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말 검찰총장 쟁탈전

독 든 성배 누가 드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문재인정부의 마지막 검찰총장 인선을 위한 작업이 한창이다. 역대 정부 최후의 검찰총장은 그 말로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포스트 윤석열’ 자리가 ‘독이 든 성배’로 일컬어지는 이유다. <일요시사>가 하마평이 돌고 있는 차기 검찰총장 후보군을 조명해봤다.

▲ (사진 왼쪽부터)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

검찰총장의 임기는 법에 보장돼있다. 1988년 12월31일 검찰청법이 개정되면서 ‘검찰총장의 임기는 2년으로 하며 중임할 수 없다’는 조항(제12조 제3항)이 생겨났다. 검찰총장 임기제는 검찰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을 보장한다는 취지에서 추진됐다.  

8명 빼고
중도 사퇴

검찰청법 개정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김기춘 전 총장을 비롯해 2년 임기를 끝까지 채운 역대 검찰총장은 8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13명은 중간에 사퇴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킬 것이라 봤던 윤석열 전 총장도 임기를 4개월 남기고 지난 4일 결국 검찰을 떠났다.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검찰총장들은 대부분 정부와의 갈등을 이유로 옷을 벗었다. 특히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한 수사는 검찰총장 입장에선 양날의 검이다. 여권에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윤 전 총장도 전격 사표를 던졌다. 

김영삼정부의 ‘슬롯머신 사건’ 수사(박종철 전 총장), 한보그룹 비리사건 재수사(김기수 전 총장), 노무현정부의 ‘검사와의 대화’ 직후 사퇴(김각영 전 총장),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의 강정구 동국대 교수의 불구속 수사지휘권 발동(김종빈 전 총장) 등이다. 


정부 말기 낙점된 마지막 검찰총장도 그 끝이 좋은 경우는 많지 않았다. 김태정 전 총장은 대선을 두 달 앞두고 당시 야권 후보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 비자금 의혹 수사를 대선 이후로 유보한다고 선언해, DJ 집권 이후 법무부 장관으로 영전됐다. 하지만 옷 로비 사건으로 해임돼 재판까지 받았다. 

노무현정부에서 임명된 임채진 전 총장은 이명박정부에서 유임된 후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진행하다, 그가 서거하자 사퇴했다. 김수남 전 총장도 임명권자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시켰지만 문정부에서 재신임받지 못했다. 

역대 정부의 마지막 검찰총장은 누가 임명되든 잡음을 피할 수 없었다. 정부 입장에서는 레임덕 외풍을 막아줄 방패 역할을 바라고 ‘자기 편’ 심기에 골몰한다. 취임 초기부터 검찰의 권한 줄이기에 골몰했던 문정부로선 마지막 검찰총장 인선이 검찰개혁의 ‘화룡점정’이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민 천거 절차 끝나
3명 추천 후 1명 제청

법무부는 윤 전 총장 후임자 인선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검찰총장 인선은 천거-추천-제청 절차를 거친다. 지난 15일부터 진행된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한 국민 천거 절차는 22일로 마무리됐다.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이하 추천위)는 3명 이상으로 후보를 압축해 박범계 법무부 장관에게 추천하고, 박 장관은 최종 후보자 1명을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한다. 문 대통령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검찰총장을 임명한다. 

이번에 인선될 검찰총장은 윤 전 총장 재임 당시 검찰이 문정부와 극심한 갈등을 빚은 것을 거울 삼아 친정부 인사로 내정할 가능성이 높다. 윤 전 총장은 1년 가까이 문정부와 대립하면서 대선후보 1위로 발돋움했다. 문정부로서는 마지막 검찰총장이 윤 전 총장의 전례를 밟을까 우려하고 있다.

▲ 윤석열 전 검찰총장 ⓒ박성원 기자

이 과정에서 추천위 구성을 두고 정치적 중립성 논란이 불거졌다. 추천위원 가운데 일부가 윤 전 총장과 대립각을 세웠던 인물로 채워지면서 이미 친정부 인사를 차기 검찰총장으로 점찍어 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국민 천거 절차는 요식행위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추천위는 당연직 위원 5명과 비당연직 위원 4명으로 구성됐다. 당연직 위원은 김형두 법원행정처 차장, 이종엽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정영환 한국법학교수회 회장, 한기정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이정수 법무부 검찰국장 등이고, 비당연직 위원은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길태기 전 법무부 차관, 안진 전남대 로스쿨 교수, 원혜욱 인하대 부총장 등으로 지정됐다. 

