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또 논란’ X맨 한덕수 국무총리 기행 후일담

더 이상 윤정부에 득 될 게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나라가 평화로우면 백성이 ‘나랏님’ 동향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공직에 있는 사람이 제 할 일을 잘하면 국민 역시 제 할 일만 잘하면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기준에 맞춘다면 현재 우리나라는 좋은 상황이 아닌 듯하다. 국무총리의 이름이 연일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 4월3일 윤석열 대통령(당시 당선인)은 초대 국무총리로 한덕수 전 국무총리를 지명했다. 당시 윤 대통령은 “한 전 총리는 정파와 무관하게 오로지 실력과 전문성을 인정받아 국정 핵심 보직을 두루 역임하신 분”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민관을 아우르는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내각을 총괄하고 조정하면서 국정과제를 수행해나갈 적임자”라고 강조했다. 

이전 정부
두루 중용

전북 전주 출신인 한 총리는 보수·진보 진영을 가리지 않고 두루 중용된 정통 경제관료다. 김대중정부에서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대통령 경제수석을 지냈고 노무현정부 시절 국무조정실장,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이명박정부에서도 주미대사를 지냈다. 

한 총리의 지명은 여소야대 청문회를 돌파할 ‘묘수’로 여겨졌다. 국무총리는 국무위원인 장관 임명 제청권을 갖고 있다. 총리 인준이 안 되면 내각 구성이 어려워진다. 윤 대통령이 이 부분을 고려해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쉽게 거부할 수 없는 카드를 내세웠다는 평가가 나왔다. 

야당의 반대로 인사청문회가 파행을 거듭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지난 5월21일 윤 대통령은 한 총리를 윤석열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임명했다. 한 총리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책임총리로서 국익과 국민을 우선하는 나라를 만드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로부터 5개월이 흘렀다. 윤 대통령의 묘수로 여겨졌던 한 총리에 대한 여론은 최근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연일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국정 운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부터 한 총리가 윤석열정부의 ‘X맨’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 아니라 ‘실패에 가까운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여소야대 국면에서 야당에 계속해서 ‘구실’을 던져주고 있는 점은 여당 입장에서 뼈아픈 대목이다. 

이태원 참사 관련 3차례
구설수 오르고 해명 반복

지난 19일 한 총리는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이태원광장에 설치된 시민분향소를 찾았다. 하지만 유가족의 항의로 조문하지 못하고 현장을 떠나야 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한 총리가 무단횡단을 한 것. 반대편 도로에 정차 중인 전용차를 타기 위해 빨간불 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너는 장면이 포착됐다.

언론에 공개된 영상에 따르면 한 총리는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다가 취재진과 유튜버의 질문을 피하려 무단횡단했다. 

이날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덕수 국무총리 도로교통법 위반(무단횡단) 경찰에 신고했다’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한 총리의 무단횡단을 국민신문고를 통해 서울 용산경찰서에 신고했다는 내용이다. 실제 용산서는 “한 총리와 관련된 국민신문고 신고 건이 접수된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도로교통법 시행령에 따르면 무단횡단을 하면 범칙금 3만원 부과 대상이다.


국무총리실은 당시 상황에 대해 현장 경찰관의 지시를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총리실은 “한 총리는 지난 19일 오후 안타까운 마음에 이태원 참사 분향소를 찾았다가 유가족의 반대로 조문을 하지 못하고 정부서울청사로 복귀했다”며 “이 과정에서 근무 중이던 용산경찰서 경찰관의 지시에 따라 횡단보도를 건넜다”고 설명했다. 

한 총리를 둘러싼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0월29일 이태원 참사 이후 한 총리가 논란의 중심에 서는 일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지난 13일 이태원 참사를 겪은 고등학생 A군이 숨진 채 발견됐다. 이태원 참사 당시 함께 간 친구는 숨졌고 A군은 부상을 당해 병원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말실수에
무단횡단

경찰은 A군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했다. 

한 총리는 A군의 죽음에 대해 “본인 생각이 좀 더 굳건하고 치료를 받겠다는 생각이 더 강했으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한 총리의 발언에 민주당을 비롯한 정치권이 들끓었다. A군 사망의 원인을 피해자 탓으로 돌린다는 비판이 나왔다. ‘망언’ ‘2차 가해’ 등의 지적이 이어졌다.

