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구멍난 메르스 방역의 책임을 물어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을 경질했다. 후임자로는 정진엽 분당서울대병원 교수가 내정됐다. 연금개편을 성공적으로 마친 연금전문 장관에 이어 의료전문 장관을 내세운 것이다. 정진엽 내정자를 내세워 ‘의료 규제 완화’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노림수가 숨어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그동안 교체 대상자로 거론돼온 보건복지부장관 교체 인사를 단행, 신임 장관에 정진엽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를 내정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이러한 인사내용을 발표했다. “의료체계 전반에 이해·식견 갖춰” 민 대변인은 “박 대통령은 오늘 보건복지부장관에 정진엽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를 내정했다”며 “정 내정자는 25년간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다양한 의료 경험을 통해 한국 의료체계 전반에 대해 깊은 이해와 높은 식견을 갖고 있어서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국민건강에 안정을 이룰 적임자”라고 밝혔다. 정 내정자는 1955년 서울 출신으로 서울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그동안 롯데그룹 경영권을 놓고 두 아들 사이 잡음이 끊이질 않았다. 창업자인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의 두 아들은 기어코 아버지를 가운데 두고 ‘형제의 난’을 벌였다. 장남은 신 총괄회장을 앞세워 경영권을 장악하려 했고, 차남은 그런 아버지를 총괄회장에서 명예회장으로 물러나게 했다. 자식들의 재산 싸움과 복잡한 가계도로 신 총괄회장의 노년은 복잡하기만 하다. 신 총괄회장은 1922년에 태어났다. 원래는 1921년생이지만 호적에 1년 늦게 올라간 것으로 전해진다. 경남 울주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울산농업보습학교를 졸업하고 경남도립 종축장에 말을 돌보는 기수보로 일했다. 단돈 38엔 들고 일본으로 건너가 신 총괄회장이 19살이 되던 1941년 돈을 벌 작정으로 단돈 83엔을 들고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갔다. 당시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로 ‘조선인’이라면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하던 시절이었다. 일본에 있는 고향친구 자취방에 얹혀살며 신문·우유 배달 등 닥치는 대로 잡일을 했다. 신 총괄회장은 이때 당시만 해도 작가를 꿈꾸는 문학도였다. 돈만 모이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에 이성호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을 내정했다. 현직 서울중앙지법원장을 내정한 데 대해 시민사회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청와대가 또다시 밀실 인선했다는 지적과 후보 자격 검증 논란이 일 전망이다. “선배 법관을 대신해 억울하게 고초를 겪은 시민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드리며 고인이 된 이씨가 하늘나라에서 평안하기를 바라며 나머지 피해자들도 평화와 행복을 찾기 바란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용공조작 사건인 ‘아람회 사건’에 대해 사건 발생일로부터 29년, 재심 청구 9년 만인 2009년에 전원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당시 판결을 내린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였던 이성호(58·12기) 국가인권위원회 내정자도 주목을 받았다. 원칙주의자 정평 다양한 사건 다뤄 이 내정자는 판결문을 통해 “법관에게는 소수자 보호라는 핵심 과제가 있어 절대권력자가 진실에 반하는 요구를 해도 소수자를 보호해야 한다”며 “극심한 불이익이 예상되더라도 진실을 밝히고 지켜내야 하는 것이 법관의 의무지만 이를 지키지 못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원유철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는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도부간의 회동에서 당청 간에 ‘찰떡같은 공조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원 원내대표의 발언에 박 대통령이 웃었다. 비박계 의원으로 그가 앞으로 청와대 입맛에 잘 맞을지 주목된다. 원유철 신임 원내대표는 1962년 9월 평택에서 태어났다. 1978년 수원 수성고등학교를 졸업했으며, 1986년 고려대학교를 졸업했다. 원 원내대표는 대학교를 졸업한 뒤 평택으로 다시 돌아온다. 원 원내대표는 어린 나이 일찍이 정치에 뜻을 뒀다. 1987년 그는 통일민주당 중앙청년위 송탄시지부장으로 활동한다. 최연소 도의원 철새정치 오명 30년 만에 지방선거가 부활한 1991년, 원 원내대표는 28세 나이로 경기도의회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발을 디뎠다. 당시 조직력이나 자금력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그의 당선은 기적에 가까웠다. 원 원내대표는 역대 최연소 도의원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그는 고향인 평택에서 풀뿌리 정치인으로 정치적 입지를 다져갔다. 