박 전 장관이 위원장을 맡으면서 여러 뒷말이 나왔다. 박 전 장관은 문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 출신으로, 퇴임 후 언론 등을 통해 윤 전 총장과 대립각을 세운 바 있다. 그는 퇴임 후 윤 전 총장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당시 후보자 신분이던 조 전 장관의 낙마를 요구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해 파문이 일었다.

추천위
중립 논란

윤 전 총장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박 전 장관이 먼저 만남을 요청했고, 낙마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안진 교수의 경우 지난해 말 윤 전 총장을 대상으로 한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한 이력이 있다. 당시 징계위는 윤 전 총장의 정직 2개월 징계를 의결했다.

박 장관은 “꽤 많은 분들이 천거됐다”며 “워낙 관심이 뜨거우니 아주 신중하고 충분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 장관이 검찰 인선 과정에 ‘신중함’을 강조하면서 검찰총장 임명은 4·7 재보선 이후에나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잡음이 나올 경우 오는 5월 초까지 밀릴 가능성도 있다.

박 장관은 국민 천거 후보 명단이나 규모 등에 대해서는 ‘보안사항’이라며 언급을 피한 상태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차기 검찰총장으로 유력시되는 인사들에 대한 하마평이 돌고 있는 상황이다. 

그 가운데 첫손에 꼽히는 인물이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다. 일각에서는 차기 검찰총장이 ‘이성윤이냐 아니냐’로 갈린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 이 지검장은 문정부 들어 가장 ‘꽃길’을 걸은 검사 가운데 한 사람이다. 검찰 내 빅4로 불리는 요직을 두루 거쳤고, 이제는 검찰 수장 후보로 언급되는 중이다.
 

▲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 ⓒ박성원 기자

전북 고창 출신의 이 지검장은 문 대통령의 경희대 법대 후배로, 검찰 내 대표적 친문 인사로 꼽힌다. 문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7월 검사장으로 승진해 대검 형사부장을 맡았다.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검찰 내 핵심보직을 거쳐 지난해 1월 전국 최대 규모 검찰청의 장인 서울중앙지검장에 올랐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재임 당시 여러 차례 윤 전 총장과 맞서면서 여권의 신임을 얻었다. 박 장관 취임과 동시에 단행된 검찰 인사에서도 윤 전 총장과 신현수 전 민정수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울중앙지검장 자리를 지킨 바 있다. 임기 말 정부 관련 의혹이 터져 나올 경우 최적의 방패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검찰 내 신망이 두텁지 않다는 점에서 불안요소가 있다. 윤 전 총장과 추 전 장관의 대립 과정에서 당시 검사들이 윤 전 총장의 편에 섰을 때에도 이 지검장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조직 내 기반을 잃었다는 평이다. 조직 장악력이 중요한 검찰총장으로선 치명적인 대목이다.


이성윤 유력
수사 부담

‘김학의 불법 출국금지’ 의혹으로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이 지검장은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의 핵심 당사자다. 최근 검찰의 4차 소환 통보에 ‘검찰의 강제수사는 위법하다’는 취지의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원지검으로부터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해 조사받으라는 출석요구를 받은 뒤다.

이 지검장은 ‘사건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 이첩해 달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 내부에서는 조남관 대검 차장검사도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전북 남원 출신인 조 차장검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사정비서관실 행정관을 지냈고, 문정부 시절 국가정보원 감찰실장 겸 적폐청산 TF 팀장을 맡아 활동했다. 이후 검사장으로 승진해 대검 과학수사부장과 서울동부지검장을 역임했다. 

추 전 장관 재임 당시 대검 차장검사에 올라 처음에는 ‘추미애 라인’으로 분류됐지만, 윤 전 총장 징계 사태 때 반기를 든 바 있다. 윤 전 총장에 대한 징계를 철회해 달라는 내용의 글을 공개적으로 올린 것.
 

