
자책골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가결 직후 본회의장을 빠져나와 “이번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헌법과 계엄법이 정한 비상계엄 선포의 실질적 요건을 전혀 갖추지 않은 불법이자 위헌”이라고 강조했다. 계엄법에 따르면, 비상계엄 선포는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이 과정 없이 기습으로 선포한 만큼 절차적으로 명백한 불법이라는 설명이다.

민주당은 “즉시 하야하라”고 소리를 높이며 윤 대통령이 즉각 퇴진하지 않을 경우 탄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탄핵, 하야 등 직접적인 단어와 거리를 두던 민주당이 공식적으로 강경한 입장을 밝힌 셈이다.

민주당보다 앞서 윤석열정부 퇴진을 외친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은 윤 대통령에게 계엄령을 건의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 대한 수사와 처벌을 주장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윤 대통령은)군사 반란에 준하는 행위를 했기 때문에 대통령의 자격이 없다”며 “국회서 탄핵돼야 할 모든 요건을 갖췄다”고 설명했다.

개혁신당은 “탄핵이 아니라 더 강력한 처벌을 해도 모자란 미치광이 짓을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지금 벌이고 있다. 미치광이를 몰아내는 데에는 여야가 있을 수 없다”고 비판했으며 진보당과 사회민주당, 기본소득당도 윤 대통령의 탄핵을 주장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조차 계엄 선포 직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위법·위헌적 비상계엄을 막아내겠다”고 밝혔다.

야6당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위헌이라는 점을 입 모아 강조했다.

헌법 제77조 1항에 따르면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 비상사태에 있어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계엄령 떨어지자 앞다퉈 여의도로 집결
“국회를 적으로 돌린 대통령” 뒷감당은?

윤 대통령은 담화문을 통해 ‘민주당의 입법·예산안 독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등을 이유로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는데 해당 이유가 전시·사변에 맞먹을 만큼 비상사태인지 강한 의문이 남는다는 설명이다.

비상계엄 선포에 대한 절차적 문제도 논란이다. 계엄법 제3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할 때는 시행 일시와 지역 및 계엄사령관을 공고해야 한다.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된 시점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마친 약 1시간 후인 지난 3일 오후 11시 반 경으로 대부분의 절차를 건너뛴 것이다.

비상계엄 선포 직후 본회의장으로 향하던 한 민주당 중진 의원은 <일요시사> 취재진과 만나 “국회에 통보도 없이 담화 형식으로 (계엄을)선포한 게 제정신인가”라며 이 역시 위헌 소지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되느냐’는 질문에는 “위헌 여부를 따져봐야 하지만 지금 상황이 내란이 아니면 대체 무엇인가”라며 “내란죄에 가까운 행위다. 모든 죄를 따져 국민의 심판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야6당은 이런 요소가 담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지난 5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했다. 비상계엄 선포가 탄핵의 화약고에 불을 붙인 셈이다.

국민의힘엔 비상이 걸렸다. 국민의힘 지도부조차 예견하지 못한 탓이었는지 계엄 선포 당일 밤에도 연일 오락가락했으며 더 나아가 분열되는 모습까지 보였다.

“국회 차원서 계엄 해제를 요구하겠다”며 국회로 향하던 한 대표는 “당사에 머물러야 한다”는 국민의힘 추경호 원내대표와 언성을 높였던 것으로도 전해진다. 결국 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투표에는 국민의힘 의원 18명(곽규택·김상욱·김성원·김용태·김재섭·김형동·박수민·박정하·박정훈·서범수·신성범·우재준·장동혁·정성국·정연욱·조경태·주진우·한지아)만 참여했다.

여당도
커버 불가?

이들은 대부분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된 인사다.

여당 내에서도 윤 대통령을 향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여야 간의 극한 대립 가운데 국민을 볼모로 삼은 비상식적 국회 운영으로 파탄에 이르렀다”면서도 “그 어떤 이유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대한민국 헌법 가치를 훼손하는 명분 없는 정치적 자살 행위에는 절대로 동조할 수 없다. 대통령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번 사태에 대해 이제 국민께 나와 소상한 설명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같은 당 안철수 의원도 “12월3일 윤 대통령의 불법적 계엄 선포는 실패했다. 헌정 유린이자 대한민국 정치사의 치욕”이라며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질서 있게 물러나실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후폭풍이 몰아치자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오후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한 대표, 추 원내대표, 그리고 국민의힘 중진인 주호영·나경원 ·김기현 의원 등과 함께 대책 회의를 가졌다.