원 원내대표는 1995년 3대 경기도 의원 임기를 마치고, 경기 평택시 갑으로 15대 총선에 출마를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결국 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다 반강제적으로 원내대표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지난한 주는 ‘유승민 정국’이라고 불릴 만큼 그의 소신과 존재감이 빛났다. 지고도 이겼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 의원의 손익계산서가 나쁘지 않다. “원내대표 자리를 끝내 던지지 않았던 것은 제가 지키고 싶었던 가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입니다. 저의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습니다.” 작은 것 버리고 큰 것을 취하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사퇴 회견문의 일부다. 지난 8일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확인된 의원들의 뜻을 수용하며 원내대표직을 사퇴했다. 지난 2월2일 원내대표에 선출된 지 156일,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유 의원을 향해 “배신의 정치”라고 선언한 지 13일 만이다. 유 의원은 사퇴 회견문에서도 박 대통령에게 맞서는 소신 있는 정치인의 모습을 보였다. 특히 헌법 1조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 개정안을 강력히 거부했다. 여야는 눈치만 살폈다. 대통령 앞에서 꼼짝도 못 하는 형국. 정의화 국회의장은 달랐다. 박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한 국회법 개정안을 본회의에 상정해 우선 처리하겠다고 결단했다. 대한민국 의전서열 2위의 역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청와대와 국회는 국회법 개정안 문제를 두고 헌정 사상 유례없는 충돌 사태가 벌어진 상태다. 정 의장은 박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법에 따라 재의결을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국회법 개정안과 관련해 자신의 중재안으로 위헌 소지가 완전히 없어졌다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사실상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한 것이다. 역대 국회의장과 다르게 소신을 갖고 국회의장으로서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권위 있는 국회의 목소리를 대신하고 있다. 부드럽고 강직 노련함 돋보여 지난달 30일 정의화 국회의장은 이날 발표문을 통해 “7월1일 예정된 본회의를 7월6일로 변경해 국회법 개정안 재의의 건을 우선 처리하고 인사안건 2건과 본회의에 부의 된 60건의 법안 전체를 처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개정안 재의 날짜가 잡히면서 새정치민주연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신임 법무부장관에 김현웅 서울고검장이 내정됐다. 김 내정자는 호남 출신이며, 현 검찰총장의 사법연수원 2년 후배다.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이번 인선이 '파격'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김 내정자와 박 대통령의 인연을 본다면 그도 ‘수첩인사가 아닌가’라는 말도 나온다. 지난 21일 박근혜 대통령은 신임 법무부장관에 김현웅 서울고검장(56·사법연수원 16기)을 내정했다. 민경욱 대변인은 이날 춘추관 브리핑에서 “박 대통령은 오늘 황교안 신임 총리의 제청을 받아 법무장관에 김현웅 서울고검장을 내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 내정자는 광주지검장과 부산고검장, 법무부차관 등 법무부와 검찰 내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했다”며 “법무행정과 검찰업무에 뛰어난 전문성과 식견을 갖췄고, 사회 전반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법질서를 확립하는데 적임자다”고 밝혔다. 요직 두루 거쳐 공안 이슈 처리 김 내정자는 1959년생으로 전남 고흥 출신이다. 광주제일고를 나온 그는 고등학교 시절 수제라고 불렸을 뿐만 아니라 복싱 도장을 다닐 정도로 운동능력도 뛰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윤덕여 한국 여자축구대표팀 감독의 과감한 결단이 한국의 사상 첫 월드컵 16강 진출을 일궈냈다. 지난 2012년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에 감독으로 선임된 이래로 3년 만에 그가 이룬 쾌거다. 과거 대한민국 수비수로 활약했던 윤 감독. 하지만 그를 제대로 기억하는 이는 드문 편이다. 윤덕여 감독은 1961년생이다. 서울 경신중학교와 경신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윤 감독은 한국 축구계의 대표적인 ‘대기만성형’ 선수 중 한 명이다. 일반적으로 축구 선수들이 초등학교 4학년 무렵에 축구를 시작하는 것과 달리 윤 감독은 중학교 3학년에야 정식으로 축구의 세계에 입문했다. 그는 악바리로 통하며 쉼 없는 노력으로 팀 훈련은 물론이고, 강도 높은 개인 훈련을 통해 기량 향상을 꾀했다. 수비수로 활약 주목받지 못해 이런 노력 덕분에 고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경기에 출장하기 시작했으며, 3학년까지 줄곧 주전으로 활약했다. 중3 때 축구를 시작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괄목상대한 기량 향상이다. 또 경신고 시절 대회 결승전에서 팔이 부러지는 부상에도 붕대를 감고 경기를 마칠 정도로 독종이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성균관대학교에 입학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메르스 사태 원인은 초기 대응 실패다. 