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실패한 영웅’ 장태완

재조명되는 장군의 외길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이 반란군 놈의 새끼야. 너희놈들 거기 그대로 있거라. 내가 전차를 몰고 가서 싹 깔아 죽일 테니!” 이 대사는 영화 <서울의 봄> 명대사로 장태완 장군이 실제로 12‧12 사태 당시 신군부에 실제로 한 말이다. <일요시사>는 쿠데타를 저지하려 노력한 장 장군의 행보를 재조명했다.

12‧12 사태가 발발한 지 44년이 지나 영화 <서울의 봄>으로 인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영화는 전두광(실제 인물 전두환) 패거리와 이를 막고자 한 이태신 장군(장태완 당시 수도경비사령관)의 단 9시간의 대립으로 구성돼있다.  

누리꾼들은 쿠데타에 끝까지 맞선 이태신 장군을 응원했다. 이태신 장군의 실제 인물은 장태완 소장이다. 장 장군은 1931년생으로 경상북도 칠곡군서 3남 3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육군종합학교에 지원해 11기로 임관했다.

전두환 견제
극적인 9시간 

소위 총알받이였던 육군종합학교 소위 가운데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장교였다. 이후 제5군단 참모장, 1973년 수도경비사령부 참모장으로 발탁된 데 이어 12‧12 사태 3주 전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임명된다.

장 장군이 임명될 당시 국가는 10‧26 사태가 발생한 후 일부 계엄 체제로 들어간 상황이었다. 전국에 비상계엄이 내려지면 총 책임은 대통령이 맡게 되지만 일부에 한해 계엄령이 내려지면 국방부 장관이 총책임을 맡게 된다.


최규하가 제주도를 제외하고 계엄을 선포하면서 계엄령 이후 ‘계엄사령부’가 유일한 권력의 중심이 됐고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으로 10‧26 수사 총책을 맡은 전두환은 더더욱 권력의 핵심으로 부각됐다.

계엄사령관을 맡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은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의 권력이 커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979년 11월 장 장군을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수도경비사령관은 서울을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가지고 있었으며 헌병, 특공, 방공 병력을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3주 만에 12‧12 사태가 발생했다. 12‧12 사태가 성공한 뒤 신군부에 대항했던 장 장군은 신군부에 체포돼 서빙고서 45일간 조사를 받았다. 장 장군은 1980년 2월 초에 수사관으로부터 예편서를 쓰라는 요구를 받았고 그는 이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면서 군 생활을 마치게 됐다. 

1979년 12월12일 저녁 전두환이 움직였다. 신군부 소속 지휘관들은 각자 준비를 마친 후 경복궁 옆 구 일본 육군 헌병 주둔지에 위치한 수도경비사령부 30경비단에 집결했다. 합동수사본부의 핵심 브레인이었던 허삼수 육군 보병 대령은 합수부 수사관들 및 수경사 33헌병대와 함께 정 총장의 관저를 찾아가서 김재규에 동조했다는 혐의에 대한 진술조사를 해야겠다는 명목으로 정 총장의 신병을 확보했다.

당시 장 장군은 전두환의 간계에 의해 동료 장군 한 명과 연희동에 있는 요정(고급 술집)으로 초대받아 가볍게 술 몇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정 총장이 불법 체포됐다는 소식을 듣고 수도경비사령부로 즉시 돌아갔다.

그가 부대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사전에 치밀하게 작당한 대로 움직인 신군부가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는 등 상황은 매우 안 좋았다. 장 장군은 불리한 상황에도 정 총장의 신병을 풀어달라고 신군부 측에 전화했다.

하지만 오히려 그를 회유하려는 신군부 측에 “너네한테 선전포고다 인마. 난 죽기로 결심한 놈이야”라며 일갈하고 전화를 끊은 일화는 유명하다.


이후 장 장군은 신군부 반란군을 막으려고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정 총장 관저에 즉각 경비 병력을 보내 구출을 시도하며 33경비단의 전차중대를 보내 반란군 일당을 제거하려고도 했다. 또 대한민국 육군본부서 피난 온 육군 수뇌부와 정병주 특전사령관 등과 함께 작전을 논의하기도 했다.

이들은 아직 신군부에 넘어가지 않은 9공수에 보안사를 공격하라고 지시했다.

