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181일째’ 제주항공 참사, 진상규명은 안갯속

유가족 “항철위 진실 은폐” 비판
“규정대로 해 문제 없다” 국토부
전문가 “블랙박스 문제 흔치 않아”

[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이후 약 6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배상은 물론,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25일, 참다 못한 유가족들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진상을 밝혀 달라고 호소에 나섰다.

이날 12·29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협의회(이하 유가족협의회) 김유진 대표는 광주광역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간담회를 열고 “저희 같이 고통에 사는 국민이 없도록 사고에 대한 진상규명을 명명백백히 밝혀주시고, 책임자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해달라”며 이 대통령과 면담도 요청했다.

김 대표는 “오늘은 참사로 179명의 소중한 가족을 잃은 지 179일째 되는 날이다. 다시는 이런 참사로 가족을 잃는 사람이 없도록, 저희처럼 고통에 사는 국민이 없도록 관심을 부탁한다”고 호소했다. 이어 “그동안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무안공항 쉘터(임시 텐트) 찬 바닥에서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유가족들이 있다”고 한탄했다.

그는 “재발 방지법 등이 제정되도록 대통령이 약속한 만큼 항공 안전 공약 이행과 더불어 특별법 시행령의 ‘치유 휴직’을 근로자뿐만 아니라 공무원이나 자영업 하는 유가족도 해당되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4월, 국회는 ‘12·29 여객기 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피해자에 대한 생활·의료 지원금, 치유 휴직을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 피해자를 비롯해 사고 수습이나 취재 등에 참여한 사람들도 심리상담 등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공원 조성 및 기념관 건립 등 추모사업 관련 내용도 포함돼있다.

이 대통령은 “진상규명은 수사·조사 기관에서 하고 있으니 기다려 보라. 당장 제가 나선다고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면서 “피해자가 근로자나 공무원이냐에 따라 차등이 있다는 건 무엇이냐?”고 되물었다.


김 대표는 “법적으로 근로자만 치유 휴직이 된다. 공무원은 자기들의 병가를 써야 하고 자영업자는 전혀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 못하다”며 “(법 제정) 당시 유가족들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러자 이 대통령은 “특별법 시행령은 제가 결재할 당시엔 (국토교통부에서) 유가족들과 충분히 협의했다고 들었다”며 “국토부와 다시 이야기해서 대화하고, (대통령 면담 건은) 부족하면 그때 가서 또 이야기하겠다”고 말한 후, 국토부에 유가족과의 면담 일정을 잡으라고 즉각 지시했다.

일각에선 정부 조사가 장기화되는 과정에서 진실이 묻혀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남경찰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수사본부는 참사 발생 6개월 후인 지난 21일, 국토부 공무원과 한국공항공사 직원, 로컬라이저 시공업체 관계자 등 15명을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로 형사 입건했다. 이는 지난 2022년 10월 발생한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이 용산소방서장 등 관련자들을 9일 만에 입건해 수사한 것과 대비된다.

진상규명 과정에서 유가족에게조차 정보가 제한되는 등 절차적 투명성이 문제가 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유가족협의회는 무안국제공항 2층에서 공식 출범식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이하 항철위)는 공정한 진상규명을 위해 국토부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고, 유가족에게 엔진 손상 부위와 블랙박스 기록 등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이 같은 요구는 항철위가 국토부 산하 한국공항공사의 감독을 받는 데 대한 ‘셀프 조사’를 우려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국토부는 여객기 폭발의 주요 원인인 둔덕(로컬라이저 지지대) 관련 안전시설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기관으로, 그 산하인 항철위는 비행·음성기록장치(FDR·CVR, 통칭 블랙박스) 데이터 등을 유가족들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다.


