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만드는’ 딥페이크 만들어 보니…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3.12 11:10:37
  • 호수 14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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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김정은 만나게 해줘?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얼굴을 한 다른 사람의 영상이 인터넷서 떠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바로 불법 ‘딥페이크’ 영상. 불법이니 막아야 하지만, 딥페이크 영상은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딥페이크(Deepfake)는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인간 이미지 합성 기술이다. 기존의 사진이나 영상을 원본이 되는 사진이나 영상에 겹쳐서 만든다. 딥페이크 기술의 시작은 애니메이션이다. 1990년대에 사람이 말할 때처럼 입술을 움직이는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이 나왔고, 곧이어 통계적 기법을 이용한 얼굴 인식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2014년에는 AI 기술이 현실과 구별이 되지 않는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작은
좋았지만…

이때부터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의 얼굴을 이용해서 만든 가짜 이미지나 동영상이 등장했고, 딥페이크라는 이름도 이때 붙여졌다. 딥페이크는 영화나 방송계 등에서 이미 사망하거나 나이가 든 배우를 스크린에 되살리거나 초상권 보호 등을 위해 사용됐지만,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악덕 포르노다. 무엇보다 문제는 딥페이크 영상을 만드는 것이 너무 쉽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딥페이크 기반 성적 허위 영상물에 대한 시정 요구 건수는 2020년 473건, 2021년 1913건, 2022년 3574건, 지난해 1~11월에는 5996건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이미 2021년 한 해 대비 건수가 213.4% 늘어난 것이다.

방심위는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모니터링서 관련 피해를 접수해 게시물 접속 차단, 작성자 계정 해지, 게시물 삭제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직접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어봤다. 직접 해보니 컴퓨터나 영상 전문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컴퓨터만 쓸 줄 알면 가능했다.

딥페이크 영상을 만드는 방법은 스마트폰 앱과 인터넷 사이트의 두 가지로 나뉜다. 딥페이크 영상 제작 앱은 13개가 있었는데, 대부분 무료 사용이 가능했다. 다만, 무료는 영상에 워터마크(동영상 편집기를 사용했다는 표시)가 있었고 유료 사용 시 워터마크 표시가 없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앱으로 만든 딥페이크 영상은 실제처럼 느껴지진 않았다는 점이었다.

중세시대 복장에 얼굴을 합성하거나, 애니메이션 영상에 얼굴을 합성하는 정도였다.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명화 모나지라의 얼굴에 다른 얼굴을 합성시키는 것이었다. 내가 어떤 헤어스타일이 어울리는지 확인하거나, 유명 연예인의 외모를 흉내내는 수준이었다. 누가 봐도 재미로 만든 딥페이크 영상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점점 늘어나는 이미지 합성 영상
처벌·규정 전무…피해자만 늘어나

장난삼아 만든 게 티가 나더라도 문제가 있다. 한 딥페이크 앱 개발자는 자신의 앱을 홍보하기 위해 “오픈 소스 AI를 활용하면 무료로 옷을 벗기는 영상을 제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중 한 가지 앱은 영상서 다른 사람의 얼굴을 정교하게 합성할 수 있었지만, 원본의 이미지가 흐려져서 합성이라는 게 티가 났다. 영상을 잘 모르는 사람이거나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가 볼 경우 깜빡 속을 수 있을만 했다.


반면 사이트서 만드는 딥페이크 영상은 영상과 사진을 합성했을 때 사실인지 가짜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정도로 정교했고, 무엇보다도 영상을 만드는 것이 너무 쉬웠다.

딥페이크를 만드는 사이트는 검색만 해도 바로 나왔다. 해당 사이트는 영어로 돼있는데, 쉽게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 수 있다고 광고했다. 영상을 만들고 싶으면 사이트서 제시한 파일을 다운받아야 했다.

파일을 컴퓨터에 설치하면 사이트에 가입할 수 있었는데 이메일이나 비밀번호 등 간단한 정보만 요구됐다. 이후 로그인 시 바로 영상을 만들 수 있었다. 필요한 것은 변경하고 싶은 얼굴 영상인데, 이마저도 원본 영상이 아닌 유튜브 링크만 있으면 가능했다.

영상을 선택하면 하단에 바꾸려는 얼굴이 생성된다. 이후 일정 시간을 기다리면 영상이 완성된다. 해당 사이트는 유일하게 무료 사용 가능한 딥페이크 제작 사이트인데, 유료 이용 시 워터마크가 생략된 영상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영상은 ‘원본 영상’을 모르면 딥페이크 영상이라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결국 딥페이크 영상은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기에 범죄에 악용된다. 딥페이크 영상이 가장 많이 악용되는 곳은 음란물 영상이다. 기존에는 유명인들만 딥페이크 범죄의 대상이 됐다면, 이제는 일반인이 자신의 모습이 들어간 음란물로 인해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누구나
손쉽게

20대 직장인 A씨는 지난해 직장 상사 B씨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있는 사진으로 음란물을 제작한 사실을 알게 됐다. 가해자인 상사 B씨가 직장 동료의 사진을 음란 영상에 합성해 PC에 보관해 두고 있다가 여자친구에게 발각된 것이다.

