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운전 3연타’ 김재범 체육회 위원장 자격 논란

과거 딛고 중책 맡은 유도왕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2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자 한국 유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김재범 한국마사회 감독이 대한체육회 경기력향상위원장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그의 선수 시절, 세 번의 음주 운전을 두고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제42대 유승민 대한체육회장이 취임한 지 세 달이 지났다. 유 회장은 42대 집행부 구성에 이어 산하 위원회 구성까지도 발 빠르게 진행 중이다. 하지만 경기력향상위원장으로 임명된 유도 금메달리스트의 과거 음주 운전이 다시 불거지며 자격 논란에 휩싸였다.

세 번의 사건

대한체육회(회장 유승민)가 지난 4월 K-스포츠 전성시대를 이끌어갈 핵심 인물로 유도 영웅 김재범 한국마사회 유도단 감독을 경기력향상위원장에 임명했다. 경기력향상위원회는 선수들의 실질적인 훈련 환경, 지원 제도, 데이터 기반 분석 등을 관장하는 핵심 조직이다.

김재범 위원장이 이끄는 이 위원회는 앞으로 스포츠 과학 융합, 국가대표 선발 프로세스 개선, 심리·영양·재활 등 전문 지원 체계 강화 등의 업무를 주도할 예정이다.

이는 유 회장의 ‘선수 중심 체육’ 철학과 맞닿아 있으며, 한국 스포츠의 국제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상징적인 행보로 평가된다.


김 위원장은 대한민국 유도의 전설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서 남자 81kg급 금메달을 획득하며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고 아시아선수권,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올림픽을 모두 석권한 최연소 ‘유도 그랜드슬래머’이기도 하다.

그의 커리어는 단지 성적에만 머물지 않았다. 특유의 성실함과 투혼, 부상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끈기는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어왔다. 은퇴 이후에도 한국마사회 유도단 감독으로 활약하며 후진 양성과 유도 저변 확대에 힘써왔다.

이번 위원장 선임은 체육계 안팎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선임 소감서 “지도자로서, 선수였던 사람으로서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 자리에 서게 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대한민국 선수들의 경쟁력을 높이고, 스포츠를 통해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길에 기여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현장 밀착형 피드백 시스템, 비인기 종목의 성장 기반 마련, 국가대표의 훈련 지원 체계 확립 등을 중점 추진 과제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체육회 경기력향상위원장 임명
무면허 상태 음주 운전 등 3회 적발

체육계서도 김 위원장 임명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체육계 한 관계자는 “김재범 위원장과 같은 인물의 합류는 실효성 있는 정책 수립에 큰 힘이 될 것”이라며 “정책의 무게감도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반면 일각에선 김 위원장의 과거 음주 운전 전력을 꼬집으며 자격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009년 1월4일 오전 11시께 술을 마신 채 자신의 벤츠 승용차를 운전하던 중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사거리 인근서 불법 유턴을 하다 마주 오던 스타렉스 승합차의 뒷부분을 들이받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이날 혈중알코올농도 0.095% 상태서 차를 몰다 사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 위원장은 지난 2007년 음주 운전을 하다 적발돼 면허가 정지됐으며, 지난 2008년에 또다시 음주 운전으로 적발돼 면허가 박탈된 상태였다. 무면허 상태서 또 음주 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것이다.

불구속된 지 일주일 여가 지난 후 MBC서 방송한 <스타의 친구를 소개합니다(이하 스친소)> 신년 특집에 <스타의 가족을 소개합니다>에 출연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김 위원장에 유도 기본기를 선보이는가 하면, 손바닥 댄스 등 의외의 순진하고 귀여운 끼를 뽐내며 수줍은 면모를 드러냈다.

또 슈퍼주니어 이특의 친누나 박인영씨와 커플을 이루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방송 시작 직후 네티즌들은 무면허 음주 운전으로 불구속 입건됐던 김재범의 출연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였다. 이날 방송분에서는 김재범이 등장하자 ‘이날 녹화는 지난해 12월 진행됐다’는 자막이 떠 논란을 사전 예방하려 했으나 역시 논란은 이어졌다.

