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삼의 맛있는 정치> ‘최악 퍼포먼스’ 나경원의 착각

하다 하다…드럼통에 빠지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대선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어느 덧 40여일 앞으로 다가왔다. 압축적으로 치러지는 선거인 만큼 선거판의 출렁임도 크고 빠르며, 특히 선거판을 주도하려는 출마자들의 촌극도 다양하다.

지난 15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직접 드럼통 안에 들어간 사진을 게시하며 “드럼통에 들어갈지언정 굴복하지 않겠다”는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있는 모습을 공개했다. 이 퍼포먼스는 정치권은 물론 온라인 커뮤니티서 급속도로 확산하며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급속도 확산
적잖은 논란

하지만 역대 대선 캠페인 이미지 중 단연 ‘최악’이었다. 맥락도, 개연성도 없이 그냥 막 던진다면 그건 전략이 아니라 촌극이 아닐 수 없다. 후보 본인이 직접 등장해 품위를 내려놓은 건 ‘덤’이다.

드럼통 퍼포먼스 사진이 공개된 이후 정치적 상징성과 메시지 해석을 둘러싸고 다양한 반응이 쏟아졌다. 나 의원은 이 퍼포먼스를 통해 “‘진실을 외치는 목소리’가 탄압받는 사회를 상징하고자 했다”고 설명했지만, 그 배경에 자리한 밈의 기원과 표현 수위 문제는 단순한 상징 이상의 파장을 낳았다.

이 발언은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최근 이 전 대표의 주변 인물들이 연이어 사망하면서 일간베스트 저장소(이하 일베) 등 극우 커뮤니티에서는 이를 조롱하는 ‘드럼통 밈’이 생성됐고, 나 의원의 퍼포먼스는 해당 밈을 정치적으로 빌린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단순한 SNS 퍼포먼스를 넘어서 정치적 메시지 전략이자 대선 국면에서 극단적인 상징의 사용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드럼통’이라는 상징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다. 이 표현은 일베와 같은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 전 대표를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방식으로 사용됐다.

2013년 영화 <신세계> 등에서 조직폭력배들이 시신을 처리할 때 드럼통을 사용하는 장면이 등장했고, 이후 온라인상에서는 누군가를 사회적으로 ‘매장’하겠다는 의미로 드럼통 이미지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선거판 주도용 후보들 다양한 촌극
“무슨 의미냐?” 나 의원 단연 압권

특히 특정 인물을 향한 공격적인 패러디 이미지나 짧은 방송에 자주 활용되며 극우 성향 이용자들의 공공연한 표현으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배경을 고려할 때, 나 의원이 드럼통에 몸을 넣고 그대로 활용하는 것은 단순한 상징이나 비유를 넘어서는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일부 정치 평론가들은 이를 통해 나 의원이 정치적 희생자 또는 진실을 말하는 피해자 이미지를 강조하려 했다고 분석하지만, 밈의 뿌리가 가진 혐오성과 배제성을 생각하면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정치적 행위라는 평가도 뒤따른다.

민주당은 나 의원의 드럼통 퍼포먼스에 대해 즉각 비판했다.


박경미 대변인은 공식 논평에서 “드럼통에 사람 하나 묻는다고 진실까지 묻을 수는 없다”는 나 의원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해당 표현이 마치 야당 인사를 억압하거나 제거할 수 있다는 공포를 조장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민주당은 이를 ‘공포 마케팅’ ‘공포 정치’로 명명하며 강하게 반발했고, 이는 단순한 퍼포먼스의 수준을 넘는 악의적 이미지 조작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변인은 “내란을 옹호할 것이 아니라, 위법한 계엄령에 맞서 한겨울 국회로 달려간 시민과 함께 장갑차를 막았어야 했다”며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사태와 연계한 비판도 이어갔다.

넘길 수 없는
정치적 행위

민주당은 나 의원의 일련의 메시지와 퍼포먼스가 전형적인 ‘야당 악마화’ 전략이라며, 조기 대선 국면에서 반민주 세력의 이미지 구축 시도라고 분석한다.

온라인상에서도 나 의원의 드럼통 퍼포먼스는 순식간에 확산했고, 커뮤니티마다 상반된 반응이 이어졌다. 일부 보수 성향 누리꾼들은 “진실을 외치다가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며 나 의원의 퍼포먼스를 지지했다. 하지만 “일베 밈을 정치인이 직접 빌린 것은 도를 넘은 행동”이라는 비판이 주를 이뤘다.

