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만드는’ 딥페이크 만들어 보니…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4.03.12 11:10:37
  • 호수 14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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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김정은 만나게 해줘?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얼굴을 한 다른 사람의 영상이 인터넷서 떠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실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바로 불법 ‘딥페이크’ 영상. 불법이니 막아야 하지만, 딥페이크 영상은 누구나 손쉽게 만들 수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딥페이크(Deepfake)는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한 인간 이미지 합성 기술이다. 기존의 사진이나 영상을 원본이 되는 사진이나 영상에 겹쳐서 만든다. 딥페이크 기술의 시작은 애니메이션이다. 1990년대에 사람이 말할 때처럼 입술을 움직이는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이 나왔고, 곧이어 통계적 기법을 이용한 얼굴 인식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2014년에는 AI 기술이 현실과 구별이 되지 않는 이미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시작은
좋았지만…

이때부터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의 얼굴을 이용해서 만든 가짜 이미지나 동영상이 등장했고, 딥페이크라는 이름도 이때 붙여졌다. 딥페이크는 영화나 방송계 등에서 이미 사망하거나 나이가 든 배우를 스크린에 되살리거나 초상권 보호 등을 위해 사용됐지만,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은 악덕 포르노다. 무엇보다 문제는 딥페이크 영상을 만드는 것이 너무 쉽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딥페이크 기반 성적 허위 영상물에 대한 시정 요구 건수는 2020년 473건, 2021년 1913건, 2022년 3574건, 지난해 1~11월에는 5996건을 기록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이미 2021년 한 해 대비 건수가 213.4% 늘어난 것이다.

방심위는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모니터링서 관련 피해를 접수해 게시물 접속 차단, 작성자 계정 해지, 게시물 삭제 등을 실시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직접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어봤다. 직접 해보니 컴퓨터나 영상 전문가가 아니어도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수준이었다. 심지어 컴퓨터만 쓸 줄 알면 가능했다.

딥페이크 영상을 만드는 방법은 스마트폰 앱과 인터넷 사이트의 두 가지로 나뉜다. 딥페이크 영상 제작 앱은 13개가 있었는데, 대부분 무료 사용이 가능했다. 다만, 무료는 영상에 워터마크(동영상 편집기를 사용했다는 표시)가 있었고 유료 사용 시 워터마크 표시가 없어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앱으로 만든 딥페이크 영상은 실제처럼 느껴지진 않았다는 점이었다.

중세시대 복장에 얼굴을 합성하거나, 애니메이션 영상에 얼굴을 합성하는 정도였다. 가장 인기가 많은 것은 명화 모나지라의 얼굴에 다른 얼굴을 합성시키는 것이었다. 내가 어떤 헤어스타일이 어울리는지 확인하거나, 유명 연예인의 외모를 흉내내는 수준이었다. 누가 봐도 재미로 만든 딥페이크 영상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점점 늘어나는 이미지 합성 영상
처벌·규정 전무…피해자만 늘어나

장난삼아 만든 게 티가 나더라도 문제가 있다. 한 딥페이크 앱 개발자는 자신의 앱을 홍보하기 위해 “오픈 소스 AI를 활용하면 무료로 옷을 벗기는 영상을 제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중 한 가지 앱은 영상서 다른 사람의 얼굴을 정교하게 합성할 수 있었지만, 원본의 이미지가 흐려져서 합성이라는 게 티가 났다. 영상을 잘 모르는 사람이거나 디지털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가 볼 경우 깜빡 속을 수 있을만 했다.


반면 사이트서 만드는 딥페이크 영상은 영상과 사진을 합성했을 때 사실인지 가짜인지 구분이 잘 안 되는 정도로 정교했고, 무엇보다도 영상을 만드는 것이 너무 쉬웠다.

딥페이크를 만드는 사이트는 검색만 해도 바로 나왔다. 해당 사이트는 영어로 돼있는데, 쉽게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 수 있다고 광고했다. 영상을 만들고 싶으면 사이트서 제시한 파일을 다운받아야 했다.

파일을 컴퓨터에 설치하면 사이트에 가입할 수 있었는데 이메일이나 비밀번호 등 간단한 정보만 요구됐다. 이후 로그인 시 바로 영상을 만들 수 있었다. 필요한 것은 변경하고 싶은 얼굴 영상인데, 이마저도 원본 영상이 아닌 유튜브 링크만 있으면 가능했다.

