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계엄 후폭풍> 텅 비는 대통령실

대한민국이 멈췄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책임을 통감하고 대통령실 참모진과 국무위원들이 줄줄이 사의를 표명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을 지척서 보좌한 이들을 들러리로 보고 계엄을 강행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계엄에 연루된 내각과 참모가 더 있는지, 여야는 물론 시민단체까지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해제의 후폭풍이 거세다. 특히 윤 대통령을 보좌하는 대통령실과 국무위원들도 계엄에 관해 몰랐다며 불을 지피고 있는 형국이다. 참모들과 국무위원들은 책임을 통감하고 줄줄이 사의를 표명했다.

이미 기능
상실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통한 내란 사태의 여파로 국정이 사실상 마비됐다. 지난 4일 수석비서관급 이상의 대통령실 고위 참모들과 국무위원들이 전원 사의를 표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추진과 별개로 윤석열정부는 이미 기능을 상실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밤 10시23분께 용산 대통령실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윤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이에 국회는 지난 4일 오전 1시께 본회의를 열고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재석 190명, 찬성 190명으로 만장일치 가결시켰다. 헌법 제77조 5항에 따르면, 국회가 재적 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계엄의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


이후 윤 대통령은 새벽 국무회의에 앞서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어젯밤 11시를 기해 국가의 본질적 기능을 마비시키고 자유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붕괴시키려는 반국가 세력에 맞서 결연한 구국의 의지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면서 “그러나 조금 전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가 있어 계엄 사무에 투입된 군을 철수시켰다”고 설명했다.

이어 “즉시(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를 소집했지만, 새벽인 관계로 아직 의결정족수가 충족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오전 4시30분 계엄 해제안을 의결하면서 비상계엄은 6시간 만에 종료됐다.

계엄이 해제된 직후 각종 언론에서는 대통령실 참모들이 계엄 선포에 관해 전혀 몰랐다고 보도했다. 지난 3일 오후 9시 이전까지 일부 대통령실 참모들은 퇴근하고 개인 시간을 보내고 있거나 사무실에 남아 야근을 하기도 했으나 윤 대통령이 심야에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러다 이날 9시30분을 지나며 ‘윤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의 감사원장·검사 탄핵, 예산 감액안 단독 처리 등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힐 수 있다’는 설이 돌기 시작하며 기류가 급반전했다.

이 시점부터 대통령실 관계자들은 일제히 입을 닫았다. 기자들이 사실 확인을 위해 대통령실 측에 계속해서 연락했지만 모두 수신을 거부하거나 “전혀 알지 못한다”는 답만 돌아왔다. 일부 참모는 저녁 식사 중 윤 대통령의 긴급한 호출을 받고 급히 대통령실로 복귀했지만, 계엄 선포 사실은 물론 긴급 담화가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일단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옆서 보좌했건만 들러리 신세
참모·국무위원들 줄줄이 사의

상황을 인지하지 못했던 대통령실 참모들은 일괄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정진석 대통령비서실장·성태윤 정책실장·신원식 국가안보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이도운 홍보수석 등 수석비서관 이상의 고위직들이 모두 포함된다. 정 실장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면서 “일괄적으로 거취 문제를 고민하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덕수 국무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도 대통령실 참모들과 별다를 바 없었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 나서기 약 1시간 전인 오후 9시 즈음 국무회의를 열었다. 한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밤중에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소집됐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서 비상계엄을 선포하겠다고 입을 뗐다. 그러자 한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이 즉각 반대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이들을 뒤로 하고 고유권한인 비상계엄 선포에 나섰다. 국무위원들을 계엄 선포 형식을 맞추기 위한 들러리로 세운 셈이다.

계엄 선포를 통보받아 정부 부처들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군과 국방부만 기다렸다는 듯 행동에 나섰다. 

우선 국무회의서 의결되지 않고 김 전 장관의 의중을 반영한 계엄사령군이 뽑혔다. 실제로 계엄사령관은 군 서열 1위인 김명수 합동참모본부 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이 맡았다. 김 의장은 해군 출신, 박 총장은 김 장관과 같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는 점에서다.

계엄사령관도 계엄법 5조에 따라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임명됐는지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결국 정황상 윤 대통령과 김 전 장관이 대통령실과 내각을 따돌리고 독단적으로 계엄을 선포한 것이다. 

