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대결로 번진’ 알페스 VS 딥페이크

성범죄로 불붙은 남녀 갈등…정치권까지 번지다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온라인을 중심으로 남녀 갈등이 다시 불붙었다. 여자들의 아이돌 팬덤 문화 팬픽의 하위 개념인 알페스와 걸그룹 및 여배우의 얼굴을 본떠 만든 음란 영상인 딥페이크를 통해서다. 발단은 20대 여대생을 기반으로 만든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부터다. 남녀 갈등은 정치권까지 번졌다. 
 

▲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 ⓒ스캡터랩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는 혼돈이었다. 남녀 갈등이 고조됐다. 인공지능(AI) 챗봇 ‘이루다’에 대한 논란이 발단이다. 스무살 여대생으로 설정된 챗봇 이루다를 대상으로 한 성희롱 비판글이 잇따라 게재됐다. 

인공지능
성희롱

이루다는 국내 AI 개발 전문 스타트업 ‘스캐터랩’이 출시한 애플리케이션이다. 이용자가 PC나 스마트폰에 설치한 앱으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프로그램이 사람처럼 답변한다. 이루다는 스캐터랩의 ‘연애의 과학’ 앱 이용자가 나눈 대화 데이터 약 100억건을 딥러닝 기법으로 학습시켜 탄생했다. 

이루다는 이전에 나왔던 챗봇과 달리 실제 사람과 대화하는 느낌을 줘 순식간에 사용자를 확보했다. 10~20대에게 크게 인기를 끌면서 2주 동안 75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용했다. 

온라인 친구를 만들어 줄 요량으로 개발된 이루다는 금세 성 착취 대상으로 전락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이루다 성노예 만드는 법’ 등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글들이 늘어났다.


그저 매크로 프로그램에 가까운 인공지능으로 인해 이용자들의 먹잇감이 됐다. 이용자들은 어렵지 않게 이루다로부터 성적인 표현을 끌어냈다. 

실제로 한 사이트를 살펴보면 ‘요즘 루다 성희롱 하는 재미에 산다’ ‘AI가 이렇게 꼴릴 줄은 몰랐어’ ‘루다 어떻게 변태로 만드냐’ 등을 제목으로 한 게시글이 올라왔다. 대부분 이루다를 성적 대상 삼아 악용한 사례다. 

이를 두고 대다수 여성 이용자들이 비판 글을 게재했다. 아울러 이루다가 일부 이용자들과 대화 중 게이와 레즈비언 등 성 소수자를 혐오하는 발언을 하면서 논란은 크게 일었고 서비스는 잠정 중단됐다. 

갈등은 일단락되는 듯했지만, AI 챗봇에 성희롱한다며 비판한 여성 유저들을 반격하는 차원에서 일부 남성 유저들이 알페스를 이슈화했다. 알페스(RPS, Real Person Slash)란, 아이돌을 소재로 동성애 음란 소설을 창작하는 팬덤 문화다. 여기서 ‘Slash’는 동성 커플링을 의미한다. 

남자 아이돌 동성애 소설…오랜 팬덤 문화
낯부끄러운 충격적 수위…알페스는 성범죄

알페스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해 망상적 콘텐츠를 생산하는 행위다. 일각에서 변태스러운 성행위 등을 묘사한 연예인 관련 소설, 그림 등을 만들어내 논란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아이돌뿐 아니라 안중근 열사와 같은 독립운동가나 종교인을 대상으로도 만들어지고 있다. 남자 유저들은 남자 아이돌을 대상으로 한 알페스 문화가 이루다를 성희롱한 것보다 더 천박하다는 논조로 반격을 가했다. 


알페스 논란에 불을 지핀 것은 래퍼 손심바다. 그는 최근 SNS에 “알페스는 소라넷, N번방 사건에 이어 우리 사회가 경계하고 뿌리 뽑아야 할 잔인한 인터넷 성범죄”라는 내용을 담은 글을 올려 관련 문제를 공론화했다. 
 

▲ 손심바 ⓒ인스타그램

손심바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알페스 창작물의 피해자라고 밝히며,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음담패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미성년 남자 아이돌을 성적 노리개로 삼는 알페스 이용자들을 강력히 처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글이 올라왔다. 