영상을 선택하면 하단에 바꾸려는 얼굴이 생성된다. 이후 일정 시간을 기다리면 영상이 완성된다. 해당 사이트는 유일하게 무료 사용 가능한 딥페이크 제작 사이트인데, 유료 이용 시 워터마크가 생략된 영상을 만들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영상은 ‘원본 영상’을 모르면 딥페이크 영상이라는 것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결국 딥페이크 영상은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기에 범죄에 악용된다. 딥페이크 영상이 가장 많이 악용되는 곳은 음란물 영상이다. 기존에는 유명인들만 딥페이크 범죄의 대상이 됐다면, 이제는 일반인이 자신의 모습이 들어간 음란물로 인해 피해를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누구나
손쉽게

20대 직장인 A씨는 지난해 직장 상사 B씨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있는 사진으로 음란물을 제작한 사실을 알게 됐다. 가해자인 상사 B씨가 직장 동료의 사진을 음란 영상에 합성해 PC에 보관해 두고 있다가 여자친구에게 발각된 것이다.

B씨는 A씨 뿐만 아니라 다른 직장 동료들의 사진으로도 음란물을 제작했다. B씨와 C씨가 다투는 과정서 영상이 온라인 메신저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송되기까지 했다. 이를 알게 된 A씨는 B씨를 고소했지만, 수사를 진행한 경찰은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유포 목적으로 영상을 제작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게 불송치 결정의 이유였다. 2020년 6월 ‘딥페이크 처벌법(개정 성폭력처벌법 제14조의2)’이 도입됐지만 B씨의 사례처럼 타인의 사진을 이용해 딥페이크 음란물을 만들어 보관하는 행위 자체는 현실적으로 처벌하기 어렵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반포 등의 목적으로 사람 얼굴·신체·음성을 대상으로 한 영상물을 제작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영리 목적으로 제작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으로 가중처벌된다.

한 법조인은 “해당 처벌 조항은 ‘반포 등을 할 목적으로’가 범죄 성립을 위한 구성 요건이다. 따라서 개인 소지 목적의 허위 영상물 제작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 반포 목적이 있었는지는 수사관이 입증해야 하는데 해당 사실관계에서는 그런 입증이 될 수 없는 구조로 특이한 우연적 상황에 의한 피해 사례로 보인다”고 말했다.

A씨는 “처음부터 고소하려고 증거를 모은 게 아니다 보니 증거가 별로 없어, 다시 법적인 처벌을 요청하기 어렵다. 가해자는 지금도 주변 지인들 연락을 받고 아무렇지 않게 잘살고 있다”고 호소했다.


뉴스 제작
댓글 조작

딥페이크가 가장 크게 악용되는 시기가 있는데, 바로 선거철이다. 4·10 총선을 한 달 여 앞두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허위 사실 비방 AI 딥페이크 특별대응 모니터링반’을 신설하고 딥페이크 게시물에 대응하고 있지만, 딥페이크 기술을 따라가는 데 한계가 있다.

중앙선관위 관계자는 “3가지 프로그램으로 딥페이크 게시물을 교차 검증하며 판별하고 있지만, 정확히 감별하지 못하는 수준이다. 프로그램은 참고만 할 뿐 결국에는 사람의 눈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기존에 알려진 가짜 이미지, 영상 방식 외에도 생성 AI로 댓글 여론조작을 시도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응용될 여지도 있다.

이 관계자는 “선거법상에서는 딥페이크 영상, 이미지만을 규제하고 있어 AI 댓글을 저지할 방법이 없다. 심각한 사안의 경우 ‘업무방해’로 판단할 수 있어 정상적 여론 형상에 영향을 주는 AI 댓글이 발견되면 수사기관에 통보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딥페이크가 선거에 악용되는 것은 세계 각국이 공통으로 겪는 현상이다. 지난해 아르헨티나 대선에선 후보자들이 상대 후보를 비방하고 자신을 띄우기 위해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는 경쟁자인 세르히오 마사 후보가 중국 공산당 지도자처럼 보이도록 AI로 생성한 포스터를 SNS에 올렸다.


반면 자신은 사랑스러운 사자처럼 묘사한 AI 생성 이미지를 올렸다.

두 후보 측이 만든 AI 콘텐츠에는 ‘AI가 제작했다’는 점을 명시했다. 사람들을 속이려 하기보다는 특정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활용한 것이다.

영상 만드는 시간은?
‘5분’이면 감쪽같이

지난해 미국 공화당은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면 경제위기가 오고 중국이 대만을 침공한다는 내용의 가상 미래를 보여주는 딥페이크 영상을 만들었다.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기 위해 생성형 AI를 활용한 것이다.

지난해 캐나다 토론토 시장 선거에선 AI가 만든 노숙자 이미지를 활용해 자신이 당선되지 않을 경우를 가정해 부정적 이미지를 강조했다.

