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목줄 쥔’ 성남FC 후원금 중간 체크

대장동보다 더 큰 불씨 될까?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사면초가’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전방위에서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방탄 배지를 달고 ‘개딸(개혁의 딸들)’을 앞세웠지만 급소를 향해 오는 칼은 날카롭기만 하다. 여기에 대형 선거에서 연달한 패하면서 책임론까지 불거지고 있다.

선거는 정당 지도부의 무덤이다. 이기면 더 큰 무대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얻지만 지면 정치생명까지 위협받는다. 선거에 진 후보가 ‘책임지겠다’는 말을 끝으로 국민 앞에서 모습을 감추는 것도 정치생명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해서다. 

자숙 대신
의원 출마

‘책임론’과 ‘쇄신’은 선거 패배에 흔하게 따라 붙는 표현이다.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고 정당을 새로 고쳐야 한다는 일종의 공식이다. 문제는 이 공식을 따르지 않을 때 발생한다. 국민의 마음, 이른바 표심을 얻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공식이 주는 힘이 크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대선 패배 이후 책임론과 쇄신이라는 정석을 따르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특히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의원이 지난 1일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나선 것을 두고 많은 논란이 불거졌다. 일각에서는 불체포특권이 있는 ‘방탄 배지’를 위한 출마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결과는 처참했다. 이 의원은 지방선거와 함께 치러진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돼 ‘0.5선 의원’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대선에서 진 데 이어 지방선거에서도 ‘궤멸’에 가까운 성적표를 받았다. 


17군데 광역단체장 중 5석을 건지는 데 그쳤고,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단위로 넘어가면 압도적인 패배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심지어 진보진영이 대다수를 점했던 교육감 선거에서도 그 격차가 확연히 줄었다. 대선은 5년, 지방선거는 4년 만에 공수가 바뀐 것.

이 의원은 두 번의 선거에서 중심 역할을 맡았다. 대선 때는 직접 대표 선수로 뛰었고, 지방선거 때는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 전국의 후보들을 지원했다. 이 의원은 전투(계양을 보궐선거)에서는 이기고 전쟁(지방선거)은 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방선거 직후 한 야당 의원은 ‘한 명 살고 다 죽었다’는 글을 SNS에 올려 이 의원 책임론에 불을 댕겼다. 또 결과적으로는 이겼지만 선거 과정에서 인지도가 거의 없던 국민의힘 윤형선 후보에 한때지만 여론조사에서 뒤처지는 결과가 나온 것을 두고도 말이 나왔다. 

‘이재명 책임론’은 지방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다 돼가는 현재까지도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당권 경쟁과 함께 오히려 불이 붙는 모양새다. 이미 민주당 내부에서 이 의원의 당 대표 출마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무혐의 처분 후 재수사 돌입
성남시청·성남FC 압수수색

이 의원을 둘러싼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대선 경선 과정에서부터 불거진 ‘사법 리스크’가 이 의원의 발목을 꽁꽁 옭아매고 있다. 문재인정부에서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동네북 신세를 면치 못했던 검찰이 다시 부활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

특히 한동훈 법무부 장관 취임 이후 진행된 2번의 검찰 인사에서 이른바 ‘윤석열 사단’이 크게 약진하면서 수사에 속도가 붙었다. 검찰 입장에서는 오는 9월 검수완박 법안인 검찰청법·형사소송법 일부 개정안이 시행되면 현재 6대 범죄 수사권이 2대(부패·경제)로 줄어드는 만큼 박차를 가한다는 분위기다. 


이 과정에서 ‘성남시민프로축구단(이하 성남FC) 후원금 의혹’이 뇌관으로 떠올랐다. 대선 경선 과정에서 불거진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과 함께 이 의원을 압박하고 있다. 게다가 성남FC 의혹은 사건 진행 과정에서 수사 무마 의혹까지 불거진 터라 정치권은 물론 법조계의 관심도 높다. 

성남FC 후원금 의혹은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동안 6개 기업이 성남FC에 후원한 돈의 성격을 두고 처음 제기됐다. 네이버 40억원, 두산건설 42억원, 농협 36억원, 차병원 33억원, 현대백화점 5억원, 알파돔시티 5억5000만원 등 총 161억5000만원이다. 

6개사는 ▲차병원-분당경찰서 부지 선정 ▲네이버-제2사옥(정자동) 신축 ▲농협-성남시 금고 지정 ▲두산건설-정자동 부지 선정 ▲알파돔시티-신축공사 ▲현대백화점-신축공사 등 성남FC에 돈을 후원한 후 바라던 바를 얻어냈다.

당시 성남시장은 이 의원이었다. 이 부분을 두고 6개사가 후원한 돈의 성격이 이 의원에 대한 뇌물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책임론 나와
불출마 압박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은 2018년 1월 이 의원과 민주당 제윤경 전 의원을 제3자 뇌물수수 혐의로 고발했다. 당시 김상헌 네이버 전 대표도 뇌물공여 혐의로 함께 고발됐다. 같은 해 6월에는 바른미래당 측 성남적폐진상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장영하 변호사가 이 의원을 제3자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고발했다. 

경찰은 지난해 2월부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수사에 나섰고 9월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고발이 이뤄진 지 3년여 만이다. 이후 고발인의 이의신청에 따라 사건은 성남지청으로 송치됐다. 

