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 장관감 의심받는 정진엽 보건복지부장관 내정자

‘연금전문’ 내리고 ‘의료전문’ 올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이 구멍난 메르스 방역의 책임을 물어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을 경질했다. 후임자로는 정진엽 분당서울대병원 교수가 내정됐다. 연금개편을 성공적으로 마친 연금전문 장관에 이어 의료전문 장관을 내세운 것이다. 정진엽 내정자를 내세워 ‘의료 규제 완화’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노림수가 숨어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4일 그동안 교체 대상자로 거론돼온 보건복지부장관 교체 인사를 단행, 신임 장관에 정진엽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를 내정했다.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이러한 인사내용을 발표했다.
 
“의료체계 전반에 
 이해·식견 갖춰”
 
민 대변인은 “박 대통령은 오늘 보건복지부장관에 정진엽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를 내정했다”며 “정 내정자는 25년간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다양한 의료 경험을 통해 한국 의료체계 전반에 대해 깊은 이해와 높은 식견을 갖고 있어서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국민건강에 안정을 이룰 적임자”라고 밝혔다.
 
정 내정자는 1955년 서울 출신으로 서울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원자력병원 선임의사를 거쳐 서울대병원 교수로 재직했다. 33년 동안 의료계에 종사하며 특히 소아 뇌성마비 치료의 권위자로 평가 받고 있다.
 

분당서울대병원 개원 이후 교육연구실장, 정형외과 과장, 진료부원장을 역임했다. 또 4∼6대 분당서울대병원장을 역임하며, 서울대병원에서 산하 병원장을 3차례 연임한 것은 정 내정자가 처음이다.  
 
정 내정자가 원장에 취임한 다음 해인 2009년 개원 이래 최대 규모의 경영실적을 달성하는 성과를 올렸다. 인근 지역 외에 전국 각지의 환자들이 분당서울대병원을 찾으면서 전국 병원으로 이름을 올린 데 이어 중증 환자를 치료하는 상급종합병원에도 선정됐다. 
 
분당이라는 지역적 편중성을 극복하기 위해 전국 지방의료원과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등 ‘전국 병원’의 기틀을 마련했다. 또 최첨단 의료정보 시스템 개발에 과감하게 투자해 세계적인 권위를 자랑하는 힘스 애널리틱스사로부터 미국 밖에서는 세계 처음으로 의료정보화 최고 수준인 7단계 인증을 받는 등 의료IT 선도 병원으로서 탄탄한 입지를 굳혔다.
 
정 내정자는 분당서울대병원장일 당시 고객 중심의 병원 문화를 구축했다. 국립대병원은 삼성서울병원이나 서울아산병원 등 민간병원에 비해 불친절하다는 편견이 상당했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 내정자부터 권위를 탈피하고 직원들과 소통에 나섰다. 직원들이 스스럼없이 환자만족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고 전체 병원에 확산시키는 문화를 만들었다. 병원업계 처음으로 ‘6시그마’ 경영기법을 도입해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병원 시스템도 정비했다. 
 
특히 개인 이메일 공개와 SNS 개설 등 얼리어답터로서 교직원들의 고충과 아이디어, 제언 등 현장 목소리를 경청하며 주 1회 가정의 날로 정해 '칼퇴근'을 지시하는 등 여타 병원장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지난 2011년 분당서울대병원 암병원 개원을 앞두고 언론과 인터뷰에서 “출신 대학과 근무병원에 관계없이 실력 있는 전문의를 스카우트 대상으로 고려하고 있다”면서 의료계 구태인 학연과 지연을 탈피한 실력 중심의 탕평책을 천명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런 정 내정자의 당시 행보로 직원들로부터 명장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능력있는 병원장

경영 탁월한데…
 
정 내정자를 발탁 배경에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았던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과의 각별한 인연이 자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성 이사장은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초대 이사장을 맡은 인연으로 지금도 박근혜 대통령과 직접 통화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 있다”며 “본인이 장관 후보로 올랐지만 이를 고사하고 정 후보자를 추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전했다.
 
정 내정자는 박정희정권 시절에 의과대학 학생회장을 맡아 민주화운동을 해 1년 늦게 졸업했다. 그런 그가 박근혜정부에서 복지부장관을 맡게 된 것은 기묘한 인연으로 보인다.
 
정 내정자는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민영화’ 기조에도 잘 맞는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정 내정자는 병원경영자의 이익집단인 대한병원협회에서 병원정보관리 이사를, 의료기기업자의 이익집단인 의료기기상생포럼에서 총괄운영위원장 등을 맡았다. 삼성과 SK텔레콤 등 전자회사와 통신사들이 야심차게 추진하던 바이오산업과 헬스케어산업 등에 족적을 남겼다. 특히 그는 서울대병원과 SK텔레콤의 영리 합작회사인 헬스커넥트 사업에도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산업창의융합포럼’ 글로벌헬스케어분과위원장을 맡아 ‘의료 규제 완화론’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하기도 했다. 공무원연금 개편도 끝난 지금, 이러한 이력을 가진 정 내정자가 박 대통령 임기 말까지 ‘의료 영리화’ 정책에 박차를 가할 적임자로 평가받는 이유다.
 
특히 정 내정자가 현 정부가 논란 속에 추진해온 원격의료 관련 특허를 다수 보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의료계에서는 정보통신기술(ICT)을 의료에 활용하는 정부 정책에 속도와 힘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원격진료는 안전성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고, 복지장관이 특허를 보유한 이해당사자일 경우 논란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정 내정자가 갖고 있는 21개 특허의 상당수는 원격진료, 병원자동화 영역과 맞물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2년 6월22일 출원돼 지난 4월8일 등록된 ‘원격진료 서비스 시스템 및 방법’ 특허는 정형외과전문의인 정 내정자가 의과 교수 5명과 함께 특허 발명자로 이름을 올렸다. 
 