정반대의 상황이 한국에 있었다. 경찰이 틱톡과 페이스북 등에 올라온 46초 분량의 윤석열 대통령 영상이 딥페이크가 아닌 원본 영상 짜깁기라는 내부 결론을 내리고도 이를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선거법 위반’ 등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만 과장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경향신문>은 지난 5일 “경찰이 지난달 논란이 된 윤석열 대통령 ‘풍자 영상’을 자체 개발한 딥페이크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내부 결론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며 “해당 영상이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실제 존재하지 않은 장면을 새롭게 생성한 딥페이크라기보다는 원본 영상을 짜깁기한 수준이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지난달 서울경찰청의 의뢰로 자체 개발한 딥페이크 탐지프로그램을 사용해 해당 영상의 딥페이크 여부를 검토했다.

해당 신문은 “탐지 결과는 ‘진짜(Real)’로 나왔다. 이는 곧 영상 자체가 진짜고 AI를 이용한 딥페이크가 아니라, 실제 영상을 단순히 짜깁기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미다. 딥페이크로 만든 가짜 영상으로 판단되면 ‘가짜(Fake)’라는 결과가 나오게 돼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울청은 이런 결과를 담은 회신을 받은 뒤에도 해당 영상이 ‘딥페이크가 아니다’라고 밝히지 않았다”며 “‘대통령을 겨냥한 최초의 딥페이크 영상이 퍼지고 있다’는 논점이 커지던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아닌데
맞다고

