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속질주 '이재명 흔들기' 친문의 한계

대어 잡으려다 피라미 도망갈라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차기 대권을 앞두고 집안싸움을 본격화하는 분위기다. 당내 주류 '친문'과 여권 1강 '이재명 경기도지사' 구도다. 이 지사는 야권 최대주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맞수로 평가받는다. 그런 이 지사를 두고 민주당에서 대권 다툼이 벌어지는 이유는 뭘까.

차기 대통령 선거가 10개월여 안으로 다가오면서 대선 정국이 도래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재보선 참패 이후 정권 재창출을 위해 전력을 다하는 모양새다. 여권 대선주자들은 몸집을 불리면서 발언 빈도를 늘리고 있다. 조기 흥행을 위해 일찌감치 대선 출마를 선언한 이들도 있다.

차기 대선
10개월…

여권 유력 대선주자는 3명으로 압축된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 정세균 전 국무총리다. 이들의 출마 시기는 '5말6초'로 예상됐다. 하지만 당초 전망됐던 출마 시기보다 더 늦어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름 아닌 '대선 경선 연기론'이 대두돼서다.

대선 경선을 연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친문 진영 일각에서 제기된 바 있다. 공론화까지는 아니었지만, 경선 일정이 다가오면서 부상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경선 연기론은 중앙 정치로 옮겨졌다.

민주당 전재수 의원은 지난 6일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연기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 의원은 '국민의힘보다 두 달 먼저 대선 후보를 내는 점’ ‘코로나19로 지친 국민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이유로 내세웠다.


민주당은 당헌에 따라 대선 180일 전까지 후보를 선출해야 한다. 대선은 내년 3월9일로 오는 9월10일까지는 후보 결정해야 한다.

전 의원의 주장은 대선 120일 전인 11월인 것으로 풀이된다. 전 의원의 주장이 모두 11월에 걸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에서는 대선 후보를 11월에 결정하게 된다. 또 정부는 11월에 코로나19에 대한 집단면역을 목표로 두고 있다.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는 원론적 입장을 내세웠다. 반면 이 지사 측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지난 7일 "우리 당 두 분 선배 의원께서 내년 대통령 후보 경선 연기를 주장한다"며 운을 뗐다. 앞서 대선주자로 꼽히는 민주당 김두관 의원 역시 경선 연기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민 의원은 전 의원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경선 연기 들고 나온 친문계
이 측 즉각 반발 "원칙대로"

야당 경선 시기에 대해선 '두 달 앞서 시민의 마음을 얻는 작업'이라고 밝혔다. 국민들의 코로나19 피로감에 대해서는 '민주당 경선은 시끄러운 싸움판이 아닌 미래 비전을 놓고 경합하는 성장 과정'이라고 반박했다. 민 의원의 발언은 이재명계의 첫 공개 발언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이 지사 측 입장에서는 예정된 일정에 따라 경선을 치르는 것이 유리하다. 이 지사는 차기 여권 대선 주자 가운데 1강을 유지하고 있다. 2위와의 격차는 더블스코어 이상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큰 변화는 없었다. 현재 지지율로만 살펴봤을 때, 이 지사는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막강한 경쟁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계 좌장 격인 민주당 정성호 의원도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정 의원은 지난 7일 "명분도 없고 실리도 없다"며 대선 경선 연기론을 강하게 비판했다.

정 의원은 이날 TBN 라디오에서 "특정인을 배제하기 위한 또 다른 후보를 키우기 위한 시간 벌기"라며 "이런 프레임에 말려 들어가고 본선에서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일갈했다.

대결 구도는 '친문 대 이 지사'로 접어드는 형국이다. 대선 경선 연기론에 군불을 지핀 전 의원의 발언은 '친문 진영이 본격적으로 이재명을 끌어 내리려 한다'는 해석으로 비춰졌다. 이 지사는 비문으로 분류된다.

이 지사 스스로 '비문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지만 친문에서는 그를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중론이다. 

