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보다 더한' 박범계의 독한 승부수

은근히 더 노골적으로 돌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취임 4개월째를 맞았다. 추미애 전 장관에 이어 법무부에 입성한 박 장관은 지난 4개월 동안 시종일관 '친정부 행보'를 보이고 있다. 겉으로는 추 전 장관보다 조용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더 노골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2월30일 문재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범계 의원을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정만호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판사 출신 3선 국회의원으로 제20대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간사, 민주당 생활적폐청산위원장 등으로 활동하며 우리 사회 각종 부조리 해결과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해왔다"고 인선 배경을 밝혔다. 

시즌 2냐
재정립이냐

이어 "법원·정부·국회 등에서 활동하며 쌓은 식견과 법률적 전문성, 강한 의지력과 개혁 마인드를 바탕으로 검찰‧법무개혁을 완결하고 인권과 민생 중심의 공정한 사회 구현을 실현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의 박 장관 지명에 대한 법조계 안팎의 의견이 엇갈렸다. 검찰, 특히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강대강으로 맞부딪친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전례를 따를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반면 당시 악화일로를 걷고 있던 검찰과 법무부의 관계를 재정립할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박 장관이 윤 전 총장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점이 기대의 근거가 됐다. 또 지명 당시 박 장관은 "국민의 목소리를 경청해 검찰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문재인 대통령께서 '법무부와 검찰은 안정적 협조 관계가 돼야 하고 이를 통해 검찰개혁을 이루라'고 말씀하셨다. 그것이 저에게 주신 지침으로 알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2월1일 취임 이후 4개월여 동안 박 장관의 행보는 '친정부'에 방점이 찍혔다. 법무부 장관이면서 동시에 국회의원인 그가 '민주당 의원'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동시에 추 전 장관과 달리 검찰과 정면충돌은 자제하지만 검찰 통제는 더 노골적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의 공소장 유출 의혹을 두고 대검찰청에 '진상조사'를 지시한 게 대표적이다. 지난 13일 이 지검장의 혐의가 적시된 공소장 내용이 여러 매체를 통해 보도됐다. 앞서 이 지검장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기소됐다. 

공소장에 따르면 검찰은 이광철 청와대 민정비서관(전 민정비서실 선임행정관)이 조국 당시 민정수석에게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사건을 보고하면서 "이규원 검사가 수사 받지 않도록 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조 수석은 이 내용을 윤대진 법무부 검찰국장에게 알려 수사 외압이 진행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임기 초부터 '이성윤 감싸기'
일관적으로 친정부 행보 보여

해당 사안에 대해 박 장관은 연일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공소장 유출 의혹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또 공소장 유출 의혹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엄정 대응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검찰 내부에서는 이번 공소장 유출 의혹이 지침 위반에 해당하는 정도로, 불법행위로 수사·처벌할 수 없다는 반론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박 장관이 '내로남불'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지적하는 목소리가 있다.


국민의당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은 지난 18일 기자회견에서 "야당 의원 시절 박 장관은 누구보다 국민의 알권리를 강조했다"며 "그랬던 그가 정권이 바뀌고 법무부 장관이 되자 이제 태도를 돌변해 이를 검찰의 불법적 행태라 지적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검장의 공소장 내용이 보도되는 과정에서 조 전 수석 등 청와대 인사가 추가로 언급되자 박 장관이 이를 피의사실 공표로 옥죄려 한다는 주장이다.

박 장관은 "단순한 평면 비교, 끼워 맞추기식 비교는 사안을 왜곡한다"며 "공존의 이름으로 마지막 선을 넘는 행위를 경계해야 한다"고 자신의 SNS에 적었다. 야당의 내로남불 비판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야당 법사위원들은 공소장 유출 의혹과 관련해 대검에 조사 지시를 내리기에 앞서 이 지검장에 대한 직무배제부터 단행하라는 입장을 전했다. 헌정 사상 최초의 '피고인' 서울중앙지검장에 대한 조치를 취하라는 것.

박 장관의 '이성윤 감싸기'는 임기 초부터 시작됐다. 박 장관은 임기 시작과 동시에 검찰인사를 단행했다. 추 전 장관이 검찰인사 과정에서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지 않는, 이른바 '윤석열 패싱'으로 논란을 빚은 점을 의식한 듯 박 장관은 두 차례에 걸쳐 윤 전 총장과 만남을 가졌다.

사상 초유의
피고인 신분

윤 전 총장은 박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이 지검장 교체를 요구했다. 

하지만 이 지검장이 서울중앙지검장에 유임되면서 또 다시 '윤석열 패싱' 논란이 불거졌다. 패싱 논란은 청와대에서도 터져 나왔다. 주말인 지난 2월7일 기습적으로 단행된 검찰인사를 두고 신현수 청와대 민정수석이 돌연 사의를 표명한 것이다.

신 수석이 취임한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신 수석은 검찰과 법무부 사이에서 중재를 시도했는데, 조율이 진행되는 중에 인사가 발표돼버리니 사의를 표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후속 검찰인사에서 윤 전 총장과 신 수석의 의견이 일정 부분 반영되면서 신 수석은 잠정 복귀했지만 불편한 동거에 가까웠다.

