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이완구 ‘63일 천하’ 풀스토리

빈대 한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웠다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63일 천하’로 끝났다. 이완구 전 총리가 결국 사임했다. 총리 임명 과정 그는 언론 외압 의혹이 불거지면서 갖은 비난을 듣고 있었다.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의 손짓으로 어렵게 총리가 됐다. 그는 총리가 되자마자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되면서 칼이 자신에게 돌아왔다. 이 전 총리는 역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중 가장 빨리 단명한 총리라는 오명도 뒤집어쓰게 됐다. 

 
이완구 전 총리는 1950년생으로 충청남도 청양 출신이다. 1966년 대전중학교를, 1970년 양정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1974년 행정고시를 합격한 후 홍성군청 및 경제기획원 사무관을 맡아 공직 업무를 수행했다. 
 
그는 1981년부터 경찰직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때 31세의 나이로 최연소 홍성경찰서 서장을 역임한다. 뿐만 아니라 40대 초반 최연소 충북·충남지방경찰청장을 역임하며 각종 최연소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대통령 지지로
총대 메고 앞장
 
그의 본격적인 정치 인생은 1995년 민주자유당에 입당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충남 청양 홍성지구당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1996년 그해 15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이 전 총리는 충남지역에 출마했다.  
 

한때 이 전 총리는 ‘철새 정치인’이란 오명을 들었다. 충남지역에서 신한국당 의원으로 당선된 후 그는 1997년 김종필 전 총리가 있는 자유민주연합으로 당적을 옮겨 원내총무와 대변인을 역임한다. 그 후 2000년 16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하나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자유민주연합을 탈당한다. 이후 한나라당으로 이적한다. 
 
이때부터 그는 정치 자금을 받아왔을까. 곧 ‘2억원 이적료 파문’이 불거졌다. 당시 이 전 총리가 2002년 대선 직전 한나라당에 입당한 뒤 지원금 명목으로 2억원의 불법 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에서 시작된다. 의혹이 확산되자 17대 총선에 불출마를 선언한다. 그는 2억원의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지만 2007년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1년간 UCLA대학 교환교수로 활동한다.
 
국내로 돌아온 이 전 총리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공천을 받아 충남도지사에 당선된다. 그는 3년 뒤 2009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하며 단식투쟁을 벌인다. 그는 세종시 원안 통과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도지사직을 사퇴한다. 당시 자신과 뜻을 함께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과 교류를 한다. 정치권에서는 이 배경으로 이 전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총리직으로 부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하곤 한다.  
 
도지사직을 사퇴한 이 전 총리는 2009년 다발성골수종이라는 혈액암으로 투병생활을 했다. 2013년 그는 암을 이겨내고 부여·청양 재보궐 선거에서 압도적인 득표율로 복귀한다. 당시 이 전 총리는 JP(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에 이은 충청권의 대표 주자라는 위상을 얻는다. 
 
2014년 5월 새누리당 원내대표에 선출된다. 이 전 총리는 15·16·19대에 당선된 3선 국회의원이며 충남지사는 물론 도지사를 역임해 ‘충청권의 맹주’로 불리며 충청권 출신으로 첫 원내대표가 됐다. 
 
어렵게 청문회 통과…의욕적으로 집무
부정부패 척결 공직사회 개혁 선봉장
 

이 전 총리가 원내대표가 된 후 최전선에서 세월호특별법 제정 등의 여야 협상을 했다. 당시 국회에서는 이 전 총리가 산적한 현안들을 무난히 처리했다고 평가한다. 이어 올해 1월23일 박 대통령은 이 전 총리를 국무총리직에 내정했다. 당시 그가 국무총리직에 내정됐을 때 많은 이들은 무난하게 해낼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그의 잔혹사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이 전 총리는 지난 1월 ‘비선 실세 국정 농단 의혹’으로 위기에 처한 박근혜 정부의 구원 투수로 등장했다. 원활한 원내대표직 수행으로 여당은 물론 야당의 기대감도 높았다. 하지만 이 전 총리는 인사청문회에서부터 그의 치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먼저 각종 부동산 투기 의혹을 받았다. 이 전 총리의 장인·장모, 처남 등은 2001년 경기 성남 대장동 일대의 땅을 샀다. 장인·장모가 구입한 땅은 2002년 이 전 총리의 부인에게 2011년에는 다시 이 전 총리의 차남에게 증여됐다. 이후 땅 값이 크게 올랐다.
 