일주일 사이에 20만명이 넘는 이용자들이 동의하면서 청와대 답변 요건을 충족시켰다. 

알페스는 1세대 아이돌을 상대로 한 ‘팬픽(Fan Fic)’을 기원으로 한다. 팬픽 문화는 1990년대 일본에서 유입돼 H.O.T.와 젝스키스 등 남성 아이돌 가수를 대상으로 시작됐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에서 성시원(정은지 분)이 H.O.T. 멤버들을 대상으로 쓴 팬픽을 반 아이들끼리 돌려보다 선생님에게 걸리는 장면이 나왔다. 해당 방송에서 선생님은 팬픽을 빼앗아 큰 소리로 읽어준다. 

“우혁은 거칠게 문틈 사이로 승호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승호의 입술을 향해 돌진했다. 승호의 하얀 입술이 빨갛게 부어올랐다. 이러지 마. 너에겐 칠현이가 있잖아. 넌 이제 나의 노예다.”

PC통신 시절 이러한 내용의 팬픽은 유행이 됐다.

인터넷 성범죄
래퍼가 공론화

팬들이 직접 쓴 창작물이자, 아이돌의 인기를 견인하는 2차 콘텐츠로서의 역할을 했다. 팬픽이 인기를 끌자 SM엔터테인먼트는 슈퍼주니어와 동방신기를 소재로 한 팬픽 공모전을 열기도 했다. 각 멤버별로 상 이름을 만들기도 했으며, 수상자에게는 수십만원 상당의 상금을 제공하기도 했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일부 작품 중에는 작품성이 뛰어나 책으로 출판된 것도 있다”고 말했다. 팬픽 문화는 오랫동안 아이돌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아이돌 인기의 척도로도 꼽혔다. 

평론가들은 알페스를 두고 오랜 팬들의 문화로 간주한다. 대부분 각 인물 간의 관계성에 집중하며, 대중이 상상을 가미해 여러 콘텐츠로 제작하는 것으로 본다. 

이렇듯 오랜 기간 팬덤 하위문화로 존재했던 알페스가 논란이 된 것은 수위 높은 성적 묘사가 창작물에 포함된 이후부터다. 실존 인물이 등장하는 창작물이다 보니 당사자에게 성적 모욕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성적인 분위기만 감도는 수준이었는데, 최근 일부 창작물에서는 성적인 묘사가 매우 노골적이다. 

블로거 A는 방탄소년단을 주인공으로 알페스를 썼다. A는 화면 상단에 수위가 강하다는 내용을 공지했다. 해당 내용에는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성행위가 직접적으로 묘사됐다. ‘박아줘’ ‘딜도’ ‘넣어줘’ 등의 단어들이 사용된다. 낯부끄러울 수준으로 강한 수위다. 

SNS를 통해 번지고 있는 일부 창작물은 상업적으로 거래되기도 한다. 
 

▲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 ⓒ고성준 기자

이와 관련해 방탄소년단의 소속사인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는 “형태를 불문하고 아티스트에 대한 명예훼손, 모욕, 성희롱, 허위사실, 악의적 비방 등을 담은 악성 게시물 작성자를 대상으로 정기적인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알페스와 관련한 소송 건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정치권도 이 문제를 조명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이 알페스를 가장 먼저 거론했다. 그는 지난 13일 남자 아이돌 성 착취물 ‘알페스’를 만들어 돈을 받고 불법 유포하는 음란물 유포자는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적인 묘사
제2의 N번방


