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인물> ‘사고 1년…’ 지금도 피눈물 흘리는 세월호 유가족

아물지 않는 상처 끝나지 않은 싸움

[일요시사 사회팀] 박창민 기자 = 세월호 유가족들이 다시 거리로 나왔다.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사건 세월호 참사 1주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며 기억 속에서 참사의 안타까움과 충격은 점점 희미해졌다. 하지만 유가족들의 시간은 여전히 2014년 4월16일에 머물며, 그날의 충격과 기억이 생생하기만 하다. 참사 1주기를 맞아 세월호 유가족들의 지난 1년을 돌아본다. 

 
지난해 4월18일 사고 발생 3일 뒤 세월호 유가족들은 전남 진도실내체육관에서 “정부의 행태가 너무 분한 나머지 국민께 눈물을 머금고 호소하려 한다”며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이어 4월20일 유가족들은 “수색에 아무 진척이 없으며, 비상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책임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연락도 되지 않는다”며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했다. 
 
진실 묻힌채
힘겨운 사투
 
팽목항과 진도실내체육관에 있던 유가족들은 대통령에게도 알려야 한다며 청와대에 항의 방문을 하려 했으나 경찰이 이를 저지했다. 일부 유가족들은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갓길로 빠져나와 서울을 향해 걸어갔지만, 경찰이 다시 막아서 대치 상황이 벌어졌다. 
 
5월7일 실종자·생존자·유가족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아이들 휴대전화를 복구하는 데 있어 지원하겠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대책위는 이를 거부한다”며 “대책위가 해경으로부터 일괄 수거해 직접 복구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유가족들은 정부가 실종자를 조속히 구조하고 진상조사를 철저히 할 것을 촉구했다. 또 “검찰의 수사 내용과 더불어 해경·검찰이 수거한 휴대전화의 문자 내역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가족들은“가장 중요했던 사고 초기 구조작업이 이틀 이상 지연된 점 등을 철저히 진상규명하라”고 요구하면서 ▲검찰의 수사내용을 가족 대책위에 공개할 것 ▲해경 또는 검찰이 수거한 아이들의 휴대전화에 대한 수사내용도 공개할 것을 요구했다.
 
이어 ▲철저한 사고 진상 규명을 위해 함께 행동해줄 것 ▲앞으로 같은 사고가 반복되지 않는 안전한 나라를 만들 수 있도록 모든 국민이 함께 도와줄 것 등을 호소했다. 대책위는 “내 아이가 안전한 나라, 단 한 명의 국민도 끝까지 책임지는 나라는 국민들의 참여 없이는 불가능하다”며 함께 외치고 행동해줄 것을 국민들에게 부탁했다.
 
 
대책위는 5월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즉각적으로 가동하고 철저한 진상규명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대책위는 밤샘 협상에도 여야가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계약서 채택에 합의하지 못한 것과 관련해 원내대표가 “세월호의 선장이나 1등 항해사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7월1일 국회에서 진행한 ‘세월호 침몰사고 국정조사’가 열렸다. 하지만 조사위원회 일부 여당 의원들의 불성실한 태도가 도마에 올랐다. 조사 중 일부 의원들은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으며, 이재영 새누리당 의원은 보고 기관의 책임 소재와 무관하다는 이야기로 시간을 보냈다.
 
또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은 유가족이 지지부진한 국정조사를 질타하자 “경비는 뭐하느냐?” 등 유가족들을 조롱하는 태도를 보였다. 대책위는 여야가 진도 현장 기관보고 여부를 두고 충돌해 국정 조사가 파행한 것에 대해 “국회가 국정조사를 수행할 능력과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규탄했다.

국민들이 받은 충격 점점 희미
유가족의 시간은 여전히 4월16일
 

7월2일부터 세월호 유가족들은 버스로 전국을 돌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대책위는 이날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위는 국회에서 진행된 국정조사로 진실을 밝힐 수 없다는 걸 알았다는 입장을 밝히며 순회버스를 시작하는 취지를 설명했다.
 
7월14일 유가족들은 국회 본청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의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 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와 대통령은 유가족들이 원하는 특별법을 제정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참사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 10명은 국회 본청 앞에서, 5명은 광화문 등에서 단식 농성을 벌였다.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세월호 특별법은 ▲가족과 국민이 믿을 수 있는 특별위원회 구성 ▲특별위원회의 충분한 활동기간 보장 ▲특별위원회 내에 전문적 소위원회 구성 ▲특별위원회에 특검수준의 독립적 수사·기소권 보장 ▲참사 재발방지대책의 지속적 시행 보장 등이 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전례가 없고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든다며 특별법의 수사권을 인정할 수 없다고 각을 세웠다.
 