야당은 “이완구 의원이 당시 재경위에서 활동했던 경제통이었다는 점에서 고위공직자로서 고급정보를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며 “대리인을 내세워 땅 투기를 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아파트 투기 의혹도 제기됐다. 그는 서울 강남 도곡동 소재 주상복합 아파트인 타워팰리스 매매 과정에서 시세 차익 신고를 누락했고, 장인의 경기도 분당 땅 매입 당시에도 이 전 총리가 관여한 의혹이 제기됐다. 
 
까도 까도…
‘양파 총리’
 
병역면제 의혹도 나왔다. 그는 3차례의 징병 신체검사를 거쳐 1년짜리 보충역 판정을 받았다. 이 전 총리는 ‘부주상골’을 사유로 보충역 소집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병무청 기록에 따르면 이 전 총리는 애초 설명과 달리 첫 신체검사에서 1급 현역 판정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홍성군청에서 사무관으로 근무하던 1975년 6월 현역으로 육군에 입영한 것도 알려졌다. 그러나 입영 뒤 재검 대상으로 분류돼 귀향 조치를 받았다.
 
하지만 이 전 총리는 입대를 하면서 홍성군청에 휴직 신청도 하지 않았다. 야당은 이에 대해 “마치 자신이 입대 뒤 돌아올 것을 예견이나 한 것인가”라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그는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이하 국보위)에서 근무했다. 당시 국보위는 ‘불량배 소탕계획’을 입안해 계엄사령부가 약 4만여명을 삼청교육대에 수용하면서, 다수의 사망자와 부상자가 발생했다. 이 전 총리는 이에 대해 “국보위 자체가 국민들에게 많은 걱정을 끼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좀 봐야한다”고 말했다.
 
 
이런 수많은 의혹으로 이 전 총리를 두고 ‘의혹 종합 세트’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그는 이 의혹들을 언론사 외압 발언으로 정점을 찍었다.
 
인사청문회 과정 언론을 통해 이 전 총리가 부동산 투기 의혹과 관련된 보도를 막기 위해 언론사에 외압을 가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전 총리는 당시 “야 우선 저 패널부터 막아. 빨리 시간 없어”라며 “(일부 언론사 간부가) ‘지금 메모 즉시 넣었다’고 하더라. 내가 보니까 빼더라”라고 말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언론사 간부들과 친분을 통해 자신의 의혹과 관련된 내용이 방송으로 나가는 것을 막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또한 그는 “윗사람들하고 다 내가 말은 안 꺼냈지만 다 관계가 있어요, 어이 이 국장, 걔 안돼, 해 안 해? 야 김 부장, 걔 안돼, 지가 죽는 것도 몰라요, 어떻게 죽는지 몰라”라고 말했다.  
 
인사청문회 과정 여야는 이 전 총리의 언론 외압 논란을 빚은 녹음파일 공개 여부로 인사청문회가 두 차례 정회하는 등 파행까지 했다. 여당은 이 전 총리에게 녹취록의 일부인 “‘언론인들 내가 대학총장도 만들어주고 교수도 만들어줬다’라고 말한 기억이 있느냐”고 질문하자, 이 전 총리는 “전혀 그런 말한 적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확인을 위해 틀어주면 좋겠다”고 까지 말했다. 
 

결국 여당 의원들은 그날 오후 녹음파일을 일부 공개했다. 이 녹음파일에는 이 전 총리가 언론사 간부에게 외압을 가해 보도를 막았다는 내용를 포함해 “(기자를) 교수도 만들어 주고, 총장도 만들어 주고…” 라는 문제성 발언 등이 들어 있었다. 
 
