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 연대’ 조주빈과 공범들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3.30 14:31:49
  • 호수 12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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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 잡아 성노예처럼…주도면밀 짬짜미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적잖은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른바 N번방은 메신저 프로그램 텔레그램에 비밀 대화방을 개설해 성 착취 영상을 불법으로 제작한 뒤 돈을 받고 배포한 성범죄 사건이다.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이 지난 25일, 결국 포토라인에 섰다. <일요시사>는 조주빈을 비롯한 관련 인물들을 추려봤다.
 

N번방 사건으로 온 나라가 또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이 사건은 텔레그램에 비밀 대화방을 만들고 미성년자 및 여성의 성 착취 영상을 제작·유포한 사건이다. 주범 조주빈의 신상이 공개됐다. 조주빈과 공범들에 대해 파헤쳐봤다.

박사 조주빈

조주빈은 주로 불법 사이트를 통해 고액 알바를 미끼로 여성들에게 접근했다. 신상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면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커뮤니티도 마다하지 않았다. 실제 박사방 피해자 가운데에는 한 가수의 팬클럽 커뮤니티 회원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약점이 될 만한 개인정보를 모은 뒤 “내가 너의 정보를 알고 있으니 시키는 대로 하라”는 식이었다. 처음에는 얼굴 사진, 춤 동영상 등으로 시작했다. 이렇게 모은 영상은 피해자들의 또 다른 약점이 됐고 수위는 점차 높아졌다. 가해자들은 “이것만 하면 탈출시켜 주겠다”고 약속하며 피해자들의 절박함을 이용했다. 익히 알려진 가학적인 영상들은 이 과정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창시자 갓갓


메신저 프로그램인 텔레그램 대화방서 성 착취물을 제작 유포한 시초격인 N번방은 ‘갓갓’이란 닉네임을 쓰는 인물이 지난해 2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했다. 당시 이런 대화방을 1∼8번까지 만들었다고 해서 N번방이라고 불렀다. 피해자는 주로 미성년자였으며, 피해자들을 ‘노예’라고 지칭하면서 음란물을 촬영하도록 협박했다. 

범죄 대상을 찾는 주 활동 범위는 트위터였다. 주 범행 대상은 트위터에서 자신의 신체 일부 사진을 올리는 미성년자들로 이들의 계정을 해킹해 개인정보를 수집한 뒤 부모에게 사실을 알리겠다며 협박하는 방식이었다.    

갓갓은 지난해 2월 N번방 권한을 모두 ‘와치맨’에게 넘기고 텔레그램을 탈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선 갓갓을 검거하지 못한 상태서 조주빈을 검거한 사례가 국민적 관심을 받으면서 경찰 수사에 난항이 있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상당한 지능범으로 알려진 갓갓이 좁혀지는 경찰 수사망을 피하려고 각종 증거 인멸에 나설 수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갓갓과 관련한 수사 상황 공개를 꺼리는 배경 중 하나다.

피해자 절박한 이용 협박
“부모에게 알리겠다” 엄포

이들 운영자 가운데 현재 갓갓만 유일하게 경찰에 붙잡히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해 말부터 여러 지방경찰청이 관련 수사를 진행하면서 지난 16일 조주빈이 경찰에 체포되기까지 수사가 꽤 진행된 반면 갓갓의 행방은 오리무중이다. 10대 후반 내지는 2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갓갓은 현재 경북지방경찰청이 추적 중이다.

갓갓이 체포됐다는 얘기도 있지만, 최근에는 그가 복귀했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와치맨에 따르면 갓갓은 고등학생이라고 했다. 갓갓의 복귀를 말하는 이들은 그가 지난해 수능을 치르고 텔레그램에 복귀해 N번방을 다시 운영한다고 했지만 현재까진 확인되지 않은 낭설이다.

설계자 와치맨


갓갓이 놀 수 있도록 판을 깔았던 인물은 와치맨 전모(38·회사원)씨로 밝혀졌다. 전씨는 그간 N번방의 창시자 갓갓으로부터 텔레그램 비밀방을 승계해 운영한 인물이자, 박사방을 운영한 조주빈보다 이 바닥서 먼저 이름을 떨친 인물 정도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경찰의 시각은 달랐다.

경찰 관계자는 <노컷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와치맨은 단순히 갓갓의 하수인 내지는 매니저로 볼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라며 “와치맨은 텔레그램 성 착취 영상에 많은 이들이 접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인물이다.(순서로 따지자면)와치맨이 먼저고, 갓갓은 그 다음”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인터넷 사이트 중심으로 이뤄졌던 불법 성 착취 영상의 유통 체계를 텔레그램이라는 수면 밑 세계로 끌어내린 일종의 설계자라는 것이다.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던 전씨는 지난해 9월 경찰에 구속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전씨는 지난해 10월 재판에 넘겨졌는데, 이달 중순 검찰이 구형할 때까지 5개월 동안 10번 넘게 반성문을 작성해 그 의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과거 인터넷 사이트나 웹하드를 중심으로 유통되던 각종 성 착취 영상들은 경찰 단속을 피해 트위터 등 SNS로 옮겨갔다가, 더 은밀한 공간인 텔레그램으로 스며들었다. 텔레그램 비밀방은 특성상 ‘아는 사람’만 입장이 가능한데, 이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활성화를 시킨 것이 바로 전씨라는 설명이다.

