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검증대 오른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

갈길 구만리인데 곳곳 돌부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후임으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낙점했다. 검찰개혁과 수사권 조정 등의 과제를 맡을 적임자로 판단한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박 후보자는 청문회를 앞두고 재산신고 누락, 폭행 의혹 등으로 연일 곤욕을 치르는 모습이다. 박 후보자의 답변 전략에 따라 청문회 때는 물론, 장관 임명 이후에도 논란이 지속될지 여부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인다.
 

▲ 박범계 법무부 장관 후보자 ⓒ박성원 기자

지난달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사표를 수리하고, 후임으로 박범계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의원을 낙점했다. 박 후보자는 검찰개혁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에서 신임 장관 후보자로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후보자는 윤석열 검찰총장과는 사법연수원 동기로, ‘서초동 동기모임’ 등을 언급하며 친분을 드러내기도 했다.

후보자 발탁
그의 관심사

문 대통령은 헌정사상 초유의 현직 검찰총장 징계청구 등으로 혼란스러운 검찰조직을 수습하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수사권 조정 등 새 제도를 정착시키는 과제를 맡을 적임자가 박 후보자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박 후보자가 전임인 추 장관의 검찰개혁과는 다른 길을 걸을지, 아니면 추 장관과 같은 방향을 유지한 채 검찰개혁을 마무리 짓는 역할을 할지는 미지수다. 이에 따라 박 후보자의 검찰개혁 방향을 예상해 볼 척도로 이달 중 진행될 검찰인사가 거론되고 있다.

법무부는 최근 검찰인사위원회를 열고 검찰 정기인사를 1월 하순경에 발표하기로 했다. 이는 2월1일 부임일에 맞춘 것이다.


특히 검찰 고위간부 인사 단행 시 ‘친정권’ 인사로 분류되던 검사들을 주요 보직으로 이동시킬지가 관심이다. 또 직무가 정지됐다가 복귀한 윤 총장을 보좌하는 대검 참모진의 구성 변화도 있을지 주목된다.

물론 추 장관이 인사를 마무리하고 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추 장관이 한 차례 더 ‘물갈이 인사’를 단행하고, 박 후보자는 부담을 다소 덜게 되는 그림이 나올 수도 있다.

박 후보자가 검찰개혁 ‘2라운드’를 어떻게 구상하느냐에 따라 여당이 추진하는 ‘2단계 검찰개혁’의 실현 여부도 가늠될 것으로 보인다. 여당은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완전히 분리하는 방안을 올해 상반기에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추 장관이 언급했을 당시 검찰 내 반발이 심했던 방안인 만큼, 박 후보자는 정부 입장에서 이를 조율하는 역할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또 검찰 상급자의 사건 지휘를 제한해야 한다는 여당의 방안 역시 검토해야 할 과제다.

또 공수처 설치, 수사권 조정 등 이미 추진 중인 문재인정부의 주요정책을 제대로 정착시켜야 하는 막중한 임무도 안게 됐다. 공수처의 경우 초대 공수처장으로 지명된 김진욱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이르면 이달 중 출범한다.

이날부터 시행되는 수사권 조정 관련 사전 준비는 앞서 진행돼왔으나, 제도가 정착할 때까지 형사사법체계 전반에 큰 혼란이 예상되는 만큼 시스템 정비도 시급할 것으로 보인다.

박 후보자의 주요 관심사는 과거 그가 발의한 법안에서 살펴볼 수 있다. 박 후보자는 판사 출신의 민주당 3선 의원(19·20·21대)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주로 활동해왔다. 그가 검찰청법·형사소송법·출입국관리법 등 법무부 소관 법률에 대해 발의한 법안을 통해 법무부 정책에 대해 어떤 구상을 갖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검찰개혁·수사권 조정 과제 맡을 적임자?
인사 청문 준비 돌입…법무부서 업무보고

그는 판·검사의 전관예우 방지, 피의 사실공표죄, 이주민 인권 등에 관심을 보였다. 다만 이 법안들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박 후보자는 검찰의 전관예우를 근절하기 위해 징계 강화를 추진했다. 2016년 8월 현직 검사와 검찰청 직원이 사건 이해관계인과 사적 접촉하는 경우 기관장에게 보고하지 않으면 징계하는 검찰청법·검사징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판사에 대해서도 같은 내용의 법원조직법·법관징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후보자는 당시 “전관예우는 사법부 불신을 심화시키고 사회 정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며 “전관예우가 근절되지 않는 것은 검사·법관의 사적 관계를 변론에 활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수사기관의 피의 사실공표죄가 사문화된 상황에서 현실적인 처벌 방법도 내놨다. 박 후보자는 2012년 12월 ‘범죄 피해의 급속한 확산이 심각하게 우려되는 경우’ ‘공공의 안전에 대한 급박한 위협을 국민이 알 필요가 있는 경우’ ‘범인의 검거나 중요 증거 발견을 위해 국민의 협조가 필수적인 경우’ 처벌하지 않는 규정을 신설하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후보자는 “수사 과정에서 피의 사실공표가 필요한 특수한 사정도 배제할 수 없는데 처벌만 규정하고 있어 아예 처벌하지 않는 관행이 형성됐다”며 “현실적으로 위법성 조각사유(위법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특별한 사유)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고성준 기자