▲ 박검계 법무부 장관 ⓒ박성원 기자

한명숙 전 국무총리 모해위증교사 사건과 관련한 박 장관의 수사지휘에 대해서도 고검장 참여라는 묘수를 발휘하면서 오히려 총장 자리에서 멀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도 국민 천거 후보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대전 대신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해 육군법무관을 거쳐 2014년까지 판사로 재직했다. 이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2019년 대검 감찰부장으로 임용됐다. 여러 차례 윤 전 총장의 반대편에 선 바 있고, 최근 한 전 총리 모해위증교사 사건과 관련한 대검 부장회의에선 기소 의견을 냈다. 

내부 인사는 불안요소 있고
외부 인사로 안전하게 간다?

일각에서는 불안요소가 많은 내부 인사보다 외부 인사 중에서 검찰총장을 낙점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인물은 김오수 전 법무부 차관이다. 김 전 차관은 정부 고위직 중 공석이 날 때마다 거론될 만큼 정부의 신뢰를 받고 있다. 공정거래위원장, 금융감독원장, 감사원 감사위원 등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광주 대동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거친 법조계 엘리트로 통한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서울고검 형사부장, 대검 과학수사부장, 서울북부지검장 등을 역임했다. 박상기‧조국‧추미애 등 문정부의 법무부 장관을 모두 거친 친여 인사로 꼽힌다. 사법연수원 20기로 다른 후보들과 비교해 연장자라는 점에서 스스로 고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금로 전 법무부 차관의 이름도 나오고 있다. 청주 신흥고와 고대 법대, 한양대 행정대학원 부동산학과를 졸업한 이 전 차관은 1988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서울 동부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서울중앙지검, 대검 수사기획관, 기획조정부장, 법무부 차관, 대전고검장 등을 냈다. 문정부 첫 법무부 차관과 초대 수원고검장을 지내는 등 정부와의 관계가 원만한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 문재인 대통령

양부남 전 부산고검장도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전남 담양 출신인 양 전 고검장은 2018년 강원랜드 채용비리 관련 수사단장을 맡았을 당시 문무일 검찰총장의 수사 개입 등을 주장하며 검찰 수뇌부와 대립각을 세웠던 적이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 대검 형사부장, 광주지검장 등을 거쳤다. 지난해 8월 검찰을 떠나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선거 지면
친정부로?