천만이 본 <서울의 봄> 이태신 실제 인물
“싹 깔아 죽인다” 하나회와 끝까지 대립

이 소식을 들은 신군부는 매우 당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9공수의 병력이 경인고속도로를 타면 1시간 이내로 서울에 진입할 수 있는 반면, 신군부 세력의 1, 3공수의 병력의 교통요건이 더 좋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9공수의 병력이 본거지에 들이닥치면 신군부의 반란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란군 측은 9공수 출동을 저지하기 위해 육군본부 측에 전화를 걸어 “서울 한복판서 아군인 국군끼리 전쟁을 벌이면 어떻게 하자는 거냐”며 “우리도 더 이상의 무력 동원은 안 할 것을 약속할 테니 진압군 측에서도 9공수를 원대 복귀시켜라”는 내용의 상호 신사협정을 제안했다.

육군본부 수뇌부들은 남침의 절호의 기회를 맞은 김일성을 눈앞에 두고 같은 국군 병력들끼리 그것도 서울 도심지서 대규모 유혈 사태를 벌이는 위험천만한 참극만은 피하자는 이유로 신사협정을 받아들인다. 

반란군 진압의 실질적인 최고지휘관이었던 윤성민 육군참모차장은 9공수여단장에게 부대로 복귀할 것을 지시했고 9공수여단은 이 명령에 따라 병력을 부천IC 부근서 회군시킨다.

자신들을 칠 수 있던 유일한 군부대였던 9공수가 본대로 되돌아가자 하나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 신군부는 협정을 지키지 않고 바로 1공수를 대한민국 국방부와 육군본부로 보내고 3공수가 특전사령부를 공격하도록 했다.

육군본부와 국방부는 1공수에 점령당했고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3공수에 의해 체포됐다. 특전사령관 비서실장 김오랑 소령이 정병주 사령관을 지키려다 반란군 총격에 숨을 거두기도 했다.

이렇게 그나마 남은 우군이었던 육본과 국방부도 점령당하고 특전사령부까지 반란군 손아귀에 떨어지면서 진압군 거점은 수도경비사령부만 남게 된다. 장 장군은 마지막 수단으로 행정병, 취사병, 자기 휘하에 있는 극소수 전투병 등을 합한 100여명과 남은 전차 중대 4대를 소집하고 보안사를 직접 공격하려고 했다.

그러나 전차부대마저 배신하면 병사들이 다 죽는다는 장교들의 설득과 반란군의 도청, 반란군에게 항복한 노재현 국방 장관의 사실상 백기투항하라는 지시를 들은 장 장군은 허탈해하며 병력들을 해산시켰다. 

“난 죽기로 
결심한 놈”


이후 반란군이자 헌병단 부단장인 신윤희 중령에게 체포돼 서빙고서 45일 동안 조사를 받았다. 장 장군은 해가 바뀐 1980년 2월 초에 수사관으로부터 예편서를 쓰라는 요구를 받았고 이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면서 군생활을 마쳤다.

<시사저널>에 따르면 장 장군은 예편서를 쓰기 직전 전두환을 직접 만났다. 장 장군은 “전두환이 12‧12 사태 관련 경위를 묻자 자기들은 책임이 없고 장 선배가 야단법석을 떠는 바람에 일이 커졌다고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12‧12 사태가 성공하자 전두환보다 윗기수인 육사 5기(정승화 총장)~8기와 종합행정학교 출신들이 대대적으로 전역하게 됐으며 기수와 상관없이 전두환 측에 비우호적인 세력들도 좌천되거나 군문을 떠났다.

이로서 전두환과 하나회 일원들은 군부 요직을 장악하면서 사실상 실권자가 됐고, 이후 이들은 국민의 민주화 요구와 야당의 반대를 무시하고 5‧17 내란을 일으키고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하는 등의 피를 뿌리면서 결국 전두환이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된다.

장 장군의 비극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들의 체포 소식을 들은 그의 아버지는 막걸리로 끼니를 대신하다 과음으로 별세했다. 