문제는 대책을 내놓겠다던 윤 대통령의 발언이 또다시 야당을 자극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민주당이 남발하는 탄핵 폭거를 막는 게 뭐가 잘못이냐”며 경고의 의미로 계엄령을 선포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게 화근이었다.

이날을 기점으로 한 대표의 아리송한 행보가 시작됐는 평이 나온다. 한 대표는 “당 대표로서 이번 탄핵은 준비 없는 혼란으로 인한 국민과 지지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통과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면서도 “계엄이 경고성일 수 없다. 계엄을 그렇게 쓸 수 있겠나”라는 입장을 밝혔다.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이 사태는 저와 국민의 인식과는 큰 차이가 있었고 공감하기 어려웠다”며 “당 대표로서 대통령의 탈당을 다시 한번 요구한다”고 말했다. 추 원내대표가 이번 사태에 대해 국민에 대한 사과와 ‘박근혜 탄핵 트라우마’ 두 가지만 언급한 것과 비교했을 때 사뭇 다른 태도라는 해석이다.

분명히
한배인데…

한 대표가 총대를 메고 사태 수습에 나섰다는 풀이가 나오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된 차별화를 노리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 대표의 행보에 탄력을 받아 친한계도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 내 ‘소장파’로 분류되는 김재섭·김상욱·김소희·김예지·우재준 의원은 지난 5일 오후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을 향해 ‘진실된 사과’와 ‘책임자의 조사 및 처벌’을 촉구하며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을 제안한다”고 깜짝 발표했다.

임기 단축은 탄핵으로 인한 국정 마비와 국론 분열을 막기 위한 필수적인 조치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20%대로 추락하던 때 개혁신당이 임기 단축 카드를 제시한 적 있지만 국민의힘 내부서 이토록 날 선 목소리가 여과 없이 흘러나온 건 처음이다.

야당의 탄핵 시도를 막기에도 벅찬 상황서 친한계의 독자적인 행보가 곱게 보일 리가 없다. 이런 가운데 당의 화합을 강조한 건 원내가 아닌 원외 인사라는 점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두 번 다시 박근혜처럼 헌정이 중단되는 탄핵 사태가 재발돼선 안 된다”며 “국민의힘은 당력을 분산시키지 말고 일치단결해 탄핵은 막아야 한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친윤(친 윤석열)계로 꼽히는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도 “지금 정부와 여당이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은 우리 앞에 닥친 혼란을 해소해 국민을 안심시켜 드리는 것”이라며 “분열은 무책임일 뿐이다. 각자의 이견은 접어두고 오직 민생과 국가 안위에 전념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기 단축 주장한 국힘 ‘소장파’
앞으로 첩첩산중…어두운 윤 앞날

야6당이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보고하던 날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면서 갈등이 다소 봉합되는 듯했다. 추 원내대표는 “대통령 탄핵은 또 한 번의 역사적 비극을 반복하는 일이 될 것”이라며 “108명 의원의 총의를 모아 반드시 부결시키겠다”고 단결을 강조했다.

추 원내대표는 탄핵안 부결 당론에 사실상 한 대표도 동의했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당시 국민의힘 소장파가 “탄핵 표결 관련해 정해진 바 없다” “(임기 단축 개헌에)공감하는 당내 의원이 있다”고 주장했던 만큼 추가 균열이 생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여당이 주춤하는 사이 민주당은 추가적인 맹공을 퍼부었다. 지난 5일 각종 상임위서 ‘비상계엄 관련 긴급 현안 질의’를 열고 군 관계자들을 향해 날을 세운 것이다.

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국방위 현안 질의서 그날 밤 계엄사령관으로 임명됐던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향해 “난 총장으로 인정하지 못한다. 앞으로 ‘당신’이라고 호칭하겠다”며 “대한민국 조국과 국민에 총칼을 겨눴다.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해야 하고 단두대서 처단돼야 할 인물”이라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이날 국민의힘이 “내란죄에 동의하지 못한다”며 집단 퇴장하는 일이 벌어졌지만 자리를 지킨 이들도 있었다. 국민의힘 성일종 국방위원장은 현안 질의서 “선진 대한민국서 계엄 선포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안타깝다”며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그 과정서 위법은 없었는지 등을 국민 앞에 명명백백히 밝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국방위 소속 국민의힘 유용원 의원과 한기호 의원은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참으로 난감하고 국민께 죄송하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다.