4·7 재보선과 검찰총장 인선을 연계해서 보는 시각도 있다. 서울과 부산시장 선거에서 야권이 이길 경우 차기 검찰총장은 친정부 인사 쪽으로 쏠리지 않겠느냐는 분석이다. 4·7 재보선이 내년 3월 대선의 전초전으로 여겨지는 만큼 여권이 서울과 부산 두 곳에서 모두 패배한다면, 문 대통령의 레임덕 가속은 물론 정계개편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재연될 경우 정부를 겨냥했던 검찰 수사가 전선을 확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①군 정보사는 왜 개입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선포했던 비상계엄을 포함해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 17번의 계엄령이 선포됐다. 야당의 무분별한 탄핵 남발과 정부 예산 삭감 등이 이유였다. ‘충격요법’ 차원의 계엄령이라는 주장과 달리, 백병전에 특화된 북파공작대(HID) 요원을 투입한 것도 이례적이다. 계엄법에 따르면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나뉜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적과 교전 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됐을 경우 발령할 수 있다. 경비계엄은 그보다 낮은 수위로 경찰 등 일반 행정기관만으로는 치안을 확보할 수 없을 때 선포할 수 있다. 사실상 실패한 계엄 이후 2차 계엄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다. 국민 향한 특수부대 계엄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군사력을 동원해 공공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비상조치로 대한민국 헌법 제 77조에 규정돼있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을 경우, 대통령이 임명한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을 모두 갖게 된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도 제한되며 작전상 부득이한 경우라고 판단하면 국민 재산을 파괴하거나 소각하는 권리도 갖게 된다. 불법 계엄 사태 당시 국군방첩사령부와 함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병력을 투입한 계엄군 핵심은 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였다. 정보사 예하 HID 요원 일부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사조직인 ‘정보사령부 수사2단’에 동원된 것이다. 대북 공작에 특화된 ‘살인 병기’로 불리는 HID 요원들은 노 전 사령관 등 수뇌부의 정치적 일탈행위로 인해 불명예를 안게 됐다. 노 전 사령관은 육군사관학교 출신을 중심으로 꾸린 내란 사조직의 수장 노릇을 했다. 이렇게 조성된 ‘육사 카르텔’은 12·3 비상계엄 선포 석 달 전부터 진급을 미끼로 조직원 포섭을 시작했다. 지난해 말 김 전 장관은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 등 수뇌부에 ‘노 전 사령관이 하는 일을 잘 도와주라’는 취지로 지시했다. 이들은 문 전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 지시가 곧 김 전 장관의 지시인 것으로 받아들여 계엄을 준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문 전 사령관과 정성욱·김봉규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수사2단에 편성할 정보사 소속 요원을 선발하라고 상세히 지시했다. 김 대령은 2016년 노 전 사령관의 현역 시절 과장 신분으로 함께 근무했다. 취재진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0월경 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특수요원 중에 사격 잘하고, 폭파 잘하는 그런 인원 중에 한 7~8명을 나에게 추천 좀 해달라”고 했다. 당시 김 대령은 “특수 요원들이 전역하게 되면 대통령경호처, 국정원 특임 조직 등으로 재취업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도와주려고 하는 말인가 하고 생각했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이 문 전 사령관보다 먼저 김 대령에게 특수부대, 공작요원 등으로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문 전 사령관은 김 대령에게 재차 ‘노 전 사령관이 말한 것을 잘 이행하라, 잘 도와라’라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부대를 모집한 이유에 관해 김 대령은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면 우리가 원점을 타격해야 하기에 필요하다고 노 전 사령관이 말했다’고 한다. ‘충격 요법’ 차원 출동? HID 요원 투입 ‘백병전 고수들’ 모아 선관위 장악 플랜 계엄 두 달여 전인 지난해 10월 말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북한이 오물풍선을 보내는 상황이었고, 이밖에 특수한 상황은 없었다. 문 전 사령관이 본격적으로 HID 인원 선발에 착수하라고 지시하자, 김 대령은 지난해 10월30일 모 주임원사에게 연락을 취해 ‘5명 정도 특수무술 잘하는 인원을 추천해달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김 대령은 특수부대 5명과 우회요원 10명을 포함한 총 15명의 선발 명단을 만들어 노 전 사령관에게 텔레그램으로 전달했다. 이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경 노 전 사령관과 김 대령, 문 전 사령관은 안산 상록수역서 만났다. 노 전 사령관이 특수요원 선발, 준비가 다 됐는지 확인하자, 문 전 사령관은 “오물풍선이 날아오는 대북 상황에 우리 정보사가 들어갈 필요가 있겠냐” 물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이 ‘언론에 평상시에 나지 않는 특별한 보도가 날 거야’라고 답했다고 한다.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특별한 보도는 부정선거 의혹이었다. 