게다가 윤 대통령은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 총리가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뒷수습을 했다.

윤 대통령 독단으로 인한 계엄 해프닝을, 정작 계엄 선포를 통보받은 데다 반대까지 했던 내각이 뒷정리하게 된 것이다. 계엄 선포도, 해제도 내각은 결국 들러리로 취급됐다.

혼란에
빠지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계엄 선포 전 국무회의를 개최하지도 않았고, 한 총리도 계엄 선포에 대해 사전에 인지하지 못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헌법 제89조는 계엄 선포를 위해서는 국무회의 의결이 필요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만약 윤 대통령이 국무회의를 개최하지 않았으면 이는 헌법을 위반한 것이 된다.

하지만 계엄령 선포 1시간 전에 국무회의가 열렸고 회의 이후 계엄령이 선포됐기에 회의에 참석한 총리·장관 등 국무위원들에게도 책임론이 불거졌다. 여야 할 것 없이 회의에 참석한 내각의 총사퇴를 주장했다.

실제로 국무위원 전원은 지난 4일 오전 한 총리와의 간담회서 사의를 표명했다.

한 총리는 “총리로서 작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모든 과정에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이 시간 이후에도 내각은 국가 안위와 국민 일상이 흔들림 없이 유지되도록 모든 부처의 공직자들과 함께 소임을 다해 주시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 총리의 이날 발언은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해 현시점에 내각이 총사퇴할 경우, 정부가 셧다운 될 수 있는 만큼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총리실은 설명했다.

우선 국무위원들의 총사퇴 기류는 수습 국면으로 돌아선 듯 보인다. 한 총리는 국무위원들의 사의를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정상 업무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책임성 사퇴보다는 사태 수습에 나선 것이다.

총리실 핵심 관계자는 “내각이 사퇴해 국무회의가 중단되면 정책, 예산, 법률 등 모든 중요한 결정을 할 수 없게 돼 정부가 마비 상태에 빠진다”고 우려했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도 이날 각 부처 차관들과 비공개 차관회의를 열어 “국정이 엄중한 상황이다. 이럴 때일수록 공직사회가 중심을 잡고 차분히 수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총리실 내부에선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뤄졌던 전례들을 조심스럽게 검토 중이다. 

총리실 한 관계자는 “2004년 노무현정부(고건 총리)와 2016년 박근혜정부(황교안 총리)서 있었던 두 차례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와 관련된 기록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권한대행 
기록 검토


국무위원들이 모두 사의를 표명한 것과 별개로 계엄 관련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이 누군지 점차 드러나고 있다. 국무회의엔 윤 대통령과 한 총리,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조태열(외교)·김영호(통일)·박성재(법무)·김용현(국방)·이상민(행안)·송미령(농축산부)·조규홍(보건)·오영주 (중기) 장관의 참석이 확인됐다.

다만 당초 대부분의 국무위원들이 계엄령에 반대했다는 것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 듯했다.

우선 국무회의 개최 약 1시간 전인 8시쯤 대통령실에 도착한 한 총리가 계엄 소식에 “경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취지로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환율이 들썩이고 대외 신뢰도가 추락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윤 대통령을 설득하지 못했고, “절차는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모이며 윤 대통령은 국무위원을 대통령실로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한 총리 외에 최 부총리와 조 장관 등이 국무회의서 “경제와 외교가 어려워진다”며 계엄령에 강하게 반대 목소리를 냈다고 한다. 특히 조 장관이 계엄 선포 시 발생할 대내외적 파장 등을 근거로 들며 가장 먼저 반대 의견을 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수차례 윤 대통령의 마음을 바꾸려 노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른 장관 중에도 직접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비치진 않았지만 선뜻 동의하는 이는 없었다고 한다. 