장 장군은 이에 대해 “완고한 선비 기질이었던 제 아버님께서는 12‧12 사태 소식을 접하신 후 방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드러누우셨다”며 “예로부터 나라에 모반이 있을 때 충신 집안은 모반자 밑에서 살아갈 수 없는 일이라시며 식음을 단절하시다 내가 석방되고 난 뒤인 80년 4월18일 73세로 별세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장 장군은 더 큰 슬픔을 겪었다. 장 장군의 아들이 실종됐다가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장 장군 아들은 대학 입시 준비를 하던 6개월 간 보안대원 2명이 방을 차지하는 소란 속에서도 서울대학교 자연대학에 진학했다. 1982년에는 수석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던 그는 평소와 같이 “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실종됐다가 칠곡군 낙동강변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아들의 실종 
시체로 발견

장 장군은 회고록에 “만 한 달 동안 엄동설한의 강추위 속에서 낙동강의 매서운 강바람을 쐰 탓인지 전신은 돌덩이처럼 꽁꽁 얼어있었다. 나는 얼어있는 아들의 얼굴에다 내 얼굴을 비벼대면서 흐르는 눈물로 씻겨주며 입으로는 아들의 눈부터 빨아 녹였다”고 적었다.

이어 “얼마 동안 빨다 보니 아들의 눈 안에서 사탕만한 모난 얼음 조각들이 내 입안으로 들어왔다. 이것이 아들놈이 마지막 흘린 눈물일 것이라 생각하고 그대로 삼켜버렸다”고 했다.

아들의 죽음 이후 장 장군은 “우리 내외의 인생은 사랑하는 성호(아들)가 이 세상을 떠났던 1982년 1월9일로 끝난 것”이라며 “이제 남은 인생은 더부살이로서 우리 일가 3대를 망친 12·12 사태를 저주하면서 불쌍한 외동딸 현리 하나를 위해서 모든 것을 참고 살아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는 전두환정부 시절 공기업인 한국증권전산(현 코스콤) 사장에 임명됐다. 한국증권전산은 증권거래소 자회사로 각 증권회사의 전산 업무를 공동 처리하는 회사다.

같이 반란군에 저항한 김진기 헌병감이나 정병주 특전사령관은 신군부 정부에 여러 보직을 제안받고도 야인으로 지냈지만 장 장군은 공기업 사장직을 수용하자 비판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장 장군도 신군부를 용서하진 않았다. 장 장군의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 이한동 민정당 총재 비서실장이 연락해 아들의 사망 이후 집안에만 있으면 더 속이 상한다며 직장서 근무를 통해 슬픔을 잊고 집안도 수습하라고 조언을 했고, 장태완도 거부감이 심했지만 가족 회의 끝에 남은 딸이라도 살려야겠다고 생각해 수락한 것이다.

장 장군은 이후에도 12‧12 사태의 부당함을 널리 알리는 데 힘썼다. 1993년에는 여러 장성과 함께 전두환 등을 반란, 내란 등의 혐의로 고소하기도 했다.

반란세력 대적한 참군인들 재평가
12·12 사태 이후 가족들 비극까지

1996년 12‧12 사태과 5‧18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으로 전격 구속된 노태우·전두환 재판서 증인으로 참석해 “한때는 함께 국방에 열심을 다하던 입장이었는데 어쩌다 그리 됐는지 모르겠소”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장 장군은 2000년 새천년민주당의 인재 영입에 따라 비례대표 제16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이때 장태완은 국회서 386세대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을 만나 “12·12 쿠데타를 내가 막지 못해서 미안하다. 여러분이 그간 고생 많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민주당 활동 당시엔 장성 경력을 내세워 국방 분야서 주로 일했는데, 성향은 민주당 내에선 안보 보수파로 국가보안법 개정에 대해서도 현실 여건상 아직은 시기상조라며 신중한 편이었다.

2002년 6월 제2연평해전의 선제 작전으로 북한 해군 경비정이 NLL을 침범하자 “북한 측 경비정을 격침시켰어야 한다”며 “어망 때문에 초계함 접근이 어려웠다고 하지만 평상시에 기동 훈련이 부족했던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를 앞두곤 노무현 대통령 후보 보훈특보를 맡았다가 후보 단일화 협의회에 참여해서 정몽준 후보와의 단일화를 주장했다. 이후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가 결정되자 승복했고 2002년 12월17일 노무현 후보 유세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열린우리당과 새천년민주당의 분당 사태가 일어나자 새천년민주당의 당론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발의에 동참했으나 정작 표결은 미국 방문으로 불참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선 불출마, 정계 은퇴 선언을 하고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 이사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다가 2010년 7월26일 향년 78세에 숙환으로 별세했다.

1997년 4월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두환에 대한 검찰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기징역과 2205억원의 추징금을, 노태우에 대해서는 징역 17년에 2628억원의 추징금을 선고했다. 죄목은 반란수괴, 반란모의참여, 반란중요임무종사, 불법진퇴, 초병 살해, 내란수괴, 내란모의참여, 내란중요임무종사, 내란목적살인,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뇌물) 등이었다.