특히 젊은 층 사이에서는 “정치인이 대중문화 밈을 잘못 인용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다수 등장했다.

SNS에서는 “대중 정치인은 은유를 사용할 때는 기원이 어떤 배경으로부터 나왔는지 반드시 따져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일부 이용자들은 나 의원이 해당 밈의 출처를 몰랐을 가능성도 제기했지만, 같은 날 그녀의 보좌진이 단톡방에 일베식 그림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이 역시 비판을 피하긴 어렵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정치적 상징으로 드럼통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정치 언어의 품격과 신뢰도를 떨어뜨린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논란이 확산하자 나 의원은 각종 방송 출연과 기자회견을 통해 해명에 나섰다. 방송에 출연한 나 의원은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이재명 전 대표가 드럼통으로 불린다”고 주장하며 “공포 정치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였다”고 강조했지만, 극우 커뮤니티서 사용하는 밈을 그대로 빌린 것에 대한 해명은 명확하게 내놓지 않았다.

각종 해석
붙고 붙고

특히, 나 의원 측 관계자가 국민임대주택을 조롱하는 드럼통 이미지도 기자단 단톡방에 공유한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은 더욱 증폭됐다.

이 외에도 나 의원은 같은 날 시진핑 자료실 폐쇄를 촉구하며 서울대 캠퍼스를 방문했고, 연세대 차하얼 학회 문제를 언급하는 등 외교 및 국가 안보에 관련된 발언도 연이어 내놨다.


이날 일련의 움직임은 대선주자로서의 존재감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읽히지만, 극우 상징의 반복 사용은 중도층 유권자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남길 수 있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정치인의 상징적 퍼포먼스는 늘 존재해 왔다. 하지만 나 의원의 드럼통 퍼포먼스는 그 기원이 대중 영화나 밈을 넘어 혐오와 비하의 상징으로 발전한 콘텐츠서 유래했다는 점에서, 단순한 상징을 넘어서는 메시지를 내포한다.

‘진실을 위해 목숨을 걸겠다’는 그의 주장과 퍼포먼스는 본인의 결기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지만, 표현 수단이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조롱적이라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한국 정치에서 인터넷 밈과 은유의 정치적 차용은 날로 증가하고 있지만, 그것이 가진 문화적 맥락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활용됐을 때 부작용은 커진다. 이번 논란은 대선 국면에서 정치인이 어떤 언어와 상징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어떤 프레임이 형성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극우 커뮤니티서 사용되는 상징과 표현이 주류 정치 담론으로 확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사회적 질문도 함께 남는다.

정치인의 언어·행동·이미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 사례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축이지만, 정치인에게는 더 큰 책임이 따른다. 특히 공공 커뮤니케이션에서는 언어와 상징의 출처, 파급력, 사회적 맥락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나 의원의 드럼통 퍼포먼스는 상징이 전달하는 감정적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례지만, 그 출처가 논란의 중심이 된 점은 정치 의사소통의 경계에 대한 중요한 경고로 작용한다.

정치인은 단지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넘어, 어떤 메시지를 사회에 남길 것인지를 결정하는 이들이다. 나 의원의 퍼포먼스가 의도한 바와는 달리 많은 사람에게 위협, 조롱, 배제의 상징으로 읽혔다면, 정치적으로는 오히려 역효과일 수 있다.

이번 논란은 대선 정국에 앞서 상징 정치의 양날의 검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됐다. 이는 단순한 논쟁을 넘어, 정치 언어에 대한 성찰의 시작이 돼야 할 것이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온라인 밈과 유행어를 빌리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그것이 갖는 기원과 맥락을 무시한 채 사용하는 것은 큰 위험을 동반한다. 일베 밈을 포함한 특정 커뮤니티 언어는 종종 사회적 갈등과 혐오를 기반으로 확산하며, 정치인이 이를 빌리면 대중은 해당 정치인의 세계관과 지향을 반영하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나 의원의 드럼통 퍼포먼스는 그 경계를 명확히 드러낸 사건이다.

정치는 단지 표현이 아니라,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담보해야 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단어 하나, 상징 하나의 선택이 가져오는 파급력을 더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다. 밈을 사용하는 정치가 효과적일 수 있지만, 때로는 그 대가가 크다는 사실이 이번 논란을 통해 재확인됐다.

막 갖다
쓰고 있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웃음거리나 SNS 퍼포먼스를 넘어 정치인의 언어와 이미지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2025 조기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은 메시지의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과 상징, 그리고 그 배경까지도 함께 보고 판단하고 있다.

<hntn11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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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