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N번방 파문’ 뒷북 국회 책임론

그땐 모른다더니 이제 와서?

[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N번방 사건’이 국민적 공분을 사면서 정치권서 앞다퉈 N번방 관련 법안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지난 3일 국민들의 요청에 따라 진행된 N번방 관련 법안 심사 절차서 국회는 ‘수준 미달’의 모습을 보였다. <일요시사>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국회의 당일 회의록을 조명했다.
 

▲ (사진 왼쪽부터)송기헌 위원장·김도읍·정점식 의원

미성년자 포함한 여성의 나체 사진 확보 후 협박을 통해 엽기적인 성착취 동영상을 텔레그램방에 유통한 ‘N번방 사건’을 두고 국민적 분노가 임계점에 달했다. 이와 관련된 법안 마련을 촉구하는 여론이 형성됨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앞다퉈 고강도 수사 촉구와 대책 마련을 준비하고 나섰다.

팔짱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N번방 사건 재발방지 3법’을 20대 국회 임기 내 통과시키기로 했다.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N번방 사건 재발 방지 3법(형법·성폭력처벌법·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국회에 조속히 통과되도록 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 역시 총선 이후에 N번방 재발 방지를 위해 힘쓸 것을 약속했다.

통합당 심재철 원내대표는 “총선이 끝나면 4월에 다시 한 번 국회가 열릴 때 N번방 사건과 관련된 법들을 상세하게 살펴서 다시는 이런 일들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정의당은 가해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무관용 원칙을 주장했다. 21대 총선에 출마하는 정의당 여성 후보들은 “이 순간 어딘가서 여성들이 스마트폰 속의 노예로 착취당하고 있을지 모르는 지금, 우리에게 일상은 없다”며 무관용 처벌과 N번방 방지 및 처벌법 제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그동안 수없이 자행돼왔던 디지털성범죄의 심각성을 국회가 지금까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N번방 사건은 지난해 11월 <한겨레>의 최초 보도 이후 국회 및 청와대 홈페이지에 누리꾼들의 청원글이 올라오면서 공론화됐다. 특히 지난 1월 국회 국민 청원에 게시된 ‘텔레그램서 발생하는 디지털성범죄 해결에 관한 청원’은 10만명의 동의를 얻으면서 국회 청원글 최초로 국회 심사 절차에 올랐다.

10만 청원에 딥페이크 얘기만
뒤늦게 졸속 법안 처리 논란

현행법상 10만명의 동의가 있으면, 국회서 소관 상임위원회와 관련 상임위원회에 자동 회부돼 다른 의안과 동일하게 전체회의 상정 및 소위원회 논의 등 심사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국회 청원글을 올린 누리꾼 최모씨는 ‘텔레그램서 발생하는 여러 형태의 디지털성범죄를 본격적으로 해결해 피해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고, 이 같은 디지털성범죄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청원을 올리게 되었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최씨는 ‘실제로 여자 연예인, BJ, 지인 얼굴을 합성하는 딥페이크 포르노, 생활공간을 불법촬영한 사진 및 영상 또한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 및 매매되고 있으며 유포자, 소비자들은 피해자들을 향해 성희롱과 2차가해 발언을 한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경찰의 국제공조수사 ▲수사기관의 디지털성범죄 전담부서 신설, 2차 가해 방지를 포함한 대응 매뉴얼을 만들 것 ▲범죄 예방을 위해 디지털성범죄에 대해 엄격한 양형기준을 설정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법안 심사 절차서 청원글에 응하는 국회는 N번방 사건의 본질을 짚지 못한 채 ‘딥페이크’ 주제에만 국한해 회의를 진행해 일각에서는 ‘졸속 입법’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지난 3일 법사위는 계류 중이던 딥페이크 처벌 관련 성폭력특례법 개정안 4건과 해당 청원을 병합해 심사했다. 회의록에 따르면, 통합당 김도읍 의원은 “딥페이크 영상물 및 촬영물을 현행법으로 처벌하면 안 되냐”고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자문을 구했다. 그는 “굳이 새로운 구성요건을 만들 필요가 있나. 그냥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면 음란물로 (처벌하면 안 되는 거냐)”라고 말했다.
 

▲ 텔레그램 N번방 운영자 조주빈 ⓒ문병희 기자

이에 송기헌 법사위 1소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피해자성 때문에 새로 성폭력 범죄를 만들어 처벌하자는 취지로 청원이 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김 의원은 “청원한다고 법을 다 만드느냐”고 반문했다. 이에 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요즘 새로운 시대의 물결이다. 필요할 것 같다”고 답했다.

딥페이크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해 기존에 있던 인물의 얼굴이나 특정한 부위를 영화 CG 처리처럼 합성한 영상편집물을 말한다. N번방의 연루된 가해자들이 지인의 얼굴을 나체 사진 혹은 영상과 합성해 텔레그램에 올릴 때 사용한 수법으로, 배포될 우려가 높고 디지털성범죄로 악용될 가능성도 높다. 통합당 정점식 의원은 이를 두고 “자기만족을 위해서 이런 영상을 가지고 나 혼자 즐기는 것까지 (처벌까지) 갈 거냐"고 발언했다.

3월3일 관련 법안 심사 회의록 보니…
“모른다” “일기장 그림” “예술작품”

김오수 법무부 차관은 “청소년들이나 자라나는 사람들은 자기 컴퓨터서 그런 짓을 자주 한다”며 “유명인들 갖다 놓고 자기 혼자 자기 컴퓨터서 작업들을 할 수가 있는데, 그것을 처벌하겠다고 하는 것은 너무 과한 것 아니냐”는 의견을 밝혔다.

송 위원장은 “나 혼자 스스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는 것까지 처벌할 수는 없다”며 딥페이크 영상 조작 작업을 그림으로 빗대기도 했다. 특히 김인겸 법원행정처 차장은 “N번방 사건은 저도 모른다”며 딥페이크 영상을 두고 “예술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 수도 있다”고 의견을 밝혔다.

법사위 회의에 참여한 의원들은 N번방 사건이 크게 논란이 되자 보도문을 내고 해명했다.

통합당 김도읍 의원은 논란이 된 발언에 대해 ‘현행법서 처벌이 가능하다면 법의 난맥상을 방지하고 범죄를 수사하고 처벌하는 데 혼란을 방지하는 차원서의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질의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송 위원장은 “범죄 실행의 착수, 즉 반포(유포) 행위를 실행하지 않은 사람에게 딥페이크 영상물을 소유(「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제11조」상 저촉되지 않는 영상물의 경우)하고 있는 것만으로 처벌 조항을 두는 것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 중에, 반포(유포)없이 해당 영상물을 제작 및 소지한 것만으로 처벌하는 내용의 법조항을 만드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밝혔다.

민중당은 지난 25일 서울남부지검에 국회 법사위 소속 김도읍·송기헌·정점식 의원 등 3명을 직무유기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손솔 민중당 청년 비례대표 후보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국민들의 요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N번방 범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고,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며 “입법을 그동안 하지 못해서 지금 가해자들이 도망가게 만든 것이 국회기 때문에 국회도 공범”이라고 주장했다.


후다닥

그는 “이번 청원은 성 착취물의 관람과 소유 및 유포를 처벌해달라는 것이었는데 딥페이크 문제만 한정적으로 다뤘다”고 지적했다. 딥페이크 영상 조작에 대해 묻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여성을 유흥거리로 여기는 것이 ‘강간문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강간문화를 끊어내는 것은 국회의원들의 역할이다. 무척 분노하고 있으며 실망스럽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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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