하나회 최후
전원 유죄

재판부는 이날 판결문서 “우리나라의 헌법 질서 아래서 폭력에 의해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만들거나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며 “피고인들의 정권 장악에도 불구하고 결코 새로운 법질서의 수립이라는 이유나 국민의 합의를 내세워 형사 책임을 면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12‧12 사태 반란군에 참여한 인물들에 대해서도 유죄를 확정지었다. 

이어 재판부는 검찰과 변호인 양쪽의 상고를 전부 기각해 황영시, 허화평에게 징역 8년, 정호용, 이희성, 주영복에게 7년, 허삼수 6년, 최세창 5년, 차규헌, 신윤희, 박종규에게 3년6개월을 각각 확정지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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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테르노 차준영’ 1조 물린 소송전 전말

‘에테르노 차준영’ 1조 물린 소송전 전말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DL이앤씨가 시행사 시티원 차준영 회장과 다툼 중인 1조원대 공사비 정산 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앞서 <일요시사>는 지난 2월 ‘배우 김씨와 워커힐 카지노 간 에테르노 회장’ 보도에서 소송전의 내막을 설명했다. 이에 관해 차 회장은 “허위 보도”라며 형사고소와 손해배상 청구를 예고하는 내용증명을 보내왔다. 항소심 재판을 최초로 언급한 <이데일리> 보도와 판결문 등을 종합하면, 통일동산 공사비 소송의 규모와 구조 자체는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다. 차준영 시티원 회장은 통일동산 사업의 손실 구조를 발생시키고 떠난 뒤 시행사 넥스플랜 회장으로 변신했다. 넥스플랜은 한 채에 200억~400억원에 달하는 아파트 ‘에테르노 압구정’ 시행사다. 18년째 흉물 방치 서울고등법원은 2026년 2월5일 선고한 항소심에서 DL이앤씨가 제기한 공사 대금 등 청구 사건과 관련해 시티원 측 항소를 기각했다. 1심 인용액 약 5184억원을 유지하면서 추가 청구액 약 45억원을 인용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원금 기준 약 5229억원 규모의 채권이 인정된 것으로 나타난다. 판결문에는 기성 공사 대금, 연대보증에 대한 구상금, 대여금 채권이 각각 구체적으로 산정돼있다. 일부 채권에는 소송촉진 등에 관한 특례법상 연 17%의 지연이율이 적용되는 구조도 확인됐다. 지연손해금까지 합산할 경우, 시티원과 차 회장의 최종 부담액이 총 1조원에 이를 수 있다. 일부 채권의 이자 기산일이 2009~201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데다 지연손해금까지 적용하면 실제 지급 총액은 1조5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사건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DL이앤씨는 시티원과 공사비 4125억원, 공사 기간 28개월 조건으로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파주 통일동산 관광숙박시설 사업에 착수했다. 파주 통일동산 콘도 조성사업은 경기 파주시 탄현면 ‘신세계사이먼 프리미엄아울렛’ 인근에 지하 3층~지상 15층 규모 관광숙박시설(1265실)을 새로 짓는 사업이다. DL이앤씨는 2006년 12월 시티원과 도급계약을 맺고 이듬해 11월 착공에 나섰다. 2008년 9월 사전청약을 실시했으나, 청약률이 9%(118실)에 그쳤다. 사전 청약자들은 잇따라 해약에 나섰고 시티원은 본 계약에 나서지 않았다. DL이앤씨는 결국 공정률 33% 수준이던 2008년 12월 공사를 전면 중단했다. DL이앤씨는 공사 중단 12년 만인 지난 2020년 8월 시티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공사 중단까지 투입한 기성 공사비 1207억원과 연대보증인으로서 대위 변제한 시티원 채무 3524억원, 시티원에 직접 빌려준 대여금 1000억원 등 총 5731억원을 달라는 취지였다. DL이앤씨와 공사비 소송 패소 최종 부담액 1조500억원 추산 차 회장은 도급계약상 DL이앤씨가 착공일로부터 28개월 내 공사를 완료해야 하지만 이유 없이 공사를 중단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DL이앤씨가 현장을 원상 복구하고 지체상금 187억원(공사비의 5%)과 미래 분양수익을 포함한 사업 손해 5140억원 등 총 5327억여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반소했다. DL이앤씨는 “시티원이 도급 계약상 의무인 콘도 분양을 사실상 포기해 공사 대금을 지급받을 수 없게 돼 이에 불가피하게 공사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차 회장은 “분양률이나 공사비 지급 여부와 무관하게 DL이앤씨에게 기간 내 공사를 완료할 책임 준공 의무가 있다”고 맞선 것이다. DL이앤씨는 공사 중단까지 투입한 기성 공사비와 연대보증에 따른 대위 변제금, 대여금 등을 합산해 소송을 제기했다. 