B씨는 A씨 뿐만 아니라 다른 직장 동료들의 사진으로도 음란물을 제작했다. B씨와 C씨가 다투는 과정서 영상이 온라인 메신저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송되기까지 했다. 이를 알게 된 A씨는 B씨를 고소했지만, 수사를 진행한 경찰은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유포 목적으로 영상을 제작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게 불송치 결정의 이유였다. 2020년 6월 ‘딥페이크 처벌법(개정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이 도입됐지만 B씨의 사례처럼 타인의 사진을 이용해 딥페이크 음란물을 만들어 보관하는 행위 자체는 현실적으로 처벌하기 어렵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반포 등의 목적으로 사람 얼굴·신체·음성을 대상으로 한 영상물을 제작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영리 목적으로 제작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으로 가중처벌된다.

한 법조인은 “해당 처벌 조항은 ‘반포 등을 할 목적으로’가 범죄 성립을 위한 구성 요건이다. 따라서 개인 소지 목적의 허위 영상물 제작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 반포 목적이 있었는지는 수사관이 입증해야 하는데 해당 사실관계에서는 그런 입증이 될 수 없는 구조로 특이한 우연적 상황에 의한 피해 사례로 보인다”고 말했다.

A씨는 “처음부터 고소하려고 증거를 모은 게 아니다 보니 증거가 별로 없어, 다시 법적인 처벌을 요청하기 어렵다. 가해자는 지금도 주변 지인들 연락을 받고 아무렇지 않게 잘살고 있다”고 호소했다.


뉴스 제작
댓글 조작

딥페이크가 가장 크게 악용되는 시기가 있는데, 바로 선거철이다. 4·10 총선을 한 달 여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허위 사실 비방 AI 딥페이크 특별대응 모니터링반’을 신설하고 딥페이크 게시물에 대응하고 있지만, 딥페이크 기술을 따라가는 데 한계가 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3가지 프로그램으로 딥페이크 게시물을 교차 검증하며 판별하고 있지만, 정확히 감별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프로그램은 참고만 할 뿐 결국에는 사람의 눈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기존에 알려진 가짜 이미지, 영상 방식 외에도 생성 AI로 댓글 여론조작을 시도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될 여지도 있다.

이 관계자는 “선거법상에서는 딥페이크 영상, 이미지만을 규제하고 있어 AI 댓글을 저지할 방법이 없다. 심각한 사안의 경우 ‘업무방해’로 판단할 수 있어 정상적 여론 형상에 영향을 주는 AI 댓글이 발견되면 수사기관에 통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딥페이크가 선거에 악용되는 것은 세계 각국이 공통으로 겪는 현상이다. 지난해 아르헨티나 대선에선 후보자들이 상대 후보를 비방하고 자신을 띄우기 위해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는 경쟁자인 세르히오 마사 후보가 중국 공산당 지도자처럼 보이도록 AI로 생성한 포스터를 SNS에 올렸다.


반면 자신은 사랑스러운 사자처럼 묘사한 AI 생성 이미지를 올렸다.

두 후보 측이 만든 AI 콘텐츠에는 ‘AI가 제작했다’는 점을 명시했다. 사람들을 속이려 하기보다는 특정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활용한 것이다.

영상 만드는 시간은?
‘5분’이면 감쪽같이

지난해 미국 공화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면 경제위기가 오고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는 내용의 가상 미래를 보여주는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었다.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해 생성형 AI를 활용한 것이다.

지난해 캐나다 토론토 시장 선거에선 AI가 만든 노숙자 이미지를 활용해 자신이 당선되지 않을 경우를 가정해 부정적 이미지를 강조했다.

정반대의 상황이 한국에 있었다. 경찰이 틱톡과 페이스북 등에 올라온 46초 분량의 윤석열 대통령 영상이 딥페이크가 아닌 원본 영상 짜깁기라는 내부 결론을 내리고도 이를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선거법 위반’ 등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만 과장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경향신문>은 지난 5일 “경찰이 지난달 논란이 된 윤석열 대통령 ‘풍자 영상’을 자체 개발한 딥페이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부 결론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며 “해당 영상이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실제 존재하지 않은 장면을 새롭게 생성한 딥페이크라기보다는 원본 영상을 짜깁기한 수준이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달 서울경찰청의 의뢰로 자체 개발한 딥페이크 탐지프로그램을 사용해 해당 영상의 딥페이크 여부를 검토했다.

해당 신문은 “탐지 결과는 ‘진짜(Real)’로 나왔다. 이는 곧 영상 자체가 진짜고 AI를 이용한 딥페이크가 아니라, 실제 영상을 단순히 짜깁기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미다. 딥페이크로 만든 가짜 영상으로 판단되면 ‘가짜(Fake)’라는 결과가 나오게 돼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청은 이런 결과를 담은 회신을 받은 뒤에도 해당 영상이 ‘딥페이크가 아니다’라고 밝히지 않았다”며 “‘대통령을 겨냥한 최초의 딥페이크 영상이 퍼지고 있다’는 논점이 커지던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아닌데
맞다고

신문은 “되레 지난달 26일 열린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의 정례 회견서 배석한 경찰 관계자는 관련 수사 근거를 설명하면서 공직선거법 82조의 8 ‘딥페이크 등을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조항을 거론했다”며 ”이 관계자는 ‘공직선거법 82조 8에 선거운동을 위해 인공지능을 이용해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딥페이크 영상 등이라고 표현돼있다’며 선거법 위반 검토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를 두고 경찰이 윤 대통령 풍자 영상이 심각한 문제인 것처럼 과장하려다 보니 해당 영상이 딥페이크가 아니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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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