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딥페이크 뒷북 발의 책임론

형량만 늘리면 끝?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불법적인 행동을 대놓고 저지른다. 걸리더도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일이 허다한 탓이다. 이런 인식으로 남의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는다. 협박은 기본이고, 신상 유출은 덤이다. 피해자만 피눈물 흘리는 게 전부다. 

최근 여성 얼굴에 음란물을 합성해 영상, 사진을 제작 및 유포하는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가 연속적으로 발생했다. 피해자는 10대 학생부터 군인, 공무원, 교사, 기자 등 범위를 가리지 않고 속출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 무렵 대학가를 중심으로 합성물을 유포하는 범죄가 생겨났고, 수법은 더 악랄하고 조악한 형태로 진화 중이다. 

처벌 공백

문제의 한가운데는 ‘텔레그램’ 메신저가 있다. 더 은밀하고, 폐쇄적으로 운영되면서 가해자 추적이 어렵다. 수사 진행도 더딘 데다 지금 이 순간에도 피해자가 늘고 있다. 

딥페이크 성범죄 피해자는 현재 전국적으로 수천명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된다. 비교적 짧은 시간 신고를 받은 건까지 합치면 피해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6년 동안 11배나 급증한 수치다. 경찰서도 본격적으로 사건을 들여다보고 있다.

딥페이크 음란물을 자동으로 생성해내는 텔레그램 프로그램을 내사 중이다. 텔레그램 속 딥페이크 음란물 채널 가입자 수는 국내와 해외를 포함해 22만7000여명으로 추산된다. 

접근 방식도 쉽다. 엑스(구 트위터) 등 SNS서 특정 단어를 검색하면 나오는 주소를 클릭하면 된다. 또 다이아 이모지를 결제해 6화폐처럼 사용하며, 저렴한 가격에 사진을 만들 수 있다.

직접 충전하거나 지인에게 공유한 뒤 다이아를 모아 저렴한 가격에 합성 사진을 간단하게 만들어내는 구조다. 초유의 사태에 국회와 정부도 바짝 긴장 중이다. 대책을 내놓고는 있지만 처벌 수위를 높이는 데 지나지 않는다. 정부여당인 국민의힘은 딥페이크 성범죄 처벌 수위를 기존 5년서 7년으로 높이는 방안을 채택했다. 

윤석열정부 자체적으로는 ▲텔레그램과의 협의 강화 ▲불법 정보에 대한 자율 규제를 위한 상시 핫라인 구축이라는 대책을 내놨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역시 법적으로 처벌 수위를 더욱 높이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국회 차원에서는 인공지능(AI) 기본법 제정해 입법 공백을 해소하겠다고 예고했다.

AI 기술은 지금도 끊임없이 진보 중이지만 입법이 현실에 미치지 못한다. 아예 기본법이 없어 발전 방향이나, 윤리적인 원칙이 세워지지 않았다. 딥페이크 성범죄는 여러 차례 문제가 돼 왔다.

10대들도…범위 가리지 않고 피해
은밀하고 폐쇄적으로…추적 어려워

현재 유일한 처벌 규정인 성폭력 처벌법 14조 2항은 특정인의 얼굴·신체·음성을 대상으로 한 영상물 등을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형태로 편집·합성·가공하는 경우 5년 이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제작 자체만으로도 처벌은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가해자를 특정하기 어렵고, 처벌 규정을 바로 적용하기 어렵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진다. 또 성착취물에는 아직까지 딥페이크가 포함돼있지 않아 법조계에서는 이를 포함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정치권서 처벌 수위를 높인다고 해도 여전히 입법 공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이 마련돼있지만 제대로 적용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딥페이크 성범죄가 적용되려면 반포, 영리적 목적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시청, 소지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도 직접 명시하지 않고 있다. 

서울대 출신 가해자가 동문의 사진을 불법 합성해 유포한 사건 피해자 변호를 맡았던 법무법인 이채의·조윤희 변호사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딥페이크 성범죄는 카메라 등을 이용한 불법 촬영죄보다 형량이 낮게 설정돼있고, 실제로 양형이 선고된 것을 보면 거의 집행유예”라며 “애초에 재판도 가지 못하는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범죄가 자행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반포(유포) 목적 요건을 삭제하고 행위에 있어 소지와 저장, 시청도 처벌 범위에 포함시키면 처벌 공백이 없어지는 방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플랫폼이나 정보통신망법상의 서비스 제공자에 대해서도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범죄가 자행돼 재판 자체를 가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지금도 가해자들 사이에서는 처벌되지 않는 범죄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런 부분을 방지하기 위해 조금 더 치밀하고, 제작 자체가 중범죄로 못을 박을 수 있는 법이 필요해 보인다. 

법안 디테일 마련해 처벌 공백 채워야
심각한 범죄 인지 부족 본질 놓고 봐야

영국의 경우 공유나 유포와 상관없이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자 알아서 딥페이크 포르노 사이트의 접속이 줄었다. 미국은 피해자에 초점을 맞춘 법안이 마련됐다. 민사 구제책인 ‘디피언스법’이다. 딥페이크 음란물을 제작, 소지하거나 알면서도 수신한 사람을 대상으로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게 가능한 법안이다.

수사가 어려운 이유에는 텔레그램의 특성도 포함돼있다. 텔레그램은 개인정보 유출을 이유로 경찰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온라인 플랫폼 회사로 유명하다.

국내 회사나 업체는 국내법을 적용받는 만큼 강제 수사를 위한 영장을 받아 수사 협조가 용이하다. 하지만, 해외 플랫폼은 영장을 받더라도 직접 강제력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 수사 협조를 받아 이용자 정보를 회신받아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국회 방송통신위원회 소속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은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정부서(텔레그램과) 핫라인을 구축하겠다고 하는데 이미 몇몇 국가서 시도한 방법이다. 우선적으로 텔레그램을 차단하겠다는 말이 나와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진지한 고려가 없는 듯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 의원은 “지금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 텔레그램의 국내 사용자는 300만명 정도인데, 시장을 지키기 위해 능동적으로 반응할지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텔레그램 서버는 해외에 있다. 지지부진한 수사에 피해자는 오늘도 마음을 졸이며 기다리는 게 유일한 방법이다. 아직까지는 해외 서비스 제공자를 어떻게 규율할지에 관한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앞으로 논의할 부분은 입법 공백의 해소다.

단순히 처벌 형량을 올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피해자 지원은 당연한 일이다. 오랜 기간 성범죄는 수치심을 유발해야 한다는 부분을 전제하고 있었다. 이런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인지 부족

딥페이크 성범죄와 관련해 조 변호사는 “분명한 성적인 침해와 폭력이다. 이런 부분에 대한 인지가 여전히 부족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며 “범죄가 일어나는 방식을 보면 자기 주변 여성의 신상정보를 유포하며 인격적으로 짓밟는 경우가 많은데, 분명한 범죄다. 본질을 놓고 심각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ckcjfdo@ilyo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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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