이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계엄에 두어 명의 장관이 반대했다는 주장과도 맞아떨어진다. 이 장관은 지난 5일 윤 대통령의 ‘비상 계엄’ 논의 국무회의 당시 상황과 관련해 “반대를 표명한 장관은 두어 명 정도였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 출석해 “계엄령 논의 당시 반대를 표명한 장관은 몇명이었느냐”는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의원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 장관은 “행정안전부 장관은 계엄령에 찬성을 표했느냐, 반대를 했느냐”는 이 의원 질의에 “그것은 말씀드리기 어렵다”면서도 “국무회의는 찬반을 명확히 가리는 자리가 아니며, 대부분의 장관들이 우려를 표명한 것은 사실”이라고 답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국무위원 개개인이 느끼는 상황 인식과 책임감과 국가의 통수권자인 대통령 스스로 느끼는 책임감은 다르다고 말했다”고 이 장관은 전했다.

이 의원은 “대통령이 국무위원들에게 계엄령 선포 논의를 직접 제안했는가”라고 묻자, 이 장관은 “대통령께서 장관들이 모인 자리서 상황에 대해 설명하며 계엄 선포에 대한 논의가 진행됐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계엄령 논의는 장관들 사이서도 매우 민감한 사안으로, 회의 당시 여러 의견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회의에 늦게 참석하면서도 반대 의견을 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출석해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반대 의견을 냈다”면서 “국무위원으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사과한다”고 밝혔다.

“직전까지 전혀 몰랐다”
국정 사실상 마비 상태

조 장관은 “3일 저녁 9시14분, 대통령실로부터 ‘용산 회의실로 빨리 오라’는 연락을 받고, 10시17분에 도착했으나 회의는 이미 진행 중이었다”며 “계엄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10시23분 곧바로 비상계엄령 선포가 이뤄져 자신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고 말했다.

복지위 야당 의원들이 그가 지난 4일 새벽,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에 불참한 데 대해 질타하자 “2시6분 국무조정실서 연락이 왔는데 2시간 정도 인지를 하지 못했다. 4시에 확인하고 놀라서 연락하니 이미 회의가 끝났다더라”면서 “국무위원으로서 제 소임을 다 하지 못한 데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해명하기도 했다.

조 장관은 포고령 1호에 ‘전공의 처단’ 내용이 들어간 데 대해 자신도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정부 방침과 배치되는 내용이라 저희도 놀랐고, 동의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대통령에게 하야를 권하고, 장관도 사퇴하라’는 야당 의원에게 “사퇴 의사를 밝혔으나 대통령 재가가 필요하다”며 “국정 공백이 있으면 안 되니 최종 사퇴까지는 맡은 바 소임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한 여권 고위 관계자도 “국무회의는 상당히 심각한 분위기로 진행됐다. 일부 장관의 반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계엄에 반대한 국무위원들이 누군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자칫 내란죄에 연루될 수 있는 상황에 각 부처와 장관들은 쉬쉬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오전 국회서 윤 대통령, 김용현 전 국방장관, 이상민 행안부 장관 등을 내란죄로 고발하고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도 이날 오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윤 대통령 등에 동조했던 국무위원을 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 시민단체는 국무회의 속기록 확보에 나서기도 했다. 정보공개센터는 지난 4일 대통령비서실과 행정안전부에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관한 국무회의 회의록과 속기록, 녹음기록에 대한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센터는 “대한민국헌법 제89조에 따르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해제 시 반드시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하고 있다”며 “국무회의 회의록 일체는 반헌법적 범죄의 진상을 밝힐 수 있는 증거의 출발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국가기록원에 이번 계엄과 관련된 모든 기록의 처분을 즉각 동결하고 이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보존할 수 있는 신속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국무위원들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한 총리는 다시 한번 국정을 안정화하는 데 집중했다. 그는 지난 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 현안 관계 장관회의를 주재하고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서, 민생 안정을 위해 국정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내각의 의무”라며 “내각을 비롯한 모든 공직자는 맡은 바 직무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빈자리
어떻게?

그러면서 “특히, 금융·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대응체계를 지속 가동해 신속히 대처하고, 치안 유지와 각종 재난 대비에도 만전을 기해 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날 국정 현안 관계 장관회의에서는 ‘경쟁 제한적 규제 개선 방안’ ‘방위산업 분야 수출 규제 개선 방안’ ‘수산·양식 분야 기후변화 대응 종합계획’ ‘어린이 식생활 안전관리 종합계획’ 등 정부가 비상계엄 사태 전부터 해오던 정책 방안에 대한 심의가 진행됐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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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