많은 네티즌들은 “음주 운전으로 입건된 김 선수가 방송에 버젓이 출연하다니 어이없다”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라곤 하지만 구설수에 오른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 같은 의견이 이어지자 스친소 제작진은 프로그램 공식 홈페이지에 “2009년 1월 17일 방송된 <스타의 가족을 소개합니다> 편은 2008년 12월 녹화된 방송분으로 MBC 파업으로 인해, 방송이 지연돼 나간 것입니다. 이에 시청자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감사드립니다”는 글을 게재했다.

이번 위원장 임명때도 관련 비판이 나왔다.

‘여론 뭇매’ 박정태 사례 보니…
대한체육회 “결격사유 아니다”

한 체육계 관계자는 “박정태 전 해설위원이 프로야구 구단 SSG의 2군 퓨처스 감독으로 선임될 당시 음주 운전 이력이 있어 비판받다가 감독직을 사퇴한 바 있다”며 “과거 전력이 있는 사람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공적인 자리에 전력이 있는 사람을 임명한 것을 믿을 수 없다. 안 그래도 체육계서 여러 사건이 발생하는 상황에 이들에게 다시 체육계서 일할 수 있는 선례가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SSG 구단은 지난해 12월 박정태 전 해설위원을 퓨처스 감독으로 선임했다고 발표했다. 구단의 공식 발표 후 SSG 팬들은 물론 야구계가 발칵 뒤집혔다.


가장 큰 문제는 박정태의 과거 세 차례 음주 운전 이력이었다. 박정태는 2019년 1월 음주 상태로 시내버스 기사의 운전을 방해하고 폭행한 혐의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 및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 보호관찰 2년과 사회봉사 160시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을 통해 박정태가 이번 음주 운전 외에 두 차례 더 음주 운전으로 처벌받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결국 박 전 해설위원은 SSG 퓨처스 감독직을 사퇴할 수밖에 없었다

김 위원장은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에서 “어린 나이에 잘못을 했고, 그 이후 사죄하는 마음으로 2012년 올림픽을 준비했다. 조용히 맡겨진 일을 열심히 해왔다”며 “최대한의 피해를 안 입히게, 사회적으로 잘못하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살고 있지만, 과거에 죄 지은 부분에 대해서 비판이 나온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머리를 숙였다.

이어 “대한체육회 위원장이든 위원이든 어느 자리에 가기 위해서는 범죄 이력 조회 동의서에 서명을 해야 한다”며 “동의서를 제출하고 대한체육회서도 승인이 났다. 과거 잘못에 대해 짚어주신 부분은 너무 감사드리면서도 죄송하지만 맡은 바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문제없나

대한체육회 내규의 결격사유는 ▲피성년후견인 또는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않은 사람 ▲금고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않기로 확정된 후 5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 ▲법원의 판결 또는 다른 법률에 따라 자격이 상실되거나 정지된 사람 ▲징계로 파면이나 해임 처분을 받고 일정한 시간이 지나지 않은 사람 ▲성범죄나 상해와 폭행의 죄로 처벌을 받은 사람 등이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김 위원장의 경우 내규상 아무 문제가 없다”며 “그의 음주 운전 사건이 있을 당시에는 관련 규정이 미비해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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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고 고인’ 민주당 소장파의 위기