불법체류 이주민을 국가의 인권침해로부터 보호하는 법안도 냈다. 2015년 8월 강제퇴거 대상 외국인이 속한 단체·업소를 출입국관리 공무원이 출입해 조사할 때 법원 영장을 발부받도록 하는 출입국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후보자는 “체류자격 위반 외국인에 대해 강력범죄자를 다루는 듯한 가혹한 방식으로 집행하는 비인도적 행위는 강력히 금지하고 제한해야 한다”고 했다.

어린 나이나 심신장애를 이유로 약한 처벌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박 후보자는 2017년 11월 소년범 소년원 최장 보호기간을 2년에서 5년으로 늘리고, 중·장기 소년원 송치 대상을 12세 이상에서 10세 이상으로 확대하는 소년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박 후보자는 “흉포화된 소년범죄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켜 소년범의 교정·교화 목적, 사회의 법 감정, 소년의 정신적·신체적 성숙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18년 11월에는 판사가 심신장애를 인정하려면 전문가 감정을 의무적으로 받는 형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박 후보자는 “심신장애 판단을 법관에게 전적으로 맡기면 의학적 근거가 부족한 판결이 이뤄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고 했다.

잇따른 논란
청문회 고비


박 후보자는 5일 본격적인 인사청문회 준비에 들어갔다. 박 후보자는 이날 서울고검에 마련된 국회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에서 심우정 기획조정실장 등 법무부 관계자들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 

하지만 최근 청문회를 앞두고 박 후보자와 관련한 각종 논란들이 잇따라 터져 나왔다. 지난 5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박 후보가 5년 전 사법시험 존치를 주장하며 자신에게 면담을 요구한 고시생에게 폭행과 폭언을 가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 매체는 이날 국민의힘 소속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음성 녹음파일을 바탕으로 박 후보자가 지난 2016년 11월23일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소재 자신의 오피스텔에서 고시생에게 폭행과 폭언을 가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피해자라고 밝힌 고시생은 박 후보자가 자신의 멱살을 잡고 수행비서를 시켜 강제로 얼굴 사진을 찍었고, 협박죄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을 언급하며 오피스텔 방문을 항의했다고도 말했다.

이에 박 후보자는 “사실과 반대”라며 “제가 폭행당할 뻔 했다”고 반박했다. 인사청문회 준비단 역시 폭행이 없었다는 입장이다. 당시 박 후보자가 오후 10시쯤 귀가했고 1층에서 대여섯명이 다가와 그를 둘러쌌다고 설명했다. 

이에 박 후보자가 놀라 ‘내 숙소를 어떻게 알고 왔느냐’고 하니 멈칫 했고, 멀리 있던 수행비서가 와서 사진을 찍으려 하자 그제서야 물러서며 사과까지 받았다는 것. 


하지만 또 다른 매체에 따르면 현장에 있었던 당시 고시생의 지인도 “박 후보자를 보자마자 사시를 존치시켜 달라며 무릎을 꿇고 빌었는데 박 후보자는 다짜고짜 피해자의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고 말해 폭행 의혹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또, 다주택 처분 과정에서 부인 소유 상가를 친인척에게 헐값에 매각했다는 의혹도 계속 제기되고 있다. 박 후보자가 3주택을 소유하고 있다는 논란이 불거지자 지난해 8월 아내 명의의 대구 주택·상가, 경남 밀양의 토지·건물을 손윗처남 및 그 자녀들에게 매각 또는 증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처분 과정인데, 대구 부동산 매각 가격이 시세 14억원 수준보다 현저히 낮은 7억원에 불과했다. 박 후보자는 해당 의혹에 대해서는 따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야당의 반발
도덕성 공세

아내 소유의 밀양 토지를 공직자 재산신고에서 누락한 사실도 드러났다. 박 후보자 아내는 2018년 11월, 100평 상당의 경남 밀양시 가곡동 대지를 물려받았으나, 박 후보자는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 지난해 4월 총선 직전에야 해당 토지에 대한 재산을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날 박 후보자는 이와 별개로 충북 영동 토지를 지난 8년간 공직자 재산 신고 내역에 신고하지 않은 점이 드러나자 “이유불문하고 제 불찰”이라며 사과했다. 그는 또 2018년 자신에 대한 불법선거자금 의혹을 제기했던 전직 대전시의원을 상대로 1억원대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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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은 박 후보자에 대한 송곳 검증을 예고했다. 국민의힘은 청문회 당일까지 공세 수위를 높여 박 후보자를 압박한다는 계획이다. 전임 장관에 대한 논란 만큼이나 여야는 격한 충돌을 예고한 상황이다.