친문 진영에서는 친문 후보를 차기 대선 주자로 내세워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이유가 뭘까.

노의 기적
이번에도?

이들의 기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선 승리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 내에서 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은 2%에 불과했다. 당시에는 '이인제 대세론'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민주당에서 국민 참여경선을 최초로 도입하면서 기적이 발생했다. 만년 꼴찌였던 노 전 대통령은 민주당 광주 지역 경선에서 37.9%의 득표율로 승리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이인제 후보는 31.3%, 한화갑 후보는 17.9%에 그쳤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대선 경선 최종 결과를 알리는 서울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결정됐고, 16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특정 지지층의 기대에 현역 친문 의원의 공개 발언으로 민주당 집안싸움이 사실상 공식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친문이 당내 주류라 하더라도, 민주당이 대선 경선을 연기한다면 후폭풍을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한다.


우선 대선 경선 연기론이 친문 진영에서 비롯된 만큼, 현실로 다가온다면 '친문의 힘'이 확인되는 셈이다. 앞서 민주당에서는 재보선 참패 이후 '친문 일변도'를 경계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바 있다. 이후 '민심이냐 당심이냐'를 두고 민주당 내부에서도 치열한 이견이 이어졌다.

민주당 초선 5적 논란과 강성 지지층의 문자 폭탄 등이 대표적이다.

재보선 참패 이후 민주당은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고, 곧 전당대회를 개최했다. 전당대회 결과에 따라 도로 친문당이 되느냐 여부를 두고도 이목이 집중됐다.

우선 원내대표에 친문 강성 윤호중 의원이 당선됐지만, 당 대표에 비문 송영길 대표가 당선되면서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다만 송 대표가 친문 민주당 홍영표 의원에 0.59%포인트라는 근소한 격차로 승리한데다가, 최고위원에 친문 의원들이 줄줄이 당선되면서 도로 친문당에 대한 우려는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았다.

정치권 관계자는 "민심이냐 당심이냐를 두고 민주당에서 이견이 뚜렷했다"며 "친문 쪽에서 제기한 대선 경선 연기가 현실이 된다면 민심이 등을 돌릴 수 있지 않겠느냐"고 우려를 표했다.

대선 경선 연기를 위해 당헌을 들여다 봐야 한다는 점도 민주당에 부담이다. 앞서 민주당은 '박원순·오거돈 사태'에 따른 서울·부산시장 재보선에서 당헌을 수정해 박영선·박영춘 서울, 부산 시장 후보를 배출했다.


민주당은 문 대통령이 당 대표였던 시절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는 당헌을 정립한 바 있다.

하지만 민주당은 재보선을 위해 이를 수정했고, 서울·부산 시장 선거에서 모두 참패했다. 민주당은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당헌 또
건드리나

물론 대선 경선 연기를 위해서는 당헌을 수정하지 않을 수 있다. 민주당 당헌에 따르면 '상당한 사유가 있는 때에는 당무위원회의 의결로 (대선 후보 선출 시기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명시돼있다. 대선 경선 연기가 원칙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보는 이유다.

하지만 '상당한 사유'가 설득력을 얼마나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치권 관계자는 "원팀도 모자랄 판에 벌써부터 사분오열 조짐을 보인다"며 "민주당 당헌에 적시된 예외 사항을 지금의 상황에 적용시킬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여권 관계자는 "전재수 의원의 발언을 살펴볼 때, 이미 당 주류인 친문 의원들 사이에서 경선 연기를 위한 그림을 다 그려놓은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친문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대선 경선 연기론이 필요하다는 의중이 모인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경제>에 따르면 김종민 의원은 "(경선 연기와 관련해서는)당 지도부가 의원들 의견을 취합해야 할텐데, 재보궐 선거가 끝나고 나서 '이대로(현재 경선 일정대로) 가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다수를 이룬다. 선거 전과는 달라졌다"고 전했다.