이 전 총리는 “다급한 마음에 말한 것이므로 용서해 달라”며 “편안한 마음으로 반어법으로 얘기한 것이다. 이제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고 뒤늦게 말한 사실을 시인했다. 이어 “녹음파일 보도 이후 수일째 수면을 취하지 못한 상태여서 정신이 혼미하고 기억이 정확하지 못하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 전 총리는 인사청문회 파행 이후 회의장에 입장하다가 비틀거렸고, 자리에 앉아 컵에 물을 따를 때 손을 떨기도 했다. 
 
의혹 종합세트 
거짓말로 자멸 
 
이 전 총리는 “편한 자리에서 한 발언이나 공직 후보자로서 경솔했을 뿐 아니라, 국민 여러분께 불편함을 드린데 대해 죄송하다”며 “대오각성하는 마음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보다 더 진중한 몸가짐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이겠다. 국민 여러분께 용서를 정중히 구하고자 한다”고 사과했다.
 
지난 1월23일 그는 청문회 과정에서 도덕적 치명상을 입었지만 제43대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그는 취임장을 손에 쥐자마자 ‘책임총리’를 공언했다. 이 전 총리가 국무총리 지명 직후 국회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대통령께 쓴소리와 직언을 하는 총리가 되겠다”며 무너진 공직기강을 바로잡고 국민·야당과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무너진 공직기강을 철저하게 점검해 대비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라고 덧붙였다. 
 

이어 지난 3월12일 이 전 총리는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부정부패를 발본색원 하겠다”며 “우리 사회 곳곳에 뿌리박고 있는 고질적인 적폐와 비리를 조사하겠다”며 부패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반전을 시도했다.
 
“믿고 밀어준 국민들이 바보”
역대 가장 단명한 총리 굴욕
 
그는 박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지를 기반으로 공직사회 개혁의 선봉장으로 나서며 한달만에 ‘개혁 총리’라는 이미지로 순항했다. 특히 ‘MB 자원외교’도 예외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여론의 긍정적인 반응도 이끌었다. 공직 사회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여야 할 것 없이 그의 국정운영에 거는 기대가 컸다. 남다른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부처 간 업무 조정 능력을 발휘해 박근혜정부 집권 3년 차의 성과를 도출해 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부패척결 대상 가운데 하나로 지목돼 해외자원개발사업 관련 비리 혐의로 검찰수사를 받아오던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죽기 전 남긴 메모에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며 부정부패의 당사자로 낙인찍히기 시작했다.
 
성 회장이 남긴 메모에는 허태열·김기춘 등 친박 핵심 인물들에게 건네진 돈의 액수와 이 전 총리의 이름 등이 적혀 있었다. 금품수수 의혹이 일자 이 전 총리는 “성 회장을 알기는 하지만 친한 사이가 아니다”며 “돈을 받았다는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그러나 성 회장이 이 전 총리에게 “2013년 4월4일 오후 4시30분 이완구 선거사무소를 방문해 3000만원을 비타500 박스에 담아 현금으로 주고 왔다”는 구체적인 폭로와 추가 증언이 곧이어 터져 나오면서 분위기는 급변했다. 그는 이어 곧바로 ‘목숨을 내놓겠다’고 한 본인의 발언에 대해 “인간의 양심과 신앙에 따라 격정적으로 말을 하다가 나온 말로 송구하다”고 밝혔다.  
 
이 전 총리는 처음에는 성 회장과 친한 사이도 아니며 일면식도 없다고 밝혔지만 1년간 200회가 넘는 통화를 한 사실까지 확인되는 등 이 전 총리의 기존 발언과 정면으로 배치됐다. 
 
지난 1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김영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이 전 총리에게 ‘거짓말 답변’ 논란에 대해 추궁했다. 이 전 총리는 “거짓말한 적 없다. 표현상의 차이나 기억의 착오는 있을지 모르지만 큰 틀 속에서 줄기가 변한 것이 없다”고 답했다. 일관된 거짓해명으로 논란은 더해져 사태를 더욱 악화시켰다. 
 
