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박근혜 히든카드 황교안 국무총리 내정자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면…확실한 아군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국무총리 내정자로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지명됐다. 황 내정자는 ‘미스터 보안법’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 대표적인 공안통이다. 이 때문에 과거 그의 발목이 붙잡히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는 고공행진 중이다. 하지만 지난 법무부 장관 청문회 때 그에 대한 의혹이 쏟아졌다. 이번 황 내정자의 국무총리 청문회에서 과거 불거진 의혹들이 그의 발목을 잡을지 주목된다. 

 
이번 황교안 총리 내정자의 인준 절차를 두고 여야 대치가 심화되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황 내정자 지명에 대해 “아주 잘 된 인사라고 평가한다”며 “황 내정자는 장관 재임 시 여러 가지 언행이 신중하고 훌륭한 사람으로서 평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여당은 인준 절차를 최대한 빠르게 처리할 예정으로 보인다.
 
제2의 김기춘?
제2의 안대희?
 
야당은 황 내정자의 지명에 대해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을 통합하는 그런 총리를 기대했는데 아쉽다”며 “소통과 통합의 정치가 아니라 공안 통치로 국민을 강압하지 않을까 걱정스럽고 막막하다”고 일갈했다. 야당은 황 내정자의 인사청문회 절차도 강력하게 대처할 것을 시사했다. 
 
야당이 이토록 황 내정자를 반대한 이유가 있다. 그가 ‘미스터 보안법’으로 통하는 국가보안법을 신봉한 대표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이미 지난 법무부 장관 청문회에서도 수 많은 의혹이 제기되면서 그의 도덕성에 흠집이 갔다.
 

황 내정자는 대검찰청 공안1·3 과장, 서울지검 공안2부장 등을 거쳤다. 공안수사의 교과서로 불리는 ‘국가보안법 해설’의 저자다.
 
그는 1990년대부터 각종 공안사건을 도맡아 수사를 지휘했다. 1990년 해외반한단체와 팩시밀리를 통해 연락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전민련국제협력국장 김현장 피고인에게 국가보안법을 적용해 징역 10년 구형. 1992년 남한조선노동당 사건으로 국가보안법과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 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개인비서 이근희에게 징역 10년 구형. 1993년 보안사령부가 주도한 국군정보사령부의 양순직 신민당 부총재 테러 사건과 시국 사건 12·12사태 등을 수사했다. 
 
황 내정자는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헌법가치를 지키고 법질서를 세우며 법의 문턱을 낮추는 것에 역점을 두고 노력한다”고 밝힌 적 있다. 특히나 헌법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강조했다. 문제는 그 적용 대상이 공안 및 내란 사건에 편향돼 있다는 점이다. 
 
황 내정자는 김대중·노무현정부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부산고검장을 지냈던 2011년 5월11일 부산의 한 교회 강연에서 “김대중씨는 계속 재야활동을 했기 때문에 경찰에서도 조사받고 검찰에서도 조사받았다”며 “이런 분이 딱 대통령이 되고 나니까 그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에 있었던 검사들은 물론 소위 공안통으로 이름나 있는 검사들은 전부 좌천됐다”고 말했다.
 
또 “공안검사가 굉장히 고통받고 두 번째 인사에서도 그런 고통을 주고 세 번째 인사에서도 고통을 주니까 많은 검사가 사표를 내고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해서도 “검찰에 구속까지 됐던 분”이라며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되니까 공안부에 오래 있던 사람들에 대해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스터 보안법’ 대표적 공안통 출신
박근혜정부 들어 ‘쑥쑥’ 고공행진
 

황 내정자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내란 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 등을 주도했다. 2013년 9월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황 내정자는 이석기 의원에 대해 “이 사건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정면도전이자 위협이다”며 “헌법가치를 침해한 행위로서 엄정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같은 달 26일 이석기 등을 내란음모 등 혐의로 기소했다. 2014년 2월3일 결심 공판에서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2014년 2월17일 수원지방법원은 내란음모와 선동 혐의를 인정해 징역 12년과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했다. 2014년 8월11일 서울고등법원은 항소한 이석기에 대해 내란선동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지만 내란음모는 무죄로 판단하고 그를 징역 9년에 자격정지 7년을 선고했다.
 