전씨의 첫 번째 범행은 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씨는 지난 2016년 8월29일부터 2017년 5월18일까지 트위터 계정에 여성의 노출 사진을 167장 올렸다.

집행유예 기간에도 음란물 공유
유사한 수법 이용해 동영상 제작

이에 그치지 않고 각 가정에 설치된 IP 카메라로 여성을 훔쳐보기도 했다. IP 카메라를 설치할 때 초기값으로 지정된 관리자 페이지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사람들이 바꾸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한 범죄였다. 전씨는 2017년 4월부터 6월까지 IP 카메라 관리자 페이지에 78번 접속해 여성들을 훔쳐봤고, 340번 접속을 시도해 실패하기도 했다.

결국 전씨는 이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2018년 6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 사회봉사 200시간 명령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여성의 사생활을 침해하고 여성의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게 죄질이 나쁘다면서도, 범행으로 성관계 장면이나 노출이 심한 사진을 확보했다는 증거는 없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전씨는 1심이 그대로 확정돼 2021년까지가 집행유예 기간이었지만 범행을 멈추지 않았다. 

경찰 등에 따르면 전씨는 지난해 4월부터 6개월 동안 인터넷에 음란사이트를 만들어 성 착취 영상 등과 경찰의 음란물 단속을 피하는 법, 경찰의 단속 동향 등을 올린 혐의로 기소됐다. 같은 기간 텔레그램에서는 ‘고담방’ 등 대화방 4개를 만들어 여성 나체 사진과 동영상 1만1297건을 전시한 혐의도 받고 있다.

전씨는 음란사이트 운영 혐의로 지난해 9월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 체포돼 구속됐다. 이 혐의가 지난해 10월 먼저 기소됐고, 텔레그램 N번방 운영 혐의는 강원지방경찰청서 수사해 올해 2월 추가 기소했다. 


후계자 켈리

지난 25일 강원지방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갓갓으로부터 N번방을 물려받아 음란물을 재판매해 2500만원 상당의 이익을 챙긴 텔레그램 N번방 운영자 ‘켈리’인 신모(32)씨를 구속했다. 신모씨는 2018년 1월부터 그해 8월 말까지 경기 오산시 자신의 집에서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 9만1890여개를 저장해 이 가운데 2590여개를 판 혐의를 받았다.

신씨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음란물 제작·배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또 4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등에 각 3년간의 취업 제한 명령을 받았다. 
 

법원은 신씨가 음란물 판매로 얻은 이익금 2397만원도 추징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아동·청소년이 등장하는 음란물을 대량으로 소지하고, 수사기관 추적이 어려운 텔레그램을 통해 유통한 행위는 죄질이 중하다. 하지만 진지하게 반성하고 있고, 수사에 적극 협조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신씨가 최근 비판을 받는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의 시초인 N번방을 운영한 핵심 인물이었다는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 그는 당시 켈리라는 닉네임으로 N번방을 운영했다.

그동안 갓갓으로부터 N번방을 물려받은 운영자는 와치맨(전모씨)으로 알려졌으나, 이는 잘못된 사실이고 신씨가 N번방을 물려받았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특히 신모씨는 이전에도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범죄로 징역형의 집행유예 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는 사실도 추가로 확인돼 처벌 수위를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로리대장태범

강원지방경찰청은 갓갓과 유사한 ‘제2의 N번방’을 운영한 일당 5명을 붙잡아 10대 후반의 주범 등 4명을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아동성 착취 영상물 제작·유통)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고 지난 24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10대 후반인 주범의 닉네임은 ‘로리대장태범’으로 아동 성 착취 동영상 76편을 제작, 이 중 일부 음란물을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피해자는 모두 여중생 3명으로, 피싱 사이트를 이용해 피해자들을 유인한 뒤 성 착취 영상을 찍은 뒤 협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로리대장태범이 갓갓의 N번방을 모방해 조주빈과 유사한 수법의 범행을 했다고 밝혔다.

조사결과 로리대장태범은 지난해 11월 갓갓이 잠적한 이후 N번방과 유사한 제2의 N번방을 만들어 운영하기로 하는 등 프로젝트 N이라는 명칭으로 범행을 모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들의 성 착취 동영상 제작과 음란물 유포는 지난해 11월 경찰에 덜미가 잡히면서 중단됐다.
 