‘고이고 고인’ 민주당 소장파의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내 다양성이 사라졌다. 정치 환경, 뉴미디어, 공천권 등 다양한 요인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거대 양당 체제에서 소장파는 옛말이 된 것일까? 조금이라도 튀는 목소리가 나올 기미가 보이면 곧바로 좌표를 찍고 총공격에 나서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에서 연일 악재가 터지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틈새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내란 청산과 개혁을 필두로 전진하는 민주당의 앞길을 막을 자가 없다. 이 모든 게 ‘국민의 뜻’이라는 부연 설명과 함께 민주당의 목소리가 한 갈래로 모이고 있다. 튀었더니 바로 응징 ‘더 센 3대 특검법’이 민주당 주도로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본격적으로 국민의힘을 향한 압박이 시작됐다. 국민의힘을 겨냥한 내란 정당 해산 심판 청구에도 다시 군불을 땠다. 여기에 조희대 대법원장이 조기 대선이 치러지기 직전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과 만나 “이재명 사건은 대법원에서 알아서 처리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민주당은 전투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민주당이 국민의힘이라는 표적에 힘을 집중시키는 데에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정치권에서 눈을 돌린 다른 사안에 대해서도 통일된 의견을 주장하면서 당의 다양성이 사라졌다는 우려가 나온다는 점이다. 특히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듯한 행보가 계속되면서 조금이라도 튀는 목소리에는 너도나도 곧바로 날을 세우기 일쑤다. 그 중심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위인 민주당 초선 곽상언 의원이 있다. 앞서 곽 의원은 “찬성 혹은 반대할 충분한 근거가 없었다”며 쌍방울 불법 대북송금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회유 의혹을 받는 박상용 검사의 탄핵소추안에 기권표를 던지고 원내부대표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민주 진영 커뮤니티에는 “장인이 왜 부엉이바위에 올라갔는지 곱씹으라” 등 곽 의원을 저격하는 글이 도배됐다. 그런 곽 의원이 이번에는 구독자 200만명이 넘는 유튜브 채널이자 민주 진영의 ‘금단의 영역’과도 같은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뉴스 공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SNS에 ‘김어준 생각이 민주당 교리…정당 기능마저 넘긴 집권여당’이라는 제목의 언론 보도를 공유하며 “유튜브 권력이 정치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특정인의 생각을 따르는 것이 민주적 결정이라고 한다”며 “오랫동안 제가 가진 정치적 문제의식과 궤를 같이한다”고 꼬집었다. 김어준 저격 곽, 사법개혁 꼬집은 박 초선의 용기 VS 분탕질…갈라진 여론 이에 같은 당 최민희 의원은 여당 의원이 모인 단체 대화방에서 “말을 바로 하라. 누가 머리를 조아리나”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자 곽 의원은 또다시 SNS를 통해 “국가 정책 결정에까지 개입하고 좌지우지한다”며 “원래의 순기능은 이미 소멸할 정도로 정치 유튜브의 역기능은 원래의 순기능을 압도한다”고 주장했다. 당론에 맞서 홀로 반대 의견을 낸 초선 의원은 또 있다. 박희승 의원은 당의 내란특별재판부(내란전담재판부) 설치 추진에 대해 “위헌 소지가 있다”며 공개 반대했다. 박 의원은 법관 출신으로 이재명 대통령 사법연수원 18기 동기며 민주당이 당론으로 주장하는 사법개혁에 신중론을 펼치는 인물이다. 그는 ‘3대 특검 대응 특위’ 회의에서 “국회가 직접 나서서 법원을 공격하고 법안을 고치는 건 윤석열 전 대통령이 삼권분립을 무시하고 계엄을 발동해 총칼을 들고 들어온 것과 똑같다”고 주장했다. 이어 “우리 헌법 제101조에 따르면 사법권은 법원에 있고, 특별재판부를 개헌 없이 국회 논의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며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재판이 진행되면 법안에 대해 (재판부가) 위헌 법률 심판 제청에 들어갈 텐데, 이는 헌법 정리가 되지 않고서는 끊을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더 신중해야 할 건 우리가 내란 재판을 해서 처벌을 정확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당한 절차를 거쳐서 해야지, 안 그러면 나중에 두고두고 시비가 될 수 있다”며 “재판 구성 자체가 위헌이 나면 그 책임을 누가 질 것이냐? (당이) 자꾸 법원을 난상 공격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해당 발언을 놓고 거센 비판이 오가자 결국 박 의원은 “윤석열의 계엄에 비유한 것은 적절치 않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의 뜻을 밝히자 당내 비판은 사그라들었지만 지역구가 호남인 만큼 민주당 당원들의 성토가 쏟아졌다. “소신 발언과 분탕질은 구분해야 한다”는 비판도 빗발쳤다. 