야당은 박 후보자의 의혹과 그가 민·형사 피고인이라는 점을 문제 삼으며 “부적격 사유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고 질타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과 간담회를 열어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 후보자와 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전략 등을 논의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박 후보자를 겨냥해 “각종 부적격 사유들이 벌써 꼬리에 꼬리를 물어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지경이 됐다”며 “조국(전 장관)·추미애(현 장관)에 이어 세 번째로 각종 위법 논란에 휩싸인 후보자”라고 지적했다. 

주 원내대표는 “어떻게 가장 윤리적이고 위법이 없어야 할 법무부 장관에 문재인 대통령이 지명하는 사람들은 공직 ‘데스노트’에 다 올라가는 듯하다”며 철저한 검증을 예고했다.

같은 당 이종배 정책위의장도 “박 후보자가 검찰을 향해 공정의 정의, 보편 타당의 정의를 주문했다”며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선택적 정의’냐고 호통치자 윤 총장이 ‘선택적 의심 아니냐’고 되물었던 장면이 떠오른다”고 꼬집었다. 

그는 “법무부 장관은 정의를 지키는 장관인데 박 후보자가 과연 정의를 대표할 자격이 있나 의심스럽다”며 “박 후보자는 그간 내편이라고 생각하면 극찬을 아끼지 않고, 적이라고 생각하면 모욕 수준의 비난을 쏟았다”고도 비판했다.

박 후보자를 “문재인정부 내로남불, 이중잣대의 표본이라 칭해도 손색없다”고도 말했다.

꼬리 무는 의혹들
야 집중공세 시작

이 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민주당은 ‘시간끌기’와 ‘꼼수’라고 치부했다.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1월5일 “국민의힘은 명분 없는 반대를 마치고 대안을 갖추라”고 응수했다.

특히 법무부 장관과 공수처장 자리는 모두 여권의 숙원사업인 검찰개혁과 직결되기 때문에 민주당으로서는 더욱 기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박 후보자는 “문재인 대통령이 저를 장관 후보로 지명한 이유는 ‘검찰개혁의 마무리 투수가 돼달라’는 뜻으로 안다”며 “검사들께 검찰개혁에 동참해 달라는 간곡한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박 후보자는 지난 4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검 기자실을 찾아 이같이 밝혔다.

박 후보자는 지난달 31일 장관 지명 후 처음 서울고검을 찾아 인사청문회 준비단(단장 이상갑 인권국장)과 상견례를 했고, 이날 서울고검 15층에 마련된 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첫 출근했다.

박 후보자는 “그동안 박상기·조국·추미애 장관까지 검찰개혁 관련 제도개선이 많이 진전됐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을 목전에 두고 있고 수사권 개혁, 형사공판 중심의 조직 개편, 인권친화적 수사를 위한 환경이 갖춰졌다”고 말했다.

박 후보자는 검사들을 향해 검찰개혁 동참을 호소하며 “검찰청법상 검사동일체 원칙은 개정됐으나 상명하복의 검찰 특유 조직문화가 여전히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검사들은 준사법기관으로 대우해 달라고 요구한다. 경청할만한 얘기”라면서도 “그러기 위해선 다원화된 민주사회에서 검사들과 다양한 의견, 외부 사이에 소통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문재인 대통령 ⓒ고성준 기자

이어 “그것을 ‘공존의 정의’라 이름 붙이고 싶다. 우리 사회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공존할 수 있는 정의여야 한다”며 “그 중 으뜸은 인권이다. 검사들이 얘기하는 정의, 사회구성원 집단의 정의가 다르다. 보편타당한 공존의 정의를 말하고 싶다”고 부연했다.

박 후보자는 “인권과 함께 조화되고 어울리는 정의가 ‘공존의 정의’의 첫 번째 길이라 생각한다”며 “이 화두를 갖고 검사들을 만날 예정이고 만남의 방식에도 복안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후보자는 향후 중간간부, 검사장 인사에 관해선 “검사 인사권자는 대통령이고, 장관은 제청권자다. 검찰총장과 협의하도록 돼있다”며 “장관 임명이라는 감사한 일이 생기면 정말로 좋은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준비에 준비를 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의혹들 송구”
고개 숙이다

서울고검 청사에 청문회 준비단 사무실을 꾸린 이유에 대해선 “민심을 따라야 한다. 그렇지만 서초동 중심 검심(檢心)만 있는 게 아니고 법원, 많은 변호사 로펌, 법조 기자들이 있다. 법심(法心)을 경청할 생각이다. 검찰개혁에 검사들이 동참해 조직문화 개선에 스스로 주체가 돼달라”고 말했다. 박 후보는 앞서 언급된 여러 가지 의혹에 대해서는 “이유를 불문하고 제 불찰이다.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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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