이들은 “지난 13일 발생한 에어인디아 787-8 드림라이너 추락사고에 대해 인도 정부는 참사 3개월 안에 (블랙박스를 포함한) 사고 원인 보고서를 발표하겠다고 밝혔다”며 “반면 항철위는 셀프 조사라는 오명을 받으며 지금까지도 유가족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인도네시아와 에티오피아도 예비보고서에 공개하는 데이터를 (항철위가) 공개하지 않는 것은 진실을 은폐하는 것”이라며 “대형 참사로 희생된 179명의 죽음을 규명함으로써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 대책이 실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가족협의회는 지난 10일 ‘대통령에게 드리는 편지’에서도 “항철위의 조사 결과만 믿고 기다릴 수 없다”며 “20년 전 콘크리트 둔덕 보완 요구는 묵살됐고, 철새 도래지에 만들어진 공항에서 새를 쫓는 관리자는 단 한 명 뿐이었다”고 작심 비판한 바 있다.

비록 유가족들의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지만, 그간 항철위의 조사 활동에서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참사 이틀 만에 구성된 항철위는 다음날 CVR 일부 데이터를 추출해 교신 내용을 공개했고, 한 달여 만에 조류 충돌 가능성과 사고기 항로 분석 등이 포함된 예비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참사 98일 만인 지난 4월5일엔 사고기와 관제탑 간 4분7초 분량의 교신 녹취록을 유가족 일부에게 공개하며 조사되고 있는 상황을 알리기도 했으나, 이는 공개 하루 전 공지한 점에서 유가족들의 참여권을 보장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경찰 역시 사고 직후인 지난 1월2일 관계 기관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전남경찰청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수사본부는 이날 무안공항, 부산 지방항공청 무안출장소, 제주항공 서울사무소 등 3곳에 수사관 30여명을 보내 압수수색을 벌였다.

이날 압수수색은 사고 원인 규명과 형사상 책임 여부(업무상과실치사상)를 확인하는 데 필요한 증거물 확보 차원에서 진행됐다.

당시 전남경찰청은 “사고 당시 관제 음성파일 등 1000여점을 압수했고, 제주항공 대표 등 50여명을 참고인 조사했다”며 “향후 국과수 등과 합동 정밀 조사를 거쳐 혐의가 인정되면 형사 입건 등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경찰은 사고기가 충돌한 2m 높이의 콘크리트 둔덕에 초점을 맞췄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따르면 항공기 착륙을 돕는 로컬라이저의 지지 구조물은 안전성과 충돌 시 피해 최소화를 중심으로 설계돼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는데, 경찰은 이를 근거로 무안공항에 설치된 둔덕이 왜 그렇게 단단한 재료로 지어져야 했는지 조사했다.

다만 이 같은 노력에도 여객기 참사와 관련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은 오리무중이다. 사고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 콘크리트 둔덕에 대해 국토부는 “규정을 준수해 설치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고, 항철위는 사고 직전 4분이 빠진 음성 블랙박스 기록 및 관제소 교신록 등 일부 자료만 공개해 되려 의혹이 증폭되고 있는 탓이다.

지난 1월11일, 국토부에선 “사고기의 블랙박스가 사고 발생 4분 전부터 녹화를 중단했다”며 백업을 포함한 모든 전원이 차단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필 이날 참사에서 전원 차단이 발생했다는 점은 의혹에 꼬리를 묻기에 충분했다.

당시 권보헌 극동대 항공안전관리학과 교수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항공기 블랙박스는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그 강도도 굉장히 강하다. 대략 3400G인데, 이는 중력가속도의 3400배를 견딜 수 있고 1100도에서 1시간을 견디는 수준”이라며 “(제가) 많은 사고 사례를 연구했지만 블랙박스가 작동하지 않아 기록이 안 된 경우는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해 12월29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에서 승객 175명, 승무원 6명을 태운 제주항공 7C2216편 여객기가 착륙을 시도하던 중 활주로 끝 둔덕을 들이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항철위에 따르면 사고기는 착륙 도중 조류 충돌로 엔진이 고장난 것을 확인한 후, 복행(go-around)해 반대편 활주로로 착륙을 시도했다. 이때 랜딩기어가 전개되지 않아 비상 동체 착륙 상태로 진입했으나 활주로 바깥 철근 콘크리트 소재의 둔덕을 들이받고 폭발했다.

이날 사고로 비행기 꼬리 칸에 탑승했던 승무원 2명을 제외한 전원이 사망했으며, 지난 1997년 229명이 숨진 대한항공 801편 사고 이후 국내 최대 항공 사고로 기록됐다.

<kj4579@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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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