시티원 및 차 회장 측은 책임 준공 의무 위반 등을 이유로 반소를 제기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공사 대금을 지급받기 어려운 현저한 사유가 발생해 불가피하게 공사가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는 취지로 판단해 반소를 기각했다. DL이앤씨 측은 현재 차 회장 통장과 부동산에 대해 압류 조치를 취해둔 상태다. 판결이 확정될 경우, 강제집행 절차를 통한 채권 회수에 적극 나설 계획으로 알려졌다. DL이앤씨는 공사 중단 12년 만인 지난 2020년 8월 시티원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차 회장은 통장 등이 압류되자, 친형인 차대영 명의 계좌를 빌려 에테르노 압구정의 분양 계약금을 받아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분양금이 넥스플랜으로 이체된 사실도 거래 내역서 등을 통해 볼 수 있다. 차 회장 측 법률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로드맵은 내용증명을 통해 “본인(차 회장)은 해당 소송의 당사자가 아니며, 5184억원 배상 판결을 받은 사실이 없고, 계좌 압류나 자금 유용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항소심 판결문에는 거액의 채권 인용 사실이 명시돼있고, 차 회장이 사건 당사자로서 소송에 참여한 구조가 확인된다. 상상 초월 손배 액수 <일요시사>는 앞선 보도에서 통일동산 사업 1심 판결 규모와 함께, 차 회장의 또 다른 사업지인 에테르노 압구정 분양 과정에서 제기된 자금 흐름의 수상한 점을 다뤘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재무제표에 따르면 시티원과 차 회장의 현재 회사인 넥스플랜은 최근 자본잠식 상태로 나타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시티원의 2024년 말 기준 부채 총계는 약 6289억원으로 자산(약 1359억원)을 약 4930억원 초과했다. 자본 총계는 마이너스(-4930억원)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매출은 전무한 채 판관비와 이자비용 등 비용만 쌓이는 구조인 셈이다. 이는 판결 확정 및 강제집행 절차가 진행될 경우, 사업과 재무구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시사한다. DL이앤씨 측이 채권 보전을 위해 압류 조치를 취한 만큼, 실제 집행 단계에서 어떤 자산이 대상이 될지도 향후 관전 포인트다. 차 회장이 현재 운영 중인 넥스플랜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넥스플랜의 2024년 말 기준 부채 총계는 약 5432억원으로 자산(약 5244억원)을 약 188억원 초과했다. 자본 총계는 마이너스(-188억원)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로 당기순손실은 약 214억원에 달한다. 매출은 분양·용역 합산 약 669억원을 기록했지만 판관비가 전년(약 131억원)보다 3배 이상 급증한 약 399억원에 달했다. 이자비용도 약 261억원에 이르러 영업손실 약 111억원을 포함한 세전 손실 약 214억원이 발생하는 구조다. 넥스플랜은 현대건설과 손잡고 가수 아이유 등 유명인들이 분양받은 강남 초고가 하이엔드 주거 단지 ‘에테르노 청담’을 완판한 데 이어 현재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29세대 규모의 ‘에테르노 압구정(총분양 예정가액 6860억원)’을 개발 중인 시행사다. 항소심 판결이 확정될 경우, 시티원과 관련 계열사의 재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에테르노 분양 자금이 신탁 구조 안에서 적정하게 관리됐는지도 쟁점이다. 부실한 재무 판관비만 ↑ 통일동산은 신세계사이먼 파주 프리미엄 아울렛, 임진각, 출판단지와 인접한 관광 요지로 주목을 받았다. 2004년 조성된 통일동산 지구의 핵심 숙박시설로 기대를 모았지만, 장기간 방치되면서 관광특구의 경쟁력 약화와 도시 이미지 훼손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그동안 시는 ‘부동산투자이민제 지구’ 지정, 국토교통부 방치건축물 정비 선도사업 공모 추진 등 정상화를 시도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시티원 측은 전면 철거 후 아파트 단지로 전환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DL이앤씨와 공사비 정산 갈등으로 인해 흉물로 남겨졌다. 