안기부 X파일 수사
무혐의 처분 전력
 
이와 맞물려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 정당 해산 심판’ 청구에서도 황 내정자는 정부 대리인으로서 직접 변론기일에 출석했다. 그는 “통합진보당의 최고 이념인 진보적 민주주의와 강령의 구체적 내용은 현정권 타도”며 “북한과 연방제 통일을 이루겠다는 것은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 내정자는 2014년 11월25일에 있었던 최종변론에도 직접 출석했다. 그는 “통합진보당의 강령은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한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을 포장한 것이다”며 “용공정부 수립과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며 정당해산을 거듭 촉구했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19일 재판관 9명 중 8명 인용 의견으로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을 내렸다.
 
2005년 황 내정자는 서울중앙지검 2차장 시절 이른바 ‘안기부 X파일’로 알려진 안기부 도청 사건 수사를 맡았다. 그는 이 사건에 등장해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주요 인사들을 무혐의 처분한 전력이 있다. 
 
MBC 이상호 기자의 공개로 알려진 도청 테이프 안에는 이학수 당시 삼성 비서실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사장의 대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건희 삼성 회장 등의 지시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등 정치권과 일부 검찰 고위직 인사들에게 수십억원을 제공하기로 논의한 내용이다. 
 
황 내정자는 테이프에 등장하는 이 회장을 비롯해 삼성 관계자와 실명이 거론된 이름바 ‘떡값 검사’ 전원에 대해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내린다. 수사 과정 이 회장을 단 한 번도 소환 조사하지 않았다. 
 
황 내정자는 당시 “삼성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는 이름이 거론됐다는 사실만으로 소환할 수 없어 서면조사만 했다”며 “홍석현 사장이나 이학수 실장이 X파일 내용대로 진술했다면 이 회장도 소환할 수 있겠지만 그런 진술이 없었다”고 밝혔다. 
 
반면 이 테이프 내용을 보도한 이상호 MBC 기자와 김연광 전 <월간조선> 편집장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둘 다 실형을 선고받았다. 또 떡값 검사 명단을 발표한 진보정의당 노회찬 의원 역시 대법원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받았다. 황 내정자는 “불법 도청자료가 활용되는 것은 큰 폐단이라고 생각하며 통신비밀보호법에서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황 내정자는 삼성 관련자 소환은 물론 출국금지도 하지 않고 서면 조사만 진행했다. 이에 반면 제보자와 이를 보도한 기자에게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을 적용해 이중 잣대라는 비판을 받았었다.
 

황 내정자는 지난 1977년부터 1979년까지 3차례 징병검사를 연기했다. 그는 1980년 징병검사 때 ‘만성담마진(만성 두드러기)’이란 피부질환으로 5급 판정을 받아 징집면제 처분됐다. 이 질환은 가려움을 수반하는 부종으로 손톱부터 손바닥 크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발병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징병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에 따르면 3개월 이상 담마진 치료를 받은 경우 제2국민역 판정이 가능했다. 
 
황 내정자는 당시 치료를 위해 6개월 이상 병원 진료를 받았다. 황 내정자는 “담마진 경우 최저 등급인 3급을 받으면 면제대상이었다”며 “징병검사를 세 차례나 연기한 이유는 사범시험 준비생들이 졸업연도까지 징병감사를 연기하는 게 관례다”고 밝혔다. 황 내정자와 함께 근무한 박영렬 변호사(전 검사장)는 한 종편에 출연해 “함께 청주지방검찰청에서 함께 근무할 때 피부병 때문에 약 먹으면서 고생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기억난다”고 확인해줬다.
 
두드러기 때문에…
입대 미루다 면제
 
일각에서는 황 내정자가 징병검사에서 면제판정 받은 이듬해에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점을 들어 잇단 징병검사 연기와 면제 판정 사이의 연관성을 의심했다. 군 면제 판정을 받을 정도의 질병을 갖고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점도 의문이라는 지적이다. 황 내정자는 2013년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불법이나 부적절한 일이 있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답변했다.
 
지난해 2월14일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황 내정자는 그야말로 의혹 종합선물세트였다. 병역, 재산, 투기, 과거행적 등 각종 의혹이 쏟아졌다. 
 