민주당 이수진 원내대변인은 “스스로 생명을 포기하기까지 그가 느꼈을 고통과 마음의 상처를 개인의 굳건함이 모자란 탓으로 돌리는 총리가 어디 있나”라며 “국무총리라는 사람이 정부 책임을 회피할 궁리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도 “충격적 망언”이라고 SNS에 적었다. 

한 총리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까지 나왔다. 이 대표는 “외신기자들 앞에서 이태원 참사를 농담거리로 받아치던 그 모습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다는 게 드러났다”며 “이제 그만하실 때가 됐다. 내려오십시오”라고 직격했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상임대표도 “망언과 눈치 없음, 공감능력 제로를 뽐낼 때만 존재감을 드러내는 국무총리는 필요 없다”고 강조했다. 

누리꾼 사이에서도 비판이 쇄도하는 등 논란이 커지자 총리실은 입장을 내놨다. 총리실은 “한 총리의 발언은 안타까운 마음의 표현일 뿐, 비극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거나 국가의 책무를 벗으려는 의도가 아니었음을 알려드린다”며 “이 같은 안타까운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국민들께서도 관심을 가져주시도록 당부했다”고 밝혔다. 

현안 몰라?
패싱 논란

총리실의 해명에도 논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진정성 논란도 불거졌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한 총리의 발언이 문제된 게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한 총리는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이후 외신기자와의 간담회에서 농담 섞인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다. 해당 발언이 나올 당시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가 애도기간이었다는 점도 기름을 부었다.

한 총리는 지난달 1일 이태원 참사 관련 외신기자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날 한 총리는 이태원 참사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는 기자 질문 과정에서 통역에 문제가 생기자 ‘잘 안 들린다’ ‘뭘 말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반응했다.

그러자 기자는 “(사람들이)거기 가 있었던 것이 잘못이었는지, 누구의 잘못도 아닌 것 같은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 책임의 시작과 끝은 어디인지 질문했다”고 한국어로 질의 요지를 다시 설명했다. 


한 총리는 “주최자가 좀 더 분명하면 그런 문제들이 좀 더 체계적‧효과적으로 이끌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이 없을 때 현재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크라우드 매니지먼트’(인파 관리)에 대한 현실적‧제도적으로 개선점 해야할 지점이 있다”고 답했다. 문제가 된 부분은 그 다음이다.

이후 “통역 관련해서 문제가 있어 죄송하다”는 공지가 나왔다. 여기에 한 총리는 “이렇게 잘 안 들리는 것에 책임져야 할 사람의 첫 번째와 마지막 책임은 뭔가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기자의 질문에 빗대 농담성 발언을 한 것. 한 총리의 답변 장면이 담긴 영상이 SNS 등을 통해 확산되면서 비난이 빗발쳤다. 

이태원 참사가 일어나고 채 닷새도 안 돼 국무총리가 말장난을 한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보고 겪은 국민이 트라우마를 호소하던 시기랑 맞물리면서 논란은 들불처럼 번졌다.

총리실 관계자는 “기계 조작으로 동시통역기 볼륨이 낮아 외국인 기자들이 항의하고 회견이 지체되자 양해를 구하는 차원에서 한 말”이라고 해명했다. 한 총리는 “경위와 무관하게 국민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드린 점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책임총리 역할 한다더니
식물·신문총리 불명예만

한 총리는 이태원 참사 관련 언행으로 비판이 제기되면 총리실을 통해 해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 관련해서만 세 차례나 같은 상황이 반복된 셈이다. 임기 초반 책임총리로서 역할을 다하겠다고 했던 한 총리의 포부도 무색해지는 모양새다.


한 총리는 인사청문회 당시 “국무총리가 되면 책임총리로서 확고한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현재 한 총리는 ‘식물총리’ ‘신문총리’ 등 불명예스러운 표현으로 불리고 있다. 지난 9월 국회 대정부질문 때는 핵심현안을 모르고 있거나 신문에서 봤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한 총리는 대통령 헬기가 나무에 부딪혀 손상된 것을 알고 있는지 묻는 질문에 “신문에서 보고 알았다”고 답했다.

전날에도 영빈관 신축 계획과 예산에 대해 “저는 몰랐고 신문을 보고 알았다”고 답변했다. 