현재는 지구단위계획 변경 가능성까지 거론되나 특혜 논란 우려도 적지 않다. DL이앤씨는 채권 확보를 위해 관련 자산 압류 조치를 취한 상태로, 판결 확정 시 강제집행에 나설 방침으로 전해졌다. 다만 완전 자본잠식 상태인 시티원의 재무 여력이 취약해 실제 채권 회수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지역사회에서는 “더 이상 흉물 방치를 용납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자유로를 따라 오두산통일전망대, 임진각 방향으로 진행하다 보면 앙상한 공사 현장이 도드라지는 등 통일동산 미관을 해치고 있는 이유에서다. 시 관계자는 “채무 정리 이후 사업 구조를 어떻게 재편하느냐가 관건”이라며 “관광숙박시설 원안 복원, 주거·복합개발 전환, 공공 주도 방식이나 자력 재개 등 여러 방안이 가능하지만 결국 사업 주체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최창호 파주시 의원은 “2009년 4월 공사가 중단된 후 장기간 방치돼 지역의 흉물로 남아 해결해 달라는 민원이 지속되고 있다”며 “10년 이상 방치되니 짓다가 중단된 건물들이 시커멓게 변해 점점 더 흉물스러워졌다”고 밝혔다. 차가원-MC몽 불륜설 제보 배우 데리고 카지노 동행 탄현면에 거주하는 주민들도 “공사가 중단된 콘도 때문에 지역주민들이 피해를 많이 보았다”며 “공사 중단 건축물로 인한 도시 미관 저해, 덩달은 주변 지역 쇠퇴화가 이어지는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DL이앤씨가 시행사 시티원과의 소송에서 1심과 2심 모두 승소했지만 시티원 측은 항소심 패소에 불복해 상고장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시티원(회장 차준영)은 2월24일 DL이앤씨가 낸 파주 통일동산 공사대금 등 청구 소송의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한편, 차 회장은 영화배우 김씨와 파라다이스 워커힐 카지노에 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워커힐 카지노 관계자는 지난해 7월경 ‘VVIP 고객인 차 회장의 요청으로 김씨 출입을 허용했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업계 관계자와 나눴다. 문제는 5100억원에 달하는 금융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한 차 회장이 워커힐 카지노 VVIP의 자격을 갖출 수 있었냐는 것이다. 차 회장은 축구선수 손흥민, 연예인 황정음 등의 에테르노 분양 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부동산의 임대 관리 등을 전담하는 전문가인 차 회장은 에테르노 청담, 압구정의 시행사 넥스플랜의 회장이다. 또 자신의 친조카인 차가원 피아크그룹 회장과 가수 겸 프로듀서 MC몽이 불륜 관계라는 의혹을 지난해 12월 <더팩트>에 제보하기도 했다. 이른바, ‘MC몽 불륜설’을 흘린 배경에는 지난해 6월 빅플래닛메이드엔터테인먼트 주식 21%에서 출자전환 후 2%를 소유했던 MC몽에게 ‘나눠 갖자’며 강요했던 사건에서 출발한다. MC몽이 스스로 불륜설이 조작이었음을 주장하자, MC몽의 해외 원정도박 등을 재차 언론사에 제보한 것도 차 회장이다. 제보에 따르면 “차 회장이 MC몽의 해외 원정도박 기사를 쓴 종편 방송 기자들에게 압구정 모 샤브샤브 식당에서 식사를 접대했다”고 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25년 11월26일 파라다이스 워커힐 카지노 직원이 관계자와 나눈 카카오 톡 대화에서 “차 회장의 요청으로 김씨와 지인 여성들이 함께 출입했다”고 언급했다. VVIP라 가능? 간 큰 회장님 이에 “김씨는 내국인인데 워커힐 파라다이스 입장이 가능한가요?”라고 묻자, 워커힐 카지노 직원은 ‘차 회장과 같은 VVIP 고객의 요청이기 때문에 김씨의 Visitor(방문객) 출입은 허용된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카지노에서 VIP란 2개월 동안 하루 평균 4시간씩 5일 이상 게임해야 하고, 한 게임당 평균 50만원 이상을 베팅해야 VIP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또 게임 실적을 분석한 두 달 동안 로스 금액(따거나 잃은 돈)이 1억원 이상 유지돼야 한다. 이보다 더 높은 실적을 요구하는 등급이 VVIP인데 보통 카지노에서 초청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