구멍난 메르스 방역 책임 문형표 경질
서울대병원 교수 내정…대통령 의도는?
 
특허 내용은 수술 후 퇴원한 환자의 만성창상(욕창·궤양 등 만성적으로 자리 잡은 상처)을 의료진이 원격으로 관리하는 서비스 방식과 시스템에 관한 것이다. 환자가 스마트폰 같은 휴대용 단말기를 통해 환부 영상과 문진 정보를 의사에게 전송하면 의사가 상처 관리법, 치료용 제품, 영양·생활습관 권고 등을 다시 환자의 단말기로 전송하게 된다. 
 

정 내정자가 갖고 있는 특허에는 ‘휴대용 단말기를 이용한 의료정보시스템’과 ‘전자의무기록시스템’ 등도 포함돼 있다.
 
 
정 내정자의 특허 내용은 정부의 원격의료 도입 취지와 일치한다. 복지부는 “자가관리를 해야 하는 고혈압·당뇨 등 만성질환자나 수술 후 퇴원 환자의 편의를 위해 원격의료를 도입할 계획”이라며 도서벽지·원양선박·전방부대·교정시설 등을 중심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와 보건의료 관련 시민단체들은 원격의료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고, 원격의료가 환자들의 대형병원 쏠림 현상을 더 부추길 것이라며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의협은 원격의료·의료영리화 정책에 반발해 집단휴진까지 감행한 바 있다. 정 내정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복지부장관으로 취임하면 원격의료의 전면적 도입 시기가 앞당겨질 공산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의료민영 염두?
비전문가 논란
 
보건의료단체연합은 성명을 내고 “정 내정자는 분당서울대병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병원정보 시스템을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중동지역 의료수출을 추진한 인물”이라며 “박 대통령의 이번 인사는 보건복지부를 아예 ‘복지는 없는 의료상업화 부처’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 후보자 내정은 메르스 사태로 드러난 공공의료를 강화하기는커녕 오히려 병원정보시스템을 활용한 의료수출론을 키워 SK텔레콤 등이 벌인 개인의료정보 거래 등을 통해 돈을 벌어들이는 의료산업화를 가속화할 인사정책”이라고 우려했다.
 

사실 정 내정자는 대내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이 때문에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여야 의원실은 이번 청와대 인사 발표를 듣고 의외 인사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문형표 전 장관은 그래도 좀 알려진 인사였는데 정 후보자는 하마평에도 없었고 전혀 알지 못하는 인물”이라며 “정 후보자에 대해 알아본 뒤 청문회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여야는 벌써부터 정 내정자의 관련 전문성을 놓고 엇갈린 입장을 내놨다. 새누리당은 관련 업무 전문가라고 치켜세웠지만, 새정치연합은 전문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김영우 새누리당 수석대변인은 “정 내정자는 의료분야의 전문가다. 앞으로 질병에 대한 예방과 대처에 빈틈없이 능력을 발휘하고 국민의 복지 향상에 이바지해주길 기대한다”고 했다. 
 
반면 김성수 새정치연합 대변인은 “정 내정자는 행정경험이라고는 분당서울대병원장 경력뿐이라 보건복지와 관련된 복잡한 현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로 보기 어렵다. 공적연금 등 당면한 현안을 슬기롭게 해결하고 메르스 사태로 실추된 보건당국에 대한 국민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정 내정자가 복지부장관으로 임명되려면 국회 인사청문회라는 1차 관문을 넘어야 한다.
 
17년만에 나온 의사출신 장관
끊임없이 지적되는 자질 논란 
 
문형표 전 장관이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재직하면서 법인카드 사용 문제로 홍역을 치른 것에 비춰보면 정 내정자를 향한 야당의 파상공세가 예상된다. 정 내정자는 병원장 재직 시절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야당이 이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 가능성이 높다.
 
정 내정자가 장관에 임명된다고 해도 해결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등 공적연금 개혁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문형표 전 장관의 유임설이 나온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반면 정 내정자는 이 분야에 전혀 경험이 없으므로 국민적 관심사인 공적연금 개혁에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부호가 따라다닌다.  
 
보건의료단체는 보건복지부에서 보건분야를 별도 부처로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복지부 의사결정구조에서 보건전문가가 전무하다는 이유여서다. 정 내정자의 이번 인사는 이런 요구를 일면 수용한 듯하지만, 메르스로 타격을 입은 보건의료단체와 정부 관계를 복원하는 문제는 쉽지 않을 수 있다. 정 내정자가 장관에 임명돼 원격의료 도입을 추진하면 지난해 대한의사협회 파업 같은 극단적인 갈등 상황이 나타날 가능성도 높다.
 
예상 못한 인사
풀 현안 산적
 
정 내정자도 이같은 점을 인식하고 있다. 정 내정자는 이번 인선이 확정된 이후 간담회를 열고 “의료인으로서 (장관으로) 지명된 것은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복지와 더불어 대한민국 보건의료체계를 더욱 발전시키라는 뜻으로 생각한다”며 “장관이라는 중책을 맡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는 “청문회에 성실히 임할 것이며, 통과해 장관에 임명되면 국민 건강과 복지 증진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min1330@ilyosisa.co.kr>
 
 
[정진엽은?]
 
▲ 서울 출생(58)
▲서울고, 서울대 의대, 서울대 의과대학원
▲원자력병원 선임의사
▲서울대병원 전임강사
▲미국 길레트 아동병원 펠로우
▲서울대병원 교수
▲서울대병원 소아정형외과 분과장
▲분당서울대학교병원 교육연구실장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정형외과 과장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진료부원장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원장
▲대한소아정형외과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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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