안일한 정부의 대응이 사태를 키웠다. 화살은 보건복지부로 향했다. 수장인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화살이 집중포화 됐다. 그런데도 문 장관은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매뉴얼’ 탓만 했다. ‘내 탓 아니오’라고 일관하는 그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자질이 있는지 의심스럽다. 문형표 장관은 1956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고,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문 장관은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최수현 금융감독원장 등과 서울고 27회 문과 동기이기도 하다. 연세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미국 펜실베니아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수료했다. 이후 1998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 사회복지 행정관으로 일했다. 2002년에는 미국 UC버클리대학의 객원교수로 지내기도 했다. 부적절한 인사 처음부터 논란 문 장관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 이코노미스트 겸 재정·복지정책 연구부장으로 근무했다. 당시 그는 KDI에서 주로 한국의 노후소득보장체계 구축에 관한 연구와 경제 위기에 따른 분배구조의 변화와 시사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라이언킹’ 이승엽이 기어이 400홈런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한국프로야구 통산 최다홈런 신기록이다. 한국과 일본 무대 홈런을 합치면 559개다. 그가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400 고지는 일찌감치 넘었을 것이다. 이승엽이 그동안 기록한 1호 홈런부터 400호 홈런까지, 그가 남긴 발자취를 돌아본다. 이승엽(40)은 청소년 시절 투수와 타자로 모두 뛰어난 자질을 보였다. 그중에서도 좌완투수로 좀 더 이름을 알렸다. 그는 경상중학교 재학 당시 노히트노런을 기록했다. 경북고등학교 재학 시절이던 1993년 청룡기대회에서는 발군의 실력으로 맹활약하며 12년 만에 모교에 우승기를 안겼다. 그는 대회 최우수투수상을 수상했다. 1994년 청소년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승엽은 거듭 활약을 펼치며 우승기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고3 때 팔꿈치 부상을 당하면서 타자로 전향했다. 당시 부상이 오늘의 금자탑을 쌓는 결정적 계기가 된 셈이다. [ 1∼100호 ] [1995-1999년] 이승엽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에 입학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당시 수능에서 총점 40점 이하를 기록해 대학 진학 자격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혁신이 필요한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 전 경기도교육감을 혁신위원장으로 임명했다. 4·29 재보선 전패로 존망위기에 처한 당을 구할 책임을 맡긴 것이다. 문재인 대표와 최고위원회의는 김 위원장에게 당 쇄신 작업의 전권을 위임했다. ‘혁신의 대부’라고도 불렸던 김 위원장에게 제1야당의 명운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상곤 위원장은 1949년 12월5일 전라남도 광주에서 태어났다. 4남1녀 중 넷째였다.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불렸다. 광주제일고를 졸업했다. 서울대 경영대학 경영학과(69학번)에 입학해 총학생회장도 할 만큼 운동권이었다. 1971년 김 위원장은 총학생회장이던 당시 박정희 정권은 학내 군사훈련인 교련을 시행하려 했다. 김 위원장은 이에 반발하는 ‘교련 반대 운동’ 등 학생운동을 했다. 김 위원장은 교련과목 필수화는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정책이라며 격렬하게 반대했다. 70년대 학생운동 운동권 교수 출신 박정희 정권은 그해 10월 위수령을 발동했다. 서울 시내 주요 대학에 군대가 투입됐다. 이른바 ‘불온써클’을 폐쇄하겠다는 명분이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국무총리 내정자로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지명됐다. 황 내정자는 ‘미스터 보안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공안통이다. 이 때문에 과거 그의 발목이 붙잡히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는 고공행진 중이다. 하지만 지난 법무부 장관 청문회 때 그에 대한 의혹이 쏟아졌다. 이번 황 내정자의 국무총리 청문회에서 과거 불거진 의혹들이 그의 발목을 잡을지 주목된다. 이번 황교안 총리 내정자의 인준 절차를 두고 여야 대치가 심화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황 내정자 지명에 대해 “아주 잘 된 인사라고 평가한다”며 “황 내정자는 장관 재임 시 여러 가지 언행이 신중하고 훌륭한 사람으로서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여당은 인준 절차를 최대한 빠르게 처리할 예정으로 보인다. 제2의 김기춘? 제2의 안대희? 야당은 황 내정자의 지명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그런 총리를 기대했는데 아쉽다”며 “소통과 통합의 정치가 아니라 공안 통치로 국민을 강압하지