한 치 앞도
안 보인다

여의도 뒤편에선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선포로 그 어렵다는 여야 통합을 해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 아직 두 진영 사이에 분명한 온도차가 존재하지만 탄핵과 하야, 무엇이 됐든 윤 대통령에게 치명적이긴 매한가지다.

계엄령이 휩쓸고 간 국회는 그야말로 격변의 시간을 달리고 있다. 44년 만에 다시 마주한 계엄 사태에 국민도 여의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연말을 앞두고 대한민국 정치 진영이 크게 흔들릴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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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안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지방선거 이후 선거관리위원회에 쏟아지던 폭발적인 관심이 사그라들고 있다. 그로 인한 나비효과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정작 핵심은 비껴가는 모양새다. 지난 6월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들어 처음 열리는 대형 정치 이벤트였던 만큼 국민의 관심이 매우 높았다. 이미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은 압승으로 국정 운영에 동력을 더하고자 했고,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등으로 궤멸 직전에 몰려 있던 보수 진영은 ‘샤이 보수’를 기대하며 유권자에게 읍소했다. 사상 초유 참정권 침해 결과는 절묘했다.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를 때 판단하는 광역단체장 수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16개 시도 중 12곳을 석권했다. 하지만 서울을 내줬고 국민의힘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도 빼앗지 못했다. 선거 운동 초반 16개 시도를 전부 싹쓸이할 것으로 예상했던 상황이라 민주당의 실망은 더욱 컸다. 특히 서울에서의 패배는 뼈아팠다. 이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서울시장을 내주면서 중간 평가를 받았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방선거 이후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규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 먹히지 않았고, 지방선거 직전 상장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여파가 지지율을 흔들었다. 여기까지는 지방선거 이후 늘 나타났던 여파였다. 문제는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실한 관리로 선거의 근간 자체가 흔들렸다는 점이다.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각,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지가 부족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선거를 총체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태 이후 선관위의 대응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선관위는 투표지가 부족한 투표소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선관위는 6월5일 투표지를 추가로 송부한 투표소는 67개, 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는 50곳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사흘 뒤인 6월8일 140개 투표소에 추가 투표용지가 송부됐고, 이중 91곳에서 투표지가 부족했다는 발표로 바뀌었다. 3일 만에 각각 거의 두 배씩 늘어난 것이다. 결국 조현욱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을 위원장으로 한 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졌다. 진상규명위원회는 10일(6월10일~19일)간의 조사 끝에 “선거 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에 관한 책임 소재에 따라 수사 의뢰를 권고한다”며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 수뇌부 등 12명을 지목했다. 채용 비리 의혹·소쿠리 투표 투표지 부족 사태로 민심 폭발 진상규명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당시의 상황을 보면 상급위원회에 대한 신속한 보고 체계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며 “상급위원회의 지휘권도 전혀 발동되지 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서울시선관위가 투표 시간 연장을 중앙선관위 보고나 논의 없이 결정했으며 송파구선관위가 투표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표를 개시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관위 해체에 가까운 대대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선관위의 과거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휴직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상이 10년여 동안 이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선관위의 존재 의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선거 기간 휴직자의 증가로 인력 공백이 생기면서 ‘소쿠리 투표’ 사건 등 부실 관리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이번 선거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중앙선관위가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차례의 선거 중 휴직자 통계’에 따르면 6·3 지방선거 당일 선관위 직원 179명이 휴직 상태였다. 휴직자의 71%는 육아휴직(127명), 일반 질병(30명), 가족 돌봄 및 해외 동반 휴직(8명), 유학·병역 및 노동조합 전임자(1명) 등의 사유였다. 특히 최근 4년 새 진행된 다섯번의 선거에서 두 차례 이상 휴직한 직원이 97명으로 집계됐다. 2회 휴직자는 77명, 3회 휴직자는 19명이다. 다섯번의 선거 중 4번이나 휴직한 직원도 있었다. 선관위는 휴직자의 대다수가 육아 휴직자인 만큼 법적 권리를 보장했다는 뜻을 밝혔다. 국가공무원법 제71조에 따르면 자녀 양육 및 임신·출산을 사유로 공무원이 휴직을 신청하면 임용권자는 휴직을 명해야 한다. 선관위 직원들의 휴직을 강제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쌓이고 쌓인 국민 분노 하지만 선관위의 항변은 국민의 분노를 꺼뜨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선관위 자체가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점을 방패 삼아 각종 문제를 피해 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선관위는 독립성이 생명인 기관이기에 감찰을 받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해도 자체적으로 덮고 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있던 것이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계기는 선관위의 채용 비리 의혹이었다. 