그로부터 약 한달 뒤인 3월4일 청와대는 윤 전 총장이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설치 시도에 반발해 사의를 표하자 즉각 수용했다. 중수청은 여권에서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려는, 이른바 검수완박을 골자로 하는 카드로 분석됐다.

윤 전 총장은 "이 나라를 지탱해 온 헌법 정신과 법치 시스템이 파괴되고 있다"는 말과 함께 검찰을 떠났다. 청와대는 신 수석도 즉시 교체했다.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수사 무마 의혹 사건과 관련해서도 박 장관은 이 지검장을 감싸는 뉘앙스의 언급을 수차례 했다. 이 사건을 수사해온 수원지검 수사팀은 지난 12일 이 지검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 불구속 기소했다.

현직 서울중앙지검장이 기소된 건 사상 초유의 일이다. 

앞서 수원지검 수사팀은 지난 3월말 이 지검장을 기소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하지만 4·7 재보선 등 정치 일정과 차기 검찰총장 인선 시기가 맞물린 점을 고려해 기소 시점을 미뤄왔다. 이 지검장의 검찰총장 후보군 포함 여부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결국 이 지검장이 검찰총장 최종 후보군에서 빠지면서 기소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지검장이 소집 신청한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지난 10일 '기소 권고' 의견을 낸 것도 수사팀에 힘을 더했다.

이 지검장의 거취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 지검장은 검찰 안팎에서 용퇴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단 '버티기 모드'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지검장이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공은 박 장관에게로 넘어갔다.

버티기에
힘 실어줘


이 지검장이 스스로 거취에 대한 결정을 하지 않는다면 법무부 장관이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 지검장 기소에 앞서 박 장관은 지난 11일 법조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기소와 직무배제는 별개라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 지검장에 대한 징계 청구 관련 질문에 "기소돼 재판을 받는 절차 및 기준과 직무배제 및 징계는 별도의 트랙이자 절차, 제도"라면서 "기소된다고 해서 다 징계하는 것도 아니고 별개로 감사도 가능하다. 별개의 기준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앞서 한동훈 검사장 독직폭행 사건의 정진웅 광주지검 차장검사나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 이규원 검사도 별다른 인사조치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서울중앙지검장이라는 상징성을 고려해 직위해제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됐는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게 국민 법 감정에도 맞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다.

박 장관은 수원지검 수사팀이 이 지검장을 서울중앙지법에 기소한 것을 두고 '억지춘향'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수원지검은 "형사소송법 256조(타관송치)에 의해 사건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이던 이 지검장의 범죄지 관할로 이송한 것으로 적법한 조치"라고 반박했다.

이 과정에서 이 지검장의 공소장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이를 문제 삼고 나선 것이다. 박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김 전 차관의 불법 출금 사건 수사를 공수처로 이첩해야 한다는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또 절차적 정의를 바로 세우는 시범케이스가 왜 김 전 차관 사건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반문했다. 

인사청문회 때부터 조짐
한명숙 사건 수사지휘권

당시 인사청문회에서 박 장관은 월성 1호기 경제성 부당평가 의혹 사건과 관련해 "수사 단서가 있다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함이 원칙"이라면서도 "검찰이 정치적 목적으로 과잉 수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고 답했다.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가 이뤄지도록 적절히 지휘·감독하겠다며 수사지휘권 발동 가능성도 시사했다. 

박 장관이 취임 후 처음 발동한 수사지휘권도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뇌물수수 사건 1심 당시 재소자들의 거짓 증언 의혹 사건'에서였다. 한 전 총리 뇌물수수 사건은 대법원 판결로 종결됐다.

일각에서는 박 장관이 '여권 대모' 한 전 총리의 명예 회복을 위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른바 '한명숙 구하기'라는 것.

박 장관은 지난 3월17일 해당 사건에 대해 '대검 부장회의'를 열어 혐의 유무 및 기소 가능성을 재심의하라는 내용의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기소를 주장하는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과 임은정 감찰정책연구관으로부터 의견을 청취하라고 조남관 검찰총장 직무대행(대검 차장검사)에게 명령한 것. 

조 대행이 대검 부장회의에 전국 고검장을 참여시키는 묘수를 냈다. 회의 참석자 14명 중 10명이 불기소 의견, 2명은 기소, 2명은 기권했다. 박 장관은 불기소 결론에 대해 사실상 수용 의사를 표명하면서도 "한 전 총리 사건의 실체적 진실 여부와는 별개로 최초 조사 과정에서 검찰의 직접 수사관행이 부적절했다는 단면이 드러났다"며 감찰에 착수했다. 

박 장관은 검찰총장 후보로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을 제청했다. 김 전 차관은 문정부에서 감사원 감사위원, 공정거래위원장 등 요직마다 최종 후보군에 오를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는 ‘친정부 인사’다. 

이 지검장이 검찰총장 최종 후보군에서 탈락하면서 가장 유력한 후보로 주목 받아왔다. 앞서 박 장관은 "검찰총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게 돼있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에 대한 상관성이 크겠다"고 말한 바 있다. 

친정부 총장
내부 인사는?

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거쳐 검찰총장에 임명되면 바로 대규모 검찰인사가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 다음 달에 있을 검찰인사가 취임 이후 4개월 동안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빚어온 박 장관의 진정성을 가늠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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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