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 민주당 예견된 후폭풍

최소 두 번 더 남았는데…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이번에도 동료 의원의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켰다. 이재명 대표 체재 이후로 벌써 4번째다. ‘방탄 정당’ ‘내로남불’ 등의 오명은 이번 부결을 계기로 더욱 공고해졌다. 문제는 이번이 마지막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총선이 점차 가까워지는 지금, 반복되는 방탄 논란이 민주당에 달가울 리 없다.

민심의 ‘역풍’ 우려에도, 당내의 첨예한 계파 갈등 속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의 ‘방탄’ 기조는 굳건했다. 민주당을 탈당한 윤관석·이성만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지난 12일 국회 본회의서 모두 부결됐다. 두 의원은 2021년 치러진 민주당 전당대회서 송영길 전 대표를 당선하도록 만들기 위한 돈봉투 살포 작업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무더기
반대표

체포동의안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 출석 의원 과반 찬성으로 통과된다. 이날 본회의장에는 의원 293명이 모였으므로, 가결선은 찬성 147표 이상이었다. 윤 의원 표결 결과는 찬성 139표 반대 145표 기권 9표였고, 이 의원 표결 결과는 찬성 132표 반대 155표 기권 6표였다.

일각에선 최근 민주당 내에서 분출하는 쇄신 요구가 체포동의안 가결로 귀결될 것이란 전망도 나왔지만, 결과는 달랐다. 

이날 국민의힘은 찬성을 당론으로 정하고, 소속 의원 113명 중 112명이 회의장으로 나왔다. 현재 구속 중인 정찬민 의원을 제외하고 ‘총동원령’이 떨어진 것이다. 하지만 의석수의 한계로 이번에도 가결을 이끌어내진 못했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민주당서 반대표가 무더기로 나왔다는 의미다. 정치권은 소속 의원이 167명에 달하는 민주당에서 20~30표 안팎의 찬성·기권표가 나왔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앞서 민주당은 이번 표결 방침을 ‘자율’로 정했다. 반대를 당론으로 밀어붙이기엔 여러모로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방탄 역풍이 불 가능성이나 반란표 단속이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해야 했다. 

하지만 결과만 놓고 보자면 사실상 반대를 당론으로 내세운 것과 같아졌다. 

정치권은 민주당서 무더기로 반대표가 나온 요인을 ‘검찰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동정표’로 보고 있다. 실제로 표결 직후 민주당 내부에선 이날 국회서 체포동의안 요청 이유를 설명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한 날 선 비판이 이어졌다.

한 장관은 “돈봉투를 받은 것으로 지목되는 약 20명의 민주당 의원이 여기 계시고 표결에도 참여하게 된다. 그 20명의 표는 ‘캐스팅보트’가 될 것”이라며 “돈봉투 돌린 혐의를 받는 사람들의 체포 여부를 돈봉투 받은 혐의를 받는 사람들이 결정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이번에도 부결…‘일파만파’ 논란 지속
당 쇄신 의지 없다? 유권자 역풍 어쩌나

이와 관련해 민주당 김한규 원내 대변인은 “한 장관의 정치적 발언으로 모욕감을 느꼈다는 의원이 많았다. 정치적으로 계산된 발언이 많은 의원(표결)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게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이소영 원내대변인 역시 “개별 의원이 각자 판단에 따라 표결한 것”이라며 “검찰의 수사가 과도하고 무리한 구속영장 청구였다는 의견이 많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장관은 “기사를 보니까 제 설명 때문에 민주당이 모욕감을 느껴서 방탄(체포동의안 부결)한 것이라는 취지로 민주당 대변인께서 말씀하신 것 같다. 오히려 민주당의 거듭된 방탄에 국민께서 모욕감을 느끼실 것”이라 받아쳤다.

그러면서 “민주당 말씀은 원래는 (찬반 투표를)제대로 하려고 했는데, 제 말을 듣고 욱하고 기분이 나빠서 범죄를 옹호했다는 얘기”라며 “정당이 하기에는 참 구차한 변명이라고 국민이 생각하실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검찰 수사에 대항해 단일대오를 구성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여전히 형성돼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재차 들어올 때를 염두에 둔 방탄 전략이 재확인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민주당은 지난해 8월 이 대표 체재가 시작된 이후로 자당 의원들의 체포동의안을 모두 부결시켜왔다. 지난해 12월 말 노웅래 의원이 뇌물 수수·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아 체포동의안이 제출됐을 때, 결과는 재석 271명 중 반대 161표로 압도적으로 부결됐다.

곧이어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때는 일부 이탈표가 있었지만, 찬성 139표에 그치면서 재석 297명의 과반 달성에 실패해 부결됐다. 이 대표 체재 이전에 민주당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체포동의안에 높은 찬성 비율을 보였던 것과는 배치되는 모습이다.