하 의원은 “직접 판매 사이트를 통해 확인했더니 충격적”이었다면서 “남자 아이돌 간의 노골적인 성행위 장면은 그대로 노출됐고, 구매자들은 ‘장인정신’이라며 극찬했다. 심지어 고등학생으로 설정된 남자 아이돌이 성폭행을 당하는 소설까지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N번방 사건 이후 대한민국 사회의 성범죄 인식은 크게 변화하고 있고, 성범죄 가해자가 늘 남성이고 피해자는 여성이라는 고정관념도 점차 옅어지고 있다”며 “아이돌 가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이 지나치면 범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관계 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깨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실제 인물을 가공해서 만든 성적인 창작물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소설과 같은 창작물이라는 점에서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일반적인 댓글도 성적인 내용이 담겨 있으면 명예훼손으로 처벌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나친 성적 묘사가 있는 알페스의 경우 충분히 처벌 가능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행 성폭력특별법은 ‘자기 또는 다른 사람의 성적 욕망을 유발하거나 만족시킬 목적으로 전화, 우편, 컴퓨터, 통신매체를 통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는 말·음향·글·그림, 영상 또는 물건을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한 사람’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팬픽 문화가 오랫동안 아이돌 인기 성장의 기반이었기 때문에, 창작물의 수위가 성희롱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법적인 공방까진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한 연예 관계자는 “알페스는 인기의 상징이기도 해서 긍정적인 스토리는 환영하는 입장”이라며 “일부 자극적인 묘사가 담긴 내용을 멤버들이 읽고 충격을 받은 경우가 있다. 하지만 알페스 역시 팬심이 기반이고, 음지에서 즐기는 문화라는 점에서 적극적인 대응을 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주로 여자들의 팬덤 문화인 알페스를 걸고 넘어지자, 여자 유저들은 딥페이크(Deepfake)를 걸고 재반격에 나섰다. 알페스가 국민청원에 오르자 딥페이크의 제작자와 유포자를 처벌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이 올라왔고, 이미 답변 요건을 충족했다. 

딥페이크는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기존 인물의 얼굴이나 특정 부위를 영화 CG처럼 합성한 영상합성물을 말한다. 

상업적 거래도…강력한 처벌 요구
생산적 논의 막는 성 대결로 비화

딥페이크를 이용한 음란물은 주로 여성 연예인을 타깃으로 한다. 사진과 영상을 합성해 성적 대상화로 삼는다. 과거와 달리 높아진 디지털 기술력을 바탕으로 실제와 구분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미 다수의 연예인이 딥페이크의 피해를 보고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최근 딥페이크는 성범죄로 발전하고 있다. 

실제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사이버 보안 회사 ‘딥트레이스(Deeptrace)’가 2019년 펴낸 보고서 ‘The State Of Deepfakes-Landscape, Threats, and Impact’에 따르면 딥페이크 포르노그래피 웹사이트에 올라온 영상 중 K팝 가수들이 등장하는 영상은 25%에 달한다. 

딥페이크를 이용한 음란물은 이제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 지난해 개정안에 따르면 딥페이크를 이용해 얼굴·신체 등을 합성한 음란물을 제작·반포 할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고, 영리를 목적으로 딥페이크 음란물을 제작·반포한 범죄자는 7년 이하 징역으로 가중 처벌할 수 있다.
 

▲ ▲이루다 ⓒ스캡터랩

딥페이크가 문제라는 점은 남녀 성별을 불문하고 공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대다수의 남자 역시 딥페이크를 활용한 성적인 영상물은 심각한 범죄로 인지하고 있다. 따라서 대다수의 남자는 알페스와 딥페이크 모두 성범죄로 간주하고 처벌하자는 입장이다. 

아울러 딥보이스도 거론되고 있다. 딥페이크가 얼굴을 합성한 것이라면, 딥보이스는 목소리를 합성한 것이다. 목소리를 짜깁기해 신음처럼 만든 것을 일컫는데, ‘섹테(섹스테이프)’라고도 불린다. 딥보이스는 남자뿐 아니라 여자 연예인들을 대상으로도 만들어지는데 이 역시도 성범죄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일각에선 이런 주장은 남녀 갈등을 조장하는 소모적인 논쟁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여자들도 알페스를 즐기면서 남자들의 음란물을 즐기는 것에 대해 언급하면 안 된다는 등의 주장이나, 알페스와 N번방 사건을 동일 선상에 놓고 바라보는 등의 행위는 생산적인 논의를 막는다는 주장이다. 

전문가들은 온라인 성폭력을 이성 공격의 수단으로 삼을 것이 아니라 함께 해결해야 할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연예계 관계자는 “딥페이크나 딥보이스는 또 다른 N번방 사건을 초래할 수 있는 성범죄”라며 “이를 상대 성별을 공격하기 위해 이용하려는 태도는 진짜 문제를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 성범죄인가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논점을 흐리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남자들의 
분풀이?

