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성완종 게이트' ⑧사건 풀 키맨 7인

그들이 입 열면 여럿 목 날아간다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하지만 산자는 말이 많다. 세상을 등진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을 대신해 측근들은 할 말이 많아 보인다. 검찰은 성 회장 측근 7인에 대해  명령을 내리고 빠른 시일 안에 소환해 조사를 벌일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성완종 게이트’의 열쇠를 쥐고 있는 ‘키맨’ 이들은 누구인가.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팀장 문무일 대전지검장)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검찰은 회장 측근 다수를 출국금지 조치했다. 성 회장의 심복으로 분류되는 5∼6명을 추려내고 지난 14일부터 조사에 돌입했다. 검찰은 성 회장의 장례식이 끝난 직후부터 측근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해 소환 일정 등을 조율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일단 증언부터 
물증 확보 주력
 
수사 시작 사흘 만에 특수팀은 성 회장 측근들의 자택 등에 대해 압수수색도 실시했다. 검찰은 성 회장이 <경향신문> 인터뷰를 통해 폭로한 내용을 뒷받침할 자료를 측근 등을 통해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14일과 15일 성 회장의 최측근 이용기 경남기업 홍보부장을 가장 먼저 소환 조사했다. 특수팀은 성완종 리스트에 거명된 인사들에게 성 회장이 돈을 건넸다고 주장하는 날짜와 당시 상황을 조사했다. 이 부장은 성 회장이 자살 직전 홍준표 경남 도지사에게 1억원을 전달했는지를 확인하는 자리에도 동석해 대화 내용을 녹취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뿐만 아니라 성 회장이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이완구 총리에게 3000만원을 건넸다고 주장한 ‘2013년 4월4일 부여 소재 선거사무소’에서 현장 동행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이다. 이 부장은 검찰 조사에서 “리스트에 기재된 사람들을 포함한 정·관계 인사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일부 동행했다”며 “당시 한장섭 재무담당 부사장을 통해 돈이 준비되는 과정도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이 부장은 관련 자료를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또 2011년과 2012년 성 회장의 정치자금 전달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성 회장 최측근들 출국금지
줄줄이 소환 예정 ‘무슨 말 할까’
 
이 부장은 경남기업에 입사한 후 비서로 발탁됐다. 2008년부터 성 회장의 수행비서를 지냈다. 그는 현재로써 성 회장의 최근 동행과 개인사를 가장 잘 아는 인물로 꼽힌다. 성 회장이 2012년 19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자 국회 수석보좌관으로 임명됐다. 이 부장은 평소 성 회장을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또 성 회장 지인들은 “모든 것은 이 부장이 알고 있다.
 
성 회장이 없을 때는 이 부장이 회장이나 마찬가지다”고 말할 정도다. 성 회장이 의원직을 잃은 뒤에도 그의 곁에 남았다. 현재는 경남기업의 부장급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지난 3일 성 회장이 사기·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을 당시 동행했다. 성 회장 로비 의혹의 실체를 밝히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참고인 중 한 사람이다.
 
윤승모(50) 전 경남기업 총괄 부사장도 성 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 검찰은 지난 12일 윤 전 부사장에게 출국금지 명령을 내렸다. 검찰은 성 회장의 휴대전화 통화내역과 발신자 위치정보 분석으로 성 회장이 숨지기 이틀 전에 윤 전 부사장과 접촉한 정황을 포착했다. 윤 전 부사장은 성 회장이 자살하기 전 과거 금품을 전달했던 ‘배달부’들을 다시 만나 당시 정황을 물었다.
 
이를 비밀장부에 복기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성 회장이 인터뷰에서 ‘홍준표 경남도지사에게 2011년 당 대표 경선 자금 명목으로 1억원을 건넬 때 금품 전달을 맡겼다’고 언급한 인물이다. 일부 언론은 특수팀이 계좌추적과 관련자 진술을 통해 경남기업 자금 1억원이 윤씨에게 전달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사건 발생하고 윤 전 부사장은 ‘과거 성 회장으로부터 1억원을 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당시 일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해 사실상 돈을 받은 사실을 시인하는 말을 남겨 논란이 됐다. 윤 전 부사장은 일간지 기자 출신으로 친박계 인사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성 회장은 이 같은 점을 고려해 그를 2010년 경남기업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이를 거쳐 그는 회사 관리부문 총괄 부사장까지 올랐다. 검찰은 윤 전 부사장이 홍 지사 외에도 2012년 대선자금 전달책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고 앞으로 소환 조사 때 이 점을 집중 추궁할 방침이다.
 