그러면서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중앙선관위로 가서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와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이 이들에게 건넨 A4용지 10장 분량의 부정선거 관련 자료에는 선관위 부서와 직원 30여명을 체포하라는 지시와 함께 ‘계엄 선포 시 할 일’이라고 기재돼있었다고 한다. 자료에 계엄 선포 날짜는 없었으나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조만간 상황(계엄 선포)이 생길 것”이라며 “출장이나 장거리 출타를 가지 말라”고 지시했다. 김 대령이 이해한 노 전 사령관의 지시는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부정선거 관련 잘못한 사람들을 잡아들여야 한다는 정도였다. 그는 ‘사실 처음 듣고는 황당했다. (노 전 사령관이) 대북상황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엄을 선포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 정세로도 계엄을 선포할 상황이 아니니까. 그리고 부정선거를 이유로 계엄을 선포하는 것도 말이 안된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계엄 시 ▲소집된 인원과 차량이 수방사에 출입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수방사 시설 확인 인원을 제외한 전 인원은 계엄 후 6시30분까지 선관위로 가서 선관위 직원 명부를 파악하고, 부정선거에 관해 물어볼 수 있는 공간 확보 ▲선관위 홈페이지를 관리하는 곳에서 ‘부정선거 관련, 아는 사항이 있거나 선거 조작에 대해 아는 사항이 있으면 양심고백을 하라’는 내용의 문구를 올리고, 사령부 내에 일반전화 및 콜센터 설치 ▲선관위 방송실에 가서 선관위 내부 방송을 통해 계엄 상황을 고지하고, 계엄 상황이니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체포 등의 조치가 있음을 경고하라는 총 4개의 임무를 부여했다. 또 30여명의 선관위 직원은 정 대령 팀에게 지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속초 정보사 교관 A씨는 비상계엄 선포 직전 판교에 있는 본부에 소집됐다고 진술했다. 실제로 A씨는 문 전 사령관 등의 지시를 받고 판교에 HID 요원 5명을 투입했다. 진급에 목매다 A씨는 검찰 조사에서 “속초서 온 인원 중 3명이 김 대령 팀에 속해 있는데, 그 중 2명에 대해 김 대령은 ‘너희들은 내가 취조할 때 내 뒤에서 취조 대상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하면, 나를 보호해라. 그리고 내가 취조할 때 상대방이 겁 먹을 수 있도록 옆에서 책상을 치거나 욕을 하거나 노려보는 등으로 취조 분위기를 조성해라’고도 했다”고 진술했다. 국방부 아래 가장 비밀스럽고 강력한 정보사가 한낱 민간인 지휘 아래 계엄에 투입된 웃지 못할 사건은 이렇게 시작됐다. 체포된 윤 전 대통령의 자필 편지처럼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 호소’였다면 HID가 왜 필요했는지 의문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상명하복이 원칙이니 HID 요원들도 따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번 사태는 문 전 정보사령관의 투입 명령에 충분히 불복할 수 있었다고 본다”며 “국방부에 책잡힌 몇몇 사건의 영향도 있고, 문 사령관이 진급이라는 미끼를 물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국군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는 가장 진급이 어려운 곳이다. 현재까지도 소장 직급인 정보사의 경우 사령관 직무 배제 및 전직 정보사 여단장 전출 등 각종 이슈로 인해 ‘원스타’ 계급장을 단 장군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보사의 사령관은 소장이지만 지휘부는 군단 편제와 같다. 이유는 김영삼 전 대통령 취임 직후 정보사령관의 계급을 소장으로 낮췄기 때문이다. 단, 기무사는 1년 뒤 중장으로 다시 사령관 계급을 올렸다. 실제로 HID 팀원들도 자신의 계급을 보안상 알 수 없으며, 사실상 최종 계급은 원스타다. 노 전 사령관이 계엄 선포 계획에 동참한 군 장성들의 진급을 도운 정황은 정 대령의 진술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1일 안산시 롯데리아서 노 전 사령관, 문 전 사령관, 김 대령의 회의 당시, 수차례 ‘내가 도와줄게’라며 정 대령에게 일을 시켰다. 실제로 정 대령은 “노상원의 군내 인맥이 아직도 대단한 것 같아서, 솔직히 진급 욕심이 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진술했다. 또 그는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계엄이 선포되면 정 대령과 김 대령이 팀을 나눠 중앙선관위 직원 30명을 체포해 중앙선관위 회의실 등에 가둔 뒤 이들을 수방사 B1벙커 내 수감시켜두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노태악 선관위원장을 처리하는 일은 노 전 사령관이 직접 처리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덧붙였다. 노 전 사령관의 지시로 12·3 계엄령 작전에 배치된 HID 요원들은 근접 전투 능력이 뛰어난 이들로 선발됐다.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날 HID 요원 5명은 서울 외곽인 판교에 배치됐고, 나머지 35명은 서울 시내 곳곳에 배치됐다. 사령관과 육군 카르텔 12·3 내란의 우두머리는 체포된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전 장관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게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의아하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의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러나 문 사령관은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서 본부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를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의미다.