[일요시사 경제팀] 김성수 기자 = 한솔그룹 일가의 ‘황제병역’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3단독(부장판사 신중권)은 지난 19일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조동만 전 한솔그룹 부회장 아들의 조모(24)씨에 대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소위 사회 지도층에 속한 사람으로 대인기피증, 우울증 등 정신과적 질환을 빌미로 산업기능요원에 편입되면서 해당 업무에 종사하지 않고 국방의 의무를 게을리 했다”며 “성실히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또래 젊은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과 깊은 좌절감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병역의무 이행의 공정성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더욱 가중시켰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병역법 위반 혐의로 집행유예 특례 산업기능요원 부실 근무 조씨는 2013년 1월1일부터 지난해 10월13일까지 강모(48)씨가 운영하는 서울 금천구의 금형제조업체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하면서 회사 명의로 빌린 인근 오피스텔로 출퇴근하는 등 근무를 제대로 하지 않은 혐의를 받았다. 강씨와 해당 업체는 각각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강씨는 조씨의 어머니로부터 오피스텔 보증금 및 차임
[일요시사 취재 1팀] 박창민 기자 = 새정치민주연합의 신임 원내대표로 이종걸(경기 안양 만안) 의원이 선출됐다. 이 원내대표는 당내에서 비주류·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4선 의원이다. 지난해 두 차례 원내대표 선거 탈락의 아픔을 딛고 삼수 끝에 제1야당의 원내 사령탑에 올랐다. 1957년 5월22일 이종걸 원내대표는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일제강점기 만주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독립운동에 앞장선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다. 이 원내대표는 서울 덕수초등학교에 입학해 학교를 다니다 안양으로 이사했다. 안양시 만안에 있는 만안초등학교를 다녔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1970년 이 원내대표는 만안초등학교를 졸업했다. 민변 변호사 활동 99년 정치 입문 이 원내대표는 경기중학교 진학을 목표로 공부에 전념했다. 하지만 중학교 입시가 무시험 전형으로 바뀌었다. 그의 어머니는 환경이 좋다는 이유로 서울의 예술전문학교인 예원학교 피아노과에 지원 입학시켰다. 중학생 시절 그는 안양에서 서울까지 완행열차 정기권으로 통학했다. 이 원내대표는 예원학교 피아노과를 졸업했다. 하지만 그는 예원학교 3학년 무렵부터 예술 전공이 자신의 가야 할 길은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기나긴 야인생활 끝에 국회의원 천정배가 다시 여의도로 돌아왔다. 무소속으로 보궐선거에 나섰던 그는 제1야당의 성지이자 텃밭인 광주에서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천 의원이 내세운 ‘호남정치 복원론’의 발판이 마련됐다. 호남신당 창당도 공언했다. 그는 단숨에 내년 총선 돌풍의 핵으로 부상했다. 천정배 의원은 1954년 전라남도 무안군 암태도에서 2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부모 슬하에서 암태초등학교를 다녔다. 이후 목포중학교로 진학하며 가족이 있는 목포로 왔다. 천 의원은 중학교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재학 중에 전라남도 학술경시대회에서 1등을 하는 등 공부에 소질을 보였다. 중학교 졸업 후 목포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한다. 하지만 천 의원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단 한 번도 학급 반장을 맡아본 적이 없다고 전해진다. 천 의원은 1972년 목포고등학교를 전체수석으로 졸업하고 그해 대학예비고사에서 인문계 전국수석을 차지한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수석으로 입학하며 ‘목포 3대 천재’로 불렸다. 법관 임용 거부 변호사로 시작해 그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1학년 재학 중에 사법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63일 천하’로 끝났다. 이완구 전 총리가 결국 사임했다. 총리 임명 과정 그는 언론 외압 의혹이 불거지면서 갖은 비난을 듣고 있었다.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의 손짓으로 어렵게 총리가 됐다. 그는 총리가 되자마자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되면서 칼이 자신에게 돌아왔다. 이 전 총리는 역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중 가장 빨리 단명한 총리라는 오명도 뒤집어쓰게 됐다. 이완구 전 총리는 1950년생으로 충청남도 청양 출신이다. 1966년 대전중학교를, 1970년 양정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1974년 행정고시를 합격한 후 홍성군청 및 경제기획원 사무관을 맡아 공직 업무를 수행했다. 그는 1981년부터 경찰직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때 31세의 나이로 최연소 홍성경찰서 서장을 역임한다. 뿐만 아니라 40대 초반 최연소 충북·충남지방경찰청장을 역임하며 각종 최연소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대통령 지지로 총대 메고 앞장 그의 본격적인 정치 인생은 1995년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산자는 말이 많다. 