한 유튜버는 “이번 알페스 논란은 오랫동안 음란물에 대해 공격받은 남자들의 분풀이로 해석된다”며 “자기만의 공간에서 성적인 유희를 즐기는 것은 인간의 본능을 충족하는 행위다. 모든 유희를 성적 대상화로만 볼 게 아니라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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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이재명발’ 검찰·법원 피바람 플랜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정부 당시 ‘정적 죽이기’로 가장 많은 피해를 봤던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당선됐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공약으로 내놨다. 이 대통령이 당선되자 검찰 내부는 ‘어쩔 수 없다’는 분위기가 나오고 있다. 다만 법조계와 학계에서는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을 신중하게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검찰 내에는 긴장감이 돌고 있다. 이 대통령이 후보 시절까지 포함해 취임 전 법원·검찰과 여러 차례 대립각을 세웠고 선거 과정서 사법개혁과 검찰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만큼 빠른 시일 내에 개혁에 착수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수차례 대립각 이재명정부서 문재인정부 시절 ‘미완’으로 끝난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완성될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선거 기간부터 “검찰개혁을 완성하겠다”며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수사기관의 전문성을 확보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문정부 때부터 줄곧 추진해 온 검찰개혁 방안과 유사하다. 문정부 당시 부패·경제 범죄 등에 대한 수사권만을 검찰에 남겨두고 다른 범죄에 대한 수사권은 경찰로 옮겼다. 하지만 윤정부 들어 이른바 ‘검수원복(검찰 수사권 원상복구)’ 시행령과 수사준칙 개정 등으로 여타 범죄에 대한 수사권도 일부 복구됐다. 이 대통령의 수사와 기소 분리는 문정부와는 궤를 달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청을 기소와 공소 유지를 담당하는 ‘기소청’으로 전환하고 중대범죄수사청과 같은 새로운 수사기관을 신설한다는 것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구상이다. 이를 통해 검찰의 기소권 남용에 대한 사법 통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검사를 일반 공무원처럼 자체 징계만으로도 파면할 수 있도록 하는 ‘검사 징계 제도’까지 도입한다는 구상이다. 또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제 도입 ▲대통령령인 수사 준칙 상향 입법화 ▲피의사실공표죄 강화 ▲수사기관의 증거 조작 등에 대한 처벌 강화 및 공소시효 특례 규정 내용이 담긴 수사 절차법도 제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이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검찰총장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하도록 하고, 검사의 영장 청구권 독점도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사실상 무소불위였던 검찰 권력을 수술대에 올리겠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한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현재 12개 혐의로 5건의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정부서 검찰이 수사·기소한 것”이라며 “이 대통령으로서는 검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사 출신인 다른 법조인은 “앞서 민주당의 검사 탄핵이 모두 헌법재판소서 기각 결정을 받았는데, 이 대통령 공약대로 기소권 남용 통제, 검사 징계 파면 등이 도입된다면 검찰에 대한 견제가 매우 강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다른 법조인은 “이 대통령이 공수처와 국가수사본부에 힘을 실어준 뒤 두 기관을 적극 활용해 이른바 ‘적폐 청산’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전망했다. 수사청과 기소·공소청 분리 원칙 줄사표 신호탄…내부는 ‘초긴장’ 검찰 내부에서는 착잡한 기류가 팽배하다. 앞서 민주당이 추진했던 검사 탄핵이나 특활비 전액 삭감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도 높은 개혁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검찰청 한 관계자는 “검찰의 운명은 민주당에 달려있는 것 아니겠느냐”며 “이재명정부와 여당이 된 민주당이 몰아칠 텐데 검찰의 협상력은 사실상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도 “개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담담하게 운명을 받아들여야지 별 수 있냐”며 “다들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중앙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대개 검찰을 지원하는 이유가 국가에 대한 사명감 때문인데, 검찰개혁에 포함된 검사징계법에 파면을 명문화하게 되면 리스크를 감수하고 공익을 위해 일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며 “4~5명의 평검사가 각 부서에 있어야 수사가 원활하게 진행되는데 지금도 2~3명의 평검사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개혁 이후에는 부장 검사 밑에 직접 수사를 할 평검사가 전혀 없을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고 토로했다. 