경남기업의 홍보담당 임원을 지낸 박준호 전 상무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현재 출국금지 조치도 내려진 상태다. 박 전 상무는 성 회장의 대외 홍보 활동을 전담했다. 검찰은 그가 정관계 인사와의 만남과 금품 로비와 관련해 비교적 자세히 알고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지난 10일 성 회장의 빈소에서 검찰이 성완종 리스트가 담긴 메모지를 아무 이유 없이 유족에게 반환하지 않는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일거수일투족 
그림자처럼 보좌
 
박 전 상무는 비서들에게 수시로 보고를 받으며 언론 보도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했다. 그는 추미애 의원 비서, 조배숙 전 의원 등 야당 보좌관 출신이다. 2003년 경남기업에 입사했다. 주로 성 회장의 비서로 근무했고, 경남기업 홍보 담당 상무, 계열사인 대원건설산업 이사 등을 지냈다.
 
박 전 상무는 성 회장의 비공식 개인 일정까지 챙겼던 측근이다. 그는 이완구 총리가 공개적으로 성 회장을 “잘 모른다”고 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이 총리의 발언을 반박했다. 당시 기자들은 박 전 상무에게 “성 회장이 성완종 리스트에 등장하는 정치인 8명 중 누구와 가장 친분 있었느냐”고 물었다.
 
박 전 상무는 “이 총리와 성 회장이 얼마나 친한지는 모른다”며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이 총리가 처음에 성 회장을 잘 모른다고 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상가에 있을 때도 서산에 계신 몇몇 분들은 이 총리의 그런 말에 불쾌해 했다”고 말했다.  
 
“곧 판도라 상자 열린다”
뇌물 경로 집중적 추궁
 
전직 경남기업의 재무 담당이자 앞선 경남기업 비리 사건의 피의자였던 한장섭(50) 전 부사장도 요주 인물이다. 성 회장은 국회의원 출마를 저울질하던 2004년부터는 한 전 부사장에게 경남기업의 전결권을 줬다. 회사 경영을 통째로 믿고 맡긴 셈이다. 그는 성 회장의 ‘금고지기’로 검찰 수사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 전 부사장은 성 회장의 비자금 32억원 입출금 내역이 담긴 USB를 검찰에 넘겼다. 성 회장과 나눈 대화도 녹음해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부사장은 비자금 조성 경위와 사용처에 대해서 상당히 구체적인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부사장은 검찰 조사에서 “2011년 6월 전도금 32억원 가운데 1억원을 성 회장의 측근 윤승모 상무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이는 성 회장이 윤씨를 시켜 당시 한나라당 대표 선거를 준비하던 홍준표 후보에게 1억원을 갖다줬다는 언론 인터뷰 내용과 일치한다.
 
 
그는 성 회장 일가의 ‘집사’ 역할을 했다. 비자금 조성에 직접 개입했으며, 1994년 11월부터 경남기업 상무에서 최근 7년 동안 최고재무책임자로 근무하면서 금고지기 역할을 했다. 또 경남기업 계열사 대아레저 대표도 지냈다. 성 회장의 활동과 특히 자금 흐름을 누구보다 자세히 알고 있다. 그는 성 회장이 금품을 건넨 정치권 인사들을 폭로할 대책회의에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전 부사장은 이 내용도 녹음해 검찰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녹취가 성 회장이 넘긴 메모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녹취보다 더 구체화된 성완종 리스트의 확장판이 될 수 있다. 성 회장의 변호인은 한 전 부사장이 자원외교 관련 검찰 조사 과정에서 실제 비자금이 조성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이 때문에 성 회장은 사망 직전 한 전 부사장에 대한 실망감을 털어놓기도 했다고 밝혔다.
 
성 회장이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을 지낸 금모씨는 바깥 활동에 늘 동행하는 수행비서다. 그는 늘 성 회장이 탄 승용차 조수석에 탔다. 금씨 역시 지난 검찰 출석 당시 성 회장과 함께 검찰청에 모습을 보였다. 그는 성 회장이 마지막 구명활동을 위해 정치인들을 만나러 다닐 때 동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씨는 성 회장이 국회의원이 된 이후 발탁된 인물이다. 그는 성 회장의 일정을 관리하고, 수행·의전 등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성 회장과 지근거리에서 활동한 만큼 검찰은 그가 성 회장의 동선이나 만났던 인사들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 회장의 운전기사인 여모(39)씨는 지난 9일 아침 자택에서 유서를 발견해 최초로 경찰에 신고한 인물이다. 그는 지난 15일 언론과 인터뷰에서 3000만원이 담긴 박스를 차에 싣고 이완구 총리를 만나러 갔다고 밝혔다. 2013년 당시 4.24 재선을 앞두고 성 회장과 함께 이 총리가 있던 충남 부여의 선거사무소를 방문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함께 따라간 수행 직원이 박스를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이 사실이 보도된 이후 지난 16일 검찰은 여씨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7명이 게이트
열쇠 쥐고 있다
 

성 회장의 의원 보좌관으로 일했던 정낙민 경남기업 인사총무팀장도 측근 중 한사람이다. 검찰은 정 팀장의 직책상 자금 등의 실무를 맡았기 때문에 성 회장의 개인적인 돈 심부름을 했을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 팀장은 과거 김한길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보좌관 출신이다. 당시 성 회장이 야당 인맥을 위해 영입한 인물이라는 소문이 났다.
 