성 착취 동영상을 제작 및 유포한 혐의 등으로 구속된 조주빈의 공범 의혹을 받는 현직 공무원은 경남 거제시청 소속 공무원 A(30)씨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25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한 A씨는 2016년 1월 임용된 거제시청 8급 공무원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이날 공판 준비 절차를 마무리하고 다음 달부터 A씨 재판을 시작할 예정이다. A씨는 이번 사건과는 별개로 지난 1월 미성년자를 포함해 여성 여러 명을 상대로 성 착취 영상을 제작, 유포한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조사 결과 A씨는 애초 조주빈에게 돈을 주고 동영상을 받아보는 유료 회원으로 활동하다가 이후 회원 모집책 역할을 맡은 것으로 드러났다.

A씨와 함께 근무했던 거제시의 다른 공무원들은 “구속된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큰 사건에 연루됐는지 몰랐다”며 “평소 말도 없고 내성적이어서 무던하게 일을 했는데 이런 사건에 연루됐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조력자 공무원

지난 25일 거제시와 서울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 1월10일경 A씨가 서울에 경찰조사를 받으러 간 뒤 출근을 하지 않았다. 이틀 뒤쯤 거제시 관계자가 A씨 부모에게 전화한 뒤 구속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거제시는 서울경찰청으로부터 A씨가 형사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된 사실을 통보 받고 직위해제했다. 

거제시 관계자는 “11월 초에 서울서 형사 2명이 내려왔고, 며칠 뒤 A씨가 경찰에 출석했지만 구속되지 않고 다시 출근해 1월에 다시 경찰조사를 받으러 갔을 때도 우리는 큰 사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당시 감사실서 A씨와 관련한 경찰 문서를 보니 ‘동영상 관련’이라고 적혀 있어서 불법 동영상을 유포한 것 정도로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거제시는 재판을 통해 A씨의 유죄가 확정되면 파면이나 해임 등의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잡초 같은’ 음란물 성지 계보 
소라넷, AV스눕, 빨간방…

과거에도 N번방과 음란물 관련 범죄는 존재했다.

소라넷은 몰카, 보복성 불법 촬영물, 집단 성관계 영상 등 불법음란물을 공유하던 국내 최대 음란물 사이트였다. 1999년 개설된 이 사이트는 해외에 서버를 두고 국내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했다.

회원 수만 100만여명. 2016년 6월6일 폐쇄되기 전까지 이곳은 17년간 음란물의 ‘성지’로 통했다. 이용자들은 익명의 불특정 다수로, 소라넷 접속을 위한 IP주소가 공지된 트위터 계정을 팔로우한 인원은 10만명이 넘었다.

소라넷이 위기를 맞자 AV스눕이 제2의 소라넷으로 급부상했다. AV와 SNOOP(염탐꾼)의 합성어를 뜻하는 이 사이트는 회원수가 121만명에 미성년자 촬영물을 포함, 게시 음란물만 46만건에 달했다.

소라넷이 사라지자 절정기를 맞았다가 결국 경찰의 적발로 2017년 폐쇄됐다.

꿀밤은 2013년 소라넷을 본떠 만든 사이트다. 소라넷 폐쇄 후 회원 수가 42만명을 기록할 정도로 규모가 컸다.

꿀밤 운영자는 회원들을 상대로 총 500만원의 상금을 내걸고 음란 사진과 동영상 공모전을 진행했다. 회원들은 자신의 아내 또는 애인 사진까지 몰래 올리면서 자발적인 참여에 나섰다.

이후 카카오톡 단톡방서 음란물을 유포하는 이른바 ‘빨간방’이 생겼다. ‘평경장’으로 불리는 남성이 주도하는 빨간방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평경장의 카카오톡 아이디에 말을 걸어 인증절차를 거쳐야 한다.

빨간방에 대해 알게 됐는지 그 경로에 대한 질문에 답해야 하고, 화면 인증을 거친 후 여성의 경우 상체를 탈의한 사진을 보내야 한다. 

이후 인증 절차가 끝난 후 평경장은 성비와 대화방 참여인원수를 고려해 빨간방 오픈채팅방 주소와 비밀번호를 보내준다. 또 입장과 동시에 갱뱅, 초대남 이벤트, 기프티콘 나눔, 프로젝트 등을 키워드 알람할 것을 지시한다. 

승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무국장은 “여가부를 비롯해 수사기관이 N번방을 신종 범죄로 칭하는 것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며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할 골든타임을 여러 번 지나치고도 책임을 피하려는 핑계”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라넷뿐 아니라 웹하드 카르텔, 다크웹, 카카오톡 ‘빨간방’ 등의 사건이 끊임없었다”며 “정부는 그때마다 디지털 성범죄를 근절하겠다고 약속했지만, N번방 등장을 막지 못했다”고 말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N번방을 신종 디지털 범죄로 규정한 것에 대해 “10년 전에는 없었던 텔레그램이라는 플랫폼에서 발생한 범죄를 지칭하는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텔레그램 플랫폼 특성상 범죄자들의 범행 은폐·도주 속도가 이전의 디지털 성범죄자들에 비해 빨라졌다”며 “이 같은 변화에 대한 대응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관계부처들이 협업하겠다”고 해명했다. <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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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