 
7월17일 대책위와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는 광화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의 면담을 요청했다. 이들은 “새누리당이 특별법을 반대하는 것은 진상규명의 칼날이 청와대로 향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며 “대통령은 우리를 청와대에 불러 약속한 특별법 제정이 거짓말이 아니었음을 확인해달라”고 성토했다.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중인 유가족들이 잇따라 구급대에 실려 갔다. 무더운 날씨 속에서 며칠째 이어진 농성으로 건강이 악화된 것이다.
 
각종 루머 유포
고인 모독 심각
 
8월11일 팽목항에서 유가족은 도보순례를 시작했다. 발견되지 않은 실종자 10명을 하루빨리 수습해 줄 것과 유가족들의 뜻이 담긴 세월호 특별법을 조속히 제정해 줄 것을 촉구한다는 취지에서다. 이날 새정치민주연합은 의원총회에서 8월7일의 여야가 합의한 특별법을 사실상 파기하고 재협상을 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9월8일 유가족들은 안산합동분향소에서 추석을 맞아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합동 기림상을 차렸다. 평소 아이들이 좋아했던 음식 한 가지씩을 준비해서 함께 상을 차렸다. 기림상을 걷은 후엔 유가족 가운데 일부는 팽목항으로 향했다. 나머지 유가족들은 광화문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행사에 참석했다. 
 
11월18일 대책위는 진도 팽목항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책위는 “하루 빨리 인양해 실종자를 찾고 싶다. 인양은 침몰 당시 상황을 알아내 진상규명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며 “인양은 두 가지 목적을 모두 달성할 방법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계속해서 재정적 검토와 공론화 과정 등을 거쳐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최종 결정한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인양 사전 조사를 담당하는 TF팀이 꾸려진다 하더라도, 최종 결정권이 없는 조직이다 보니 유가족들의 불안감은 커지기만 했다. 팽목항을 찾은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인양 논의가 더디다는 지적에 대한 입장을 물었는데, 이 장관은 아무런 답을 하지 못했다. 
 
 
12월20일 대책위와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한 안산시민대책위원회가 안산시 단원구 와동체육관에서 참사 이후 도움을 준 시민들을 초청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행사에는 세월호 참사 후 유가족을 위로한 안산시민과 자원봉사자, 단원고 3학년 학생, 시민단체 관계자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참석자들은 노란 목도리, 배지 등을 착용하며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유가족들을 응원했다.
 
이날 또 새누리당 몫으로 추천된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위원 5명을 반대하는 촛불 문화제가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서 열렸다. 세월호 국민대책회의와 유가족을 비롯한 시민 150명이 참석해 새누리당 추천 조사위원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2015년 1월1일 세월호 참사 진상조사위원회가 활동을 시작하는 날이었다. 18개월 동안 진상조사가 시작됐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만든 진상 조사 기관인 세월호가족대책협의회도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날 오전 대책위는 ‘엄마의 따뜻한 밥상’ 행사를 열어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한 국회의원과 시민 등을 합동분향소에 초청해 떡국을 대접했다. 하지만 이날 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대책위는 “예전 같으면 벅찬 희망으로 새해를 맞이했겠지만 지금 유가족들은 참사 이후 295명 희생의 아픔을 가슴에 묵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9명의 귀환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가족은 다시 한번 선체인양을 요구했다.
 
그동안 특별법과 관련해 보상 문제와 대학특례입학, 의사상자 지정 등의 논란이 있었다. 언론은 유가족들이 이 모든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유가족들은 세월호 피해자 전원을 의사자와 의상자로 지정해달라는 요청을 정치권에 제안한 적이 없다. 대책위가 대한변호사협회와 함께 마련한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안’에도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피해자들을 의사상자로 지정한다는 취지의 내용은 새정치민주연합이 지난해 7월3일 발표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피해자 지원 등에 관한 특별법안’에 담겨있다. 
 
“더이상 못봐줘”
48명 단체 삭발
 

당시 전해철·부좌현 의원이 공동발의한 이 법안에는 “세월호 희생자 전원과 피해자를 ‘의사상자’로 인정해 예우해야 한다”라고 명시됐다. 의사상자 지정을 두고 논란이 일자, 세월호 특별법 여야 TF팀은 기존 의사상자와의 혼선을 방지하기 위해 세월호 사고 피해자들을 ‘4·16국민안전의인’으로 별도 지정해 명예를 예우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전 의원은 “의사상자 지정이 보상에 집중돼 있다면, 4·16국민안전의인 지정에 따른 조치는 명예회복에 방점이 찍혀 있다”라고 설명했다.
 