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를 곤란하게 만든 두 사건 때문에 국방부가 틀어쥘 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 감정싸움이 벌어져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김 전 장관은 두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그해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 전 장관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노 전 사령관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해 12월1일 노 전 사령관은 정모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현역 군인들의 진급,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노 전 사령관은 입버릇처럼 김 대령에 ‘오늘도 용산에 다녀왔다’는 식으로 김 전 장관과의 인맥을 자랑했다. 특히, 진급 발표 시기에 노 전 사령관은 하루에 3~4번씩 김 대령 등에게 연락해 현역 장성들의 근황을 묻곤 했다고 한다. 한편, 윤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령을 포함해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서 계엄령은 총 17번 선포됐다. 이 중 비상계엄은 12번에 달한다. 헌정사상 첫 계엄령은 이승만정부 시절 1948년 10월 여수·순천 사건을 계기로 발동됐다. 앞서 국군 제14연대가 이승만정부가 내린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났다. 이에 이 전 대통령은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두 번째 계엄은 같은 해 11월 ‘4·3 사건’ 당시 제주지역에 선포됐다. 당시는 아직 계엄법이 제정되기 전이었으므로 일제강점기의 계엄법에 해당하는 ‘합위지경’을 적용했다. 정작 계엄법이 제정된 것은 1949년 11월24일이다. 김봉현과 한 배 탄 민간인 노상원 “까라면 까야지” 어이없는 수하들 이후 6·25 전쟁으로 인한 첫 전국 단위 계엄령이 선포된다. ‘4·19 혁명’ 당시에는 학생 시위를 막는 데 악용되기도 했다. 이는 다음 정부로 이어져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전국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듬해 12월6일 이를 해제했다. 비상계엄 12일에 경비계엄 558일로 한국 역사상 지속 기간이 가장 길었던 계엄으로 기록됐다. 이후 박 전 대통령은 한일 협정에 반대하는 ‘6·3 항쟁’에 대응한다며 계엄령과 휴교령을 발령했다. 대통령 간선제를 골자로 하는 10월 유신, 부마항쟁 때도 계엄령을 발동했다. 마지막 비상계엄은 1979년 10월26일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다음 날 발령됐다. 이 계엄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로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노태우 등 신군부에 의해 1980년 5월17일을 기해 제주도를 포함한 전국으로 확대됐다.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부마항쟁으로 인해 1979년 10월18일 부산지역에 선포된 계엄령은 이후 계속 확대되면서 1981년 1월24일 해제될 때까지 456일 동안 유지됐다. 이에 저항하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전두환정권이 계엄군을 투입해 무력으로 진압하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기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뒤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으나 계엄령을 검토한 증거도 남아있다. 1987년 1월 고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으로 촉발된 ‘6·10 민주항쟁’ 당시 전두환정권은 계엄령을 통한 무력 진압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국민적 저항과 더불어 미국의 계엄 조치가 적절치 않다고 압박하자, 전두환정권은 대통령직선제 개헌을 수용했다. 이후 40년이 넘도록 대한민국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적은 없었다. 다만, 박근혜정부 당시에도 계엄령 검토설이 불거졌다. 처음에는 낭설에 불과하다는 취급을 받았으나 실제 국군기무사령부(방첩사령부)의 세부 문건이 공개되면서 사실로 확인됐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으로 합동참모의장이 아닌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던 것을 두고 해당 문건을 참조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해당 문건에는 “계엄사령관은 군사 대비 태세 유지 업무로부터 자유로워야 하며, 현행 작전 임무가 없는 각 군을 지휘하는 지휘관으로 임명해야 한다”며 “육군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건의한다”고 적시했다. 계엄령이 선포되면 통상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을 것으로 여겨졌다. 합참이 계엄과 관련된 업무를 관장하고 합참 조직에 계엄과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계엄사령관에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했다. 이빨 빠진 살인 병기 군 내부엔 김명수 합참의장이 해군 출신으로 지상 병력인 계엄군 지휘에 한계가 있고, 김 전 장관이 같은 육군 출신인 박 총장과 더 편하게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심야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실 여러 참모도 발표 직전까지 그 내용을 모를 정도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안팎의 상황은 지난 12월3일 오후 9시를 넘으며 급변했다. 대통령실 참모들은 윤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할 것이라는 사실을 애초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smk1@ilyosisa.co.kr>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