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우 해킹 협박사건 전말

유명하니까 당해도 싸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지옥 같은 한 달이었다.” 해커들로부터 지속적인 협박을 받아온 배우 하정우는 그렇게 토로했다. 휴대전화를 해킹한 해킹범들은 무려 8명의 연예인을 협박해 금품을 갈취했다. 끊임없는 협박에도 굴복하지 않은 하정우는 경찰에 신고했고, 국내 거주 중인 두 명의 해킹 범죄자가 경찰에 붙잡혔다. 하지만 중국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주범 A는 자취를 감추면서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 배우 하정우 ⓒ문병희 기자

지난해 12월 초, 하정우는 휴대전화가 해킹당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해킹범이 사진과 메시지를 직접 보내 협박한 것. 과거 여자 친구와의 여행 사진을 비롯해 하정우가 지인들과 찍은 사진이 협박의 핵심 내용이었다. 

경악

이 사건과 관련해 하정우와 직접 이야기를 나눈 <스타뉴스> 보도에 따르면 하정우는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협박이 이어지면서 불안감은 커졌다. 하정우는 “나중에 너희는 이런 것으로 협박하냐고 하니 그쪽에서 ‘유명인이시니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밝혔다. 

지인들과 의논한 하정우는 처음 협박을 받은 지 사흘 뒤인 12월5일,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했다. 당시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내용을 모두 건넸다. 하정우를 대리해 신고한 지인에게 수사관은 피해자서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성범죄 정황을 고스란히 남겨둔 ‘버닝썬 사태’의 정준영처럼 될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지만 하정우 측은 신고를 강행했다. 하정우는 이후 전화번호를 바꿨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해킹범들이 다시 연락을 해왔다. “정말 경악스러웠다”고 그는 토로했다.


협박범들은 ‘형님’이라는 칭호를 붙여가며 협박을 이어갔고, 하정우가 굴복하지 않자 다른 연예인 해킹자료도 보내며 자신들의 힘을 과시했다. 

그렇게 시작된 협박은 근 한 달이 넘게 이어졌다. 당시 하정우는 영화 <백두산> 홍보 차 각종 미디어에 노출된 상황이었다. 협박범들은 하정우에게 직접적인 메시지를 보내며 압박을 가했다. 네이버 V라이브 촬영 중에도 ‘방송 잘 보고 있다’는 문자를 받은 하정우는 잠시 화장실에 가서 분노를 삭였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협박범들은 해킹 자료를 <백두산> 개봉에 맞춰 터뜨리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억대의 금품을 요구했다. 하지만 하정우는 “너희에게 줄 돈이 있으면, 너희를 잡는 데 쓰겠다”며 협박범들의 농간에 놀아나지 않았다. 

<디스패치> 보도에 따르면 하정우는 해커와 밀당(?)을 유지하면서, 때로는 정중하게 때로는 욕설도 서슴지 않았다. 해커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시간을 벌었고, 해커들이 갖고 있는 자료를 최대한 수집해 경찰에 관련 자료를 제공했다. 하정우의 내밀한 전략이 통한 것. 

결국 협박범이 포기한 건 12월 말이었다. 하정우에게 ‘이 문자를 마지막으로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고 했다. 

“지옥 같은 한 달” 해커들에 시달려
자취 감춘 주범…살아있는 ‘불씨’

하정우는 영화 홍보 때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재밌는 이야기를 쏟아내곤 했다. 재기발랄한 기지를 발휘해 영화 홍보에 늘 적극적으로 임했다.


하지만 <백두산> 홍보 관련 영상을 찾아보면, 하정우의 얼굴은 그리 밝지 않다. 심지어 <백두산>이 본인이 설립한 퍼펙트스톰이 공동제작한 작품임에도, 하정우는 이전과는 다르게 어딘가 소극적이다. <백두산>에 함께 출연한 배우 이병헌이 하정우보다 더욱 나서서 홍보에 임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협박범으로 인해 속이 타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해커들은 배우 A와 배우 B, 아이돌 C, 감독 D, 유명 셰프 E와 하정우, 주진모 등의 톱스타들을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부터 금품을 목적으로 접근했으며, 5000만원부터 1억원, 심지어 10억원 이상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협박 도구는 휴대전화에 저장된 문자, 영상, 사진 등이다. 

특히 아이돌 C는 거액의 금품을 해커들에게 건넸다. 동영상 유출로 인한 파장을 걱정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 배우 주진모 ⓒSBS

일각에선 이들이 갤럭시S를 사용하는 이들의 클라우드 개인정보를 이용해 휴대폰을 그대로 복제한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삼성 클라우드 계정과 비번만 있으면, 모든 데이터 복제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 갤럭시 스마트폰이 타 기기에 비해 인증 절차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다.

하정우 이전에는 배우 주진모의 사생활이 온라인상에 퍼지는 사건이 있었다. 주진모와 지인들 사이의 노골적 대화가 공개된 것. 주로 많은 여성과 만나려는 부적절한 내용들로 그의 이미지는 완전히 실추됐다. 다시 작품활동을 할 수 있을지 미지수일 정도다. 

사건이 일어난 후 주진모는 “금품갈취를 목적으로 한 협박 메시지에 모두 상처입었고, 그 모습을 옆에서 보며 너무 괴로웠다. 그러나 공갈, 협박에 응하지 않은 것이 올바른 일이라 생각한다. 제가 그들의 요구에 순순히 응했다면 또 다른 범죄를 부추겨 더 많은 피해자를 양산했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여러 연예인들이 협박범들에게 굴복하지 않은 덕에 경찰은 수사에 응할 수 있었다. 이에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달 12일 박모씨(40)와 김모씨(30·여)를 공갈 및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검거해 구속 송치했다고 지난 10일 밝혔다.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부장검사 변필건)는 이들을 지난 7일 구속 기소했다. 

경계

하지만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다. 중국 거주 중인 주범이 아직 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연예기획사 관계자는 “검찰서 기소하면서 기사화가 된 것 같다. 사실 기사가 나가면 안 됐다. 중국의 주범이 도망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가 잡히기 전까진 계속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intellybeast@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사기부터 무차별 폭행까지
강력범죄 노출된 연예인들


대중의 사랑을 받고 사는 연예인은 오히려 더 범죄에 노출돼있다. 유명세가 약점이라는 것을 이용해 오히려 더 강력 범죄에 시달리는 것이다. 

과거 배우 송혜교는 모친을 통해 전 매니저로부터 ‘현금 2억5000만원을 보내지 않으면 염산을 뿌릴 것’이라는 협박을 받았다.

당시 협박범이 전 매니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송혜교와 모친은 그 자리서 오열했다는 후문이다. 

동방신기 유노윤호는 KBS2 <여걸식스> 촬영 중 어떤 팬으로부터 받은 음료수를 마셨다가 피를 토하며 응급실에 실려 갔다.

이 음료수 안에는 다량의 강력 접착제가 들어있었다. 심리적 압박감을 견디다 못한 범인은 경찰에 자수했다.

그는 경찰 진술에서 “그냥 골탕 먹이려고 한 짓이지, 죽이려고 한 짓은 아니었다”고 말해 충격을 안겼다.


이 외에도 예능인 노홍철은 집 앞에서 괴한으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했으며, 가수 이승철은 마약이 든 우편물을 받고 협박을 당했다.

한 연예 관계자는 “요즘에는 관리가 철저해 물리적인 피해는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유명인이라는 약점을 이용해 협박을 하는 사례가 있다. 그럴수록 더욱 수사기관에 알려 위기를 탈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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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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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