2020년 10월 민주당 정정순 의원, 2021년 4월 이상직 의원, 국민의힘 정찬민 의원 체포동의안은 모두 높은 찬성 비율로 통과됐다.

방탄 정당
내로남불

게다가 민주당 의원들의 체포동의안이 족족 부결되는 가운데, 국민의힘 출신 무소속 하영제 의원의 체포동의안은 무난히 통과되면서 ‘내로남불’ 논란이 일었다. 지난 3월 말 치러진 표결은 재석 281표 중 찬성 160표 반대 99표 기권22표로 가결됐다. 

표결 전 국민의힘은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서’를 만들어 당내 과반 서명을 받기도 했다. 이 대표의 체포동의안 부결 비판 수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이 대표는 지난 대선 국면서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 폐지를 10대 공약 중 하나로 내건 바 있다.

지난해 5월에도 “불체포특권을 제한하자는 것에 100% 동의한다”고 발언했다. 여권에서는 이 대표가 본인이 곤경에 처하자 말을 바꿨다 지적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체포동의안이 재차 부결되자 공세 수위를 한껏 높였다. 국민의힘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민주당은 돈봉투로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오염시킨 윤·이 의원에게 결국 갑옷과도 같은 방탄조끼를 입혀주며 법망을 피해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며 “역시나 두 의원은 몸만 떠났을 민주당에게는 여전히 함께인 위장 탈당이었던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애당초 체포동의안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고 의총에서조차 논의하지 않으며 ‘자율 투표’ 운운할 때부터 통과시킬 마음이 없었던 것”이라며 “오늘로서 윤석열정부 들어 체포동의안이 제출된 민주당 의원 4명 모두가 살아남는 기록을 남기게 됐으니 두고두고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비꼬았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도 표결 후 “이 대표가 국민들 앞에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을 폐지하겠다고 공약한 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것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며 “민주당의 도덕상실증은 이제 구제불능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송(영길)·이(재명) 연대의 돈봉투 카르텔이 벌인 조직적 범죄 은닉 행위에 대해 국민이 심판해주실 것을 호소한다”고 덧붙였다.

정의당도 민주당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정의당 김희서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돈봉투 비리 정치에 제 식구 감싸기 방탄 정치까지 더해졌다”며 “구태정치를 벗어나지 못한 민주당을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강은미 원내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충격적인 결과”라며 “직전 집권당이자 제1당의 정치적 책임의식이 고작 방탄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직격했다.

총선 코앞
민심 역풍?

체포동의안 부결로 검찰은 돈봉투 의혹 수사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 그동안 검찰은 의혹에 연루된 이들의 증거인멸을 우려해 구속 수사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강래구 전 한국수자원공사 상임감사위원은 이미 금품 제공을 지시·권유하고 제공했다는 정당법 위반 혐의로 지난달 8일 구속됐다.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 역시 개인비리 의혹으로 구속된 상태다.

여기서 검찰이 두 의원의 신병마저 확보했다면, 수사 속도에는 더욱 탄력이 붙었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 의견이다. 하지만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면서, 향후 수사 속도는 현저히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피의자 구속 상태에서 소환 조사는 어렵지 않지만, 불구속 조사는 상호 일정 협의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검찰이 혐의의 종착지로 보고 있는 송 전 대표에 관한 수사 일정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검찰 측은 체포동의안이 기각된 점에 관해 유감을 표명했다.

검찰은 “헌법질서의 근간을 훼손하는 범죄의 중대성과 조직적인 증거인멸 정황 등 구속 사유가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구속영장에 대한 법원의 심문 절차가 아예 진행될 수도 없게 된 상황이 유감”이라며 “국회의 체포동의안 부결과 관계없이 전당대회 금품 살포 및 수수와 관련된 수사를 엄정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당장 검찰 수사를 지연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제 열 달도 채 남지 않은 총선 국면서 타격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코인 투기, 돈봉투 살포 의혹으로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은 데 이어 당사자들을 당이 감싸주는 모양새가 연출됐기 때문이다.

의혹이 불거진 직후에는 강도 높은 자체 쇄신을 결의했던 민주당이 얼마 뒤 태도를 뒤집은 것도 유권자들의 반감을 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대표 취임 후 4건 모두 부결
총선 코앞인데…부결 부담 커져 

민주당은 지난달 14일 쇄신 의원총회를 열고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결의문서 “민주당의 윤리 규범을 제1의 판단 기준으로 삼겠다. 온정주의를 과감하게 끊어내겠다”고 공언했다. 민주당 윤리 규범에는 청렴 의무,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 조항 등이 담겨있다.