 
경남기업의 1대 금고지기로 알려진 전모 전 재무담당 상무도 성 회장의 측근으로 통한다. 전 전 상무는 2003년부터 대아건설 경리담당 임원을 지냈다. 2009년까지 경남기업의 자금관리를 책임져 왔던 인물이다. 전씨는 또 2002년 회삿돈 16억원으로 자민련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한 혐의로 2004년 성 회장과 함께 기소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전 전 상무는 2006년 경남기업이 분식회계로 비자금을 조성한 게 드러날 당시 재무를 담당했다. 검찰은 전 전 상무가 당시 자금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5일 검찰의 압수수색은 야간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앞서 검찰은 이틀간 성 회장의 주변 인물을 추려서 총 11명을 압수수색 대상자로 선정했다. 이날 오전 법원에 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이 발부되자마자 오후 5시40분부터 자정 가까운 시간까지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경남기업 본사와 업체 3곳, 경남기업 전·현직 직원 11명의 주거지 등 총 15곳에 검사와 수사관 30여명을 보냈다. 약 3시간여 동안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대상은 이용기 경남기업 홍보부장과 박준호 전 경남기업 상무, 성 회장의 수행비서 금모씨, 성 회장의 운전기사 여모씨, 성 회장의 여비서 등이 포함됐다. 
 
특수팀은 성 회장의 집무실을 비롯해 전·현직 직원 11명이 근무했던 사무실과 성 회장의 차량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컴퓨터 하드디스크, 서류, 명함, 다이어리 등 상자 8개 분량의 압수물을 확보했다.
 
특수팀은 오후 8시 쯤 경남기업에 대한 압수수색을 종료했다. 그 뒤 나머지 직원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은 산발적으로 진행됐다. 다만 이번 압수수색에 성 회장의 자택과 아들 등 유가족은 제외됐다. 
 
특수팀은 지난 13일 출범 후 사흘간 성 회장이 빼돌린 것으로 의심되는 32억여원의 사용처를 파악하고 있다. 전액 현금으로 이뤄진 전도금 특성상 회계 조작을 통해 손쉽게 비자금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검찰 조사 결과 성 회장의 측근들이 밝힌 부분과 언론에 보도된 내용이 대부분 일치했다. 또 성 회장은 숨지기 2∼3일 전부터 경남기업 핵심 관계자들과 폭로에 대비한 자료를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 부장을 포함한 성 회장의 측근 5, 6명을 상대로 성 회장 주장의 신빙성을 검증하고 있다. 경남기업 측은 15일 “유가족 및 경남기업 관계자를 비롯한 모든 지인이 한 점 의혹도 없이 검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도록 하겠다”며 검찰 수사에 협조할 뜻을 밝혔다. 
 
특수팀은 보강 증거 수집에 집중하고 있다. 특수팀은 평소 금전 출납 등을 꼼꼼히 기록한 것으로 알려진 성 회장이 ‘비자금 장부’를 숨겨놨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성 회장은 또 일지 형태의 비망록에 지난 수년간 만난 사람들과 일시, 장소, 자금 출납 등을 기록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비망록은 전 회장의 동선을 말해주기 때문에 금품 전달 사실을 입증할 유력한 근거로 쓸 수 있다. 특수팀은 13일 장례절차를 마친 유족을 접촉해 증거 자료를 남긴 것이 사실인지 등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수팀은 성 회장의 휴대전화 2대의 분석 결과를 받아, 숨지기 전 누구한테 ‘구명 전화’를 했는지도 확인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평상시 같으면 증거 확보를 위해 압수수색부터 시작하겠지만, 아직 상중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초기에 최대한 많은 정황 증거를 확보하는 것이 수사의 성패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억원 비자금
사용처 파악 주력
 
그 일환으로 검찰은 성 회장이 사망 전 <경향신문> 기자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남긴 48분 분량의 녹음 파일을 넘겨받아 금품 수수를 입증할 추가 증거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대검찰청은 이날 수사팀에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검사 4, 5명을 추가로 투입했다. 특수팀 소속 검사가 15명 안팎이 되면서 과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와 맞먹는 규모가 됐다. 성 회장 측근들의 입을 통해 향후 정치권을 강타할 성완종 리스트 확장판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min1330@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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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