특히, 그가 현직 총리 신분으로 검찰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자 야당에선 총리 신분으로 수사를 받는 것은 무리라며 총리 해임건의안을 추진했다, 여당 내부에서도 여론을 인식한 듯 사퇴 불가피론이 확산되는 등 그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하지만 이 전 총리는 "의혹만으론 물러날 수 없다"며 버텼다. 그러나 지난 16일 박 대통령이 중남미 4개국 순방에 앞서 가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회동에서 사실상 자진사퇴를 권고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면서 이 전 총리가 큰 압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또 이 전 총리를 둘러싼 의혹이 갈수록 증폭되며 여론이 악화되자, 여권 핵심 지도부는 20일 비공개회의에서 이 전 총리 거취 문제를 박 대통령 귀국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데 공감하기에 이르렀다. 
 
대대적 사정
부메랑으로
 
이 전 총리는 지난 20일 늦은 밤 박 대통령에게 총리직 사임의 뜻을 밝혔다. 그는 전날까지 중남미 순방을 떠난 박 대통령을 대행해 국정을 챙기겠다는 의지를 거듭 피력했지만 하루 만에 입장을 바꿨다.
 
역대 재임기간이 가장 짧았던 총리는 윤보선 대통령 시절 65일간 역임했던 제6대 허 정 총리다. 20일로 취임 63일째를 맞는 이 전 총리는 박 대통령의 사의수용 시점에 따라 헌정 사상 최단기 총리로 기록될 수 있지만, 박 대통령은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27일 이후 사의 수용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min1330@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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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돌아왔다. 3년의 옥살이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명분과 서사를 모두 거머쥐었다. 두 팔 벌려 환영했지만 송 전 대표를 바라보는 정청래 지도부의 고심이 깊은 모양새다.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의 변수가 된 송 전 대표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무죄가 확정됐다. ‘돈봉투 사건’을 주도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다.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의혹 사건, 2심 무죄에 이어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며 “긴 시간 함께 걱정해 주시고, 흔들림 없이 믿어주시며 끝까지 곁을 지켜주신 많은 분의 성원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은 결국 가려지지 않았다. 이제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책임 있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돌아온 큰형님 송 전 대표는 지난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경선을 앞두고 6000만원의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역 본부장에게 현금이 든 돈봉투를 건네고, 민주당 윤관석 의원을 통해 국회의원에게 나눠줄 돈봉투 6000만원을 제공하는 데 개입한 혐의 등을 받았다. 아울러 그의 외곽 후원 조직인 ‘사단법인 먹고사는문제 연구소(이하 먹사연)’를 통해 기업인 7명으로부터 후원금 명목의 불법 정치자금 총 7억6300만원을 챙긴 혐의 등도 있다. 당초 1심 재판부는 송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으나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윤성식)는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돈봉투 사건과 먹사연 사건 범죄 사실의 관련성을 인정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먹사연 사건 관련 공소 사실의 경우 압수물이 영장 없이 증거로 사용됐다”고 판단했다. 송 전 원내대표의 복귀는 화려했다. 무죄가 선고된 날 서울고등법원 현장에는 민주당 강득구·김교흥·김상욱·박선원·부승찬·전현희 의원 등 10여명이 모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자신의 SNS에 “송 대표의 무죄 판결을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며 “검찰 전횡을 바로잡는 검찰개혁에 더 매진하겠다”고 작성했다. 이 판결로 송 전 대표는 ‘정치 검찰의 희생양’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얻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정치 검찰의 서슬 퍼런 칼날을 이겨내고 돌아오신 송 전 대표를 환영한다”며 “이재명정부 성공을 향해 연대와 통합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송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인천시당을 찾아 복당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달 27일 최종 의결됐다. 정 대표는 “송 전 대표의 복당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앞으로 민주당 발전과 이정부의 성공을 위해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정 대표는 “탈당 후 당의 요청이 아니면 다른 경선에서 20% 감산되는 불이익을 받는데, 당 대표인 제가 요청해 (감산이 없도록) 처리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천시당에 복당을 신청한 것이 서울시당으로 이첩됐던 것을 중앙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로 보내라고 지시해 복당했다”고 말했다. “정치 검찰 피해자” “이재명의 은인” 정점 찍은 서사…‘송 사용법’ 고심 송 전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서 당의 주류였던 친문(친 문재인)계를 꺾으며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났다. 