대통령 헬기가 망가지거나 영빈관을 새로 짓는 등 주요 현안에 대해 ‘총리 패싱’이 이뤄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 2인자로서 국정운영에 있어 장악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함께 제기됐다. 대정부질문을 거치면서 옅어졌던 존재감이 최근 이태원 참사 관련 설화로 뚜렷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조짐은 임기 초부터 있었다. 윤석열정부 첫 국무조정실장으로 사실상 내정됐던 윤종원 IBK 기업은행장이 낙마하면서 첫 행보부터 삐끗했던 것. 당시 한 총리가 윤 행장을 직접 추천했는데 국민의힘 내부에서 강한 반발이 나왔다. 지난 5월 일어난 일로 윤정부 출범과 동시에 당정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이다.

국민의힘 권성동 의원(당시 원내대표)은 윤 행장의 문재인정부 청와대 경제수석 이력을 문제 삼았다. 권 의원은 “지난 정부의 실패한 경제정책을 주도한 사람이 어떻게 새로운 정부의 정책을 총괄‧조정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겠나”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후 윤 행장이 자리를 고사하면서 한 총리는 초장부터 당정 ‘파워게임’에서 밀리는 모양새가 됐다. 

처음부터
힘 없었나

야권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지난 22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한 총리가)나이를 먹었나보다. 원래 늘공(공무원 시험을 거친 직업 공무원)들, 특히 고위직까지 간 직업 공무원들의 특징은 아주 지나치게 공손한 게 대개 주특기고 저 친구도 그랬던 친구”라고 말했다. 이어 “비서실장도 자기 마음대로 임명 못 하는 총리 자리는 간다고, 연봉 좋은데 그냥 거기에 있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 전했다. 


<jsjang@ilyosisa.co.kr>

 



