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12·3 내란 사태에 연루된 인물들은 장성에 그치지 않는다. 영관급 장교를 포함한 일부 간부도 위법적 지시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혐의로 군검찰의 칼날 위에 섰다. <일요시사>는 최근 복수의 ‘정보사 판교 멤버’들을 만나 당시 상황을 들어봤다.

“중앙선관위가 헌법기관인지도 몰랐다.” <일요시사>와 만난 국군정보사령부 ‘판교 멤버’ A씨와 B씨의 말이다. 정보사 판교 멤버는 12·3 내란 사태 당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의 지시로 100여단 사무실에 모인 이들을 말한다. 사무실에 모인 인원 대부분은 자신들이 어떤 불법 행위를 하게 될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명령대로
노 전 사령관은 계엄사 합동수사본부 산하 사조직인 수사2단을 구성해 정보사 간부와 예하 북파공작부대(HID) 요원 등 일부를 12·3 내란에 동원했다. 수사2단은 구삼회 전 육군2기갑여단장이 단장을 맡고 방정환 국방부 혁신기획관이 부단장을 맡았으나 사실상 노 전 사령관이 총괄 지휘했다.
정보사 소속이던 정성욱 대령과 김봉규 대령은 부단장 아래 부서장을 맡을 예정이었다. 이 같은 계획은 실제 인사 발령 문건으로 만들어졌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에게 “대규모 탈북 징후가 있으니 임무 수행을 잘 할 수 있는 인원을 선발하라”고 지시했고, 문 전 사령관은 같은 해 10월 말 정 대령과 김 대령에게 “임무 수행 요원 15~20명씩을 선발해 보고하라”고 하달했다.
한 달여 뒤 노 전 사령관은 이들에게 “비상계엄 선포 시엔 선관위 전산 자료를 확보하고 직원들을 체포·감금해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고 임무 내용을 알렸다. 당시 노 전 사령관은 “야구방망이, 니퍼, 케이블타이 등을 준비해두라”고도 지시했다.
내란 당일 HID 요원들을 포함해 판교 정보사 100여단 사무실에 모인 대북 공작 담당 간부들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에 가라는 문 전 사령관의 지시를 듣고 의아해했다.
계엄법 없는 정보사 역할 투입 자체가 불법
진급에 미쳐? “공작·블랙이 야전서 뭐 하나”
정보기관 관계자 A씨는 “애초에 정보사가 계엄에 동원돼서는 안 된다. 계엄법에도 역할 자체가 없다. 사전에 계엄을 인지했다면 판교에 모이라고 했어도 모두가 항명했을 것”이라며 “처음에 노상원의 지시를 따르라는 말부터 이상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전 정보사령관이지만 우리가 이미 군을 전역한 민간인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게 맞냐’고 서로에게 물었다”고 했다.

이어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이 노상원의 지시가 곧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지시나 마찬가지라고 해 ‘장관의 명령은 따르지 않으면 항명이 될 수도 있으니 우선 지시에 따르는 척이라도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 B씨는 “선관위원회가 헌법기관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평생을 공작만 하는 사람들은 헌법과 법률에 무지할 수밖에 없다. 공작 임무를 수행하는 블랙은 학력과 출생, 이름조차 수십 년간 가짜”라며 “국가를 위해 불법을 저지르며, 그저 바보처럼 상관이 지시하면 따른다. 정보사라는 조직 자체가 지휘관을 믿지 않으면 임무를 수행할 수 없는 조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를 위해 국민을 위하는 임무를 해야 하는데 정신 나간 지휘관들로 인해 국민을 해할 뻔했다. 국민들께 정말 죄송스럽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B씨는 “정 대령이 노상원의 지시로 야구방망이와 장도리 같은 걸 샀는데 그 물건들은 판교 다이소에서 구매한 것”이라며 “정보사에서 사용하는 물품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김 대령과 정 대령은 각각 신문과 체포를 담당했다. 정 대령은 팀원들로부터 “이게 정상적인 임무냐”는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
“평생 암살·납치·공작만 해 법에 무지”
“민간인 부상 방지에 소극적 임무 수행”
A씨는 “우린 체포나 수사를 했던 사람들이 아니다. 적진 한복판에 침투해 암살 임무를 수행하거나 납치하는 등 치고 빠지는 전문 요원들이다. 민간인을 고문하고 신문하라고 했었는데 당연히 따를 수가 없는 지시였다. 북한과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제대로 된 설명도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지시다 보니 적극적으로 따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A씨와 B씨는 임무 수행 중 민간인이 사망하거나 다치는 일이 생길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를 정 대령에게 물었다고 한다. 정 대령은 당시 “케이블타이로 팔을 묶지 말고 최대한 다치지 않게 하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상계엄 해제 직전에 요원 대부분이 지시를 거부하자고 결론 냈다. 정 대령과 다른 간부들이 진급에 미쳐 있어서 노상원과 문상호의 지시를 따랐다는 의혹성 보도가 즐비한데 전혀 그렇지 않다”는 B씨는 “정 대령은 지휘관 노릇만 10년 가까이 했다. 공작만 수십 년 했던 사람이 야전에 가서 적응을 잘할 수 있겠나. 노상원도 정성욱 대령을 진급시켜 주려고 하지 않았고 대상에서 논의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A씨도 “정 대령과 일부 판교에 모였던 간부들은 명령을 따르되 하나하나 점검이 필요하고 적극적으로 이행하지 말라고 했다. 오히려 정 대령은 선관위 직원들을 고문하거나 망치로 머리를 깨거나 족치라는 노상원의 지시를 거부하면서 민간인이 다치면 안 된다고 강조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고문 거부
특히 “김 대령과 정 대령, 고동희 대령 등 다 팀이 다르고 서로가 어디로 갔는지도 모른다. 팀원들끼리 얼굴도 몰랐다. 우리가 사전에 계엄을 인지하고 노상원과 문상호의 명령을 적극적으로 따랐다면 각 팀이 전략적이고 유기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움직였어야 했는데 그런 적이 없다. 이미 검찰과 경찰이 알고 있고 그렇게 진술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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