세상을 등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대신해 측근들은 할 말이 많아 보인다. 검찰은 성 회장 측근 7인에 대해 명령을 내리고 빠른 시일 안에 소환해 조사를 벌일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성완종 게이트’의 열쇠를 쥐고 있는 ‘키맨’ 이들은 누구인가.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검찰은 회장 측근 다수를 출국금지 조치했다. 성 회장의 심복으로 분류되는 5∼6명을 추려내고 지난 14일부터 조사에 돌입했다. 검찰은 성 회장의 장례식이 끝난 직후부터 측근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소환 일정 등을 조율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일단 증언부터 물증 확보 주력 수사 시작 사흘 만에 특수팀은 성 회장 측근들의 자택 등에 대해 압수수색도 실시했다. 검찰은 성 회장이 <경향신문> 인터뷰를 통해 폭로한 내용을 뒷받침할 자료를 측근 등을 통해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14일과 15일 성 회장의 최측근 이용기 경남기업 홍보부장을 가장 먼저 소환 조사했다.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은 기자회견까지 열어 "나는 MB맨이 아니다"라며 검찰의 모든 의혹을 부인했다. 다음날 그는 유서를 남긴 채 돌연 잠적하면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날은 해외자원개발 비리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예정이었다. 기업인 출신 정치인으로 떵떵거리는 삶을 누렸던 그는 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은 전형적인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그는 1951년생으로 충남 해미에서 태어났다. 너무나 가난했던 그는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무작정 엄마를 찾아 서울로 상경했다. 그가 가진 것이라곤 외삼촌이 쥐어준 10원짜리 지폐 몇 장과 엄마가 식모살이한다는 집 주소뿐이었다. 이후 그는 서울 영등포의 한 교회에 머물며 신문팔이와 약국 심부름을 했다. 하루 15시간씩 중노동을 하며 돈을 모았다. 여야 넘나드는 정치권 인맥들 1970년 성 회장은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화물운송업을 시작했다. 1976년 서산토건 지분을 인수해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30대 중반 대전과 충남지역 3위 건설업체였던 대아건설을 인수했다. 성 회장은 회사가 안정되자 19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세월호 유가족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사건 세월호 참사 1주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기억 속에서 참사의 안타까움과 충격은 점점 희미해졌다. 하지만 유가족들의 시간은 여전히 2014년 4월16일에 머물며, 그날의 충격과 기억이 생생하기만 하다. 참사 1주기를 맞아 세월호 유가족들의 지난 1년을 돌아본다. 지난해 4월18일 사고 발생 3일 뒤 세월호 유가족들은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정부의 행태가 너무 분한 나머지 국민께 눈물을 머금고 호소하려 한다”며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어 4월20일 유가족들은 “수색에 아무 진척이 없으며, 비상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책임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연락도 되지 않는다”며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했다. 진실 묻힌채 힘겨운 사투 팽목항과 진도실내체육관에 있던 유가족들은 대통령에게도 알려야 한다며 청와대에 항의 방문을 하려 했으나 경찰이 이를 저지했다. 일부 유가족들은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갓길로 빠져나와 서울을 향해 걸어갔지만, 경찰이 다시 막아서 대치 상황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수첩 속에 더 이상 새롭게 발탁할 만한 인재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신임 국정원장에 이병호(74) 전 국가안전기획부 2차장을 깜짝 지명했다. ‘돌려막기’ ‘올드보이 귀환’ ‘불통’ 등 현 정부 인사의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보여준 것이란 비판이 제기된다. 과거 그의 전력을 본다면 충분히 그럴 만하다. 지난 19일 국정원 개혁이라는 과업을 안고 이병호 제33대 국가정보원장이 취임했다. 이 원장은 국정원 개혁에 대해 이미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육군사관학교(19기)를 졸업한 뒤 26년간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의 전신)와 외교부에서 공직생활을 했다. 1963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정보학교 교관, 미국 태평양정보학교 통역장교를 거쳐 1970년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 직원으로 임용됐다. 1980년 7월 중령으로 전역했고, 1981년 1월부터 국가안전기획부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국가관 확고” “정치색 강해” 그는 ‘관운의 사나이&rsqu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