단원고 학생을 위한 ‘대학 특례입학’ 방안 역시 대책위 청원 특별법안에서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에게 먼저 요구한 적도 없다는 게 유가족들의 증언이다. 세월호 피해 학부보는 “교육청이나 정치권에서 흘러나오는 특례입학 얘기 때문에 진상규명을 지지하는 여론이 돌아설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지난해 7월15일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김명연 새누리당 의원의 대표발의안을 병합 심사해 ‘세월호 침몰사고 피해 학생 대입지원 특별법안’을 의결했다. 피해를 입은 학생의 대입 지원을 위해 ‘정원 외 입학’ 근거를 마련한다는 게 법안 내용의 핵심이다. 유은혜 의원은 “피해 학생 대입지원 특별법안을 두고 피해 가족 학생들에게 무조건적인 특혜를 준다는 쪽으로 소문이 나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어 “참사 이후 성적이 급격 하락해도 내신 성적 수준에 맞게 대학 원서를 넣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법안 골자”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단원고 3학년은 무조건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도록 하거나 입학을 강제하는 내용이 아니다.  
 
숨기기 바쁜 정부…나몰라 국회
정치권·언론 희생양으로 전락
 
특별법 제정 요구가 한창일 때 유가족들이 보상 때문에 특별법을 원한다는 여론이 형성된 적도 있다. 하지만 대책위가 청원한 특별법안에는 보상과 관련해 ‘국가 책임의 원칙’ 정도만 언급된 정도다. 당시 유가족들은 정부와 보상 문제를 두고 공식 논의조차 시작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은 오히려 피해 보상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상규명이라고 밝혔다.
 
향후 세월호 진상조사위원회가 독립적으로 사고 원인 등을 규명할 수 있으려면 조사권과 기소권을 특별법에 명시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유경근 대책위 대변인은 “우리 아이들이 왜 죽었는지부터 밝혀달라고 했지 언제 돈 달라고 한 적 있느냐”며 “유가족들이 원하는 진상규명 조치부터 제대로 마련해주기만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참사가 일어나고 온 국민이 충격과 애도를 이어갈 때 인터넷에는 세월호 관련 악성글이 난무했다. 당시 확인된 글만 150여건이 넘었다. 네이버조차 악플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그림이나 노래로 희생자 유가족들을 조롱하는 등 정상인으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글들이 쏟아졌다. 특히 커뮤니티 ‘일베’에서 한 회원이 단원고 실종 여자 교사와 여학생들에 대한 성적 모욕 및 여성을 비하하는 행위를 강조하는 글과 사진을 게시판에 올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에 검거됐다.  
 
피의자는 경찰 조사에서 일베에 올라온 비슷한 글을 보고 자신도 호기심이 생겨 글을 썼다고 진술했다. 무엇보다 이 글쓴이는 여자였다.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일부러 비하 글을 올린 것으로 조사 과정 진술했다. 이 일베 회원은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정부에 불만을 토로하는 유가족들을 외부 선동꾼으로 매도하는 유언비어도 인터넷에 퍼졌다. 대표적으로 “밀양송전탑 반대 시위에 있던 사람이 있다” “정부 욕하던 사람 중에 유가족인 척하는 이가 있다” 등의 유언비어다. 이 유언비어를 새누리당 권은희 의원이 사실도 확인하지 않고 진짜인 것처럼 이를 SNS에 퍼뜨려 논란이 됐다. 그러나 당사자가 실제 실종자 유가족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게 되자 권 의원은 22일 새벽 자신의 트위터에 대국민 공개사과를 한 뒤 해당 글과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했다.
 
1주기를 앞두고 유독들은 끝내 머리를 밀었다. 삭발식에는 단원고 희생 학생 가족뿐 아니라 실종자 가족, 생존학생 가족, 등 52명이 함께했다. 이 중 48명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4명은 같은 시간 진도 팽목항에서 삭발했다. 이들이 단체 삭발을 감행한 이유는 지난 1일 정부의 배·보상 기준 발표 때문이다. 이후 언론에서 세월호 참사로 사망한 단원고 학생들이 1인당 8억2000만원을 보상금으로 받는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돈? 집어치워”
인양까지 거부
 
세월호 유가족들은 정부가 입법예고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세월호 선체 인양을 공식 선언할 때까지 모든 배상 및 보상 절차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유가족 150여명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가 참사 1주기 이전에 해야 할 일은 선체 인양을 통한 실종자 완전 수습과 철저한 진상규명이지 배상과 보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min1330@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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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