그런 그에게는 이재명 대통령과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 같은 해 치러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서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화됐고, 송 전 대표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밀어줬다는 이른바 ‘이심송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국회로 이끈 인물 역시 송 전 대표다. 그는 2022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사퇴했고, 그때 이 후보가 보궐선거를 통해 당내에 입성했다. 당시 그는 이 후보의 전략공천을 환영하는 입장을 밝히며 “당의 단단한 결정과 이재명 (당시) 상임고문의 결단이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 이 상임고문은 우리 민주당과 현재 한국 정치에 큰 자산”이라고 치켜세우며 “이번 지방선거 승리의 큰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국회 입성에 성공하고 당 대표직을 따내는 등 정치인으로서 성공가도를 걸었던 반면,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며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됐다. 이때부터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송 전 대표가 ‘자신을 희생하고 후배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정치인’이라는 인식으로 남았다. 2023년 두 사람에게 본격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돈봉투 의혹 수사가 송 전 대표를 덮쳤고, 이재명 대표는 거리를 두는 전략을 택했다. 민주당은 당 전체의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송 전 대표의 자진 탈당을 압박했고, 송 전 대표 역시 당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3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송 전 대표가 자신의 서사를 어떻게 활용할지 이목이 쏠린다.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그가 복귀하자 현 수장인 정 대표의 셈법만 복잡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방선거, 전당대회, 나아가 다음 대선까지 송 전 대표가 차후 진행될 모든 선거의 변수가 됐다.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가 첫 번째 관문이다. 복당 이후 송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계양을로 이사오면서 이곳에서 치러질 보선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계양구는 송 대표의 정치적 고향으로, 지난 2000년 해당 지역에서 당선돼 16대 국회에 입성한 뒤 17·18·20·21대 총선까지 내리 승리했다. 이때 쌓은 조직력을 기반으로 2010 민선 5기 인천시장에도 당선됐다. 굴리는 주판알 인천 계양에 출마가 유력한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과의 교통정리 여부가 변수다. 송 전 대표는 YTN과의 인터뷰서 김 전 대변인도 계양을 출마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당 지도부가 잘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라며 “지역구라는 게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국민과 당원의 뜻이 중요하다. 당 지도부가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중진과 대통령의 최측근인 신인 정치인의 대결구도가 예상되는 만큼 시선은 지도부의 교통정리에 쏠렸다. 정 대표와의 신경전도 예상된다. 정 대표가 당 대표 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송 전 대표가 국회에 입성하면 차기 당권을 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송 전 대표가 실제 당권에 도전할 경우 정 대표를 비롯해 ‘차출설’이 제기되는 김민석 총리와 함께 3파전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벌써 송 전 대표의 이름이 거론된다. 지난달 26일 <뉴스토마토>가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34명을 대상으로 ‘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서 다음 세 사람이 맞붙는다면, 누가 민주당을 이끌 차기 당대표로 적합하다고 보는지’를 묻는 말에 답변은 ▲정청래 대표 21.6% ▲송영길 전 대표 19.4% ▲김민석 국무총리 18.8%로 집계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이며 ARS(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8%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강경 개혁파로서 외연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정 대표의 강경 노선이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중도층과 무당층을 포섭해야 하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비슷한 중도·실용주의적 성향인 송 전 대표는 민주 당원의 또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는 ‘뉴이재명’ 그룹이 송영길 역할론에 불을 지피면서 그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상황이다. 