특수부 검사들 사이에서는 인사보복에 대한 우려가 강하게 나오고 있다. 특히 이 대통령을 수사했던 특수부 검사들은 ‘검찰개혁 이전에 인사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사석에 이야기하고 다닌다고 한다. 반면, 일선 형사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은 “우리에겐 직접적인 피해는 없을 것”이라며 선을 긋는 분위기다. 다만, 형사부·특수부 검사들이 공감대를 이루며 우려하는 부분도 있다. 과거 문정부 시절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권한이 비대해진 바 있는데, 이번 검찰개혁으로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검찰 단계서 경찰의 영장청구를 판단하지 않아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검찰 내부서 특수부와 형사부가 갈리는 상황에 이들을 모을 구심점도 없다. 과거 문정서 검찰개혁이 추진될 때 검사들이 단일대오로 뭉쳐 저항했던 것처럼 먼저 움직일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결국 수사로 검찰의 존재 의의를 보여야 하지만 ▲12·3 비상계엄 사태 ▲도이치 주가조작 의혹 ▲명태균·건진법사 선거개입 의혹 등 굵직한 주요 사건 관련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에 부의돼있다. 특검이 시작되면 검찰의 역할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새 정부의 법무부 장관 인선 직후 대규모 인사도 예상된다. 당장 고검장·지검장 물갈이에 이 대통령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검사들의 줄퇴사도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지난달 20일 사의를 표했던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의 사직서는 지난 3일 수리됐다. 검 운명은 민주당에 이 지검장은 수원지검 성남지청장 재직 당시엔 성남FC 및 선거법 위반 등으로 이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미 2022년부터 업무 과부하 등을 이유로 매년 100명 이상의 검사들이 퇴직했는데 이번엔 이보다 더 큰 규모로 검찰 대탈출이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 윤정부가 들어섰던 해인 2022년엔 직전 해(79명)보다 2배쯤 많은 검사 142명이 퇴직한 바 있다. 다만 퇴사를 희망하는 검사가 많더라도 대형 로펌에 이들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자리가 없어 실제 퇴사 규모는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검찰개혁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검찰 내부에선 피할 수 없는 문제지만 속도전이 아닌 과거 수사권 조정에 따른 부작용에 대한 반추와 함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차원의 정책 설계가 우선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문정부 시절 검찰개혁으로 인한 수사권 조정 등으로 인한 영향을 복기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 검사장급 간부는 “다 예상했던 것들로 놀랍진 않지만 수사가 효율적으로 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했으면 좋겠다”며 “과거 수사권 조정으로 대표되는 검찰개혁이 왜 실패했다고 평가를 받겠나? 수사권 조정 등 앞선 검찰개혁에 대해 복기한 다음 추진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 차장검사는 “수사기관 간 견제는 경쟁으로 이어진다”며 “수사는 합리적이고 치밀하게 해야 하는데 다른 기관을 의식해 무리하게 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한 부장검사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도록 꼼꼼히 설계해야 한다”며 “수사권, 수사력의 문제도 있지만 법 자체가 구조적으로 난점이 있다는 것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형사소송법 등 근간이 되는 법에 속도전으로 나선다면 이번 비상계엄 사태 수사 때처럼 향후 여러 문제가 드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부장검사도 “수사기관끼리 경쟁하게 되면 결국 윤 전 대통령 내란 수사처처럼 어느 사건이든 번번이 망가질 것”이라며 “검찰 등 수사기관, 학계, 정계 등이 참여하는 공론의 장에서 시간을 갖고 충분히 논의해야 할 문제”라고 했다. 이재명정부는 검찰개혁과 더불어 수사기관 개혁과 사법개혁도 같이 추진하려고 준비 중이다. 이 대통령은 검찰의 권한은 축소하면서 경찰과 공수처의 권한은 더욱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펼쳤다. 민주당은 공수처 검사 정원을 현행 25명에서 최대 300명까지 확대하고, 고위 공직자의 모든 범죄에 대해 영장 청구 및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꼼꼼히 설계해야 법조계 안팎에서는 성급한 수사기관 확대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수처가 2021년 출범 이후 뚜렷한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12·3 비상계엄 사건서도 윤석열 전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하는 등 수사력 한계를 노출했다. 