배너

관련기사

41건의 관련기사 더보기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이재명의 100일 결정적 장면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체감상 1년은 된 것 같다.” 어느 덧 이재명정부가 출범 100일째를 맞았다. 이재명 대통령에겐 숨 가쁜 3개월이었다. 12·3 비상계엄 선포, 탄핵 정국, 조기 대선 등 대형 정치 이슈는 지나갔다. 이제 본격적으로 국정 운영의 청사진을 실현해야 하는 시기다. 지지율은 이미 요동치고 있다. 어떤 이슈가 이정부를 뒤흔들었던 걸까? 지난 6월3일 21대 대통령선거가 열렸다. 지난해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6개월 만에 대선이 치러졌다. ‘어대명(어차피 대통령은 이재명)’이라는 말이 대선 전부터 파다했고 실제로 이변은 없었다. 재수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역대 최다 득표수를 기록했다. 다만, 과반 득표율에는 미치지 못했다. 무정부 상태 산적한 이슈 이번 대선은 대통령 탄핵으로 치러진 보궐선거여서 인수위원회 기간 없이 바로 임기가 시작됐다. 이 대통령 앞에는 비상계엄 사태 수습, 민생 회복, 국민 통합 등 국내 문제는 물론 미국발 통상 전쟁 등 국외 문제까지 이슈가 산적한 상태였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무정부’나 다름없는 상태로 6개월 동안 이어진 국정 공백을 메워야 했다. 이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후 소감 연설에서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민주공화정 공동체 안에서 국민이 주권자로 존중받고 협력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 반드시 그 사명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란 극복 ▲민생 회복 ▲국민 안전 ▲한반도 평화 ▲국민 통합 등을 언급했다. 실제 이 대통령은 국회의 과반 의석을 등에 업고 ‘윤석열정부 지우기’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으로 ‘내란 특검법’ ‘김건희 여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을 통과시켰다. 김건희 특검법, 채 해병 특검법 등은 윤정부에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번번이 폐기됐던 법안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엿새 만인 6월10일 국무회의에서 3대 특검법을 의결했다. 그는 국무회의 이후 SNS를 통해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인 3대 특검법은 내란 심판과 헌정 질서 회복을 열망하는 국민의 뜻을 받들기 위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특검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를 구속 기소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침체된 내수를 회복하기 위한 소비쿠폰도 지급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사회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이는 곧 경기 부진으로 이어졌다. 정치 상황이 좋지 않다 보니 사람들이 소비를 줄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연말 연초 대목 장사를 망친 자영업자는 폐업을 걱정해야 할 지경에 몰렸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지급은 이 대통령이 대선후보 때부터 내세운 공약이다. 지난 7월21일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1차 소비쿠폰이 지급됐다. 기본 15만원에 인구 감소 지역 등에 일정 금액을 더했다. 2차 소비쿠폰은 상위 10%를 제외한 국민 90%가 오는 22일부터 신청할 수 있다. 13조원의 재정이 투입됐다. 윤정부 때부터 이어진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이재명정부 들어서도 쉽게 출구 전략을 찾지 못하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의대생 수업 복귀에 대한 이정부의 행보에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도 불만이 제기됐다. 의료 정상화를 이유로 조건 없이 의대생 복귀를 추진하는 모습에 공정과 원칙이 깨졌다며 실망감을 표출한 것이다. 두 번의 도전 끝에 당선 내란 종식, 민생 첫 손에 의정 갈등은 윤정부 시기인 지난해 2월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겠다는 보건복지부의 발표로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전공의는 집단 사직하며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은 집단 휴학을 강행했다. 응급실 뺑뺑이 사건 등 의료 공백이 가시화되고 의료 붕괴까지 우려되다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핵심 이슈에서 멀어졌다. 새 정부의 현안으로 넘어간 것이다. 이 대통령이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을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하면서 의정 갈등 해소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정 장관 지명 이후 의료계에서 일제히 환영 입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대생 복귀와 관련해 특혜 논란이 나왔고 국민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의료계와 국민 여론의 괴리가 큰 상황이라 해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산재와의 전쟁’은 임기 초 이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모양새다. 이 대통령은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SPC 공장을 현장 방문하는가 하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반복 공시로 주가 폭락’ 등 수위 높은 발언으로 건설업계를 겨냥했다. 이 대통령이 산업재해 근절을 외치자 건설업계가 납작 엎드렸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사용주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내용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고도 일터에서 근로자가 죽는 사례가 거듭 일어나자 대통령이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연이어 산재 사고가 발생한 포스코이앤씨는 대표이사가 바뀌었고 DL건설은 임직원 전원이 사의를 표명했다. 일각에서는 이정부가 지나치게 기업을 ‘잡도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코스피 5000’을 외치며 주가 부양을 공언한 것과 실제 행보는 정반대라는 의견이다. 지금까지의 주가 상승은 이정부에 대한 기대감에서 비롯됐다면 앞으로의 상승분은 실물 경제에서 끌어 올려야 하는데 이를 이끌 기업을 너무 옥죄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 정책의 방향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된다. 지난달 1일 코스피 지수가 126.03포인트(3.88%)나 하락했다. 주가 3200선이 깨졌고 하락률은 미국발 상호 관세 부과로 충격을 받았던 지난 4월7일(-5.57%) 이후 4개월 만에 가장 컸다. 이른바 ‘검은 금요일’의 배경은 전날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침체된 경기 소비쿠폰으로 이정부는 주식 양도소득세 과세 대상인 대주주 기준을 50억원에서 10억원으로 낮추고 최고 35% 배당소득 분리과세 도입 등을 담은 세제 개편안을 공개했다.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조건부로 인하된 증권거래세율도 현재의 0.15%에서 2023년 수준인 0.2%로 환원됐다. 또 법인세 세율을 모든 과세표준 구간에 걸쳐 1%포인트씩 일괄 인상한다고 발표했다. ‘검은 금요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무엇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게 문제였다. 주가가 폭락한 지난달 1일 이후 열흘 사이에 거래 대금이 20%가량 줄었다. 이른바 ‘국장’에서 빠져나간 개인 투자자들이 ‘미장(미국 주식시장)’으로 몰려가면서 나스닥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뜩이나 관세 협상으로 전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증시 부양책에 대한 의구심이 커졌다는 방증이었다. 일명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3조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점도 우려를 더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은 하청 노동자에게 원청과의 교섭권을 부여하고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이 골자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것이라는 예상이 끊이지 않았다. 