당내 주류 세력이 아닌 초·재선 의원이 주류에 맞서는 이른바 ‘소장파’는 한국 정치 역사의 흐름과 늘 함께해 왔다. 1980년대에는 ‘꼬마 민주당’에서 활동한 김영삼(YS)·김대중(DJ)계 초선들이 개혁과 쇄신을 외쳤다. 2000년대 보수정당에서는 ‘남정원(남경필 전 경기도지사·정병국 전 대표·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이, 새천년민주당에서는 ‘천·신·정(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신기남 전 의원·민주당 정동영 의원)’이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열기 위해 힘을 모았다. 소신과 분탕질 2010년 이후에도 초선 또는 젊은 의원을 중심으로 한 소장파 세력이 생겼지만 친이(친 이명박)·친박(친 박근혜) 간의 계파 갈등, 정치 진영의 변화 등으로 금세 잊혀지거나 도태되는 결말을 맞이했다. 한때 ‘청년 정치’ 붐에 힘입어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현 개혁신당 대표), 민주당 박지현 전 비대위원장 등 30대 정치인이 중요 직을 맡았으나 당내 기득권 세력에 막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이 대통령이 민주당 당 대표이던 2020년대에는 ‘팬덤 정치’와 ‘제왕적 구조’를 비판하던 비명(비 이재명)계가 있었다. 현직이던 김종민·조응천·윤영찬·이원욱 등이 이 대표의 사퇴를 요구하며 ‘원칙과 상식’이라는 정치 모임을 만들었고 윤 전 의원을 제외한 3인은 미래대연합을 창당했으나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21대 국회에서 소장파로 분류된 민주당 이탄희 전 의원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유지·위성정당 방지법 도입’을 꾸준히 주장했지만 현실 정치에 회의감을 느낀 후 지난 22대 총선을 앞두고 불출마를 선언했다. 이 전 의원은 “선거법만 지켜달라. 퇴행만은 안 된다. 한번 퇴행하면 양당이 선거법을 재개정할 리가 없고, 한 정당이 개정하려고 해도 상대 정당이 반대할 것”이라고 밝힌 뒤 정치권을 떠났다. 마찬가지로 21대 의원이자 미래학자 출신인 홍성국 전 의원 역시 “우리에게 주어진 대전환의 골든타임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지난 4년간 우리 사회는 한 발짝도 미래로 나아가지 못했다”며 ‘후진적인 정치 구조’를 비판했다. 홍 전 의원은 “이 같은 현실을 바꿔보려고 노력했으나 무위에 그쳤다”며 출마 기회를 내려놨다. 12·3 내란 사태 이후 조기 대선으로 정권을 탈환한 민주당은 윤석열 부부를 비롯한 ‘내란 세력 청산’에 화력을 집중시켰고 강성인 정청래 지도부가 출범하면서 소장파가 탄생하기는커녕, 소신 발언조차 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됐다. 지금 민주당은 이견을 제시하는 개혁가보다는 내란 정당과 맞서기 위한 공격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유튜브 팬덤 공천과 정치 이 같은 분위기를 주도한 데에는 정치와 뉴미디어의 결합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커져 버린 미디어의 영향력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민주당은 당원 중심 정당이다. 팬덤 정치, 당원 중심 같은 민주당 특성을 나쁘다고 할 수 없지만 흑백논리에 빠지기 쉽다. 조금만 반대되는 의견을 내비쳐도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싹을 잘라버릴 듯 공격해대니 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정 지지층은 단순히 팬덤을 넘어 의제 설정이 가능한 집단이 됐고, 이로 인해 지도부를 향해 쉽게 쓴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가 됐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민주당은 이재명-정청래 지도부를 거치면서 당원 중심 정당으로 거듭났다. 당원의 권력은 자연스럽게 강화됐다.이들은 의원을 감시하는 역할을 자처하며 온라인 공간에 모였고 이곳에서 촉발된 이슈는 레거시 미디어보다 빠르게 여론을 형성하는 데 이르렀다. 무심코 내뱉은 말 한마디가 4년 뒤의 정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심리가 여의도 바닥에 깔린 것이다. 소장파로 불리는 세력이 쪼그라든 배경에는 ‘기승전 공천’이 되어버린 정치 생태계가 원인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정치권 관계자는 “배지를 단 사람들은 재선이 목표다. 여야를 떠나서 현실적으로 봤을 때 지금은 공천이 정치권을 완전히 장악해 다른 목소리를 내면 죽는 지경이 됐다”며 “외국을 보면 정치인이 정치판을 떠나더라도 다른 직업을 구하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한국은 배지가 떨어지면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다들 목숨을 걸고 공천을 사수하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민주당 초선들은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 이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의원들이 어떻게 잘려 나가는지 두 눈으로 지켜봤다. 