신문은 “되레 지난달 26일 열린 조지호 서울경찰청장의 정례 회견서 배석한 경찰 관계자는 관련 수사 근거를 설명하면서 공직선거법 82조의 8 ‘딥페이크 등을 이용한 선거운동 금지’ 조항을 거론했다”며 ”이 관계자는 ‘공직선거법 82조 8에 선거운동을 위해 인공지능을 이용해 실제와 구분하기 어려운 딥페이크 영상 등이라고 표현돼있다’며 선거법 위반 검토 가능성을 시사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이를 두고 경찰이 윤 대통령 풍자 영상이 심각한 문제인 것처럼 과장하려다 보니 해당 영상이 딥페이크가 아니라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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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강제성 없는 ‘내란 TF’ 겉핥는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이재명정부가 내란을 방조하거나 간접적으로 가담한 이들을 가리기 위해 TF를 구성했다. 내년 1월까지 공무원 75만명을 대상으로 참여·협조 여부를 조사한다. 일부 기관은 자체적으로 판단해 TF를 구성하는 걸 두고 고민하고 있다. TF는 강제성이 없으며, 이미 조사를 끝내 인사에 반영한 기관도 존재한다.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태스크포스)는 중앙행정기관 49곳에 구성됐다. 구체적으로 각 부처 25곳이 포함됐다. TF는 총 48개다. 활동 목표가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각 기관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사실상 내란 특검팀(조은석 특별검사)의 연장선이 아니냐는 것이다. 방조·간접 가담자들 김민석 국무총리는 지난달 24일 TF 실무 책임자들과 첫 간담회를 갖고 “TF의 조사 활동은 대상, 범위, 기간, 언론 노출, 방법 모두 절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절제하지 못하는 TF 활동과 구성원은 즉각 바로잡겠다”면서 “TF 활동의 유일한 목표는 인사에 합리적으로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이 TF는 공무원 75만명의 ‘내란 참여·협조’ 여부를 개인 휴대전화까지 제출받아 조사한다는 방침 등이 인권침해란 논란이 일었다. 총리실에 설치된 ‘총괄 TF’는 이날까지 부처 25곳을 포함한 기관 49곳에서 TF 48개가 출범했다.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로 구성된 총리실에 단일 TF가 설치되면서 TF 숫자는 하나 줄었다. TF는 대부분 10~15명으로 구성됐지만, 전체 인원이 많은 국방부(53명), 경찰청(30명), 소방청(19명) 등은 대규모 조사단을 꾸렸다. TF 48개의 총인원은 정부 내부 인사 536명을 포함해 661명에 달한다. TF 48개 중 32개에 외부 인사 125명이 참여했고 그중 76명(60.8%)은 법조인, 31명(24.8%)은 학자, 18명(14.4%)은 시민단체 관계자 등이 참여했다. TF는 ‘내란의 사전 모의나 실행, 사후 정당화, 은폐’를 한 공무원은 ‘내란 참여’로, ‘내란의 일련의 과정에 물적·인적 지원을 도모하거나 실행’한 공무원은 ‘내란 협조’를 한 것으로 보기로 했다. 적발된 공무원에게는 내년 2월13일까지 ‘징계’나 ‘승진 배제’ 같은 인사 조치할 방침이다. 또 ‘내란 행위 제보 센터’를 설치해 동료 공무원들에게 제보·투서를 받고, 의심 공무원은 개인 휴대전화를 들여다보기로 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의혹이 상당하다고 판단되면 대상자의 휴대전화를 제출받아 들여다볼 예정이다. 의혹이 상당한 데도 조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수사 의뢰까지 가능한 선을 정했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TF 조사 권한을 두고 이견이 나온다. 형사가 아닌 행정 절차이지만 일반적인 조사가 아닌 만큼 행정법이 지켜져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무원 75만명 전방위 조사 문제없나 형소법 원칙 유명무실…권력남용 소지 한 서초동 변호사는 “영장 없는 조사를 두고 많은 문제 제기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행정조사기본법에 따르면 인사상 불이익으로 압박하거나 진술을 강요하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될 수 있다. 최소한의 범위를 규정하고 조사해야 하는데 TF가 정한 선이 어느 지점까지인지가 핵심일 것 같다”고 조언했다. 국회도 과거 비슷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2년 발간한 ‘권력적 행정조사의 쟁점 및 개선 과제’ 보고서에서 행정조사 과정에서 영장주의·진술거부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행정조사에서 수집된 자료가 수사기관으로 넘어가 형사 처벌 근거로 활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형사소송법상 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국가권력이 남용될 소지도 있다. 업무용 PC나 이메일에서는 변호사와 상담한 내용까지 확보되는 사례도 있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행정조사 위법성과 관련해서는 판례도 존재한다. 지난 2012년 서울고법은 기관이 업무용 휴대전화 통화 기록과 문자메시지를 동의 없이 확보해 공무원을 해임한 사건에서 이를 위법한 증거수집으로 보지 않았다. 법원은 기관이 통신비를 부담했고, 감사 목적이 공익적이었다고 판단했다. 대법원도 상고를 기각했다. 조직 내부 감사는 세무조사·공정거래위원회 조사·근로감독 등과 달리 별도의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경우가 많아 조사의 한계 역시 모호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대규모 내부 감사가 법적 문제를 일으킨 선례 역시 많지 않다. 민간인의 TF 참여도 새로운 논란이다. 정부는 감사부서 공무원 외에 민간인을 포함하거나 아예 외부 전문가로만 구성된 TF를 둘 수 있다는 지침을 내렸다.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민간인이 공무원에 대해 조사권을 행사하는 셈인데, 정부는 TF 설치를 위한 별도 입법을 마련하지 않았다. 논란 불구 조사 시작 공직사회는 뒤숭숭한 분위기다. 조사 기준이 모호해 억울한 문책 인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반면 계엄을 방관했거나 동조한 세력을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상당하다. 핵심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관은 기획재정부·국방부·행정안전부·경찰·검찰·법무부 등이다. 기재부의 경우 최상목 전 기재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겸했다. 