법안이 통과되기 전부터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영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는 물론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 등이 노란봉투법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이 규제가 덜한 외국으로 나갈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제단체 등은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행을 유예해 달라고까지 했지만 그대로 진행됐다. 대통령실은 법안 통과 이후 상황을 주시하는 모습이다. 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 통과 이후 “노란봉투법의 진정한 목적은 노사의 상호 존중과 협력 촉진”이라며 “노동계도 상생의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 있는 경제 주체로서 국민 경제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를 노동계에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광복절을 앞두고는 사면 문제가 불거졌다. 취임한 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전임 정부에서 임기 초 정치인 사면을 한 적이 없던 터라 이정부 역시 같은 길을 갈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했다. 사면 대상으로 거론되던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수감된 지 8개월 밖에 안된 점도 ‘사면 불가론’에 힘을 더했다. 주가 부양 공약 반대되는 정책 지난해 12월12일 대법원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의 혐의로 기소된 조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에 추징금 600만원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 전 대표는 나흘 뒤인 12월16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만기 출소일은 내년 12월15일이었다. 조 전 대표가 이끌던 조국혁신당은 당시 대선에서 후보를 내지 않고 이 대통령을 지지했다. 조 전 대표의 사면 관련 언급이 나올 때마다 ‘대선 청구서’라는 말이 따라붙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후 종교계, 시민단체, 정치권 일부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조 전 대표가 검찰의 횡포에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주장도 일부 진영에서 제기됐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통령실 등이 조 전 대표의 사면을 직접 요구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조 전 대표는 문재인정부 시절 민정수석, 법무부 장관 등 요직을 맡은 바 있다. 문 전 대통령은 조 전 대표에게 ‘마음의 빚이 있다’고 언급하는 등 각별히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빗발치는 사면 요구에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정치권 등에서 조 전 대표를 사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 달리 여론이 좋지 않았기 때문. 특히 민주당 지지층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사면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목소리가 나왔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입시 비리 혐의 등이 민주당 지지층이 중요하게 여기는 공정과 상식의 가치에 반한다는 것이다. 지지율이 떨어지는 등 민심 이반이 예상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장고 끝에 조 전 대표의 사면을 결정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11일 조 전 대표를 비롯해 윤미향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은수미 전 성남시장,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 등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27명을 포함해 총 83만6678명에 대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분열과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이뤄지는 광복절 특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광복절 사면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을 뒤흔들었다. 사면 논의가 시작됐을 때부터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지지율은 발표 이후 눈에 띄게 꺾였다. 조 전 대표가 사면 이후 ‘광폭 행보’를 보이며 노출도가 높아진 것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세제 개편안·사면으로 지지율 흔들 한일·한미 정상회담은 긍정적 평가 조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대해 ‘(사면이 끼친 영향은) N분의 1 정도’라고 발언한 부분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조 전 대표는 수감 한 달여 만에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여권 내에서도 조 전 대표의 행보를 불편해하는 기류가 감지되며 야권에서는 이정부를 공격하는 소재가 된 모양새다. 특히 조 전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에서 우리의 길을 가겠다는 ‘마이웨이’ 행보를 공언하면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계 개편이 일어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대통령의 임기 5년간 외교 방향을 가늠할 수 있는 정상회담도 잇따라 열렸다. 이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부터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던 ‘트럼프발 통상 전쟁’의 대응 방향이 윤곽을 드러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 직후부터 ‘관세’를 무기로 전 세계에 싸움을 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로 쌀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고 관세가 ‘0’이었기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증액 등을 언급했다.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에 이른바 ‘동맹 비용’을 내라는 요구였다. 실무진이 진행한 관세 협상은 그 시발점이었고 정상회담은 미국발 청구서의 윤곽이 드러난 자리였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표면상으로는 성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각국 정상을 불러놓고 면전에서 망신주기 하는 등 어디로 튈지 모르는 방식의 트럼프 대통령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점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일각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안은 하나도 논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앞서 조선업 협력, 원전 문제를 비롯해 자동차 등 주력 산업에 붙는 관세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하지 못했다는 주장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진이 틀을 만들고 정상회담에서 결정되는 방식의 외교 관행이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먹히지 않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등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앞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도 만났다. 이 대통령은 일본 방문 전 과거 한일 간 위안부 합의와 징용 배상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약속은 존중돼야 한다”며 기존 합의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당시 한일 정상회담에서는 미국발 관세 관련 논의도 이뤄졌다. 당분간 민생 집중 취임 후 첫 외교 시험대를 넘은 이 대통령은 당분간 민생을 살피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당분간 국민의 어려움을 살피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 위해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몇 주간 정상회담에 몰두했기 때문에 국내, 특히 민생·경제성장과 관련된 부분을 앞으로 주력해서 챙기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