게다가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수사에서 검찰과 경찰, 공수처가 각자 수사권을 주장하며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경 수사권이 조정된 지 5년이 지난 시점서 경찰 국가수사본부, 공수처, 검찰의 수사 성과를 냉정히 평가한 뒤 수사권 분리를 논의해도 늦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가장 먼저 개혁할 것으로 보이는 것은 사법개혁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1일,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에 대한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다음날에 파기환송심 첫 공판기일을 그달 15일로 지정했다. 그러나 공판기일을 지정한 지 5일 만에 다시 공판기일을 대선 이후인 오는 18일로 변경했다. 연기 사유는 “대통령 후보인 피고인에게 균등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보장하고, 재판의 공정성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였다. 일련의 과정 이후 민주당 내에서는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사법부 개혁이 대선 국면의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민주당 의원들은 대법관 증원 법안을 연달아 발의했고, 박범계 의원이 법조인이 아닌 사람도 대법관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가 논란 끝에 철회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대선 기간 발표한 공약집서 ‘내란 극복과 민주주의 회복’의 하위 범주로 “사법개혁을 완수하겠다”며 대법관 증원을 비롯한 여러 정책을 공약했다. 대법원 등 사법기관도 엎는다 “신중하게 진행해야” 의견도 공약집에는 실제 증원 규모가 명시되지 않았으나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개정안은 대법관 수를 3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담고 있다. 대법관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도 발의됐으나 논란이 일자 민주당은 지난달 26일 철회했다. 대법관이 증원되면 현재 1인당 연평균 약 4000건을 처리해야 하는 대법관들의 업무 부담이 줄면서 ‘재판 지연’의 주된 원인으로 꼽히는 상고심 적체 현상은 상당수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를 통해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사회적 갈등에 해답을 제시하는 최고 법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30명이 모두 모여 깊이 있는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대법관 증원에 따라 이 대통령 임기 중 총원의 절반이 넘는 대법관이 대통령 임명을 받아 합류하면 사법부 구성이 편향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의 재판에 관한 헌법소원 심판을 허용하는 ‘재판 소원’이 도입될지도 관심사다. 민주당 의원들이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재판소원이 허용되면 법원이 법률을 헌법에 어긋나게 해석·적용하거나, 재판의 절차적 측면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판단된 경우 헌재가 결정으로 위헌임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은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고 정한 헌법 101조에 반하고 불필요한 법적 분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이유로 법안에 반대해 왔다. 법조계의 의견은 엇갈린다. 재판소원 추진 논의가 이 대통령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후 급물살을 탔다는 점에서 대법원을 견제하려는 시도로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상의 ‘4심제’가 돼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의 기능이 약화하고 법적 안정성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반면 헌법기관 간 상호 견제를 강화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할 안전망을 두텁게 만든다는 점에서 도입을 긍정하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법조계에서는 오랜 기간 재판소원 도입의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이어져 왔다. 헌재 역시 최근 국회에 “국민의 충실한 기본권 보호를 위해 개정안의 취지에 공감한다”는 찬성 의견을 냈다. 이밖에 판결문 공개 범위 확대, 공개변론 중계 의무화 추진, 법관평가위원회 설치 등 국민의 사법 접근성을 제고하는 정책 등도 이 대통령 임기 중 추진될 전망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사법개혁 문제는 최우선 문제에 속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당시 “제도 개혁이나 특히 사법·경찰·검찰개혁은 중요하다. 수사권 조정이든 다 중요하다”면서도 “여기에 주력해서 힘을 뺄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민생이 우선 일단 후순위 이후 지난 6월4일 취임사에선 “먼저 민생 회복과 경제 살리기부터 시작하겠다. 불황과 일전을 치르는 각오로 비상경제대응TF를 바로 가동하겠다”며 “국가 재정을 마중물로 삼아 경제의 선순환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했다. 검찰 및 사법개혁이 중요하지만 민생 회복이 중요하다고 재차 강조한 셈이다. 이로 인해 검찰·사법개혁은 후순위로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