최 전 장관이 12·3 비상계엄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가비상입법기구 예비비 편성 등 계엄 지시 문건 등을 받고 1급 고위직들을 소집해 회의를 연 바 있어,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 때 김동일 전 예산실장과 신중범 전 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 등이 아시아개발은행(ADB)과 아시아거시경제감시기구(AMRO)로 파견되기 직전 명예 퇴직금을 수령한 것을 두고 ‘해외도피’ 논란이 제기되기도 했다. 외교부는 이번 국감에서 비상계엄 직후 대통령실이 외교부 장관 명의로 ‘합법적 계엄’이란 내용의 공문을 주미한국대사관에 보내고, 이를 ‘3급 기밀’로 지정한 점을 지적받은 바 있다. TF가 가동되면서 외교부 인사는 사실상 ‘중단’ 상태다. 외교부는 애초 올해 말까지 1급 인사를 마무리할 계획이었지만, TF 활동이 시작되면서 어렵게 됐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다 되어가지만, 그동안 외교부 실·국장 및 재외 공관장 인사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외교부 인사는 특임 대사 임명과도 맞물려 있지만 인사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특히 현 정부는 특임 대사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외교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임 대사는 직업 외교관이 아닌 전문가·정치인·학자 등을 대통령이 재외공관장으로 임명하는 제도다. 주요 공관장 인사가 늦어지면서 사안이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느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미국 조지아주 현대자동차·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한국인 불법구금 사태 당시에도 조지아주를 관할하는 주애틀란타총영사직은 공석이었고, 캄보디아 사태 때도 주캄보디아 대사직이 비어있었다. 필요는 한데… 이중 감사 검찰 TF는 최근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다음 달 12일까지 제보용 익명 게시판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통해 관련 제보를 받겠다고 공지했다. 단장은 구자현 검찰총장 대행이 김성동 대검 감찰부장과 주혜진 대검 감찰1과장이 각각 부단장과 팀장을 맡아 10여명이 참여했다. 법무부에 설치된 TF 역시 같은 날 공지를 게시했다. 법무부에선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TF 단장을 맡고 내외부 인사 10여명이 구성원으로 참여한다. 법무부는 내부 익명 게시판을 통해 제보를 접수하는 한편, 검찰과 별도의 이메일 계정을 개설해 운영할 예정이다. 경찰은 경무관 승진, 총경 인사를 앞두고 숨죽이는 분위기다. 앞서 계엄 수사로 조지호 경찰청장 등 수뇌부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계엄 당시 국회 출입 통제나 체포조 투입에 관여됐던 간부 상당수는 기소를 피했다. 국방부는 이중 감사 논란이 일고 있다. 이미 12개 기관을 대상으로 내부 감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취임 직후 감사관실 주도로 중령급 이상 간부를 전수 조사해 지난주 보고서를 대통령실에 제출했고, 이는 이번 3성 장군 인사에도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총리실의 지시에 따라 기존 감사자료를 제출하는 수준에서 협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관실은 조사본부를 합류시켜 TF를 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 국방부의 자체 감사는 합참 현역 장교뿐 아니라 본부 군무원과 민간 공무원까지 포함한 대대적 감사였다. 지난 9월 진영승 합참의장 취임 이후, 권대원 합참차장을 제외한 합참 장군 전원과 2년 이상 근무한 중령·대령에 대한 대규모 인적 쇄신이 실제로 단행됐다. 합참의 지시에 따라 장교들의 진급이 보류되거나 보직이 변경됐다. 국정원은 이미 이종석 국정원장 취임 이후 직원들의 비상계엄 관련 여부 등 내부 조사를 마쳤다. 특히 의무적으로 TF를 구성해야 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정원은 지난 8월 첫 1급 인사를 단행하고 최근까지 2∼4급 인사를 마무리했다. 애매한 의혹 제기 투서 남발 우려 일부 기관 자체 판단 별도 TF 설치 이 인사는 이 원장 취임 이후 진행한 내부 조사 결과를 반영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정원은 이 원장 취임 두 달 만인 8월 1급 간부 20여명의 인사를 단행하면서 그간 정권이 바뀐 뒤 1급 간부를 모두 교체하던 관행과 달리 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간부들을 일부 유임시켰다.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TF 설치를 두고 대통령실이 직접 관리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본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신임 국정원장이 취임하면 국정원은 윗선 지침이 없어도 원장 지시하에 내부적으로 감찰이나 조사를 철저하게 해 왔다”며 “대통령실에서 직접 관리해 TF 조사가 이뤄져도 추가로 드러날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 정보위원회 간사인 더불어민주당 박선원 의원은 지난달 4일, 국정원 국정감사 이후 브리핑에서 “국정원이 불법적 비상계엄 상황에서 내란·외환 정보수집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면서 “국정원은 국정원법 4조에 따라 내란죄·외환유치 관련 자료를 특검에 이미 제출했고 계엄 시 국정원 역할 재정비와 실효적 안보조사체계 복원을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인권침해 진정이 들어온 기구를 인권위가 설치하면 모순”이란 이유로 TF 설치를 거부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TF 구성 반대 의결 과정에서 절차상 흠결이 지적되자 다음 전원위원회에 다시 상정해 논의하기로 했다. 앞서 인권위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등 독립기관은 TF 설치를 자율적으로 판단하기로 정해졌다. 안창호 인권위원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21차 전원위원회에서 “정부에서 부처 내 헌법존중 TF를 자율적으로 만들라는 권고가 있는데 어떻게 할 것이냐”고 위원들에게 물었다. 이에 한석훈 위원이 구두로 안건 발의를 제안했다. 이후 안건 발의자로 참여한 김용원·이한별 위원 포함 발의자 세 명과 강정혜·김용직 위원, 안 위원장 등 6인이 ‘TF 구성 반대’에 손을 들면서 의결됐다. 부역자 남았나 인권위 안팎에선 자율적 설치라고 해도, TF 설립 취지에 비쳐 조사 대상이 될 수 있는 위원들이 안건을 즉석에서 상정해 반대 의결까지 한 건 부적절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특히 반대 의견을 낸 안 위원장과 김용원 위원 등은 지난 2월 ‘윤석열 방어권 안건’ 의결에 찬성해 특검에 내란 선동·선전 혐의로 고발된 상태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