여론이 달라진 이유를 두고는 "코로나19도 있고, 저 쪽(국민의힘) 일정과 맞지 않기 때문에 누가 후보가 되더라도 불리하다는 것이다. 누가 유리하고 불리하고를 떠나서 당 차원에서 바람직한 방향을 얘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의원이 인식하고 있는 당내 여론이며, 본인의 입장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 다른 민주당 중진 의원도 통화에서 "경선 연기 주장에 일리가 있다"면서 "코로나19로 국민들이 고통 받고 피로감이 쌓여 있는 상황에서 정치 일정을 치른다는 것이 적절치 않아 보인다"고 했다. 그는 "야당과 일정을 맞추는 것도 필요하며,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의원들이 많은 것으로 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당사자인 이 지사의 입장은 어떨까. 이 지사는 대선 경선 연기론에 대해 초기에는 "상식과 원칙에 따라서 하지 않겠느냐. 당이 정하면 우리가 따라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지사는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비주거용 부동산 공평과세 실현 정책 토론회에 참석한 뒤 '당내에서 경선 연기론 이야기가 계속 나온다'는 기자들의 질문에 "원칙대로 하면 제일 조용하고 합당하지 않나"라고 답했다.

사실상 대선 경선 연기론에 대해 쐐기를 박았다는 평가다.

여권 1강 흔들기? 대세론 계속?
친노·친문 이 캠프 대거 합류

하지만 이 지사 입장에서는 당 주류인 친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이 지사가 친문과 전략적으로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이 지사의 행보를 보면 이를 엿볼 수 있다.

이 지사는 지난 4일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과 경기도 모처에서 만났다. 양 전 원장의 귀국을 축하하는 자리였다고 전해진다. 양 전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평가가 다분한 인물이다. 지난 2017 대선 과정에서 이 지사는 대선 경선 출마에 대해 양 전 원장과 상의한 바 있다.

당시 양 전 원장은 이 지사에게 출마를 강하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지사는 지난 6일에는 노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찾았다. 당시 이 지사는 노 전 대통령의 사위인 곽상언 변호사와 함께 참배했다. 눈길이 가는 대목은 곽 변호사가 이 전 대표와 정 전 총리의 참배 당시에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지사가 친노·친문 쪽으로 발을 넓히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실제로 이 지사가 지난 11일 발족한 대선 캠프 '민주평화광장'을 살펴보면, 이 지사의 스펙트럼이 어느 정도 넓혀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지사의 대선캠프 민주평화광장은 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의 연구재단인 '광장'을 흡수해 재편한 단체다. 이 전 대표는 친노·친문의 좌장이자 지난 2018년 강성 친문 당원들의 '이재명 탈당'을 일축한 바 있다.

이 지사 캠프에 합류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 지사가 친노·친문 진영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민주평화광장 공동대표는 이해찬계 조정식 의원과 참여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종석 전 장관이 맡는다. 또 이 전 대표와 가까운 의원들이 대거 뛰어들었다. 이 전 대표의 측근 김성환·이해식 의원과 이해찬 대표 체제 당시 지명직 최고위원이었던 민주당 이수진(비례)·이형석 의원, 그리고 청년·대학생위원장이었던 장경태·전용기 의원이 참여했다.

노 전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도 이름을 올렸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이 지사는 여권 1위를 기록 중이다. 한길리서치가 <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8∼1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110명을 조사한 결과, 윤 전 총장과 이 지사의 양자 대결에서 윤 전 총장은 40.2%, 이 지사는 37.4%의지지 응답을 얻었다.

'지지 후보가 없다'는 응답은 18.7%, '잘 모름·무응답'은 3.8%였다.

돌고 돌아
결국 손잡나

여야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로 넓혀봤을 때도 윤 전 총장이 26.2%, 이 지사가 24.4%로 윤 전 총장이 근소하게 앞섰다. 이어 이 전 대표(13.0%),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6.8%), 무소속 홍준표 의원(6.2%), 정 전 총리(4.3%) 순이었다.
해당 여론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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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