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된 인물이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것은 정치개혁을 위해서라도 바람직한 현상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기간과 과정은 철저하고 분명하게 따져봐야 한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아무런 정치적 능력도 없는 한 전 총리의 출마를 기획한 자들이 혹여 무속인들은 아닐 테지만 국민의힘 내부서 대안 부재에 따른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카드임은 분명하다.
그런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에 실로 어이가 없다. 나라의 헌정 질서가 무너지고, 국민이 거리로 나서야 했던 내란의 밤. 윤석열정권의 퇴장을 불러온 그날의 주역 중한 사람이, 이제는 자신이 그 빈자리를 채우겠단다. 이 땅의 정치가 얼마나 민심과 동떨어져 있는지를 바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 전 총리는 윤정권의 최후까지 함께 한 인물이다. 공권력을 사유화하고, 언론을 억누르고, 민심을 조롱했던 그 정권의 '책임연대' 안에 있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국정 안정과 '책임 있는 리더십'을 말하며 차기 대권을 얘기한다. 이보다 뻔뻔하고, 이보다 후안무치한 정치적 도발이 또 있을까?
상황에 따라서는 한 전 총리 역시 '내란의 밤'에 책임을 물어야 할 대상이다. 그 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구의 지시로 어떻게 움직였는지, 국민은 아직 다 알지 못한다. 검찰의 수사도, 언론의 추적도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이런 와중에 대선 출마한 그의 행보는, 국민을 기만하고 수사와 책임의 흐름을 교란하려는 계산된 정치적 술수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정치란 책임지는 자리가 아니라 '자기 자리 찾기'라고 믿는 이들이 여전히 권력 주위를 맴돌고 있다. 윤정권이 남긴 폐허 속에서 다시 권력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서려는 자. 그가 한 전 총리다. 정치는 국민을 향해야 한다. 그러나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는 국민이 아니라 권력을 향한 것이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어떤 말이 진정성을 담고 있고, 어떤 출마가 책임 회피의 도피성인지는 충분히 알아본다. '내란의 밤을 외면한 자가, 그날의 진실을 외면한 자가 이 나라의 미래를 말할 자격은 없다.
정치가는 국민의 시대적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해 그에 걸맞은 정무적 판단해야 할 뿐만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을 조정하고 통합할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을 갖춰야 한다. 대한민국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조기 대선을 목전에 둔 혼란스러운 시기에 새로운 지도자를 갈망하고 있다.
하지만 꽃길만 걸어왔던 한 전 총리가 그동안 보여왔던 행정 관료 처신과 정치적 성향을 고려하면, 단시간에 정치적 주도권을 확보하거나 중도 확장을 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어 보인다.
이회창 전 총리는 세 번이나 대권에 도전했지만 끝내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 대법관, 감사원장, 국무총리를 거친 엘리트 관료 출신이었지만, 변화하는 시대정신을 따라잡지 못한 것이 주요 원인이다. 특히 1997년 DJP 연합, 2002년 노무현 돌풍 앞에서 기득권 이미지를 벗지 못했다.
고건 전 총리는 노무현정부 초대 총리이자 권한대행을 지내며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지만, 당내 기반이 약했다. 결과적으로 대선 출마를 포기하며 행정 능력만으로 정치판을 돌파하기 어렵다는 교훈을 남겼다.
이해찬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실세 총리였지만 대중적 확장성에서 약했고, 정운찬은 '동반 성장'을 외쳤지만, 정치권 내부의 힘겨루기에서 밀려나며 대권 꿈을 접었다. 황교안 전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 권한대행을 맡으며 보수 대권주자로 떠올랐다.
그러나 탄핵 사태의 부정적 이미지와 촛불 민심 앞에 결국 불출마를 선택했다. 기회는 있었지만, 정치적 정당성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이낙연 전 총리는 문재인정부 초대 총리로 안정성과 신뢰를 얻으며 대세론을 형성했지만, 결국 코로나19 대응 한계와 이재명과의 경쟁서 차별화에 실패하며 경선서 패했다. 두 사람 모두 초반에는 주목받았지만, '결정적 국면’을 돌파할 전략 부재와 확장성 한계라는 공통된 문제를 안고 있었다.
가장 최근 일부 여론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한 전 총리의 출마에 대해 국민 70%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대중적 지지 기반이 여전히 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국민의힘 내부서도 뚜렷한 조직적 지원이 없다는 점이 현실 정치 돌파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6·3 대선은 단순한 정권 경쟁이 아니라, 윤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펼쳐지는 좌파와 우파의 역사적인 한판 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 정치의 방향, 헌정 질서 회복 여부, 그리고 정치 지도력의 정당성까지 총체적으로 시험받는 선거가 될 것이다.
한 전 총리는 이재명을 이길 수 있는 후보가 아니다. 향후 보수 진영의 후보 단일화 등 기획 시나리오가 있겠지만 우리 국민은 ‘제2의 윤석열’을 바라지 않을뿐더러 아스팔트 우파들의 정치 혐오와 정쟁 속에서 실용과 질서, 헌정 복원을 대표할 수 있는 리더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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