2023년 선관위 전·현직 사무총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의 자녀가 ‘아빠 찬스’를 통해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혜 채용 의혹이 전방위로 번지자 외부 기관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선관위는 독립성을 근거로 자체 조사를 고집했다.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자 선관위는 결국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조사를 받아들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권익위가 2023년 이전 7년여 동안 선관위의 경력 채용을 전수조사한 결과 58명의 부정 합격 의혹 등 총 353건의 채용 비리가 적발됐다. 권익위는 고의성이 의심되거나 상습적으로 부실채용을 진행한 28명을 고발하고 가족 특혜나 부정 청탁 여부 등 사실관계 규명이 필요한 312건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일각에서는 권익위와 국회 국정조사만으로는 선관위 조사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선관위의 조사 수용 방침 자체가 자신들이 그 범위를 정하는 방향으로 잡힌 점도 논란 거리였다. 결국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전반을 들여다보겠다고 나섰다. 선관위와 감사원 사이의 충돌이 시작된 지점이다. 독립성만 앞세웠다 실제 감사원의 감사가 이뤄지기까지 선관위의 저항은 상당했다. 국민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선관위는 감사원의 감사를 일단 수용하면서도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감사원에 헌법상 독립기구인 선관위를 감사할 권한이 있는지를 다퉈보겠다는 취지였다. 그사이 감사원은 2024년 4월 선관위 내부에 부정 채용이 만연한 사실을 확인하고 비리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선관위 전·현직 직원 27명을 대검찰청에 수사 요청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선관위는 조직 전반에 걸쳐 채용, 인사, 복무 등 관계 법규를 무시하거나 이를 용인하는 행태가 관행화된 상태였다. 고위직부터 중간 간부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자녀 채용을 청탁하는 행위가 빈번했고, 채용 담당자들은 각종 위법·편법적 방법을 동원해 선거철 경력 경쟁 채용을 직원 자녀들이 손쉽게 국가 공무원으로 입직할 수 있는 통로로 이용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들여다본 2013년 이후 시행된 경력 경쟁 채용 167회를 전수조사한 결과 확인된 위반 건수만 800여건에 달했다. 당시 감사원은 “채용 비리와 관련한 사안은 신속한 수사 착수의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감사원이 내놓은 결과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판단으로 무위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헌재는 지난해 2월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권한이 없다고 만장일치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권한은 행정부 내부의 통제 장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바, 정부와 독립된 헌법 기관인 국회·선관위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감사원이 실시한 직무감찰은 헌법 및 선거관리위원회법에 의해 부여받은 선관위의 독립적인 업무 수행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헌법상 독립기관’ 내세워 헌재 판단까지 ‘난공불락’ 감사원장과 감사위원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는데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선관위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본 것이다. 헌재의 판단은 법원으로 이어졌다. 지난 6월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선관위 직원 A씨가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을 상대로 낸 견책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감사원은 감사에서 A씨에게 경징계 이상의 처분을 요구했고, 선관위는 징계를 의결, 견책 처분을 내렸다. A씨는 2021년 10월에 발생한 사안에 대해 징계시효 3년이 지난 2025년 3월 징계를 의결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징계시효는 성폭력 범죄 등이 아닌 기타 징계 사유의 경우 3년이다. 다만 감사원이 조사 개시를 통보하면 시효가 정지된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감사 자체가 위법이기에 조사 개시 통보를 시효 중단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가 권한쟁의 심판에 대해 인용한 점을 들어 A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토대로 A씨에 대한 징계시효 3년이 이미 지났다고 판단했다. 헌재의 판단은 당시에도 선관위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다는 말이 나왔다. 이후 투표지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서 선관위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특히 투표지 부족 사태는 부정선거 논란으로 이어져 ‘올림픽 공원’ 시위 사태 발생 등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결국 지난달 7일 출범한 선관위 특검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선관위 특검팀(특별검사 이태한)은 지난 7일 출범 한 달째를 맞아 강제수사, 포렌식 검증, 관련자 소환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지 부족 사태를 비롯해 투표율 허위 입력 정황,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의 해외 출장 유용 의혹, 투표함 입찰 담합 의혹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회에 끼친 악영향도 커 특검의 본 수사 기간은 90일이며 필요한 경우 30일씩 두 차례 연장할 수 있다. 최장 150일 간 수사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일단 인력 충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중대범죄수사청 청장 인선 절차가 늦어지면서 선거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감사원은 선관위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특검은 어떨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