성남FC 의혹은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재점화됐다. 지난 1월 수원지검 성남지청 박하영 차장검사(현재 퇴직)가 돌연 사직 의사를 밝히는 과정에서 수사 무마 의혹이 제기된 것.

성남FC 사건 수사팀과 이를 지휘한 박 전 차장검사가 “직접 보완수사를 하거나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수차례에 걸쳐 냈지만 당시 성남지청장이던 박은정 지청장이 이를 부당하게 막았다는 내용이다.

파장이 계속되자 김오수 당시 검찰총장은 수원지검에 경위 파악을 지시했다. 수원지검은 성남지청에 다시 보완수사를 지시, 성남지청은 경기 분당경찰서로 사건을 내려보냈다. 강제수사에 돌입한 경찰은 지난달 성남시청, 성남FC, 두산건설 등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경찰은 지난 2일 성남시 정책기획·도시계획·건축·체육진흥·정보통신과 등 5개 부서를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후 17일에는 성남FC와 두산건설을 압수수색했다. 후원금을 받은 주체와 후원금을 낸 기업을 상대로 수사기관이 압수수색을 한 것은 처음이다. 

대선 한 달 전
다시 수면 위로


성남FC로 흘러간 후원금을 두고 다양한 의문이 제기됐다. 특히 네이버의 경우 성남FC와 직접 계약을 맺은 게 아니라 성남시-네이버-시민단체 희망살림-성남FC 등 4자간 협약을 통해 ‘우회 지원’을 진행하면서 논란을 낳았다. 당시 네이버는 희망살림에 40억원을, 희망살림은 성남FC에 39억원을 집행했다. 

당시 4자 협약식에는 이 의원, 김진희 전 네이버 I&S 대표, 민주당 제윤경 전 의원, 곽선우 성남FC 대표가 참석했다. 성남시의 한 시민단체는 4자 협약 과정에서 ‘절차적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협약서에 기재된 김상헌 네이버 전 대표 대신 김진희 전 네이버 I&S 대표가 서명하는 과정에서 위임장이 제출되지 않은 점 ▲희망살림 대표 대신 이사인 제 전 의원이 서명한 점 등에서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입장이다. 해당 단체는 4자 협약과 관련, 이 의원과 제 전 의원 등을 고발한 상태다.

또 다른 의문은 성남FC가 받은 후원금이 어떻게 사용됐느냐는 점이다. 최근 성남FC의 후원금 일부가 이 의원 측근에게 흘러갔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의원 측은 “성남FC는 사내 규정에 의해 광고를 유치한 자에게 성과 보수를 지원했다. 이는 구단경영 능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으로, 시민구단을 비롯한 대부분의 프로축구단이 차용하는 제도”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당시 성남FC 역시 규정에 따른 성과 보수를 지급했을 뿐이고, 측근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방식의 이익을 취하게 한 사실은 없다. 이런 사정으로 이른바 ‘후원금 의혹’은 이미 무혐의로 수사 종결된 바 있다”고 강조했다.

규정대로 돈을 지급했을 뿐 ‘측근 챙기기’가 아니었다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윤곽 드러나는 후원금 흐름
여 “자금 세탁 의혹 있다”

이 의원 측의 해명에도 국민의힘은 공세를 퍼부었다. 지난 22일 국민의힘은 이 의원이 성남FC 후원금을 자금 세탁 용도로 사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국민의힘 허은아 수석대변인은 “또 다시 ‘이재명 의혹’이다. 이 의원은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백현동 개발 특혜 ▲부인 김혜경씨 법인카드 사적 유용 ▲장남 불법 도박 및 성매매 ▲경기주택도시공사 합숙소 운영 등 각종 비리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연루됐다는 의혹에 휩싸여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에는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성남FC 후원금 사건에 대한 구체적인 의혹이 보도됐다”며 “2015~2017년 3년간 성과급 지급 내역을 확인해보면, 이 의원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3인이 후원금 유치 성과급의 90.6%를 챙겨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시 성남FC 규정에는 광고나 후원금을 유치해오면 임직원은 최대 10%, 공무원과 일반 시민은 최대 20%를 포상금으로 지급한다고 돼있다. 이때 공무원이 포상 대상에 포함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 사항으로 일각에서는 외부 유출, 자금 세탁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윗선’ 수사가 지지부진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로비 의혹보다 성남FC 의혹이 좀 더 빠른 결론에 이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기업에서 성남FC로 지급된 후원금의 흐름을 따라 가다보면 ‘몸통’이 드러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경찰의 창
의원의 방패

이 의원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첩첩산중’인 상황이다. 이 의원은 대선 패배 이후 자숙 대신 배지를 택했다. 여기에 당 대표 도전도 저울질하고 있다. 검찰과 경찰의 칼, 이 의원의 방패 중 어느 쪽의 힘이 더 강할지 세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수사 무마 의혹 박은정 지청장은?

박은정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이 최근 사의를 표명하고 법무부에 명예퇴직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지청장은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 재직 때 대립각을 세운 이른바 ‘친정부 검사’다.

법조계에서는 박 지청장이 성남FC 사건 수사 무마 의혹으로 입건된 상태인 만큼 명예퇴직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관측을 제기하고 있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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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