민주당 지지층이 밀집한 온라인 커뮤니티를 비롯한 이 대통령 팬카페에서는 ‘수박 명단’ ‘공천 살생부’가 돌았고 비명계 의원들은 시스템 공천으로 인한 ‘공천 학살’을 주장했지만 이 대표는 “친명, 반명을 나누는 것은 갈라치기”라고 일축했다. 소장파와 ‘자기 정치를 하기 위한 세력’이 불분명하게 뒤섞이면서 ‘수박(겉은 파란 민주당, 속은 빨간 국민의힘)’으로 뭉뚱그려 도마 위로 던져졌다. 소신 선배들 결말 “춥거나 외롭거나” 지선 앞두고 더욱 단단해질 단일대오 결국 총선을 앞두고 이낙연계 등 비명계 인사를 중심으로 탈당 러시가 이어졌다. 이들은 민주당을 떠나 새로운 둥지를 꾸렸지만 대부분 원내 진입에 실패해 배지를 내려놓고 야인이 됐다. 수박, 혹은 배신자 프레임은 한번 씌워지면 벗겨내기 힘들다. “특히 이재명정부에서는 한번 수박으로 낙인이 찍히면 어떤 직책을 맡기도 전부터 ‘나 수박 아니오’라고 해명하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나온다. 친명 좌장으로 불리는 정성호 법무부 장관조차도 수박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정 법무부 장관이 “검찰개혁에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취지로 말하자, 강성 지지층이 크게 반발한 것이다.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22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 선출 투표에서 추미애 의원이 아닌 우원식 의원이 당선되자 그를 ‘왕수박’이라고 부르던 때도 있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치 세력이든 언론이든 시민 사회든, 강한 목소리로 특정인을 지지하는 집단이 오래 권력을 잡으면 100% 고이고 썩을 수밖에 없다. 정치의 모순점이 생겨날 여지는 지금도 충분하다. 이를 지적하기 위한 비판의 목소리가 작게나마 들리고 있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만큼 당내는 물론 당 밖에서도 쓴소리가 나오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정치권에 오래 몸담은 한 관계자는 “당이 국민 여론과 동떨어진 방향으로 간다면 이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어야 하는데 다 똑같은 이야기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나오는 문제 제기를 이해하고 수용해야 (민주당이) 다음에도 집권할 수 있다. 기득권과 기득권의 싸움을 국민이, 특히 중도층이 어떻게 바라보겠느냐”며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백왕순 모자이크민주주의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민주주의가 확장되기는커녕 후퇴와 축소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비대한 권력 쪼개기가 답 백 대표는 “대의민주주의와 직접 민주주의가 혼재되고 당원이 중심이 되면서 정치판에 변화가 생겼다. 다양성이 사라지면 독재로 갈 수밖에 없고, 과도기인 만큼 힘의 논리에 의해 의제가 쏠린다”며 “현 상황만 놓고 본다면 소장파가 나올 수 없는 구조다.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개헌과 선거법, 정당법 개정을 통해 분권형 대통령제를 실현해 다당제 구조를 만들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본다. 소장파는 끝났다. ‘소장파다, 아니다’의 문제를 넘어 진영별로 나눠지고 있기 때문에 다당제를 도입해 소장파 역할을 대체할 새로운 정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다를 바 없는 국민의힘 ‘한때’ 소장파의 말로 소장파가 사라지는 현상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탄핵 정국 당시 국민의힘 김재섭·김상욱·김소희·김예지·우재준 의원 등이 보수 소장파로 주목을 받았다. 이들은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직후 국회 소통관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과 여당이 어떤 명분을 가지고 온다 하더라도 비상계엄을 합리화하지 못한다”며 탄핵을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기 대선이 끝나자 이들의 목소리는 시들해졌다. 새롭게 뭉치지 못한 채 뿔뿔이 흩어졌고 김상욱 의원은 탈당 후 민주당으로 이적했다. 최근에는 국민의힘 김용태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김재섭 의원 등이 새로운 소장파로 떠올랐지만 역시나 기득권에 묻혔다. 이들은 지도부를 향해 “전한길씨를 제명하라” 등의 요구를 했지만 친윤(친 윤석열) 세력에 가로막혀 당으로부터 힘을 받지 못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