하지만 이번 표결서도 온정주의적 반대표가 속출한 만큼, 당내 쇄신 의지의 진정성이 의심받게 됐다.

이달 내로 윤곽을 드러낼 예정이었던 새 혁신위원회도 이래경 다른백년 이사장의 혁신위원장직 낙마 이후로 줄곧 표류하는 중이다. 가뜩이나 당내 쇄신·혁신 동력이 떨어져 보이는 상황서 이를 부정하는 듯한 단체행동이 포착된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체포동의안 표결이 마지막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정치권과 법조계는 검찰이 총선 전에 최소 2번 이상의 체포동의안 요청을 국회로 보낼 것으로 점친다. 이미 표결을 한 차례 거쳤음에도 개인 의혹이 말끔히 정리되지 않은 이 대표와 코인 투기 의혹에 휩싸인 김남국 체포동의안이 다시금 날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대표와 김 의원은 당내 주류 세력과 강성 지지층의 엄호를 확실하게 받고 있다. 체포동의안 가결을 쉽게 결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하지만 부결 또한 당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총선을 1년여 앞둔 시점부터 ‘방탄’ 면모를 수차례 반복해서 보여준다면, 새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에서 대형 악재로 작용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이미 하 의원의 체포동의안 가결을 통해 공격할 명분을 쌓아둔 국민의힘의 존재도 부담이다. 

비록 이번 표결에서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잔존한 계파 갈등도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비명계가 이 대표 ‘손절’이나 용퇴를 재차 요구할 수 있고, 관철되지 않을 경우 집단적으로 찬성표를 던질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비명계는 지난 이 대표 표결에 앞서 이 대표와 친명계를 싸잡아 비판했다. 뒤이은 표결 결과 민주당 내부에서 30개 안팎의 반란표가 나왔고, 그 대부분이 비명계서 나온 것으로 추측됐다.

커져가는
대표 책임론

방탄 프레임 형성의 빌미를 제공한 이 대표 ‘책임론’ 또한 계속 커질 전망이다. 이 대표는 자신의 ‘사법 리스크’ 탓에 당 내부의 각종 의혹에 단호한 대처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비판을 줄곧 들어왔다. 매번 방탄 논란이 타오를 때마다, 이 대표의 입지에 점차 균열이 생기는 이유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진통 끝 합의…민주당 새 상임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이 지난 14일 국회 본회의서 자신들 몫의 상임위원장 6자리 인선을 마무리지었다. 그간 숱한 잡음을 빚었던 상임위원장 인선은 재선 의원 위주로 마무리됐다. 

이날 민주당 이소영 원내대변인은 의원총회를 마치고 “전문성과 지역 특성, 본인 희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예산결산특별위원회를 포함한 6개 상임위원장 후보를 인선했다”며 “이들 모두 의정활동 경험이 풍부하고 21개 국회서 간사 등 역할을 한 분들이라 현안에 대한 기민한 대응이 기대된다”고 전했다.

먼저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맡게 된 서삼석 의원은 위원회 관련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현재 상임위원장 중 호남 지역 의원이 없어 ‘지역 안배’ 의도도 내포된 인선으로 알려졌다.

서 의원의 지역구는 전남 영암·무안·신안이다.

행정안전위원장은 현재 간사인 김교흥 의원이 맡기로 했다.

업무 연속성을 고려한 인선이다.

교육위원장은 제21대 국회 교육위 소속 의원들의 추천에 힘입어 김철민 의원이 낙점됐다.

이재정 의원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을 맡는다.

민주당 정책위원회 선임부의장 재임 시절 관련 정책 논의를 주도한 성과와 당내 ‘여성 우선배치 원칙’이 적용된 결과로 풀이된다.

보건복지위원장은 치과의사 출신인 신동근 의원이 분야 전문성을 인정받아 뽑혔다.

환경노동위원장을 맡게 된 박정 의원은 민주당 정책위 상임부의장 임기 당시 친노동, 친환경 정책을 주도한 점, 을지로위원회 활동 등 노동 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깊다는 점 등에서 적임자로 인정받았다.

이번 상임위원장 선출은 민주당이 지난 12일 의원총회서 마련한 새로운 기준에 근거했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 최고위원,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등 당내 요직을 맡은 인사들은 상임위원장을 겸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장관 이상의 고위 정무직이나 전직 원내대표를 맡은 이들도 제외 대상이다.

이 같은 기준에 따르다 보니, 재선 의원들이 대거 상임위원장을 맡게 됐다는 후문이다.

지금까지는 3선 이상의 중진의원들이 위원장직을 수행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번에 선출된 상임위원장들은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는 내년 5월29일까지 임기를 이어간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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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