황 장관은 2011년 8월 검찰에서 퇴임한 뒤 법무법인 태평양에 취업했다. 이른바 ‘전관예우’로 16개월간 약 15억원의 보수를 받아 의혹이 일었다. 민주통합당 서영교 의원은 인사청문 요청안 자료를 분석해 황 내정자가 퇴임 직후 태평양으로 가면서 16개월 동안 15여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지난 2011년 8월 부산고검장을 끝으로 퇴임한 시점에 황 내정자의 재산 신고액은 13억6839만원이었다. 하지만 로펌행 이후 2013년 2월 시점에 재산은 25억8925억으로 확인됐다. 황 내정자는 지난 2011년 9월 태평양에 입사한 이후 그해 12월까지 불과 석달 동안 2억7000만원을 급여로 받았고 2012년 동안 12억80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서 의원은 “1년 반도 안 되는 기간 본인의 재산보다 많은 수임료를 받았다는 것은 전관예우차원에서 지급됐다고밖에 볼 수 없다”며 “아무리 전관예우라도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수임료”라고 지적했다. 반면 황 내정자는 “대형 법무법인 대표급 변호사로서 주도적 역할을 했을 뿐이다. 분기에 1회씩 상여금을 받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소득세법 위반 의혹도 불거졌다. 황 내정자는 2008년 성남지청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연말정산에서 배우자에 대한 부양가족 기본공제신청을 했다. 당시 대학에 재직하던 배우자 역시 이미 본인 몫의 기본공제를 신청해 이중 공제를 받았다. 
 
하지만 황 내정자의 배우자는 2008년 2곳의 신학대학으로부터 총 738만원을 수령해 기본공제신청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소득세법에 따르면 연간 소득금액 700만원 이상일 경우 부양가족 공제를 신청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이다. 

병역·역사관·전관예우 보수·탈루…
‘의혹 세트’ 청문회 문턱 넘을지 의문
 
황 내정자는 장남의 증여세 탈루 의혹도 있다. 장남은 2012년 8월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 10차 아파트 전세를 3억원에 계약했다. 황 내정자의 장남은 2011년 7월 군 제대 후 KT에서 근무를 시작해 연봉 3500만원인 직장인이었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증여세 납부나 채무관계는 인사청문요청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전세자금을 불법증여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현행 증여세법에 따르면, 직계존속간 증여도 3000만원 이상인 경우 증여세를 내야 한다. 장남에게 증여를 했다면 2억7000만원의 증여세납부기록이 있어야 한다. 서 의원은 “더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청렴성을 지켜야 하는 고위공직자들이 오히려 세금을 탈루하려 한다”며 “서민들은 허탈감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황 내정자를 질타했다.   
 
지난 21일 황 내정자 인준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김영록 수석대변인은 이날 국회 정론관에서 가진 현안 브리핑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황교안 법무장관을 국무총리로 내정한 것은 국민 통합형 총리를 원했던 국민의 바람을 져버린 것”이라며 “황 장관을 국무총리로 내정해 공안통치에 나서겠다고 노골적으로 선언한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장관 때와 다르다
야당 발목 잡을까
 
수 많은 의혹이 있는 황 내정자의 국무총리 인사청문회가 무사히 통과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야당의 반대가 거세지만 이미 한 번 인사청문회를 거쳤기 때문에 여권에서는 상대적으로 무난하게 통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인사청문회에서도 황 내정자는 한바탕 곤욕을 치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min1330@ilyosisa.co.kr>
 
 
[황교안 내정자는?]
 
▲서울 출생
▲경기고 졸업
▲성균관대 법학 학사, 석사
▲제23회 사법시험 합격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법무연수원 교관
▲사법연수원 교수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 형사제5부 부장검사
▲대검찰청 공안제1과장
▲서울고등검찰청 검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제2차장검사(삼성 X파일 사건수사)
▲부산고등검찰청 검사장
▲법무법인 태평양 형사부문 고문 변호사
▲법무부 장관
 
 
<기사 속 기사> ‘황교안 후임’ 소병철 누구?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총리로 내정되면서 후임 법무부 장관으로 소병철 전 법무연수원장이 거론되고 있다. 소 전 원장은 지난 2013년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된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정치권에서는 소 전 원장이 법무부 장관으로서 자질과 능력이 충분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소 원장은 1958년 전남 순천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사법연수원 15기로 대검 형사부장과 대전지검장 등을 역임했다. 
 
소 전 원장은 평소 겸손하고 원만한 성품으로 후배 검사들의 신망이 두터운 것으로 알려졌다. 소 전 원장이 국회 청문회를 거쳐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호남 출신의 장관은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을 포함해 2명으로 늘어난다. 
 
▲전남(55) ▲서울대 법학 학·석사 ▲미국 워싱턴주립대학 로스쿨 ▲제25회 사법고시 합격 ▲서울지검·서울고검·부산고검 검사 ▲대검 검찰연구관 ▲수원지검 여주지청장 ▲주미대사관 법무협력관 ▲법무부 검찰2·1과장 ▲대검 범죄정보기획관 ▲대전지검 차장검사 ▲법무부 기획조정실장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대검찰청 형사부장 ▲대전지검·대구고검 검사장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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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