거침없는 저격수 따라서 송 전 대표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정 대표의 리더십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정청래 VS 송영길 구도를 만드는 등 당내 경선을 앞두고 판이 깔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모든 권력투쟁의 종착지가 그렇듯 그가 2027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송 전 대표는 복귀와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친문으로 분류되는 김어준씨의 유튜브 채널 ‘뉴스공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두고 ‘대국민 사기’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의 근원지인 ‘뉴스공장’을 향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라”고 충고했다. 송 전 대표는 “(‘뉴스공장’에) 섭외를 받아도 안 나가고 싶다”며 “특정 언론 유튜브에 국회의원들이 줄 서서 알현하듯이 있는 모습이 좋은 건 아니다. 우리가 국민의힘에 대해서 고성국이나 전한길 비판하듯이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볼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친명인 강득구 의원도 김씨의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그에게 힘을 실었다. 강 의원은 “큰 틀에서 송 전 대표의 문제 제기에 뜻을 같이 한다”며 “(최근) 김씨는 김 총리의 미국 출장을 두고 ‘차기 주자 육성 프로그램처럼 보인다’고 해석했다. 해석은 자유이지만 다소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8월 전대 ‘정·송·김’ 3파전? 6월 지선·재보선 첫 번째 관문 코로나 백신 논란에 대해서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가 참전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조 대표는 “송 전 대표는 두 가지 음모론을 여전히 믿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극우 변희재가 주장한 최순실 태블릿 PC 조작론. 둘째, 코로나 백신 국가적 사기론”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주장해 온 변희재씨와 손을 잡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JTBC와 검찰, 특검이 태블릿 PC 조작을 통해 박근혜 탄핵 수사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법률가인 제가 보기에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 공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조 대표의 부산 출마’ 필요성을 언급한 송 전 대표를 비판했다. 조 대표는 “최근 송 전 대표께서 느닷없이 저와 혁신당을 향해 ‘호남 이삭줍기 말고 영남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호남 출마자들이 어떻게 이삭이냐”며 “모욕과 폄훼”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혁신당 후보들은 지난 총선 시기에 송 전 대표가 손을 잡았던 극우 인사 변희재·최대집씨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다시 한번 송 전 대표의 과거 행적을 거론했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송 전 대표는 ‘뉴이재명 바람’에 올라탔다. 지난 15일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이 개최한 ‘뉴이재명 토론회’ 현장에 나타나 지지자와 인사를 나눴다. 송 전 대표의 축사가 끝나자 지지자들은 연신 “송영길”을 외치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송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칼”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송 전 대표와 이 대통령, 두 사람은 혁신과 쇄신을 강조하는 등 성격이 비슷하다”며 “정부·여당에 타격을 입히는 ‘당정 갈등설’을 부인하는 것도, 논란을 만드는 것도 정 대표다. 이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지지층이 봤을 때 이 대통령이 어떤 의중을 전달할 때 정 대표가 아닌 송 전 대표의 입을 빌리는 편이 쉬울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쏘리재명’ ‘쏘리영길’ 그러면서 “뉴이재명은 송 전 대표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다.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했다는 미안함과 이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일 등, 송 전 대표의 희생정신을 높게 평가할 것”이라며 “이런 여론이 확산하면 앞으로 치러질 모든 당내 선거에서 송 전 대표가 승산이 있다고 계산해 어떤 방식이든 (출마를) 결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송영길 소나무당 어디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 2024년 옥중 창당했던 소나무당이 해체했다. 송 전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자 “소나무당을 해산하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고 말했다. 소나무당 시도당위원장 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송 전 대표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협의회는 “송영길 대표의 소나무당 해산 및 더불어민주당 복당 천명은 바로 그 위임에 따른 책임 있는 정치적 결단”이라며 “이는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소나무당이 존재했던 이유와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완성해 나가겠다는 결정이라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소나무당은 해산하지만,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신뢰와 연대의 경험은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송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존중하며 그의 정치적 행보를 함께 지켜보고 응원하는 시민들과 새로운 방식의 역할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